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19일 창세기 15:01~07, [신년] 어떻게 변할까?

  • 창세기 15:01~07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 #0. 변하고 싶은데 잘 안돼요

“어제와 같은 삶을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
“​The definition of 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but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Albert Einstein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고영성)에서 핵심습관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볼링에서 킹핀을 맞추면 다른 핀들이 쓰러집니다. 마찬가지로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습관을 발견해서 그것을 바꾸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강조하신 것도 한 가지 습관의 변화였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의지하는 습관입니다. 언약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의지하는 습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 #1. 도전 후에 오는 침체

아브라함은 소심한 사람이었지만, 조카 롯이 납치되었을 때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318명을 이끌고 전투에 뛰어들어 롯을 되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침체에 빠진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아브라함이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로 바꾸어서 조직 폭력배에게 조카가 납치되었는데, 조직 폭력배를 공격해서 조카를 구출해 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조카가 납치된 상황에서는 정신없이 행동하겠지만, 일이 끝난 뒤에는 후환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사건을 경험하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암 진단을 받거나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차분해집니다.

어쨌든 도전을 시도한 후에 침체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울증 증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 ​#2. 안보이는 것 보기

보이는 것을 의지하고 보이는 것에 의존하다보면 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쇠퇴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흥할 때가 있고 쇠할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이는 것을 의지하면 언제나 실망할 때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심어주려하신 핵심습관은 언약을 의지하는 습관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습관이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감정의 기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하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3. 의로 인정받은 믿음

아브람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구절을 보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뭇별을 보여주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이 문맥에 감추어진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람은 처음 부름받을 때, 이미 비슷한 언약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그때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내 사래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상태였고, 자신도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자식을 낳을 소망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기적이 아니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겠다는 소망을 가진 정도가 아닙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아이를 낳아야만 그리스도께서 오실 수 있다는 언약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3:21~22에서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로마서 3:21~22)

  • #4. 결론: 핵심 습관을 바꾸자

그리스도인의 핵심 습관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습관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을 볼 때, 외모, 재산 같이 보니는 것으로 분별하지 않고, 인격, 성품 등 보이지 않는 것에 따라 분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습관이 익숙해지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인데, 영혼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보려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2019년 01월 12일 창세기 12:01~09, [신년] 어떻게 시작할까?

창세기 12:01-09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도입: 시작이 안돼요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주도 새해에 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작년에서 신년 설교를 이사야서를 본문으로 했습니다. 올해는 창세기를 본문으로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새해가 되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은 계획도 세우고 목표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뭔가 구체적인 계획이 잘 안잡히고 시간만 지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 있으시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원인과 해결책을 본문을 통해서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늦은 시작

아브람은 칠십 오세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전에 삶을 자세하게 안나옵니다. 본격적인 시작이 칩십오세라고하면 늦은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뭐냐면,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입니다. 갈 곳을 정해주신 것이죠.

갈 곳이 정해지는 것 방향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 방향이 정해져야 시작인 겁니다. 열심히 뛰었는데, 반대방향으로 뛰었다면 시작도 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개척교회 목회를 했지만 어느 순간 성경공부를 가르치는게 내가 가야할 방향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방향이 정해지니까 저도 삶이 정돈이 되더라구요. 제가 지금 영상을 올리는 것도 성경공부를 가르쳐야겠다는 그 방향설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저커버그 등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으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방향설정을 제대로 하면 삶이 정돈되고 에너지가 바르게 사용됩니다.

아브람도 칩십오 세에 비로소 갈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올 한해를 통째로 투자해서 내가 갈 곳이 어디인가? 하고 싶은게 무엇인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그 해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믿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방향을 알려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노아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람이 제단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제단은 번제를 드리는 곳입니다. 즉, 아브람은 구원자의 대속을 통한 구원을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알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가 오셔서 대속이라는 방법으로 믿는자를 구원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았습니다. 노아의 믿음이 아브람에게까지 전달된 것입니다. 믿음은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이어받듯이 이어받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노아의 믿음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아브람이 제단을 쌓았다는 사실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모르는데 나만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백퍼센트 이단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서부터 구원자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알려주셨고, 그 복음이 믿음의 후손을 통해서 이어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고 동행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화해할 수도 동행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바른 방향을 설정해 주기 원한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만 합니다.

