‘성경의 핵심 통독 워크북’이 출간되었습니다

# 성경의 핵심 통독 워크북

제가 그동안 성경 공부를 인도했던 경험을 집약한 ‘성경의 핵심 통독 워크북(초급용)’이 출간되었습니다.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일관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출간했습니다.

# 특징

  • 성경을 보게 하는 교재

교재가 아니라 성경에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교재입니다.

  • 성경을 연결해 주는 교재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해주는 교재입니다.

  • 교재를 만들게 돕는 교재

A4 용지를 활용해서 교재로 사용할 수 있고, 스스로 교재를 만들 수도 있게 돕는 교재입니다.

  • 교재를 종합한 교재

다양한 성경 공부의 장점을 종합해서 만든 교재입니다.

# 강의 듣기

1-1강 Tool 0 ~ Tool 2

1-2강 Tool 0 ~ Tool 2

2-1강 Tool 3 복습, 성경의 약도

2-2강 Tool 3 성경의 약도(지중해 기본도 / 땅분배 약도 / 이스라엘 도로)

# 교재 보기

[다운로드] 성경의 핵심 통독 워크북(초급용) 1학기

# 강의 요청

  1. 목회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2. 10명 이상 모이면 출강 가능합니다.

# 책 구입

절판되었습니다.

*택배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2018w21_소망을 간직하고 봄을 보냅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머리를 부드럽게 흐트리며 지나가는 바람처럼 봄이 떠나갑니다. 그러나 계절이 변해도 저희들 마음에는 봄을 통해 하나님이 알려주신 소망이 남아있습니다.

이제 저희는 아무리 겨울이 혹독하게 추워도 반드시 봄이 다시 찾아온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슬프고 고통스런 시간에 용기와 기쁨을 주시옵소서. 세상의 절망하는 영혼들에게 새힘을 베푸시며, 이 땅의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날마다 소망을 불어넣어 주시옵소서.

평범한 일상에서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도우시는 주님을 기뻐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을 보고 온 세상이 주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각자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고 걱정거리가 다를지라도 저희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자녀입니다. 주 안에서 연합하고 함께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쁘고 슬픈 모든 순간 함께 하시고 나아가는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선택의 순간에 지혜를 주시며, 간절한 바라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옵소서. 정의롭고 공평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며, 이 땅에 미움이 그치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섬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거룩하신 성령이여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취소된 북미 정상 회담이 재개될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벼랑끝 전술을 펼치는 북한의 외교 전술을 억제하시고, 힘의 논리로 억지를 부리는 미국 강경파를 제어해 주시옵소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온전히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긴강을 고조하려는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방해를 무효화하여 주시옵소서.

중앙아시아 이슬람 지역을 선교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중앙아시아 횡단 철도와 도로가 속히 연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길을 통해 선교사들이 중앙 아시아로 진출하여 오랫동안 고통하던 중앙아시아 영혼들이 복음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평가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람을 느끼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교회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여 참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나 주님의 기쁨되기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05.27_누구든지 목마르거든

# 본문

요한복음 7:37~39

설교 듣기

# 핵심 구절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한줄 요약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갈급함을 해갈해 주십니다.

# 개요

지난 주는 성령강림절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인격을 만들고, 예수님의 사역을 하게 하십니다.

0. 우물을 파는 사람

“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그 우물물을 마시기 위해 오늘도 우물을 판다.”
이것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낸 ‘우물을 파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한 말입니다.

이어령 전장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른들은 늘 한 우물을 파라고 했지만 나는 거꾸로 여기저기 새 우물을 파고 다녔다. 이곳을 파면 물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바로 나의 갈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물을 파다가 작은 물방울만 비쳐도 나는 금시 또 다른 갈증을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것이 나의 글쓰기이고 여기저기 전전해 온 내 직업들이다.”

이어령 박사는 평생 우물을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무언가에 대한 갈증과 배고픔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가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이어령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나이 들어 세상에서 좋다는 것을 다 누렸을 때, 그는 자신이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고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는 수없이 실패의 우물을 파며 처절한 영혼의 광야를 통과한 후, 비로소 영원히 마르지 않을 샘물과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암에 걸려서 간절하게 아버지에게 전도했고, 비로소 그가 복음에 마음을 연 것입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비슷한 책으로 중국의 석학 임어당이 지은 ‘이교도에서 기독교인으로’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임어당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달콤하고 고요한 생각의 초원을 걸었고 아름다운 계곡들을 보았다. 유교 인본주의의 대저택에 한동안 기거했고, 도교라는 산봉우리에 올라 그 장관을 보았으며, 무시무시한 허공 위에서 흩어지는 불교의 안개를 엿보았다. 그 이후에야 나는 최고봉에 해당하는 기독교 신앙에 올라 구름이 내려다보이는 햇살 가득한 세상에 도달했다.(85쪽)” 대저택(유교)과 산봉우리(도교), 안개(불교)를 품고 햇빛(예수님)을 바라본다.

이어령 박사나 임어당은 자신에게 어떤 목마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해갈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결국 예수님 안에서 생수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을지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첫째, 목마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은 이스라엘 3대 명절 중 하나인 초막절의 마지막 날을 의미합니다. 초막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은 모든 일을 중단하고 성전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큰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는 성전 제단에 물을 붓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일종의 기우제였는데, 제사장들이 실로암 못에서 물을 가져와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때에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유대인들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의 ‘호산나’를 외치면서 물 붓기 행사에 참여하였다.

초막절이 끝나면 곧이어 바쁜 농사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의 이스라엘에서는 적당한 때에 비가 내려야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적당한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신 11:14).

그런 점에서 ‘명절 끝날’은 일주일 동안의 초막절 절기와 앞으로 다가올 농사철에 필요한 비를 구하는 공식적인 기우제 예식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적 의무감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풍요로운 삶의 근거인 비까지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바로 그때에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고 외치셨습니다. 이것은 형식적인 신앙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여도 내면적으로는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께로 오려면 먼저 자신이 얼마나 목마른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 안에 있는 생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생수의 강

둘째, 생수를 먹어야 합니다.

‘배’로 번역된 헬라어는 ‘코일리아’로 우리 몸인 ‘배’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역시 같은 의미의 ‘베텐’이다. 이것은 신체 부위를 들어서 영적 의미를 추구하는 당시 유대인들의 독특한 표현기법 중 하나였습니다. ‘배’는 영적으로 내면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배’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생명은 중심의 변화입니다. 그런 변화된 삶의 중심에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이 들어와 함께 사신다는 의미입니다.

‘강’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지역이므로 1년 내내 물이 흐르기만 하면 ‘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연중 물이 흐르는 ‘강’은 시작이 지하수 샘인 강입니다. 만일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양이 많지 않다면, 어느 정도 흐르다가 주변의 고온 건조한 기후에 의해 곧 마르고 맙니다.

주님께서 하신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즉,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늘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수 근원이 우리들 안으로 들어와 우리들 삶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갇혀 있거나 도중에 증발돼 버리는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자신을 넘어서서 주변으로 흘려보내는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사시는 예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넘쳐흐르는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3. 믿는자들이 받을 성령

셋째, 생수를 얻을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독교 저술 중에 하나가 김준곤 목사님의 ‘예수 칼럼’입니다. 성령에 관한 어떤 책보다 이 책을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성령 성령한다고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성령 충만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00. 해갈

예수 칼럼 중에서 ‘생수의 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소개하고 마치고자 합니다.

크리스천은 영원한 소년, 젊은 독수리의 비상(飛翔), 날마다 새 것을 잉태하는 처녀성, 다함 없는 생수의 샘터를 영혼 속 깊이 지녔다. 병들고 가난한들 어떠랴. 장미가 쓰레기에서 피고, 최악을 최선으로 바꾸며, 역경에서, 고통에서 모세가 광야의 반석을 쳐서 생수가 터지게 했듯이 전혀 그럴 수 없을 때 그럴 수 없는 곳에서, 사막의 반석 같은 처지와 환경 속에서 쿨쿨쿨 생수의 강이 터지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라. 생수의 강, 성령의 강이 죽음 같이 깊은 곳에서 터지게 하라.

