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13:10~17

2018년 02월 25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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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한줄 요약]

복음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드러냅니다

[개요]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좇으면서 복음을 깊이 묵상하는 기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순절 두번째 주간에는 이사야서가 인용된 마태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0.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다 비싼 선물이다

오늘 본문은 복음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간절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사순절 묵상을 하고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이유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어떤 면에서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항상 문 앞까지만 가도 “어서 오십시오”하던 식당이 어느날 갑자기 “올테면 오고 말테면 말라”는 분위기로 바뀐 것 같은 느낌입니다.

“복음은 쉽다, 믿음은 단순하다, 구원은 공짜다”라는 말을 우리가 많이 듣는데, 반대의 말씀도 성경에는 많습니다. “복음은 어렵다, 믿음은 복잡하다, 구원은 비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실까요? 그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행위로 받을 수 없고,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런데, 정확하게 의미를 알고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행위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악하게 살다가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엄밀하게 얘기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아무하고나 결혼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면서요? 왜 사람 차별합니까?”라고 반발한다면 그 반발하는 사람이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닙니까? 평등하다는 말이 동등한 결혼 상대자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결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나 구원하시지는 않습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합당한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합당한 조건을 갖추도록 준비시키십니다.

“악하게 살다가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구원는 손쉽게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의 결혼하는 것은 원하기만 하면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속된 말로 ‘구원은 싸구려’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주보를 보십시오. 두란노에서 나온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다’라는 책에서 스캔한 그림입니다. 제가 주보에 싣고 있는 것도 이 책입니다.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싸구려 물건은 받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너무 값진 물건은 아무나 주지 않습니다. 신중하게 줄 사람을 선택하게 마련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주면 환경을 오염시키는 쓰레기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1. 10~12.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예수님이 비유로 진리를 가르치신 이유는 재미를 위한 목적도 있고, 보지 못하는 것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보는 것에 빗대어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미 설교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다시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복음의 소중함을 가르치려는 의도입니다. 비유는 잘 생각하면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싫어하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수동적이고 간절하지 않은 사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설명을 낯설어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려고 하시는 분이야. 그러니까 최대한 쉽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셨을 거야. 어렵게 생각 안해도 네네만 계속하면 구원받을 수 있게 말씀하시는 분이야”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전화로 보험 가입할 때, 형식적으로 설명을 듣고 ‘네, 네’만 해주면 큰 문제 없이 보험에 가입되는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복음을 전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다른 본문을 볼 것 없이 오늘 본문을 보면 됩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복음을 믿겠다고 하면 구원을 주시는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네, 네’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참된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참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 13~15. 보아도 보지 못하게(반어법)

우리가 두 번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싸구려’처럼 주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진정한 의미를 숨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복음에 대해서 잘 아는데요?”이렇게 반문하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드린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예수님은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죄에 대한 각성을 체험하셨습니까? 자신이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조금의 변명도 없이 인정하십니까?”

제가 한 질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유신론자에 불과합니다. 즉,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은 하나님이다” 정도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정도도 대단하지만 그 하나님과 확실하게 연결되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니라 살아 숨쉬고 개성과 인격을 가진 실체로서 영혼에 확실하게 조명됩니다. 그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나를 연결해 주는 것을 느낍니다. 단순히 유신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압니다.

3. 16~17. 너희는 복이 있다

반대로 복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똑똑하지 않고 재산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간절함과 열정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시면 그 의미를 알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예수님께 알려달라고 겸손하게 부탁합니다. 그들은 실수도 많이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감싸주셨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붙드셨고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왜 그들에게는 복이 있었을까요? 복음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지불한 댓가가 구원을 받기에 턱 없이 부족했지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정도가 되지 못했지만 구원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등가 교환이 아닙니다. 즉, 산 게 아닙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던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비싼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선한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해도 구원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를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 홀연히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변하지 않습니다.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을 닮고 예수님의 사역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의로운 삶입니다. 그래도 구원을 살 수는 없지만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주권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3:7~14]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결론]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비싼 선물입니다. 주면 받고 안주면 말겠다는 태도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애쓰는자, 즉,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비싼 선물을 주십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비싼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댓가를 치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마음과 시간과 에너지를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고난을 두려움 없이 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길 끝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2018w08_우리 눈과 마음을 맑게 하소서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이면 마음을 실어 소리내어 읽어주세요.