셋째: 성장을 위한 시행착오

여기까지는 좋은데, 성경의 줄거리는 우리 예상을 벗어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땅에 갔지만, 위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원래살던 곳과 비슷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위대한 일을 찾아서 방황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땅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실수를 범하는 내용 전까지만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요? 왜 가라고 하신 땅에 가기만 하면, 위대한 일이 일이 일어날 것처럼 하시더니 아무 일도 없고, 큰 실수까지 범하게 하셨냐는 것이죠. 그 이유는 이것이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사고가 많이 칩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과도하게 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독설을 하기도 합니다. 힘 조절이 안되고, 감정 조절이 안되어서 그런겁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에 미숙해서 시행착오를 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짝사랑을 하기도 하고 카드 빚을 지기도 합니다.

과거에 실수한 일을 되뇌이면서 고통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실수라는 단어대신 시행착오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실수가 오랫동안 심리적인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남에게 말하지 않지만 부끄러움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실수라고 생각하마시고, 시행착오라고 생각하세요.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진통입니다. 

앞으로 남밤으로 옮겨간 아브람은 비겁하게처신해서 아내를 빼앗기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브람에게는 평생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브람은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행착오를 허락하십니다.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만이 실수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이없는 실수 말도 안되는 잘못을 저지를 사람을 보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바리새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위대한 일을 맡기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을 거치게 하신 것입니다. 성장을 위한 시행착오말입니다.

결론

서두에서 새해가 되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을 살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사람은 계획도 세우고 목표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뭔가 구체적인 계획이 잘 안잡히고 시간만 지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원인과 해답을 주겠다고 했죠.

아브람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칠십오 세에 비로소 갈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입니까? 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이 교차하는 곳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곳을 향해 가는동안 시행착오를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기쁨과 보람을 발견할 것입니다.

2020년 01월 05일 창세기 08:20~22, [신년]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창세기 8:20-22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도입:

새해가 주는 활력 새해가 되었습니다. 예전보다는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것이 떠들썩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둔감한 사람이라도 새해가 되면 마음 속으로 한 두 가지 결심을 하거나 몇 가지 목표를 세울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도 조심스럽게 기대를 품어 보기도 할 것입니다. 새로운 해는 어떻게 생각하면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이 불과한데도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상을 일깨우고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뭔가가가 있습니다. 그니까 새해가 되면 힘들게 해돋이를 보러 산으로 바다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사람도 해가 바뀌면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결심을 하고 기대를 갖습니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해가 바뀌는 건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왜 하나님께서 해가 바뀌게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번제를 드렸더니

20절은 배경입니다. 노아가 번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짐승을 죽여서 불로 태우는 의식입니다. 대속을 상징합니다. 대속이란 다른 생명이 대신 죽음으로써 죽어야 할 사람이 죽음에서 구원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노아가 번제를 드린 것을 통해서 노아가 대속을 믿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대홍수에서 구원을 받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대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이런 해석을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라고해서 예외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도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방주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둘째: 그 향기를 받으시고

21절은 전환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이유는 번제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뒤에 무지개 언약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대홍수로 심판을 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대홍수 심판은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등 모든 자연이 함께 고통을 받은 심판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심판은 대홍수 심판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생각을 바꾸셨습니까? 번제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때문입니다. 장차 있을 심판은 예수님의 초림 이후에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만족된 후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 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뿐입니다.

셋째: 쉬지 아니하리라

22절은 약속입니다. 노아와 가족들은 변화된 환경에 놀랐을 것입니다. 홍수 전에는 자연이 살기에 적절한 자연환경이 지속되었지만, 홍수 후에는 보호막이 사라지고 살아가기 혹독한 자연환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화를 약속으로 주신 이유는 변화가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4:4에서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말씀하셔서 예수님이 “때가 차매”오셨다고 증언합니다. 한 계절이 지나고 다른 계절이 오는 것처럼, 한 해가 지나면 다른 해가 오는 것처럼, 때가 차면 새로운 시대가 옵니다. 마찬가지로 때가 차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진리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 신자는 때가 차는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신약시대 신자도 때가 차는 것을 보면서 오신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론: 때가 차매

2019년이 차고 202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목표, 결심, 기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때가 차매” 오셨던 예수님을 돌아보고 “때가 차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