믿는자에게는 성령께서 생수의 강을 터쳐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찬양과경배. 124 내 주의 은혜 강가로

 

2018.05.20_항상 함께 있으리라

본문

마태복음 28:16~20 / 2018년 05월 20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한줄 요약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작은 예수로 만들어가십니다.

개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활동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위로와 격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사십 일은 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감동적인 변화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0. 작은 예수를 만드는 성령님

어제 영국 해리 왕자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오랜만에 있었던 국가 행사였기 때문에 떠들썩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이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신부 때문입니다. 신부가 매건 마클이라는 영화 배우입니다. 톱 배우는 아니고 나름 유명한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나와서 이름을 알린 정도의 배우입니다. 독특한 점은, 피부색이 검습니다.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데 흑인쪽에 가깝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해리 왕자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37살이고, 결혼한 경력이 있는 이혼녀입니다.

사회운동과 자원봉사도 열심히 했는데, 해리 왕자와 매건을 연결한 것은 자원봉사 활동으로 알려졌습니다. 매건은 월드비전 캐나다(World Vision Canada)의 국제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르완다에서 조직의 깨끗한 물 운동(Clean Water Campaign) 홍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 사고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여성이 왕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 우리가 해리 왕자보다 심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생각합니다.

매건 마클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서 세상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성이 왕자와 결혼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신자를 신부로 비유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의 생각을 잘못 추측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원하시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예수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주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세상의 심판은 철저하게 예수님이 주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는 많은 물소리 같고, 백마를 타셨습니다.

(계 19:15~16)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그러나 예수님은 초림때는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과시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걸 ‘구원의 경륜’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해하고 따라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예수님을 섬기니까 전도할 때 “니네들 까불지마라”라는 생각으로 전도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에 하신 것처럼 겸손하게 전도해야 합니다.

2. 우리를 보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를 보내십니다. 호화로운 궁전에 살게 하지 않고 거친 광야에서 살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을 정말로 기다리고 사모했던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기도와 금식으로 젊음을 불태웠습니다.

(마 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사도 바울도 비슷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과 대조적으로 자기 삶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11:23~27)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예수님은 우리를 광야로 보냅니다. 우리를 보내신 목적은 우리 자신과 세상 둘을 모두 변화시키려는 목적입니다. 소금이 스스로 녹아야 물을 짜게 합니다. 등불이 스스로 타올라야 세상을 밝힙니다. 자기 희생 없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광야로 안가는 게 더 유리합니다. 그러나 부귀영화보다 예수님의 인정과 평가를 원한다면, 광야로 가야 합니다.

(11:7~9) 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3. 함께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때로는 몇 천원이 없어서 커피를 먹고 싶어도 못 먹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띠링하고 알람이 울립니다. 아는 분이 개인적으로 2만원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감사기도 드리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비참한 삶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함께 하는 행복한 삶입니다.

많은 돈을 펑펑 쓰면서 사는 분도 계시겠지만, 부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가난한 것이 행복이고, 부요한 것이 불행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 때 마음이 부요해져서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지옥 같았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못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삶이 좋은데 이런 삶이 싫은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선택하십시오.

00. 작은 예수가 되자

예수님은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지만 우리를 광야로 보내십니다. 그러면서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를 작은 예수로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하는 예수님을 따라 삽시다.

2018w20_들꽃과 새를 보며 감사합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긴 담장을 따라 홀로 걸으면 어느새 민들레 홀씨가 날아와 동행합니다. 화려한 꽃들이 지나간 자리를 지키는 소박한 들꽃 민들레를 봅니다.

오늘 피었다 지는 들꽃도 아름답게 입히는데, 하물며 너희를 입히지 않겠냐고 말씀하신 주님. 가꾸어주는 사람 없어도 아름답고, 보살피는 사람 없어도 늘 활기넘치는 민들레가 주님의 솜씨인 것을 깨닫습니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모두 먹이는데, 사랑하는 자녀를 먹이지 않겠냐고 물으신 주님.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는 새들을 보며 저희의 믿음 없음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묵상하며 한 주간을 시작합니다.

사랑의 주님!
각자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고 걱정거리가 다를지라도 저희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자녀입니다. 기쁘고 슬픈 모든 순간 함께 하시고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선택의 순간에 지혜를 주시며,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저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정의롭고 공평한 자의 편에 서게 하여 주시며, 이 땅에 미움이 그치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131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개최될 한미, 북미 정상 회담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이 굳건한 동맹을 확인하게 하여 주시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도록 두 정상의 마음을 연합해 주시옵소서.

이후 개최될 북미 정상 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약속하고 온전히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를 계기로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복귀하게 하시며, 북한 주민의 오랜 고통이 완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미국 강경파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저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전쟁으로 인한 비극 또한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의 계략을 무효화하여 주시옵소서.

북한과 철도, 도로가 연결되어 남북한 경제가 함께 성장하게 하시고, 그 길을 통해 선교사들이 중앙 아시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우리나라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지역을 선교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평가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람을 느끼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교회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여 참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480 나 주님의 기쁨되기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05.13_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본문

누가복음 24:36~48 / 2018년 05월 13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눅 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한줄 요약

성경을 깨닫는다는 것은 체험이 동반된 전인격적인 사건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성경을 보다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개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활동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위로와 격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사십 일은 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감동적인 변화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0. 깨달음은 전인격적인 사건

성경을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이 작용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체험입니다.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경을 다시 가르치신 이유는 그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성경을 배울 준비가 갖추어졌기 때문입니다.

(눅 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을 통해서 인격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고, 그때에야 깨달을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전에도 예수님께 성경을 많이 배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보고 그 사건에 동참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깊은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진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백한가지 이야기’를 보면 처음에 나오는 간디의 신발 얘기가 나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인도해방운동 지도자 간디(Mohandas K. Gandhi, 1869-1948)가 어느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출발에 임박해서 급히 기차에 뛰어 올랐습니다. 너무 서둘러 기차를 탔기 때문에 그의 신발 한 짝이 플랫폼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신발은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에 평민이 가지기는 힘든 것이었습니다. 기차는 이미 출발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기차 밖으로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줍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바로 그 때 간디는 다른 쪽 발에 신고 있던 신발을 급히 벗어 기차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이 급작스러운 행동을 본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습니다. 신발 한 짝이 떨어진 것만 해도 아까운데 다른 한 짝을 고의로 벗어 기차 밖으로 던져 버리다니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을까요?

사람들은 간디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까운 신발을 어찌 그렇게 던져 버리십니까?” 그러자 간디는 웃음을 지으며 “어떤 가난한 사람이 떨어진 내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신발 한 짝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마저 갖게 될 것이니 기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간디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간디가 신발 한 짝이 벗겨졌을 때 다른 한 짝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격의 성장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건 간디가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된 계기가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간디는 자신의 비폭력 사상을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인 ‘산상수훈’에서 발전시켰습니다. 간디는 성경에 매우 정통했고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기독교인들보다 더 성경을 잘 따랐던 사람이 간디입니다. 그의 삶이 성경에서 힘을 얻었고 그가 독립운동을 할 때, 성경이 가르치는 전략을 따랐습니다. 그는 힌두교인이었지만, 힌두교를 따르지 않고 성경을 따른 덕분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도의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간디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놀라운 일을 행했습니다. 세계 최강의 제국 로마를 복음화했습니다. 그들이 로마를 복음화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성경은 세 가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1. 두려움과 의심에서 벗어나자

먼저, 불필요한 두려움과 의심을 해결해야 합니다.

(눅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두려움과 의심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입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면 속사람이 자랄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귀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귀신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귀신이 있다면 하나님도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안심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의 성품을 알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놀래키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등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배려심이 깊고 섬세하십니다.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더 나아가 의심하는 마음도 꾸짖지 않고 풀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도마를 꾸짖으신 이유는 믿을만한 증거를 보여주어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비뚤어진 마음을 꾸짖으신 것이지 의심 자체를 꾸짖으신 것이 아닙니다.

