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장인의 기도

매일 아침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시작하게 하여 주옵소서.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나로 인하여
남들이 얼굴 찡그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상사와 선배를 존경하고 아울러 동료와 후배를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아부와 질시를 교만과 비굴함을 멀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루에 한번쯤은 하늘을 쳐다보고
넓은 바다를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시고
일주일에 몇 시간은 한 권의 책과 친구와 가족과
더불어 보낼 수 있는 오붓한 시간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한가지 이상의 취미를 갖게 하시어
한 달에 하루쯤은 지나온 나날들을 반성하고
미래와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시인인 동시에 철학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작은 일에도 감동할 수 있는 순수함과
큰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범함을 지니게 하시고
적극적이고 치밀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할 수 있는 용기와
남의 허물을 따뜻이 감싸줄 수 있는 포용력과
고난을 끈기 있게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더욱 길러 주옵소서.
직장인 홍역의 날들을 무사히 넘기게 해주시고
남보다 한발 앞서감이 영원한 앞서감이 아님을 인식하게 하시고
또한, 한걸음 뒤처짐이 영원한 뒤처짐이 아님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자기반성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시고
늘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매사에 충실하여 무사안일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매일 보람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하루를 마감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직장을 그만 두는 날
또한, 생을 마감하는 날에
과거는 전부 아름다웠던 것처럼
내가 거기서 만나고 헤어지고 혹은 다투고
이야기 나눈 모든 사람들이 살며시 미소짓게 하여 주옵소서.

A4 용지 한 장으로 외우는 성경 약도

자료실에 오랜만에 자료를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저에게 성경을 배운 분들은 A4 용지를 접어서 성경 내용을 암기하는 방법이 익숙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강의를 듣지 못한 분들에게는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ppt 자료를 올렸습니다.

자료실에  ‘구속사, 맥을 잡아라!’ 강의안이 있는데, 저는 이 강의안이 없어도 성경과 A4 용지만으로도 동일한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저에게 강의를 들으신 분들도 성경과 A4 용지만 있으면 내용을 대부분 기억해 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말보다는 ppt 파일을 보시는 것이 빠를 것입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서 게시판에 가셔서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이 약도를 암기하시면 성경 지명의 90% 이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성경을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 가르쳐 보았더니 익숙해지니까 30초 정도에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번 암기하시면 성경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아래 ‘자료실’을 누르세요.

자료실

[그중심 묵상] 마태복음 서론

마태복음은 신약성경의 첫번째 성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태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부분 마가복음일 것이라는데 동의합니다. 그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점만 말씀드리면 가장 짧고 단순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졌는데,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대상으로 썼는가가 글의 성격과 동기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현대적으로 적용하면, 마태복음은 모태신앙인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 익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는 말이 됩니다. 또, 이 말은 구약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 읽는 것이 좋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이 복음서 중에서 가장 앞에 배치된 이유도 구약 성경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구약 성경을 충실하게 공부한 다음에 읽어야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믿음의 후손들이 복음을 계승하고자 그토록 애쓴 수고가 드디어 실체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공부에서는 마태복음을 가르칠 때, 세 가지에 중점을 둡니다.

첫째, 예수님의 ‘제자 입학 시험’이라 할 수 있는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입니다.

이 질문은 별표를 다섯 개는 그려야할 정도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기점으로 복음서가 둘로 나누어 지는데, 이 질문 앞부분은 ‘예수님은 누구인가?’가 주제이고, 뒷부분은 ‘예수님은 왜 오셨는가?’가 주제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를 보일 때가 가끔 있는데, 이 부분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고수시니까 하수인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전개를 하지 않으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구세주로 확실하게 인정하는 고백을 한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복음의 핵심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서 베드로가 예수님한테 심하게 꾸중을 듣는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교회에 나가서 기도 응답도 받고 신앙 체험도 해서 이제는 확실하게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한 사람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너는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라고 말씀하시면 좋은데, 반대로 “어는 이제 고생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하시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마 머리 끝까지 화가 날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잘 믿으면 형통하고 성공하는 일만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예수님이 정 반대의 말씀을 하시니까 화가 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비슷할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설교하면 교회 안나갈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성공하고 형통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가르침이고, 성공하고 형통하지 못하면 기도를 많이 안했거나 능력을 못받았기 때문이라고 핀잔을 듣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일견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표출입니다. 성경은 예수 잘 믿으면 고난받고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믿음 좋은 사람들은 고생하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형통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동시에 기도 많이하고 능력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비인격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안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의문의 답을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공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믿음이 좋을수록 고생하는 것이 정상이고 제대로 길을 들어 선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 이후에 베드로는 ‘무능의 길’을 걸어갑니다. 오히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보다 능력이 없어지고,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는 상황까지 추락합니다.