주 우리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경배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찾아와 만나주시는 주님, 날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굴곡진 인생길에서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이끄십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주를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께 합당한 백성이 되어, 온 생애를 바쳐 세상에 그리스도를 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긍휼히 여기셔서 응답해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과 발자취를 따라 묵상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하며 우리는 날마다 살아갈 힘을 얻사오니,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살아갈 때마다 확신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과 영으로 우리 눈과 마음을 맑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저 깊은 곳에서부터 변화시켜주시옵소서. 우리가 푯대를 향해 한걸음씩 전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높임 받으시고, 가난하고 연약한 우리 안에서 생명의 샘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나라를 하시는 하나님, 평창 동계 올림픽이 오늘 폐막합니다. 전쟁의 위협, 행정적인 착오, 과도한 숙식 요금, 선수 폭행 등의 문제로 인해서 심각한 우려 속에 개최되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인생의 문제는 끊이지 않지만 기도로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문제가 닥쳐올 때마다 기도로 이길 수 있도록 기도의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설 연휴와 올림픽이 지나 일상에 복귀하는 국민들과 동행해 주시고, 일상의 자리가 경제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힘들어 낙심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로하시며 도움의 손길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진로를 고민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시고, 매너리즘에 빠져 의욕이 없는 자에게 열정을 주시옵소서. 물질이 부족해 근심 걱정하는 자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고,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자에게 치유의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소망의 하나님,우리 나라의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소망의 등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가 가난하더라도 정결하게 하시고, 낮아져도 담담하여 거룩한 품격을 갖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서.

예수님을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오며,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번 주 설교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너는 작을 지라도

미가 5:2

2018년 02월 18일 주일 설교

핵심 구절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한줄 요약

나는 미약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나와 관계를 맺은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나도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개요

사순절 첫번째 주일입니다. 영어로는 관사없이 ‘Lent’라고 합니다. 부활절 전 46일을 가리킵니다. 사순이면 40일인데 46일인 이유는 주일을 빼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빼는 이유는 주일에는 금식 혹은 고행을 중지하고 기쁘게 보내자는 취지입니다. 예전에는 사순절에 금식 혹은 고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주일만은 그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한편, 우리가 절기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절기를 지키는 것을 통해서 우리 신앙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신앙 습관을 형성하려는 의도입니다. 좋은 습관이 인생을 바꿔주듯이 좋은 신앙 습관도 인생을 바꿔줄 수 있습니다.

0. 자존심이 아니라 자경심

사회가 경쟁이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늘어나면서 심리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심리적인 처방을 내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 처방 중에 하나가 ‘자존심’ 혹은 ‘자존감’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자존감이 낮아서 우울증이 걸리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고 합니다.

김미경이라는 강사의 자존감 강연도 있었지만,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인생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됩니다. <자존감 수업>을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인용

‘자존감 수업’은 자존감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갑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나를 존중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명확하게 자존감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Self-esteem)’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존.감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어떻게 하면 끌어올릴 수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 남의 눈이 항상 두려운 사람, 감정싸움으로 쉽게 지치는 사람, 항상 공허함에 시달리는 사람 등