2.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자

두 번째로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눅 24: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님께서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영이라면 음식을 먹지 못할 텐데 잡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이 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일은 바르게 이해하지만,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바르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방송과 뉴스를 보십시오. 매우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옳은 것인지 바르게 판단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는 현실을 바르게 보는 눈은 조금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몇 달 전에 프로야구가 개막한지 얼마되지 않알을 때 어떤 성도님과 식사하면서 어떤 팀을 응원하냐고 물어보다가 한화 이글스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한 팀을 응원하지 않고 매년 돌아가면서 응원하는데, 올해는 한화하고 롯데를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제가 한화가 앞으로 잘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한화가 연패를 당해서 분위기가 안 좋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신 있게 앞으로 잘 할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한화가 경기하는 것을 보니까 선수들 정신력과 실력이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내린 예상이었습니다. 지금은 한화가 3등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사람마다 어떤 부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어떤 면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속사람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바람, 편견, 감정, 어리석음에 휩쓸려서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봅니다.

속사람이 강해지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3. 고난 중 형통을 받아들이자

세 번째로 고난 중 형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항상 십자가와 부활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하면 부활은 자동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눅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고난을 달게 받아들이고 고난을 통한 성장을 기대하지 못하면 속사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야는 쉽게 돈벌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구원받고 쉽게 능력받고, 쉽게 형통한다는 말이 사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따르려면 치러야할 댓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십시오. 형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보십시오. 고난 당할 것입니다. 반대로 고난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고난 중 형통할 것입니다.
고난 중 형통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결론

스탠리 존스라는 인도 선교사가 간디를 만난 일화를 책에 소개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간디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꺼냈지요. “마하트마 간디, 저는 인도에서 기독교가 생활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더 이상 외국 사람 또는 외국 정부와 동일시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빨리 기독교가 인도인의 삶의 일부가 되고, 인도의 정신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인도를 구원하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간디는 제 말을 듣고 아주 엄숙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군요. 우선 여러분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을 포함한 모든 서양인들이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영혼으로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는 여러분을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면서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종교의 가르침대로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지 말고 타협을 하지 말 것을 제안합니다.”

간디의 조언은 계속되지요. “세 번째로 저는 여러분이 사랑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일을 해 내는 강력한 원동력으로서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도덕적 세계에서 실제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간디는 그 기독교의 사랑이 개인들 사이와 집단들 사이, 인종과 나라들 사이에 적용되길 바라지요. 그 사랑이 세계를 통합시키고 구원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랑의 의미에 너무나 민감한 영혼을 지니고 있던 간디에게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 주었을 때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네 번째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비기독교 종교와 문화를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은 비기독교 종교와 문화 속에 있는 장점들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그들에게 접근할 때 보다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간디가 객관적인 시각에서 기독교가 부흥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성경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경의 깊은 세계로 인도받을 것입니다.

찬양과경배. 298 주 품에 품으소서

2018w19_가정과 스승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매일 짙어지는 신록의 싱그러움과 눈부신 햇살의 신선함이 소망을 새롭게 하는 아침,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계절 오월에 가정과 스승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스승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습니다. 또한 어린이를 보며 저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동시에 간구하옵기는 부모로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하게 하시고, 스승으로서 하나님의 지혜로 제자를 가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로서 예수님처럼 부모님께 순종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안에 있는 거역과 반항, 어리석음의 기질을 제거해 주시옵소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와 동행하셨던 주님!
보이지 않지만 저희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사오니, 메마른 인생 길에 때를 따라 단비를 내려주시고, 뜻밖의 선물로 기쁨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시고,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소망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기 원하시는 그 사랑 안에 우리가 늘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진실한 사람이 되어 구주 예수 그리스도 편에 설 수 있도록 우리를 깨우소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정의와 공평한 자의 편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408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개최될 한미, 북미 정상 회담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이 굳건한 동맹을 확인하게 하여 주시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도록 두 정상의 마음을 연합해 주시옵소서.

이후 개최될 북미 정상 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약속하고 온전히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를 계기로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복귀하게 하시며, 북한 주민의 오랜 고통이 완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오롯이 지킨 믿음이 우리나라에 확산하여 큰 부흥이 일어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북한과 철도, 도로가 연결되어 남북한 경제가 함께 성장하게 하시고, 그 길을 통해 선교사들이 중앙 아시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평가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람을 느끼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교회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여 참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05.06_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본문

요한일서 1:8~10 / 2018년 05월 06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한줄 요약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개요

박진영이 구원파라는 방송이 나오면서 구원파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왜 구원파가 이단인지 알고 싶어하더군요. 이단에 대해서 잘 알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단을 연구한다고 해서 신앙이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위조 지폐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위조 지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위조 지폐가 나오기 때문에 다 연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효과적인 방법은 진짜 지폐를 확실하게 아는 것입니다. 진짜 지폐가 아닌 것을 위조 지폐로 판정하면 됩니다.그렇다고, 위조 지폐에 조금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위조 지폐를 알고 있으면 판별이 쉬워집니다. 마찬가지로, 이단에 대해서도 많이 알 필요는 없지만, 대표적인 이단에 대해서 조금 알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구원파가 왜 이단인지 조금 설명드리고, 참된 기독교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겠습니다.

 1.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구원파가 이단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구원파 사람들이 정통 기독교인들을 만나면 사용하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구원받으셨습니까?” “예,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이어지는 질문이 “언제 어디서 구원받으셨습니까?”이다. 이에 대해 정확히 확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면 “죄송하지만 선생님은 구원받지 못하셨습니다.” 라고 말해준다. 자신이 육신적으로 태어난 날은 정확히 기억하여 매년 지키면서 어떻게 우리의 영생을 좌우할 영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사실일까? 구원받은 날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구원받은 날짜를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성경에는 그런 걸 주장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성경에 보면 바울이나 빌립보 감옥의 간수같이 극적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 그래서 구원받은 날짜와 장소를 정확히 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면에 디모데나 루디아같이 그런 극적인 경험이 없이 조용히 예수님 믿고 회심하고 구원받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원받았느냐를 아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와 있느냐 아니냐인 것입니다.

둘째, 구원받은 사람은 회개할 필요없다고 한다

한 번 회개하고 죄사함 받은 사람은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은 회개(metanoeo)와 자백(homologeo)을 구분한다. 회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을 때 단 한 번만 하는 것이고, 그 이후로는 일상적인 죄들에 대해 자백만 하면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할까요? 요한일서 9절을 근거로 듭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면 성경에 정말 회개는 한 번만 하면 되고 자백은 반복해서 하라고 되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위의 요한일서 9절을 검토해보면, 거기에서 말하는 “자백”은 사실 구원파가 주장하는 “회개”와 동일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이 모든 불의(adikia, 여성형 단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고 했는데, 이 “불의”는 의롭지 못한 개별행위들(복수)이 아니라 그런 행위들의 뿌리인 “불의”(단수)인 것이다. 이렇게 “자백”이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이건 구원파에서 말하는 “회개”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셋째,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한다

구원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실 때 인류의 모든 죄가 일시에 용서되었다. 이 용서는 우리가 회개를 하든 하지 않든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다 용서해주신 것이다. 그러면 구원파에서는 결과적으로 누가 구원을 받는가?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거듭나고 구원받는다.

