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 | 헤어짐과 만남 | 방향을 정하면 동행이 생긴다

개요

창세기 13장 강의하겠다. 아브람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의해야할 점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아무거나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아무거나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브람에 관한 기록을 보면서 제대로된 해석을 못한다. 제대로된 해석을 못하니까 억지로 해석하거나 자기마음대로 해석한다. 잠시 영상을 멈추고 창세기 13장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냥 이런 일이 있었구나로 해석되는가 아니면 이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고 해석되는가?

아브람에 관한 기록은 개별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는다. 아브람 개인의 경험이지만,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12장에서 아브람은 자신의 불의가 드러나는 사건을 겪었다. 다윗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다윗도 블레셋으로 망명했다. 이것은 배교에 해당하는 심각한 불의이다. 불의가 드러나는 사건 이후에 아브람은 어떤 일을 겪을까? 답을 말하겠다. 결별의 단계이다. 가까웠던 사람과 멀어지고, 멀었던 혹은 몰랐던 사람과 가까워지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유는 나아갈 방향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함께 갈 사람과 함께 못갈 사람이 나누어진다.

롯은 아브람과 인간적으로 가까웠다. 롯와 아브람은 함께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롯과 아브람은 목표가 달랐다. 목적지가 다르면 같은 차를 타고 갈 수 없다. 부산으로 가는 사람과 광주로 가는 사람이 같은 열차를 타고 갈 수는 없다. 어느 정도는 함께 가다가도 갈라서야 할 때가 필연적으로 온다. 이것은 믿음을 향해 나아갈 때 반드시 겪어야 할 단계이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바라는 목적지가 어딘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요절 1. 창세기 13:9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앞장의 내용을 잠시 돌이켜보자. 아브람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가 바로에게 빼앗겼다. 자신이 지레 겁을 먹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핑계댈 사정도, 원망할 사람도 없었다. 하나님이 바로의 꿈에 나타나 경고했기에 아내를 되찾고 보상금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아브람이 치사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누구나 치사하고 나약해질 때가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자. 중요한 건 자기 불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부분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모든 구도자가 이 과정을 거친다.

지난 시간에는 다윗의 예들 들었다. 이번 시간에는 레위기를 예로 들겠다. 레위기에서는 독특하게도 나병에 관한 규례가 자세하게 소개된다. 나병은 신경세포가 마비되는 병이다. 신경세포가 마비되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손가락이 잘려도 아프지 않다. 등에 불이 붙어도 태연하게 걸을 수 있다. 나병은 불의한 인간의 상태를 비유이다. 인간은 당연히 해야할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한다. 불의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해도 태연하다.

레위기에서는 피부에 반점에 생기면 제사장에게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명령한다. 제사장은 시간을 두고 상태를 살펴야 한다. 반점이 퍼지면 환자를 부정하다고 판정한다. 그런데, 놀라운 규정이 있다. 반점이 온몸에 퍼지면 정하다고 판정해야 한다.

레위기 13:13 그가 진찰할 것이요 나병이 과연 그의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다 희어진 자인즉 정하거니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불의하다는 것을 알면 정해질 수 있다. 예수님은 이걸 이렇게 표현하셨다.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죄인임을 알아야 복음의 필요성을 알게 된다. 자기 불의를 발견한 사람은 의를 찾게 된다. 영양이 결핍되면 몸이 필요한 음식을 찾는다. 내 안에 의가 없기 때문에 바깥에서 의를 찾는 것이다. 영혼이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찾는다. 그리스도를 향해서 방향을 정하게 된다. 이 단계에 오면 그리스도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갈 수 없게 된다.

롯의 목자와 아브람의 목자가 다투었다. 롯과 아브람의 마음이 멀어진 결과이다. 근본 원인은 롯과 아브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즉, 롯은 번영을 추구했고, 아브람은 그리스도를 추구했다. 이것은 롯이 선택한 땅을 보면 알 수 있다. 롯은 소돔을 선택했다. 이것으로 왜 롯과 아브람이 헤어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두 사람이 함께 그리스도를 추구했다면 동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과 함께 그리스도를 추구하기를 기도하자.

요절 2. 창세기 13:16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타국으로 떠날 때 함께했고 외로울 때 의지했던 조카가 떠났다. 쓸쓸하고 힘이 빠질 상황이다. 하나님은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위로하신다. 조카와 힘을 합쳐야 자손이 번창하기 쉬울 것 같지만, 하나님 생각은 달랐다. 단순히 육신의 자손이 복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다. 육신의 자손도 복을 받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자손이 많아질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자손이라는 말씀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앞으로 자손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아브람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둘째, 육신적인 자손과 그들이 받을 가리킨다. 인간은 물질적인 복을 받아야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도 그런 마음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아브람 한 사람에서 비롯한 아브람 가문은 이스라엘이라는 큰 나라를 세우게 된다. 셋째, 영적인 자손과 복을 가리킨다. 물질적인 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려는 궁극적인 복이 아니다. 진정한 복, 영원한 복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이다. 하나님은 이 영원한 복을 아브람처럼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주신다. 자손에 관한 설명은 15장에서 다시 할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하겠다.

한 가지 더 설명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미 여러차례 설명한 요약적 서술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브람이 믿음을 가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믿음이 순식간에 믿는다고 하면 믿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요약적 서술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매우 긴 시간을 압축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요약해서 서술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12을 보자.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구절은 요약적으로 서술된 구절이다. 왜냐하면, 문맥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구원을 주신 사건을 짧게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걸린다는 걸 보여준다. 요약해서 서술했으니까 풀어서 보면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라는 말이다. 이걸 반대로 해석한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구원받는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오해한다.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다고 말만하면 구원받는다는 황당한 교리를 만든다.

창세기 12장부터 기록된 아브람의 예에서 보듯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나님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개입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이걸 알고 성경을 보자.

정리

창세기 12장부터는 믿음을 향해 나아갈 때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단계를 알려준다. 12장에서는 불의가 폭로되었고, 13장에서는 결별이 찾아왔다.

현대 용어로 설명하면 이렇다. 아브람은 교회를 다녔고 신앙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경 공부도 했고, 기도 생활도 하고, 예배도 잘 드렸지만, 구원받지 못한 상태였다. 하나님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용기를 내서 믿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출발한다면 말이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헤어짐과 만남이 시작된다.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새롭게 동행하는 사람도 생긴다. 하나님은 자손이라는 말로 아브람에게 소망을 주셨다. 오래 알았던 사람과 헤어졌다고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오래 알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다 보면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사람과 만나게 된다. 헤어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남도 있다는 말이다. 마음이 같은 사람과의 만남은 알고 지낸 시간과 상관 없이 즐겁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것을 약속하신다. 새로운 만남과 관계를 기대하도록 소망을 주신다.

적용

죽고싶을만큼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연락처를 싹 지워보시라. 죽고싶을만큼 힘든데 아무 도움이 안되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오래알고 지냈다고 친구가 아니다. 알게 된 시간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친구이다.

어렸을 때 친구를 만나면 어색할 때가 있다. 대화가 겉돌고 마음을 나눌 수 없다. 대화를 계속할수록 좋았던 과거 얘기를 반복할 뿐이다. 과거는 나눌 수 있지만, 미래는 나눌 수 없다. 그럴 때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가야할 방향을 알게 되면 반드시 동행이 생긴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고민하자. 그리고 그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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