저자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자존감이 매우 낮은 사람이었다. 의과대학을 다닐 때 유급을 당한 적이 있다. 물론 낙방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학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한 적도 있고, 대학입시에도, 심지어 재수학원 입시에도 떨어졌다. 의과 대학 낙제는 그중에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인생의 경로 자체를 수정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밀려왔다. 그때 나는 매일 술을 마셨고, 담배와 게임에 빠져 지냈다. 후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니 암담했고, 스스로에게 창피해서 가족들도 피해 다녔다. 아침이 되면 친구들은 학교로 가고 나는 PC방으로 출근했다. 그곳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되면 몰래 귀가했다. 당구장에서 밤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포장 마차를 전전하다가 동이 틀 무렵 고양이처럼 들어오길 반복했다. - page 10 쪽

part7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다섯가지 실천

*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로 "결심하기"
* 자신을 사랑하기
*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기
* '지금, 여기' 에 집중하기
* 패배주의를 뚫고 전진하기

저자가 말하길,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어하는 이들은 여러 심리학책을 탐독하며 보편화(‘나만 이런게 아니었구나’), 죄책감 탈피(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수만은 요인을 알게된다), 지식화 (감정으로 느끼던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짐)의 과정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존감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존감’을 가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경심’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그 말 같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너는 작을지라도

자존감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경심은 자신을 존경하라는 말인데,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존경하라는 의미입니다.

내 아이가 소중한 이유는 가장 잘나서가 아닙니다. 내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은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자경심은 내가 아니라 나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장소를 예언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의 제사장, 서기관들이 오늘 본문을 인용해서 예수님이 베들레햄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내용이 있습니다.

베들레햄은 다윗 왕의 고향이었지만, 대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신약 시대까지 작은 도시로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은 이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기로 결정하셨고, 뿐만 아니라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랑하는 것들을 거부한다는 메시지말입니다.

사람들은 명문가 출신, 멋있는 외모, 좋은 학벌 등을 자랑합니다. 오늘날에는 자랑이 돌고돌아서 출신 가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금수저를 즉,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랑거리를 거부하셨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이루셨지만, 부가적인 자랑거리는 조금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태도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2. 갈릴리 사람이라 불릴 것이라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예수님 시대나 그 이전 시대에도 나사렛은 아주 보잘것없고 가치 없는 시골 중에 시골이었다. 요한복음 1장에 빌립과 나다나엘의 대화에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나사렛이 그만큼 가치 없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말이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만큼 경멸하고 낮추어 부른 것임을 알 수 있다.쉽게 말하면 ‘나사렛 예수’라는 말에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시골뜨기 예수’라는 뉘앙스가 숨어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한 번씩 ‘나사렛 예수’라고 표현한 것은 ‘너희들이 천히 여긴 시골뜨기 예수’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태복음 2장 23절 말씀 “…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에 따르면 구약 성경에 선지자가 나사렛 사람이라고 칭하리라고 기록된 곳이 있는 것인데, 그곳이 바로 이사야 11장 1절이다. 그런데 정작 이사야 11장 1절을 펴보면 ‘나사렛’이란 말이 전혀 나오지 않고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나온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사야 11장 1절 중에 ‘가지’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음으로 ‘네쩨르’라는 단어를 썼고, ‘나사렛’이라는 단어가 바로 ‘네쩨르’라고 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나사렛’이란 단어의 원단어가 ‘네쩨르’라는 ‘가지’에서 나왔기에 그 의미로 ‘나사렛 사람’이라고 칭한다고 번역했던 것이다. ‘네쩨르’는 번역하면 ‘뿌리에서 나온 아주 가늘고 볼품없는 연한 가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이 ‘네쩨르’의 모습으로 오셔서 ‘나사렛 예수’로 불리신 것은 예수님이 권력이나 부를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약속 그리고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셨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만약 예수님이 화려한 하늘 왕권을 가지고 강력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세상에 기댈 것 없고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가 얼마나 부담스러웠겠는가? 가까이 가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 모습으로 오셨다. 그렇기에 오히려 힘 있고 화려하고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가까이하거나 만나기 꺼려지는 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3. 영원으로 이어주는 예수님

예수님이 인간적인 자랑거리를 모조리 거부하신 이유는 인간의 참된 가치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잘났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지만, 진리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의 자존감은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은혜의 시작은 인간은 죄악 덩어리, 죄의 장아찌라는 것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은혜의 길에서는 자존감이라는 갈대 지팡이가 부러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서 있다가는 참된 은혜의 길에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가치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가치 있다는 생각은 모세의 지팡이와 같습니다. 결코 부러지지 않고 우리를 은혜의 길로 인도합니다. 자존감을 너머 영원한 나라로 말입니다.