구원파에서는 회개의 고된 투쟁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깨달음만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후 느끼는 비참함, 자신이 지옥에 가 마땅한 존재라는 전적인 승복,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관한 뜨거운 감사를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사람들이 구원파에 빠지는 이유는 쉽고 단순하고 죄책감을 제거한 구원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에 빠진 사람들은 죄책감이 없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얼핏 들으면 정통 교회와 비슷한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칭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justification)를 철저히 오해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가 필요하고 이 “의”는 우리의 선한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이 칭의의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구원파는 이 칭의의 교리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이해합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의가 주어질 때 우리 속에 있는 “죄덩어리”가 단번에 완전히 없어져서 이제부터는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칭의가 그런 의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총으로 죄가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서 죄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에게 죄가 남아있지만 더 이상 하나님이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범죄를 저지른 피고가 그 범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형벌을 면제받았다고 그 범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형벌을 면제해주시고 의인으로 선언해주셨다고 해서 우리의 죄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파에서는 한 가지 종류의 회개, 즉 칭의의 회개만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맞지도 않고 우리의 경험에 맞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구원받은 후에도 자신의 죄성과 싸우는 모습을 보였고 다윗도 여러 번 회개한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회개는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우리 안에 죄성이 남아 있고 죄와의 싸움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 죄와의 싸움은 매우 가치있는 경험입니다. 그 싸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소중함과 가치를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에 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3. 주의할 점

주의할 점은 정교도의 주장에 의하면, 구원은 립서비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통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도 죄책감을 제거하지는 않지만, 구원을 매우 쉽고 단순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나름대로 은혜 체험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는 것으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좀더 확실한 구원 체험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좀더 안전한 구원 체험은 한 마디로 죄의 각성과 십자가 체험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라는 처절한 인식을 하지 못했다면 그 체험을 위해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방언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은사를 행하는 모든 것이 죄의 각성 없이는 무의미합니다.

저는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면, 모르는 것이라는 신조로 신앙 생활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에게 냉철한 기준을 세우고 자신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구원파는 구원 받은 날짜를 알아야 구원이라고 가르치고, 구원 받은 사람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또,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구원이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인본주의를 믿고, 죄를 지어도 죄책감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전인격적인 만남 없이 구원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백퍼센트 지옥에 갑니다.

참된 기독교는 죄의 각성을 통해서 자신이 철저하게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선고를 인정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전인격적으로 체험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죄의 각성입니다.

죄의 각성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8w18_오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창조의 하나님,
구김 없는 햇살이 축복처럼 내려오고 연한 녹색이 길과 가로수로 번져갑니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지만, 한 없이 부드럽습니다. 신록의 계절 오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부신 아침,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회색빛 그림자를 초록색 이파리로 지워주시옵소서. 이루지 못한 소망이 오월의 꽃봉오리처럼 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와 동행하셨던 주님!
보이지 않지만 저희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메마른 인생 길에 때를 따라 단비를 내려주시고, 예상하지 못한 선물로 낙심한 마음에 기쁨을 주시며, 함께 할 동료를 보내주셔서 믿음의 길이 지루하지 않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소금처럼 짠맛을 잃지 않게 하시고, 등불처럼 빛을 잃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처럼 섬김을 실천하여 저희를 이 세상에 두신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하늘나라에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408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개최될 한미, 북미 정상 회담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이 굳건한 동맹을 확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도록 두 정상의 마음을 연합해 주시옵소서.

이후 개최될 북미 정상 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약속한 완전히 비핵화가 온전히 실행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게 하시며, 북한 주민의 오랜 고통이 속히 완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북한과 철도, 도로가 연결되어 남북한 경제가 성장하게 하시고, 그 길을 통해 선교사들이 중앙 아시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지하교회 성도들이 오롯이 지킨 믿음을 확산하여 한반도에 큰 부흥이 일어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평가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람을 느끼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교회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여 참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04.29_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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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28~35 / 2018년 04월 29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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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한줄 요약

예수님은 좌절감에 빠져서 마음이 차가워지고 무기력해진 제자들에게 참된 말씀으로 마음을 뜨겁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개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활동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위로와 격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사십 일은 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감동적인 변화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0. 열정에 기름붓기

http://www.10puzzle.com/piece/25991-열정에-기름붓기-송강호와-봉준호.html

3년 전, 패기 넘치는 두 청년이 의기투합했습니다. 이재선(27)·표시형(26) 대표인데요. “꿈을 향해 달리는 청년들 위해 힘을 실어주자”고 결심, 동기부여 콘텐츠를 제작해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컨텐츠가 ‘열정에 기름붓기’입니다.

저는 번영주의에 대해서는 비판하지만, 열정에 기름붓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 사고 방식이나 하면 된다는 신념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허풍만 치고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불신앙입니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 사고를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 혼동해도 안되고, 그 사고가 기적을 가져온다고 생각해도 안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도할 뿐입니다. 신앙과 거짓의 경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열정에 기름을 부은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1. 떡을 축사하시고 주시니 – 기도

첫째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가 아니고 밥을 사주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금식 기도가 능력있습니다. 하지만, 자기만 금식 기도하십시오. 남한테는 금식 기도하라고 하지 마세요.

위트니스 리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의 책을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몇 몇 구절이 기억에 남는데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밥 먹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아야 하면 금식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금식 기도는 밥 먹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을 만큼 절실할 때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신앙은 인격적인 것이지 기계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밥을 주시면서 기도할 때 제자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인간적인 필요를 채워줄 때 마음이 열리고 기도가 강력해 질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 기도를 정기적으로 했습니다. 예수님은 먹고 놀기 좋아한다고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금식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잔칫날 금식하거나 일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금식해야 할 때는 금식하셨고, 기도해야 할 때는 기도하셨습니다. 주로 홀로 계실 때 금식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억지로 금식시키지 않고 스스로 하도록 권면하셨습니다.

2. 성경을 풀어 주실 때 – 말씀

말씀을 바로 알아야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정통 기독교 교리가 주는 감동을 영혼의 중심을 태울 정도로 강력합니다.

제 생각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는 이 우주보다 크고 인간의 마음보다 깊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어떤 사상과 철학보다 고상합니다. 어떤 시보다 숭고하고 어떤 소설보다 충격적입니다.

이 교리를 위해서 인생을 바쳐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단 교리를 듣고 좋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반딧불을 보고 밝다하고, 태양을 보고 어둡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악한 것을 보고 마음이 이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예루살렘에 돌아가 – 교제

열정이 살아나기 위해서 필요한 세 번째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의 교제입니다. 다들 아시듯이 모닥불을 보면 나무가 하나 있을 때는 꺼지기 쉽지만, 여러개 모여 있으면 잘 안꺼집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열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인간적인 정이나 의리로 서로를 속박하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되면 집착이 되고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제는 같은 목표를 향해서 가는 동행의 의미입니다. 제가 가는 목표가 여러분과 비슷하다면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결론

좌절감에 빠진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마음이 식어버립니다.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열정을 받아야 합니다. 세 가지를 통해서 영적인 열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기도, 말씀, 교제입니다. 신앙의 베이직입니다. 신앙의 베이직에 힘쓸 때 열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8w17_영광으로 우리 안을 채우소서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새로운 기대감으로 주님 주시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주위를 온통 채운 봄 기운처럼 주님의 영광이 우리 안을 가득 채우기를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때에 맞게 비를 내려 메마른 땅을 적셔주시는 주님, 예상하지 못한 기쁨을 선물하시는 주님,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는 주님, 저희 목마른 영혼이 이 시간 은혜로 해갈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는 기쁨이 가득하고, 주님의 오른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님은 저희에게 그러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바로 하늘로 올리지 않고 이 땅에서 살도록 남겨두셨습니다.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라는 의미로 압니다. 소금은 짠맛을 내기 위해 스스로 녹아야 하고, 등불은 빛을 내기 위해 자신을 태워야 합니다. 저희가 소금과 빛처럼 헌신하여 세상을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난을 만나도 놀라지 않게 하시고, 혼란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덧없고 부질없는 것들에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날개 아래서 자녀 된 우리가 함께 기뻐하게 하시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남북 정상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정상 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약속한 완전히 비핵화가 온전히 실행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앞으로 진행될 북미 회담에서도 이 약속이 재확인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게 하게 하시고, 북한 주민의 오랜 고통이 속히 완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북한과 철도, 도로가 연결되어 경제 발전에 진전이 있게 하시고, 그 길을 통해 선교사들이 중앙 아시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평가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람을 느끼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망의 하나님,
소망으로 가득 찬 봄을 맞이했습니다. 이 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교회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여 참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04.22_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본문

누가복음 24:13~27 / 2018년 04월 22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한줄 요약

예수님은 좌절감에 휩싸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는 방법으로 새로운 소망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개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활동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위로와 격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사십 일은 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감동적인 변화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0. 실패는 없고, 시행착오만 있다

좌절감은 요즘 사람들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굶어죽는 사람보다 좌절해서 죽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일지 모릅니다. 20대 청년 실업자, 30대 직장인, 40~50대 명퇴 대상자들이 모두 좌절감이 싸여 있습니다.

