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30~60
2017년 12월 31일
설교 듣기
[핵심 구절]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한줄 요약]
스데반을 구약 성경과 과거 역사에 정통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습니다.
[개요]
송년입니다. 지난 일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미래를 더 알기 원합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과거를 돌아보는 데 있습니다.
0. 과거는 미래에 반복됩니다
과거는 미래에 반복됩니다. 저는 과거가 미래에 반복된다는 사실을 바둑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둑에서 지면 분한 마음에 한 판 더를 외치면서 자꾸 새로운 바둑을 많이 두려고만 했습니다. ‘내가 그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지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맴돌면서, 새로운 판을 두면 지금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바둑을 두게 되는데, 바둑이 똑같이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비슷하게 진행되는데,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지게 됩니다. 바둑을 새롭게 두더라도 이기지 못합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래가 새롭지 않고, 과거의 반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엉뚱하게도 바둑 실력이 가장 많이 늘게된 계기는 새로운 판을 빨리 많이 두어서가 아니라 복기를 배우면서부터입니다. 복기란 바둑을 한 판 끝낸 다음에 지금 둔 바둑을 다시 두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난 바둑을 다시 두면서 내가 그때 왜 여기에 두었는지 생각해 보고, 상대방은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달르게 전개된 것은 무엇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바둑 실력이 늘어갑니다. 다른 사람이 두었던 바둑을 복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보 몇 개는 기본적으로 외웁니다.
시험을 보는 수험생들도 복기를 통해서 실력을 향상 시킨다고 합니다. 요즘은 오답 노트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오답 노트는 전에 틀린 문제를 따로 적어놓고 주기적으로 다시 풀어보는 노트입니다. 틀린 문제는 또 틀리기 때문입니다. 기억에서 지워진 후에 틀렸던 문제를 풀어보면 놀랄만큼 똑같이 틀립니다.
다른 측면이지만 사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이 있어납니다. 아웃도어 판매하는 매니저님한테 들었는데 등산복을 사는 사람이 또 산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그 말을 듣고, “등산복 한 두 벌 사면 더 안사지 않나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매번 산에 갈때마다 다른 등산복 입고 가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시더라구요.
보험도 한 번 들은 사람이 또 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기 당하는 사람도 한 번 사기 당했으니까 안 당하는게 아니라 또 사기당하는 경우가 많고 이단 교회에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 이단 교회를 가거나 건전하지 않은 교회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여러 가지 영역에서 우리는 과거에 했던 일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새롭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가아지 못하고 익숙한 과거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1. 30~53. 스데반은 과거에 정통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초창기 교회의 집사들 중에서 가장 믿음이 좋고 성령에 충만했던 분이 스데반입니다. 이분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구약 성경, 즉 과거에 정통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7장의 내용은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기 전에 했던 마지막 설교인데, 여기서 우리는 그가 구약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대하2:6
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그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는 것이 구약 시대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구약 시대라고 해서 성전에서 제사지는면 구원을 받는게 아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예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만 의지하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궁극적인 목표인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42.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 그 너머에 있는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들 통하지 않고는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조상들처럼 성령을 거스른다고 말합니다. 즉, 조상들도 성령을 거스렸는데 당신들도 성령을 거스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성령을 거스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는 단어를 아무리 많이 쓰더라도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그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일이 됩니다. 성령님을 아무리 칭송해도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그것이 성령을 모욕하는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 오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십니다. 그래서 특별히 성령님이라는 단어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르게 믿으면 됩니다.
2. 54~60. 스데반은 바울을 통해서 미래를 살았습니다
한편, 과거가 과거로 그치지 않고 미래를 열어갈 수도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가장 먼저 순교한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 믿음과 은사, 그리고 인격이 너무나 아까운 인재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고 해서 그의 삶이 과거로 묻히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을 지켜보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그의 삶을 대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우리 교회는 예배당이 없습니다. 그래서 실체가 없는 교회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과거에는 이런 상황을 좋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내 집 마련하듯이 내 예배당을 마련하는 것이 목회의 목표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더 알아가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예수님도 그렇고 제자들도 그렇고 스데반도 그렇고 모든 분들이 번듯한 예배당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눈에 보이는 예배당을 남기지 않았으면 무엇을 남겼을까요?
바른 믿음, 바른 생각, 바른 행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바른 믿음과 생각과 행실이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반대로 눈에 보이는 예배당에 집착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 믿음과 생각과 인격이 바르지 못한 것을 봅니다. 구약 시대도 그랬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우리 교회가 그냥 해산된다고 해도 남는 것이 없을까요?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언젠가는 없어질 건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영향력을 주게 될 사람들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3. 과거를 통해 미래를 봅시다
오늘는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무엇보다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들은 우리가 좀전에 기도한 것처럼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합시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복기할 것은 철저하게 복기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그럴 때 우리는 과거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정통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그 당시로 돌아가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현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감옥에 넣은 사람들을 비난하지만, 현대의 이순신 장군은 또 감옥에 넣고 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진리의 기준이고 그분만이 더이상 부인할 수 없는 유일한 본질입니다. 여기서부터 신앙을 정립하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송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과거를 바르게 성찰함으로 미래를 준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