물론 사도행전에서 회복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회복된 것이 아닙니다. 처절한 자기 발견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사도행전을 복음서의 연장으로 보는데, 복음서가 예수님께서 ‘육체로 동행’하신 것이라면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영으로 동행’하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성령’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실제로 ‘성령 충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비인격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예수님처럼 능력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친절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성령이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고도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성령=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생각하면 문제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대 예수님을 닮지 않았다는 건 심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따로 논증하기로 하겠습니다. 기억하셔야 할 점은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베드로가 걸어간 ‘무능의 길’ 다른 말로는 ‘자기 발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교육은 ‘표준 교육 과정’입니다.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예수님이 우리를 골탕먹이려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만드신 것입니다. 왜 성령 충만하다는 사람이 비인격적이고 눈쌀찌푸려지는 언행을 할까요? 예수님의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 없이 스스로 성령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번영주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교육 과정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나름대로 바르게 신앙 생활했는데 고난이 계속되는 분들은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바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을 능력 없다고 무시한 사람이 사실은 잘못된 길, ‘번영주의’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단, 혼란으로 인해서 갈지자로 걷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목표를 알고 가야만 침된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구약 성경과의 유기적 연결에 중점을 둡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마태복음은 구약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과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분들 중에서도 성경 전체를 유기적으로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셋째,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의 실체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에 중점을 둡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공부에서 구약을 공부할 때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를 말씀드렸습니다. ‘5선’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그 ‘5선’이 예수님께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조영남의 ‘대작’ 사건을 통해 본 세태

중견 가수 조영남 씨가 다른 사림이 그린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고 속여서 비싼 가격에 팔았다는 ‘대작’ 사건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습니다.

조영남 씨는 논란이 일자 이러한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발언했고, 미술계에서는 이 발언에 대해서 찬반으로 나뉘어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검찰에서 수사 중이기 때문에 결론을 어떻게 내릴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을 통해 보게 된 우리 시대의 현실이 씁쓸합니다. 어떤 점이 씁쓸하냐면요,

첫째, 실력보다 명성이 더 중요했다는 점입니다. 누가 보아도 가수 출신 조영남 씨보다는 미술 영재 출신 송기창 씨가 더 미술 실력이 뛰어나지만, 조영남 씨가 수 백만~수 천만원에 판 그림을, 송기창 씨는 고작 10만원에 그렸다니 말입니다.

둘째, 효율이 탐욕으로 변했다는 점입니다. 최소 투자로 최대 수익을 거두는 것이 효율이라지만, 그림 한 점 당 10만원은 물감 가격 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나친 원가절감은 효율이 아니라 탐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셋째, 돈에 대한 추구가 끝이 없다는 점입니다. 조영남 씨는 3년 전 방송에서 65억 짜리 187평 호화빌라에 사는 모습을 공개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인색하게 굴면서까지 돈을 더 벌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하버드보다 뛰어난 그 대학의 커리큘럼

“100권의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한 세인트 존스 대학의 졸업생들은 아이비리그 졸업생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고,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지성, < 리딩으로 리드하라> 중에서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는 기독교 고전학교 연합ACCS, Association of Classical & Christian Schools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초중고 12년 동안 < 성경>과 인문고전을 공부하는 게 주 교육과정인 기독교 고전학교 150곳과 기독교 고전교육 홈스쿨링 연합 25곳이 가입해 있다고 합니다.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정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좀 당황스러운 단체입니다. 목사나 인문학자를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도 아닌데, 초중고 12년 동안 < 성경>과 인문고전을 읽고 공부하는 게 주 교육과정이라니 말입니다.

제가 강의장이나 사석에서 이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반응합니다.

“대학은요, 대학입시는 어떻게 하고요?”

그럼 저는 이런 대답을 들려줍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 이 단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단체 출신 학생들의 대학입시 성적은 SAT 상위 10~15퍼센트 이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독교 고전학교 졸업생들의 SAT 성적은 상위 5퍼센트 이내라고 합니다.”

미국의 대학들 중에도 기독교 고전학교 연합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교가 말버러, 뉴, 리드, 세인트 존스입니다. 워싱턴D.C. 대학정보원 설립자이자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인 로런 포프는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에서 이 네 대학이야말로 미국 최고의 지성적인 대학으로서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세인트 존스가 으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겐 생소한 세인트 존스 대학이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보다 뛰어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인트 존스 대학의 신입생들 중에서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10퍼센트 이내에 든 사람이 전체 학생의 20~3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아이비리그는 전체 학생의 95퍼센트 이상이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10퍼센트 안에 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비리그와 비교하면, 세인트 존스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대학인 것입니다.