좌절감은 뜻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서 마음이 꺾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류콤플렉스, 일등주의, 성공지상주의에 빠진 이유 중에 하나는 좌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좌절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시 도전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으려는 마음이 좌절감입니다. 다시 일어나면 쓰러진 일은 시행착오가 됩니다.

에디슨이 전구들 만들 때 실패한 일은 유명합니다. 에디슨은 필라멘트에 적합한 물질을 찾기 위해 다양한 재료들을 실험에 사용했습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휴지조각부터 머리카락, 옷감, 백금 등 수많은 재료들을 사용하여 무려 1,000여 번이 넘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에디슨은 실험을 머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실험실에 굴러다니던 싸구려 일본산 부채 하나가 에디슨의 눈에 들어왔다. 에디슨은 그 부채의 부챗살을 가늘게 잘라 필라멘트로 만들었고, 그 부챗살로 만든 필라멘트는 1,500시간을 넘게 버터주어 마침내 상용화할 수 있는 전구를 발명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에디슨이 몇 백 번쯤 실험을 하다가 포기하였다면 전구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나 다른 발명가의 손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며, 어쩌면 아직까지도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에디슨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디슨의 성공 비결인 ‘포기하지 않는 것’을 성공 확률이 100%인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좌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좌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대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실패가 계속되면 사람은 좌절하게 됩니다. 이런 좌절이 두 제자를 휩싸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자책감 때문에 고향으로 갔다면, 이들은 좌절감 때문에 고향으로 내렸갔습니다. 그들이 좌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은 17절과 23~24절 두 부분입니다.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여기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슬퍼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23~24절을 보면

(24:23~24)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증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도 고향으로 갔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있습니다. 마음이 꺾여서 좌절한 것입니다.

좌절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합니다. 불 꺼진 난로, 시동 꺼진 자동차 같습니다. 한숨만 쉬고 부정적인 생각만 늘어납니다. 에너지가 있는 사람의 기력도 빨아들여서 함께 무기력하게 만드는 늪같이 됩니다. 이처럼기대가 꺾이고 실패가 쌓여서 좌절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예수님은 어떻게 변화시키셨을까요?

2.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 오해

사람이 좌절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처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해입니다.
사람이 좌절하는 이유는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어떤 오해를 했습니까? 예수님을 능력있는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4: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4:23~24)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여기까지는 오해가 아닙니다. 오해는 바로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24:20~21)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속량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군사적인 승리입니다. 이스라엘의 독립, 로마 군대 철수, 강력한 국가로 성장 등이 이들이 바란 속량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방법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량은 이들의 마음에 없었습니다.

두 제자의 사고 방식은 이겁니다. 능력이 있으면, 그 힘으로 반대자를 물리치고 굴복시켜서 자기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각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고 방식은 정반대였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그 힘으로 약한 자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인류를 구원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를 대신해서 그들이 받을 벌을 대신 받을 능력이 있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인류를 굴복시키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섬기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넣어주려는 마음입니다.

3.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해결

예수님은 그들의 사고 방식을 하나씩 교정해 주셨습니다.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닐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해도 성경 지식만 늘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살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4:25~27)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잘못된 생각이 고쳐지지 않으면, 좌절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시대가 좌절에 휩싸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성공에 대한 거짓된 신화와 과장된 광고 때문입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데 성공해야 할 것처럼 경쟁으로 몰아갑니다. 반칙으로 승리한 것을 위대한 업적인 것처럼 과장합니다.

[교회에서마저 성공, 번영, 기적을 최고의 목적으로 가르칩니다. 교역자를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교체합니다. 다른 교회 교인에게 전도합니다. 방언을 연습하고 거룩하지 않은 사역자가 성령 충만을 주장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에는 물의를 일으키는 목회자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그 사람에게 화가 났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에게 화가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물의를 일으켜도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지지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추종자들이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성공의 길을 안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청해서 고난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살려고 하면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고난 중 형통’입니다. 고난 속에서 형통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복음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하나하나 고쳐주십니다. 복음이 아닌 것을 버리게 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복음의 길을 가야한다고 설득하십니다. 그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는 비로소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결론

좌절감은 요즘 사람들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입니다. 성공과 번영으로 몰아가려는 풍조가 좌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구조인데 경쟁을 과열시키고 모두가 번영할 수 없는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헛된 마음을 불어넣습니다.

좌절감을 극복하는 길은 ‘고난 중 형통’이라는 복음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세상 풍조에 휩쓸린 마음을 되돌려서 복음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성공의 길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섬김의 삶을 살면 그리스도의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2018w16_움츠러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소서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봄은 고이 간직했던 온갖 장난감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는 어린이같습니다. 메말랐던 산과 들이 하루가 다르게 채워지고, 나무는 새순을 틔우려고 분주합니다. 꽃은 빠르게 세대가 교체됩니다. 이 아침 계절을 섭리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하며 예배합니다.

사랑의 주님!
이 시간 세상의 냉혹함에 놀라 움츠러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고 가슴 아파하셨던 주님.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치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명령하신 주님.

안타깝게도 저희는 세상에서 ‘뱀처럼 지혜’롭지 못했고, ‘비둘기처럼 순결’하지도 못했습니다. 세상의 냉막함에 지레 겁먹었고, 그들처럼 힘과 불법을 추종했습니다. 회개하오니 지혜와 순결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심을 믿사오니 늘 기도하게 하시고, 필요한 순간에 깨우침을 주시옵소서. 고난을 만나도 놀라지 않게 하시고, 혼란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덧없고 부질없는 것들에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영혼에 영원한 씨를 심어 주시고, 거룩한 기름부음으로 인격에 거룩한 옷을 입게 하시며,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 살지만 하늘나라 시민으로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408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남북, 북미 정상 회담을 위해 기도합니다. 정상 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게 하시고, 정상적인 국가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북한 주민의 깊은 고통이 속히 완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창조의 하나님,
환경 오염, 미세 먼지, 쓰레기 문제에 관해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하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연을 깨끗하게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소망의 하나님,
소망으로 가득 찬 봄을 맞이했습니다. 이 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교회가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여 참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480 나 주님의 기쁨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w15_겨울을 이긴 꽃들이 신비합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싱그러운 벚꽃 가득한 길을 걸어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활짝 핀 꽃은 추위를 이긴 생명이 내는 기쁜 웃음소리 같습니다. 이렇게 여린 몸으로 겨울을 이겨낸 저들이 신비합니다.

이 부활의 계절 4월에 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연약한 우리가 험한 세상을 이기도록 힘을 주십니다. 슬플 때 우리를 위로하시고, 기쁠 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언제나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우리 영혼에 넣어주십니다.

예수님을 알게 하려고 우리를 세상에 두셨으니 흔들리지 않고 주님 가신 길을 가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마음속 그리스도의 영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섭리를 늘 신뢰하게 하소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하루를 살되 영원을 바라보게 하시고, 최선을 다하되 여유를 갖게 하소서. 사명을 위해 살아갈 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하소서. 주님의 일을 주님이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하나님,
환경 오염, 미세 먼지, 쓰레기 문제에 관해 기도합니다. 그동안 파괴적인 개발과 무분별한 쓰레기 배출을 계속한 대가를 비싸게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하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각자에게 매우 적은 책임이 있지만, 그것이 모여 전 지구를 신음하게 했습니다. 작은 죄가 모여 큰 비극을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리가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연을 깨끗하게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하기 원합니다. 더 늦기 전에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고,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며, 환경 보존을 위한 제도를 만들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소망의 하나님,
소망으로 가득 찬 봄을 맞이했습니다. 이 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 주시고, 우리도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04.15_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본문

요한복음 21:15~19 / 2018년 04월 15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한줄 요약

갈릴리 호수의 아침 식사 장면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격려하고 인생의 목표를 심어준 위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개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활동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위로와 격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사십 일은 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감동적인 변화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0. 돈보다 중요한 것은?