결론

자존감은 근본적으로 자신에게서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을 존중하도록 권유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 처방이지 근원 치료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의 길을 갈때 방해가 되고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자경심은 우리 자신에게서 가지를 발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를 가치있게 합니다. 이것은 은혜의 길에 항상 동행하는 진리의 지팡이가 됩니다.

베들레햄아 너는 작을지라도. 그리스도로 인해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를 가치있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순례자여 그대 그리스도와 함께 누구이고 그리스도 없이 누구인가?

2018w07_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소서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이면 마음을 실어 소리내어 읽어주세요.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언제나 가까이 계시고 아버지의 나라는 늘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오니 하늘 문을 열고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통해 알리주기 원하신 영원한 진리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베들레햄 이름모를 마굿간에서부터 요단의 강가, 유다의 광야, 갈릴리의 마을들, 사마리아의 우물을 거쳐, 골고다 언덕까지 주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

예수님과 발자취를 따라 묵상할 때, 전능한 예수님이 왜 그런 고난의 여정을 걸으셨는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처럼, 우리가 아무리 캄캄한 세상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게 하시고, 고통을 직면해야 할 때 담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행사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오니 고난을 거룩하게 하셔서, 우리의 삶이 고난 속에서도 영원한 그 나라를 위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단지 인간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늘의 능력과 진리를 체험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드러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그 은혜 안에 우리가 늘 머무르게 하시고, 우리 가족들을 은혜로 보살펴주소서. 연약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셔서 그들이 비록 실수 하고 넘어지더라도 여전히 주를 섬기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신뢰합니다. 구주 예수를 알고 믿습니다. 성령께서 계심을 알고 의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전쟁의 위협 속에서 개최된 평창 동계 올림픽이 사건 사고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올림픽을 통해서 마련된 대화 분위기가 실제적인 성과로 이어지게 하여주시옵소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국제 사회로 나오는 변화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설 연휴를 외롭게 보내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독거노인들을 기억해 주시고, 재정적 어려움으로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평안함을 주옵소서.

치료의 하나님,몸과 마음, 정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를 치료해 주시고,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성도를 속히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후유증, 재발병, 합병증을 막아주시고 건강한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으로 주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부흥의 하나님,우리 나라의 교회를 불쌍하게 여겨주시옵소서. 교회의 참된 능력은 거룩과 겸손과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데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외적 성장이 아니라 내적 진리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향한 열망과 잃은 자들을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8년 02월 18일 미가 05:02, [사순절] 너는 작을 지라도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질문 24가지

이병철 회장이 타계 직전 정의채 신부에게 보낸 24가지 질문들을 소개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평생 종교를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삶에 대한 여러 평가와 논란이 있지만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신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담고 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참고: 이 질문들에 대해 신부, 철학자가 대답을 하는 형식의 책이 2권 있습니다. 각각 ‘잊혀진 질문’,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입니다.)

1. 神(하느님)의 存在를 어떻게 證明할 수 있나? 神은 왜 자신의 存在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2. 神은 宇宙萬物의 創造主라는데 무엇으로 證明할 수 있나?

3. 生物學者들은 人間도 오랜 進化過程의 産物이라고 하는데 神의 人間 創造와 어떻게 다른가? 人間이나 生物도 進化의 産物 아닌가?

4. 언젠가 生命의 合成, 無病長壽의 時代도 可能할 것 같다. 이처럼 科學이 끝없이 發達하면 神의 存在도 否認되는 것이 아닌가?