하지만 4년 뒤에는달라집니다

로런 포프의 보고에 따르면 대학 4년 동안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한 세인트 존스 출신들은 아이비리그 출신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고,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비율 또한 아이비리그 출신들보다 훨씬 높다고 합니다.

저는 세인트 존스의 비결을 인문고전 독서의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문고전 독서는 두뇌에 특별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물론 처음에는 고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어렵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이해하지 못해 진도가 일주일 또는 한 달씩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기면 고통은 기쁨으로 변한다.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천재들이 쓴 문장 뒤에 숨은 이치를 깨닫는 순간 두뇌는 지적 쾌감의 정점을 경험하고 그 맛에 중독된다.

그리고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뻔한 꿈밖에 꿀 줄 모르고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인문고전 저자들처럼 혁명적으로 꿈꾸고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두뇌로 바뀌기 시작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인트 존스 대학의 주 교육과정은 4년 동안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세인트 존스 학생들이 제가 <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제시한 대로 독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도 두뇌에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인문고전 독서가들이 흔히 빠지는 ‘읽기를 위한 읽기’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 로런 포프가 밝힌 분명한 사실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그들 중 상당수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하버드 출신보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시카고 대학의 사례는 인문고전 독서가 두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주장을 보다 확실하게 뒷받침해줍니다.

미국의 대부호였던 존 D. 록펠러가 설립한 시카고 대학은 한때 미국 최하의 삼류 대학이었습니다. 1929년 어느 날 이 대학에 로버트 허친스(Robert Hutchins)라는 사람이 총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힘을 광적으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시카고 플랜’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인문고전 100권을 두뇌에 인이 박히도록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플랜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시카고 플랜’의 혜택을 받은 학생들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노벨상 왕국’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시카고 대학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68명에 달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는 <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을 노벨상 왕국이라고 한다. (..)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데는 항존주의 교육철학의 시조인 로버트 허친스 총장의 공적이 컸다. 1890년에 창설된 후 별 볼일 없는 대학으로 1929년까지 유지되어오던 시카고 대학은 로버트 허친스 박사가 총장이 되면서 교양교육의 일환으로 고전 100권을 각 분야에서 읽도록 했다. (..) 그러한 교양교육의 성과로 시카고대 동문 교수 중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인문고전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한때 우리나라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때 많은 대학들이 인문고전 100권 읽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저는 그 운동을 보면서 ‘이제야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인문고전을 읽게 되었구나. 이제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멋진 미래가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에 참 많이 기뻤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독서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탓에 인문고전 독서를 마치 입시 공부하듯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황희철 차이에듀케이션 대표와 함께 수도권 대학 스무 곳의 학생들을 선발, 인문고전 독서 동아리와 인문학 교육 봉사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두 동아리가 ‘학점’과 ‘취업’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해산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즈음에 대학가의 인문고전 독서 운동도 시들해졌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에 대학가를 향해 이런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한때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었다. 교수가 수업시간에 인문고전을 원서로 강독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철학고전을 권하고, 대학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돌파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 그런데 알다시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인문고전을 원서로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던 교수도, 신입생에게 플라톤과 < 논어>를 권하던 선배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도 죽어라 인문고전을 읽던 학생도 다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베스트셀러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는 교수, 신입생에게 재테크 서적을 권하는 선배, 무협 판타지 소설을 애독하는 학생들이 들어섰다. 물론 베스트셀러, 재테크 서적, 무협 판타지 소설이 나쁘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세 가지는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다. 나는 인문고전 독서가 사라진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가의현실은 어떻습니까?

인문고전은커녕 베스트셀러, 재테크 서적, 무협 판타지 같은 책도 읽지 않고 있습니다. ‘학점’과 ‘취업’이라는 명분 아래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노예의 삶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나라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헬조선일 것입니다.

저는 대학생들에게 감히 제안하고 싶습니다.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의 꿈을 함께하자고 말입니다.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은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에 인문고전 독서 동아리와 인문학 교육 봉사 동아리를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 아동 센터와 고아원 등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빈민촌에 대학생 인문학 교육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렇게 젊은이의 힘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면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저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인트 존스 대학 고전 100권 목록 바로 가기

[출처] 다음 스토리펀딩, ‘리딩으로 리드하라’ 5화 하버드보다 뛰어난 그 대학의 커리큘럼 중에서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만 버릇이 없을까요? 이 말이 언제부터 나왔는지 아시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어디에 갔다 왔느냐?”
“아무 데도 안갔습니다”
“도대체 왜 학교를 안 가고 빈둥거리고 있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너의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항상 인사를 드려라. 왜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지 않고 밖을 배회하느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거라.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땔감을 잘라오게 하였느냐?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쟁기질을 하게 하고 나를 부양하라고 하였느냐?
도대체 왜 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냐?”