뉴스에서 어느 여성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누가 갑질을 해서 사과시켰나?’ 궁금한 마음으로 클릭해 보았습니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어머니가 장애인 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꿇고 호소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는데, 댓글들도 장애인 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우세한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비난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을까?’하고 말입니다.

아직은 우리 사회에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보다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논리가 결국은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면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돈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블랙홀처럼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하나로 뭉치쳐서 같은 목소리를 내게 하는 강력한 힘이 바로 돈인 것 같습니다.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해 왔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의 중심이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돈이 그렇게 강력한데도 돈에 맞서는 힘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뭘까요? ‘사랑’인 것 같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여성이 아파트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게한 힘이 바로 장애인 자녀에 대한 사랑 아니겠습니까?

그 사랑이 돈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돈으로 뭉친 사람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낀 주민들이 생겼습니다. 바라보기만 하던 여론을 바꾸어 놓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 전에 그런 사진이 올라 온 이유가 기자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 아닐까요?

돈은 물질만능주의의 화신입니다. 사랑은 정반대에 있습니다. 가장 정신적인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냐 돈이냐를 선택하라고 하면 돈을 선택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돈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랑을 갈구할까요?

돈을 즐거워하지만,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또다른 사랑의 힘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을 바꾸어놓는 힘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결국 사랑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1.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십니다. 우리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이 좋으면 궁핍하고 가난하게 살 것이라는 오해였습니다.

고난이 무조건 가난하고 궁핍한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일종의 훈련입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것처럼 영혼을 훈련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고난은 영혼을 몸짱으로 만들어 주는 트레이너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로 인해서 운동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요즘은 생각이 달라져서 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기 몸이 균형 잡히고 건강해 지는 것을 보며서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의 훈련을 즐기는 사람 말입니다. 이번에 발령난 우석제 실장님하고 작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훈련을 받고 떠나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본인이 다른 건 다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밑에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면 분노가 생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 부분이 잘 훈련되어서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과정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어서 자주 부딪혔는데, 전처럼 화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격은 영혼을 담는 그릇입니다. 인격의 훈련을 받을 때, 부딪힘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격이 성장합니다.

저도 생각해 보니까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나쁜 사람들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 표현이 부적절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걸 이해하고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필요를 아십니다. 불필요한 궁핍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영혼을 누구보다 배부르고 풍성하게 먹이기 원하십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풍요로움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동기로 예수님의 일을 하기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동기로 신앙 생활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를 보면, 정확하게 예수님을 만나기 전 상태로 돌아간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변화해 보려고 많은 시도를 합니다. 계획도 짜고, 운동도 하고, 가지 계발 서적도 읽고 나름 노력을 합니다. 그러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어떻게 하냐면 원위치합니다. 원래대로 돌아가요.

왜 그럴까요? 가장 쉬운 선택이고 그게 좋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 예를 들어서 이단에 빠진 사람을 왜 구하지 못할까요? 근본적으로 그 사람은 그것이 좋아보이기 때문입니다. 안 좋은 걸 좋아합니다. 그 사람한테는 그게 좋아보입니다.

좋은 것이 좋아보여야 좋은 쪽으로 변화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거룩한 것의 기쁨을 알려줍니다. 영원을 맛보게 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 내면에서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거룩한 것을 기뻐하는 마음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다투게 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지에 따라서 우리가 속할 나라를 결정됩니다. 갈등이 없으면 안될까요? 갈등이 없으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갈등 속에서 갈등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있고 성장이 있습니다. 그 과정 없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3. 내 양을 먹이라

사랑하면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제가 가장 부끄럽습니다.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는 없고, 말씀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능력이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능력이나 은사가 있으니까 자기를 섬기라고 하고 자기를 살찌웁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 받았으니까 이제 좀 누리면서 살겠다는 겁니다. 이게 번영주의입니다. 이미 마음이 오염되었습니다.

어떤 변명을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십자가의 길이냐 번영주의의 길이냐? 그 본질이 중요한 이유는 결과적으로 도착할 장소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하늘로 연결되지만, 번영주의의 길은 멸망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께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면 반드시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대략적인 방향을 알고 있어야 네비게이션이 오류가 나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을 알고 있어야 성령님의 인도를 바르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돈이 최고라고 말은 안해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너무 강력해서 저항하지 못합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사랑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 무엇이든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 사랑. 그 사랑이 물질만능주의을 이기고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주셨고,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고, 전하시기 바랍니다.

2018.04.08_와서 조반을 먹으라

본문

요한복음 21:1~14 / 2018년 04월 08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한줄 요약

갈릴리 호수의 아침 식사 장면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격려하고 인생의 목표를 심어준 위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개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활동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위로와 격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사십 일은 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감동적인 변화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0. 인간은 변하는가?

현대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예전에 심리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자기하고 성격이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거짓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행동의 원인을 잘 몰라서 오해하고 갈등이 깊어지는 이유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시험이 끝나면 빠따를 때리셨습니다. 한 문제 틀리면 한 대씩 때리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다고 성적이 오르냐면 별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지리 선생님이 지리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지리를 열심히 공부해서 전국에서 학교별 지리 성적이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나중에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보니까 체벌이 교육 효과가 매우 적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게 때릴수록 부작용이 커집니다. 약한 체벌과 강한 체벌이 효과 면에서 차이가 없고, 부작용을 생각하면 약한 체벌이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연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2년 미국 콜롬비아대의 엘리자베스 게르쇼프 박사는 1940년부터 62년 동안 이뤄진 체벌에 관한 연구 88개를 분석한 논문을 미국 심리학자가 발행하는 ‘심리학 회보’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게르쇼프 박사는 부모의 체벌을 받고 자란 아이의 행동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체벌은긍정적인 면에서 효과가 거의 없는 반면 부정적인 효과는 많다. – 과학동아 2010년 10월호
또, 선생님에게 혼나고 문을 세게 닫고 가는 학생이 영화같은데 보면 나오는데, 예전에는 그게 100% 반항심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반항심만 있는 게 아니라 자책감도 포함되어 있는 거였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지?’, ‘나는 왜 이러나?’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기분이 안 좋은 것처럼 인상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나한테 화가 났나?’ 싶은데, 알고보니 자책감인 경우가 있습니다. 즉, 지각을 했거나 일 처리를 잘 못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난 상태인 데 옆에서 오해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으면 서로 오해하고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혼자 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오해와 혼란, 감정적인 낭비, 그리고 갈등을 겪게 마련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하는 사람과 마음이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어떻게 답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그 질문에 관한 답이 될 것 같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 고기 잡으러 간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예전처럼 목숨바쳐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기 잡으러 간다면서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다혈질이고 행동파였던 베드로가 왜 그랬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책감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힘들 때 곁을 지키지 못했고, 끝까지 충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내면에서 떠바치던 자긍심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제자들에게도 면목이 없었습니다. 신이 나지 않았고,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상태를 경험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경험하셨다면, 어떨 때 경험하셨습니까?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아직도 극복 못하셨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고쳐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베드로가 심리적으로는 안좋은 상태일지 몰라도,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좋은 상태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책감을 느낀다는 것은 영적으로 좋은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동기로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자책감을 느끼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베드로를 이끌어간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성공과 야망이 그의 열정을 이끌어갔습니다. 성공과 야망이 사라지자 베드로는 의욕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동기에서 비롯된 열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십니다. 기초가 잘못된 건물을 지으면 안되기 때문에 자꾸 무너뜨리고 다시 지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기초를 잘 세우고 있느냐입니다. 처음에 기초를 잘 세우지 못하면 나중에는 고칠 수 없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위험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엄격하십니다. 기대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더 잘 무너뜨리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걸 알고 미리 알려주셨잖습니까? 베드로가 무너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인간적인 열정을 무너뜨리겠다 그 후에 하늘의 열망을 넣어주겠다고 말입니다.