5. 神은 人間을 사랑했다면 왜 苦痛과 不幸과 죽음을 주었는가?

6. 神은 왜 惡人을 만들었는가? 예)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7. 예수는 우리의 罪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罪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罪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8. 聖經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證明할 수 있나?

9. 宗敎란 무엇인가? 왜 人間에게 必要한가?

10. 靈魂이란 무엇인가?

11. 宗敎의 種類와 特徵은 무엇인가?

12. 天主敎를 믿지 않고는 天國에 갈 수 없는가? 無宗敎人, 無神論者, 他宗敎人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13. 宗敎의 目的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天主敎만 第一이고 다른 宗敎는 異端視하는가?

14. 人間이 죽은 후에 靈魂은 죽지않고 天國이나 地獄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15. 信仰이 없어도 富貴를 누리고 惡人 중에도 富貴와 安樂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神의 敎訓은 무엇인가?

16. 聖經에 富者가 天國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富者는 惡人이란 말인가?

17. 이태리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天主敎徒인데 社會混亂과 犯罪가 왜 그리 많으며 世界의 模範國이 되지 못하는가?

18. 信仰人은 때때로 狂人처럼 되는데 共産黨員이 共産主義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19. 天主敎와 共産主義는 相剋이라 하는데 天主敎徒가 많은 나라들이 왜 共産國이 되었나? 예) 폴란드 등 동구제국 , 니카라구아 등

20. 우리나라는 두 집건너 敎會가 있고 信者도 많은데 社會犯罪와 試鍊이 왜 그리 많은가?

21. 로마敎皇의 決定은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獨善이 可能한가?

22. 神父는 어떤 사람인가? 왜 獨身인가? 修女는 어떤 사람인가? 왜 獨身인가?

23. 天主敎의 어떤 團體는 企業主를 착취자로, 勞動者를 착취당하는 자로 斷定, 企業의 分裂과 파괴를 助長하는데 資本主義 體制와 美德을 否認하는 것인가?

24. 地球의 終末은 오는가?

예수님이 부르시는 그곳

갈라디아서 06:01~18

2018년 02월 11일 주일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한줄 요약

십자가를 향해 가는 사람은 그 길을 가는 도중에 뿌린 모든 것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개요

갈라디아서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복음이라고 가르칩니다. 거기에 다른 무엇인가를 덧붙이려는 시도는 복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다른 복음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성령을 따라 살라고 권면합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율법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살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궁극적으로 십자가를 향해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래서오늘은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삶이 어떤 삶인지 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0. ‘슬프다’는 말은 슬프지 않다.

십자가를 향해 가는 삶을 생각할 때 주의 해야 할 것은 단어의 오해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슬프다’는 단어만으로는 전혀 슬프지 않고, 구체적으로 슬픈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런데, 슬프다는 말을 듣고 슬픈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인 아주머니께…
정말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문보기: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1996

2012년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에 세들어 살던 세 모녀가 가난을 이기지 못해서 동반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입니다.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사과하는 글에는 슬프다는 말이 들어있지 않지만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2011년에는 안양구 석수동 월세집에서 예비 시나리오 작가 최 아무개 씨가 홀로 죽었는데, 죽기 며칠 전에 이웃집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2228.html#csidx42c556d70778d24bbaf0e6c34e064df

십자가라는 단어를 말한다고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십자가의 삶을 살라고 가르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1. 1~10. 성령님의 인도, 십자가

우리 시대에 십자가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십자가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 더 큽니다. 마치 중세 시대와 비슷합니다.