2. 찾아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찾아오신 이유는 베드로에게 진정한 열망을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순전한 열망을 말입니다. 참된 열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소망이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하나님이 주십니다. 나의 잘못된 열정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낙담하게 되고, 마침내 배터리가 방전된 가전제품처럼되고 맙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플러그를 연결해서 충만한 전원을 공급하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서 다가갔습니다.

(출 3:2~3)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열정은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요즘 ‘열정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월급을 안주거나 조금 주고 일을 시키면서 그것을 ‘열정’이라고 표현하는 걸 말합니다. 기업은 사람을 키우거나 성장시키여 할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도구나 부품으로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게 했다가 필요 없으면 자르거나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교회 성장을 위해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활용하면, 기업과 다를 게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 간판을 단 기업입니다. 본질 만을 보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가신 사실은 사람을 도구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정면에서 반박하신 일입니다. 베드로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의욕이 없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도구입니다. 고쳐쓰는 것보다 다른 도구를 쓰는 게 이득입니다. 사람을 도구로 보면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의욕을 잃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게 좋은 상태이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고 격려하고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교회의 본질이고 사람의 성장이 교회의 최고 목표라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3. 책망대신 조반을

예수님이 베드로를 격려하고 소명을 새롭게 하신 방법은 감동적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는 대신 조반을 지어주셨습니다. 아침을 대접한다는 것은 매우 각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배려 깊은 사랑이 담긴 행동입니다.

이 한끼 식사를 통해서 베드로의 마음이 안심하고 평안을 얻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으러 가면서 예수님이 찾아오실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떠나는 것이 반항심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기는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이해하셨고 그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예수님을 통해서 베드로는 새롭게 열망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건물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랑에 본질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나 긍정적 사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나를 알아주는 예수님을 위해서 가장 소중한 삶을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본질적인 믿음을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베드로는 자책감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조반을 지어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야망이나 성공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주는 예수님을 위해서 일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알고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 여기서 믿음이 시작됩니다.

사람을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 보는 곳이 교회입니다. 어떤 간판을 달고, 어떤 고상한 목적을 내세워도, 성령을 입에 달고 살아도 말입니다. 사람을 전도하는 도구, 봉사하는 도구, 출석하는 도구로 보면 기업입니다. 교회를 도구로 보면 신앙인이 아니라 기업인입니다. 교회를 인간관계의 도구, 성공의 도구로 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교인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고 닮고자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유일한 목적을 위해서 나머지를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8w14_하루하루를 섭리로 채색해 주소서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주 우리 하나님!
매일 달라지는 봄의 색깔을 보며 주님의 다채로운 성품을 묵상합니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은 우리의 일상도 주님의 섭리로 채색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아침에 하루의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기대로 설레게 하시고, 저녁에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감사로 찬송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이 공동체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예배를 통해 하늘의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주께서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우리 영혼이 주님 곁에서 머물게 하소서. 좌절하고 상처받은 마음이 주님 품에서 치료받게 하시고, 회복된 마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게 하시고,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영광에 중독되지 않으며, 진리가 아닌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하지만, 세상의 고통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게 하소서. 예수님처럼 힘써 세상을 섬기고 후회 없이 하늘로 돌아가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영원한 나라를 품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남북, 북미 정상 회담을 위해 기도합니다. 정상 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으며 검증가능한 핵 포기를 약속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북한이 잔꾀를 내지 않도록 그들을 어리석게 하시고, 변덕을 부리지 않도록 마음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미국이 전쟁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를 적극 지지하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창조의 하나님,
미세 먼지에 관해 기도합니다. 이 일은 그동안 파괴적인 개발과 무분별한 쓰레기 배출을 지속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하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각자에게 매우 적은 책임이 있지만, 그것이 모여 전 지구를 신음하게 했습니다. 작은 죄가 모여 큰 비극을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리가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연을 깨끗하고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하기 원합니다. 더 늦기 전에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고,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며, 환경 보존을 위한 제도를 만들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소망의 하나님,
소망으로 가득 찬 봄을 맞이했습니다. 봄 꽃같은 복음을 이 사회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04.01_[부활절]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죽음의 죽음

본문

이사야 25:08 / 2018년 04월 01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사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한줄 요약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죽음의 죽음’ 영국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의 저서로서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한 글입니다.

개요

부활절입니다. 사순절을 지키면서 부활절을 맞이하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고난주간 때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 덕분인지 부활절이 더 상쾌하게 느껴집니다.오늘은 예수님 부활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0. 죽음의 죽음 – 부활죽음의 죽음이라는 말은 영국 청교도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존 오웬이 쓴 책 이름입이다. 정확하게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죽음의 죽음’입니다.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죽기 전에는 어쨌든 희망이 있는데, 죽음은 모든 희망을 사라지게 하고 맙니다. 그 무자비한 죽음이 죽는다는 말이 주는 기쁨과 통쾌함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죽음이란 삶이 이길 수 없는 거대한 벽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살아 있는 졸병이 죽은 황제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의미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말로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혼자 갈 수 밖에 없는 길이라는 의미겠지요. 혼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스칼은 나는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안다. 하지만 내가 결코 피할 수 없는 그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 어느 무엇 하나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삶이 연구할 수 없는 영원한 미지의 영역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범위는 삶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삶이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언제나 머물러 있습니다.

알베르 까뮈는 나는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철저한 인본주의자인데 불신자의 마음을 정직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애써 담담하거나 무시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알 수 없는 종착점이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삶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만이 죽음의 불안을 해소해 줍니다.

저는 기독교 사상이 인간이 만들어 낸 사상이 아니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부활만이 아니라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이 모두 인간의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는데 있습니다. 이 기독교 사상을 생각할 때마다 매료되고 매혹됩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왜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고 인간 세상에 비극이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세상을 고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 모든 설명의 결과로서 부활을 제시합니다.

부활은 삶의 소망이자 기쁨입니다. 부활로 인해서 삶은 비로소 빛날 수 있습니다. 부활로 인해서 비로소 삶은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부활로 인해서 삶은 가장 큰 슬픔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준 선물 세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선물을 가지고 살아가면 삶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1. 사망을 멸하시며

먼저 성경은 부활이 사망을 멸한다고 합니다. 사망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나무가 땅에서 뽑힌 것이 사망입니다. 나무는 땅에서 물과 양분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나무가 시들어 죽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나무가 완전히 죽는 것은 시간이 걸리지만, 땅에서 뽑혔을 때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사망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육체는 백 년 정도 살다가 죽지만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이미 죽음이 정해져 있습니다.

요즘 가끔 돌연사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도 생명이 떠나는 것입니다. 단순히 신체 기관이 존재한다고 해서 생명이 자동적으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 최초의 시동을 걸어주어야 합니다. 현대 의학으로 아직 그 최초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지만 생명이 떠난 상태를 고치지 못합니다.

생명의 원인은 영적인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십니다. 그 생명이 우리를 살아있게 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 살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생명의 공급이 단절되면 우리는 죽게 됩니다. 육체로는 백 년 정도 더 살지만 죽음이 예정된 삶일 뿐입니다.

그 죽음을 예수님이 멸하셨습니다. 그 때는 이 육체 말고 새로운 육체로 변모합니다. 그 육체를 가지고 영원한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줍니다. 생명을 다시 공급해 줍니다.

2. 눈물을 씻기시며

로마서 1장 8절에 의하면 사망은 불경건과 불의로 이어집니다. 불경건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눈물은 잘못된 선택을 후회할 때 나오는 것 같습니다. 후회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런 일을 돌아볼 때 눈물이 납니다.

그런 잘못된 일을 예수님이 돌이켜 주십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슬픔이 모두 씻어집니다.