당시에 카톨릭에서 면죄부를 팔아서 대성당을 짓고 있었습니다. 면죄부를 파는 것이 교리적으로 무척 잘못되었고 교회와 사회, 윤리적인 타락의 근원이었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면죄부 사놓지 뭐”, “대성당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그럴 수도 있지”, “잘못되었지만 너무 세력이 강하니까 어쩔수 없지”

소수의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카톨릭에서 매장하고 사람들도 외면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마틴 루터 때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제가 성령 운동 하는 사람들이 거룩하지 않다고 주장해도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방언이 성령 세례라는데 방언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연습해서 방언을 해도 별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들이 양심이 불량한데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전도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데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초대형 교회를 세습하면서 십자가를 물려준다고 십자가를 모독해도 충성을 바칩니다. 범죄 행위를 저질러서 교회에서 쫓겨나도 여전히 추종자들이 따라다닙니다.

이런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우리 시대의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2. 11~15. 인생의 자랑, 십자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은 어느 시대나 힘듭니다. 십자가는 항상 좁은 길로 인도합니다. 시대의 주류가 아닙니다. 하지만, 때로는 십자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가 그렇습니다. 그런 시대를 우리는 부흥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 십자가를 아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6:8~9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분명한 것은 십자가를 따라가는 삶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삶이고, 영원한 나라에 기록되는 삶이라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3. 16~18. 예수님의 흔적, 십자가

십자가의 삶을 살면 손해, 손실,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가다가 입는 피해를 ‘예수의 흔적’이라고 표현합니다.

복음을 지키다가 가난하게 되거나, 실패하거나, 상처를 입거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예수의 흔적’은 가난일 수도 있고, 실패일 수도 있고, 몸에난 상처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트라우마일 수도 있습니다.

카톨릭은 ‘예수의 흔적’을 잘못된 영성으로 인도합니다. 예를 들면, 성 프란시스코의 상흔에 관한 일화인데, 성프란시스코가 환상 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몸에 못자국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그런 영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상흔은 비역사적인 상흔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역사적인 무언가입니다. 필그림 파더들이 미국으로 건나갈 때 많은 가족, 동료들을 잃었고, 미국에 도착해서도 병에 걸리기도 하고 고생했습니다. 그런 실제적인 행동에 의한 피해가 개신교에서 가르치는 상흔입니다.

넓은 길로만 가면 고생할 일도 없고, 상처날 일도 없습니다. ‘예수의 상흔’이 없습니다. 있다면 비역사적인 환상에 의한 상흔만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 앞에 서기도 힘들 뿐더라 칭찬을 듣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작은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분들은 명백하게 불편을 감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불편을 ‘예수의 흔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예수의 상흔’은 ‘영광의 상처’로 변할 것입니다.

결론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십자가가 있습니다. 세상의 주관자 마귀는 우리보다 머리가 좋습니다. 교묘하게 신앙인들을 십자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속기 쉽습니다.

우리 시대의 십자가는 박해가 아니라 오염된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 박해를 받는다는 심정으로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는 결국에는 영광의 상처로 남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분을 향해 나아갑시다.

2018W06_졸업생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이면 마음을 실어 소리내어 읽어주세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
살아계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께서 심으신 그 영원한 생명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더욱 자라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2월은 졸업의 계절입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환경으로 나아가는 졸업생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그들이 앞으로 맞닥뜨릴 일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졸업생들 뿐만 아니라 진학, 취업, 이사, 결혼, 출산, 등으로 인해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알 수 없는 미래로 인해서 불안해 할 때,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옵소서. 두려움 대신 기대감을 주시고, 주저함 대신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옵소서.

우리 삶이 갈등과 유혹, 문제로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주님께서 여전히 모든 것을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삶에 실망하지 않고 거짓에 현혹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손길은 흔들림이 없고 한결 같습니다. 그 손을 더욱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창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섭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쟁의 위협 속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 평화의 축제로 발절할 수 있도록 계속 이끌어주시고, 동계올림픽을 통해서 전국민이 활기와 기쁨, 소망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재능 있는 선수가 우승하게 하시되 열심히 노력한 선수의 노력도 보답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유명한 선수 뿐만 아니라 무명의 선수가 조명받게 하시고, 간절히 원하는 선수가 꿈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치료의 하나님,
몸과 마음, 정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를 치료해 주시고,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성도에게 회복의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후유증, 재발병, 합병증을 막아주시고 건강한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으로 주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옵소서.

소망의 하나님,
교회의 직장인들 위해서 기도합니다. 직업은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직장에서 기쁨과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상사와 동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부흥의 하나님,
교회가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여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참된 확신을 갖게 하시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새로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열망하게 하시고, 잃은 자들을 긍휼히 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게 하시고 성령의 은사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8년 02월 11일 갈라디아서 06:01~18, 예수님이 부르시는 그곳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성령의 열매 VS 육체의 일

2018년 02월 05월 주일 설교
갈라디아서 05:16~26

 

설교 듣기

 

핵심 구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한줄 요약

성령님을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그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개요

지금은 헐벗었지만, 봄이 되면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여름이 되면 무성해지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우리는 그 열매의 단맛을 즐기면서 잠시동안 행복에 잠길 것입니다. 열매는 단맛을 줄 뿐만 아니라 땅이 떨어지면 그 열매 속에 담겨져 있는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가 자라날 것입니다.

0. 씨와 열매

열매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나무의 번식을 위해서 필수적인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열매는 사람과 나무 모두를 이롭게 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오늘 성령의 열매에 대한 내용을 설교하려고 하는데, 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도 열매가 모두를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령의 열매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6~18. 두 마음,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사는 것에 대해서 오해가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로봇처럼 성령님을 따라 살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판단의 주체로서 나는 항상 존재합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항상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육체의 소욕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육체의 소욕이 항상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영어성경에서는 the sinful nature 죄악된 본성 혹은 the desires of the flesh 육의 소욕이라고 표현합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있습니다. 두 마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두 마음 중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한번에 죄악된 마음을 없애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된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책임이 독립된 인격의 본성입니다. 선택과 책임을 다할 여건이 없으면 자유의지는 있으나마나합니다. 개혁파 신학자 안토니 후크마는 회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회심은 하나님의 일인 동시에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키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회심하지 못합니다. 애5:21절의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과 같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돌이킴의 원인은 하나님입니다(행11:18, 딤후2:25). 비록 회심이 중생의 외형적 증거이긴 하지만 중생을 통하여 우리의 무의식 가운데 심겨진 새로운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의존함으로서만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존재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회심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돌아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심은 우리의 일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겔33:11)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이키라고 하실 때 우리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심은 하나님의 일인 동시에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돌이키라고 할 때 사람의 행동으로 돌이킴을 훨씬 많이 강조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돌이키다’는 의미를 지닌 구약의 ‘슈브’는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74번 사용되고 하나님이 사람을 돌이킨다는 의미로는 5번만 사용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후크마는 그런 의미로 중생이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회심은 사람의 사역이라고 구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안토니 A. 후크마, 개혁주의 구원론, 189)

회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에서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신비하게 맞물려서 진행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고통이 아니라 영광입니다. 육체의 소욕에게 주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롬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2. 19~24. 두 결과,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우리 선택의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자기 점검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사과 나무가 사과를 맺으려고 노력해서 사과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비옥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버티면 열매가 저절로 맺힙니다. 뿌리가 어디에 뻗어있느냐에 따라서 열매가 달라집니다.

성령님께 연결되어 있으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육체에 연결되어 있으면 육체의 일이 맺힙니다. 이 두 가지의 대조되는 결과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열매는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생명의 재생산을 이룹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감동을 남기고 떠나셨지만 그 감동은 제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또다른 사람들에게 동일한 감동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열매는 재생산됩니다.