3. 수치를 제하시며

불의는 수치를 가져옵니다. 유교는 수치, 즉 부끄러움을 들추어서 사람을 조종합니다. 우리 민족 마음에 수치가 있어서 왜곡된 마음을 갖게 합니다. 부끄러움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우리 수치를 이해하시고 수치를 짊어지셨습니다. 그 결과로 수치를 제거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수치가 모두 제거됩니다.

결론

부활은 단순히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적이 하나 더 일어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짓누르던 죽음을 완전히 이겼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몰아가던 사망, 눈물, 수치도 극복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어야 삶은 삶으로서 빛날 수 있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018w13_그리스도의 사랑이 죽음을 이깁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내 읽어주세요.

사랑의 하나님!
땅엔 희망이 일고, 나무엔 소망이 돋고, 산과 들엔 기쁨이 일렁입니다. 이 시간 움츠렸던 마음을 열고 믿음의 눈을 들어 영원하신 주님을 예배합니다.

부활의 아침,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처럼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천년 전 상실의 슬픔을 안고 갔던 여인들은 부활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인생의 비통을 안고 나온 저희도 주님의 부활로 인해 감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봄의 온화함이 겨울의 차가움을 이기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죽음의 냉혹함을 이깁니다. 신음하던 대지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부활절 봄을 맞이할 때마다, 이 진리를 기억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죽음의 저주를 끊은 것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세상의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이 죽음을 이긴다는 진리를 붙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너의 쓴잔을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남북, 북미 정상 회담을 위해 기도합니다. 정상 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으며 검증가능한 핵 포기를 약속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북한이 잔꾀를 내지 않도록 그들을 어리석게 하시고, 변덕을 부리지 않도록 마음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미국이 전쟁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를 적극 지지하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공의의 하나님,
미투 운동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성적으로 정결해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연예, 토크, 코미디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성적인 대화와 농담으로 웃음을 유발하려하는 잘못된 관행이 사라지게 도와주시옵소서.

방송, 연예, 영화, 스포츠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비인간적인 대우와 악습을 거부하게 하시고, 사회 곳곳에 퍼진 갑질, 담합, 기합 등을 청산하도록 용기를 주시옵소서.

우리 자녀인 청소년들이 사회 어느 분야에 진출해도 차별과 두려움 없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 나라와 사회 전체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소망의 하나님,
거룩한 영으로 우리를 보호하사 악한 세상에 살되 거룩하게 지키시고, 불의한 세상에 살되 의로운 자가 되도록 보호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2018.03.25_[고난주간] 예수님의 인격, 겸손

본문

스가랴 9:9 / 2018년 03월 25일

설교 듣기

핵심 구절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한줄 요약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왜 겸손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답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개요

사순절 여섯 번째 주간입니다. 이번 주가 사순절 마지막 주간이고, 내일부터는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오는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토요일을 지나 주일에 부활하십니다. 그래서 다음 주 주일이 부활절이 됩니다.

0. 왜 겸손해야 할까?

얼굴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하면 쉽게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물건을 들고 있는지, 어느 장소에 있는지 등을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은 앞으로 구원자가 앞으로 오실 텐데 어떤 기적을 보여줄 것이고, 어떤 가르침을 베풀 것이고, 어떤 인격을 가질 것이다라고 알려줍니다. 우리는 그냥 예수님을 믿으니까 어렵지 않지만, 우리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가 메시아인지가 좀 헷갈리는 문제였습니다.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꽤 많았거든요. 그래서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에 대한 구절을 보면서 대조를 해 보아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에는 헤롯 대왕을 메시아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말도 안돼요”라고 말하시겠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가 됩니다. 헤롯 대왕이라는 사람이 헬라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투쟁하던 이스라엘을 지켜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해서 영웅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역사를 모르면 자기가 사는 시대에 매몰되어버립니다. 당시에 권세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추종하기 쉽습니다. 그 사람이 우상으로 자리잡으면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헤롯 대왕을 메시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의 예언과 대조해 보면 헤롯 대왕이 메시아가 아닌 것이 드러납니다. 그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격이 잔인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우리가 읽은 스가랴 말씀은 메시아 구별법 중에서도 인격을 통한 구별법을 알려줍니다. 사실 기적이나 가르침보다 인격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은 메시아가 겸손한 인격을 가진 분이라고 알려줍니다. 스가랴서에서는 메시아가 겸손한 분이라고 그 인격에 관해서 못박아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메시아일 수 없습니다. 메시아 후보에서 제외입니다. 물론 겸손하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겸손은 이 사람이 ‘메시아’라는 핵심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분이셨기 때문에 메시아 구별법을 적용하면 합격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델입니다. 메시아가 겸손하다는 말씀은 곧 우리가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왜 겸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충만할 수 있는 근거를 우리 마음 속에 마련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피조물이기 때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부흥을 이끌었던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의 책 중에 ‘겸손’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머레이 목사님은 우리가 겸손해야 할 이유로 세 가지를 애기합니다. 첫째 피조물이기 때문에, 둘째 죄인이기 때문에, 셋째 성도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이유를 바탕으로 겸손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야 할 첫 번째 이유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인간이 우주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과학을 믿는 사람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그들은 더 인정할 것입니다. 사람이 우주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주가 사람을 만들었다는 사실을요.

사람은 우주, 즉 자연에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마치 신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가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킬 때 넣은 ‘오염된 마음’입니다.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마음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조금 똑똑하고, 능력있고, 돈이 많으면 신처럼 행동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 무시하고 조종하려고 말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우월이 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월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사람은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은 하나의 공동운명체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아담이라는 한 조상에서 갈라진 가족이라고 가르칩니다. 가족 위에 군림하고 가족을 짓밟는 행동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 마음 속에도 마치 제가 신처럼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제 마음이 오염된 것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이 오염인 것을 알아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우주의 일부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겸손은 무엇보다도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2.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란 불의를 의미한다고 로마서를 인용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의’이고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불의’라고 말입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주위 모든 사람에게 불의합니다. 살인, 사기를 치는 것은 당연히 불의이지만, 부모로서 자녀로서 남편, 아내로서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사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떤 기준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마땅히 나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한다는 기준말입니다. 그것이 어긋날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무시하고 심지어 잡아먹어도 나쁜게 아닙니다. 사람이 동물에 불과하다면 오히려 강자가 더 강해지는 것이 선입니다. 하지만,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도 정의와 평등을 외칩니다. 강자의 횡포를 불의하다고 항의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면에 있는 어떤 기준에 결코 도달하지 못합니다. 누가 그 기준을 넣어두었는지 몰라도 그 기준이 우리 안에 있고, 그것이 옳다는 사실을 알지만 도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의로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불의에서 건져줄 어떤 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불의를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전제로써 필수적입니다.

3. 성도이기 때문에

구원 받은 다음에는 교만해도 될까요? 그것은 구원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나오는 의문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한번 하고 마는 이벤트가 아니라 영원한 변화가 시작된 지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겸손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겸손을 추구하게 될 때, 예수님과 연합되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지 않은 자연인은 겸손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잠시 겸손이라는 가면을 쓸 수는 있지만, 겸손이 인격의 일부로 스며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성도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하고, 성도라면 겸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의할 점은 성도의 겸손은 지금까지의 겸손과 다르게 적극적인 모습을 갖는다는 사실입니다. 성도의 겸손은 ‘섬김’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섬기기 위해서 겸손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궁지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겸손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의 자기 변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려고 하는 사람의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사건은 적극적인 행동이었고, 자발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결론

겸손은 예수님 인격의 핵심입니다. 겸손은 피조물인 우리 자신의 위치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의롭지 못해서 예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겸손 없는 세상은 빛이 없는 어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겸손 없는 세상은 서로를 끌어내리는 진흙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겸손 없는 세상은 강자가 우대받는 정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고 진리일 수 밖에 없고 진리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겸손을 포기한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겸손을 포기한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섬김을 실천함으로 겸손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깊이 만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