반대로 육체의 일은 악하고 추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회적입니다. 능력을 가진 사람이 병을 낫게 했다거나 기적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사람들은 감동을 받기보다는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자신도 저런 능력을 받아서 유명해져야 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성령의 열매는 자신이 성령님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지 점검하는 자기 점검 목록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18세기 대각성 운동을 주도했던 휫필드는 다음과 같이 자기 점검표를 만들어서 매일 자신을 점검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자신만의 언어로 바꾸어서 구체적으로 진단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조지 휫필드의 매일자기점검표
1. 나는 개인 기도 시간에 뜨겁게 기도했는가?
2. 정해진 기도 시간을 지켰는가?
3. 모든 시간을 아꼈는가?
4. 모든 대화나 행동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했는가?
5. 어떤 기쁨 후에 즉각 감사했는가?
6. 하루의 일을 계획 가운데 진행했는가?
7. 모든 면에 검소하고 침착했는가?
8. 무슨 일을 행할 때 열심히 혹은 힘있게 행했는가?
9.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면에서 온화하고 상냥하며 친절했는가?
10. 다른 이들에 대하여 교만하거나, 허탄하게 굴거나, 참지 못하거나 투기하지는 않았는가?
11.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자신을 돌아보았으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으며, 잠자는 일에 있어서 절제가 있었는가?
12.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에 시간을 드렸는가?
13. 연구하는 일에 부지런했는가?
14.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친절하게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는가?
15. 나의 모든 죄를 고백했는가?

3. 25~26.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성령님은 겸손한 분이십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과 하나님을 높이십니다. 그분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사람들이 다투는 이유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필요합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을 때의 영광을 생각하고 훈련을 견딥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하늘 나라의 영광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고난을 달게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서 영광을 받을지 대상을 바르게 설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영광을 받기 원하면, 다투고 경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다면 경쟁하지 않고 다투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과 생각, 여건과 환경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휫필드는 그를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휫필드라는 이름은 사라지게 하라. 다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라”고 말했다. 그는 한 교파나 교단의 창시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 땅의 영광보다 하늘 나라의 영광을 사모했습니다.

 

[결론]

성령님을 따르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사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열린 태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판단의 주체로서 ‘나’는 존재합니다. 나를 포기하지 말고 나를 육체가 아닌 하나님께 드리려고 힘써야 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자기 점검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내가 진실로 성령을 따르고 있는지 이 열매들과 비교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니다.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신앙 생활을 돌아보고 돌이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2018w05_’벌써’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2월입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이면 마음을 실어 소리내어 읽어주세요.

은혜의 하나님,
‘벌써’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2월입니다. 새해를 맞이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새로운 달이되었습니다. 가장 짧은 달이기도한 2월에는 조바심과 조급함을 갖기 쉽습니다. 쫓기는 마음에 분노, 짜증을 내지 않도록 여유를 주시고, 서두르다가 중요한 일을 빠뜨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기억을 지켜주시옵소서.

화재로 인해 귀한 생명을 떠나보내는 사고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고장난 스프링클러와 부족한 인력이 피해가 늘어난 원인이라고 합니다. 수익을 위해서 시설 관리를 소홀히하고 인력을 줄이는 관행이 비싼 댓가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관행을 고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평창 동계 올림픽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훈련해 온 선수들이 좋은 성과를 얻게 하시고,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경기장, 시설, 장비들을 보호해 주시옵소서. 심판들이 공정한 판정을 내려서 억울한 선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게하여 주시옵소서.

열심히 노력한 선수가 우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의 젊은이들이 정직한 땀은 반드시 올바른 성과를 가져온다는 교훈을 확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명의 선수가 감동적으로 메달을 따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를 통해서 저희 모두가 주인공인 것처럼 활력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치료의 하나님,
교회의 아픈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각종 질병으로 치료,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건강한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치료의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후유증, 재발병이 없게 하시고 합병증도 생기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옵소서.

소망의 하나님,
성도들의 직업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직업은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가르침을 인정하오니,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기쁘고 보람있게 일 할 수 있는 직장을 갖게 하시고, 고유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흥의 하나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희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고, 인맥이 아니라 사랑으로 유지된다는 교훈을 항상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불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게 하시고 성령의 은사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소망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8년 02월 05일 갈라디아서 05:16~26, 성령의 열매 VS 육체의 일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