-BC. 1700년경, 수메르 점토판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

– BC. 425년경, 소크라테스

 

“요즘 대학생들 정말 한숨만 나온다. 요즘 대학생들은 선생들 위에 서고 싶어하고, 선생들의 가르침에 논리가 아닌 그릇된 생각들로 도전한다. 그들은 강의에는 출석하지만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 1311년, 알바루스 펠라기우스

 

[출처] 나무위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에 이르기 위해 구도자가 할 수 있는 열 가지 방편’

  1. 구도자는 자신의 정욕의 외적인 극대화로부터 절제할 수 있다.
  2. 구도자는 어떤 악한 과정과 실천을 개혁할 수 있다.
  3. 구도자는 이웃에 대한 외적인 의무들을 수행할 수 있다.
  4. 구도자는 성경을 읽을 수 있다.
  5. 구도자는 모든 공예배나 기도회에 참여할 수 있다.
  6. 구도자는 자신의 입술을 신앙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영적인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다.
  7. 구도자는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 즉, 악한 생각에서 생각을 돌려 신적인 일들에 대해 묵상할 수 있다.
  8. 구도자는 신앙적인 일들에 자기 시간을 구별해 사용할 수 있다.
  9. 구도자는 주어진 신적인 도움ㅡ즉, 성령의 감동ㅡ을 활용할 수 있다.
  10. 구도자는 자신의 다른 일을 하듯이 이런 일들에 자신의 온 힘을 기울일 수 있다.

[출처] 조나단 에드워즈 [Persons Ought to Do What They Can for Their Salvation], http://goo.gl/DJgJdX에서 재인용

 

사순절과 슬픔 금지의 날

지금은 교회 절기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이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 전 40일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종종 신자들은 ‘사순절’이 40일 보다 더 길다는데 혼란을 느낍니다.

정확하게 ‘사순절’ 기간은 46일인데, 그 이유는 ‘사순절’ 기간을 계수할 때 ‘주일’ 을 제외하고 계수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순절 기간에서 주일을 제외할까요?

첫째로, ‘주일’의 의미가 그 어떤 절기보다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일 후 첫날’을 기념한 날로써, ‘작은 부활절’입니다. ‘사순절’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기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의 의미가 퇴색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주일을 제외했습니다.

둘째로, ‘슬픔 금지의 날’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는 ‘사순절’에 과도한 고행과 금식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과도한 슬픔에 젖어들지 않도록 ‘슬픔 금지의 날’을 주기 위해서 주일을 제외했습니다. 즉, 금식과 고행을 하던 사람들도 주일에는 기쁜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와 기쁨을 누리도록 강제한 것입니다.

우리도 깊은 슬픔이 있을지라도 ‘슬픔 금지의 날’을 정해서 지켜보면 어떨까요?

감사와 예물, 그리고 오해

추수감사절 주간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 청교도가 시작해서 선교사들을 통해서 우리 나라에 전파된 절기입니다. 성경의 근거는 출애굽기(출26:14~1), 레위기(23장), 신명기(신16:1~17) 등에 기록된 일년에 세 차려 여호와 앞에 나오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빈 손으로 오지 말라’는 구절입니다(출23:15).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감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물을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것이 강요된 것이라면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믿음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구절은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땅을 소유하기 전입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해서 광야를 전전하면서 집도 땅도 미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추수한 곡식을 가지고 와서 예배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에 다름 아닙니다. 그들은 나중에 추수하게 되면 감사절기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망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무조건 먼저 예물을 드리라고 강요하는 분이 아니라 풍요로운 복을 주고 그에 합당한 감사를 요구하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믿음을 강요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도 하나님을 핑계로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실제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만들어낸 신을 믿는 것입니다.

감사와 예물은 마음에서 흘러넘치는 것이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미리 감사하라’는 말은 믿음이 아니라 성경을 오해한 목회자가 자기 중심적 욕심으로 만들어 낸 이론일 뿐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감사합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보며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제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이 문제에 대한 메시지들이 많이 오고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은 주로 신앙인들이기 때문에 그분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신앙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는데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신앙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해당 분야에 대해서 충분히 공부하고 생각을 정리하셨으면 합니다.
‘근현대사’나 ‘해방전후사’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섣부르게 확신을 갖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개인적으로 논란에 개입하지 않으시기를 바라지만 꼭 의견을 내세우고 싶으시다면, 먼저 반대되는 관점의 책들 몇 권이라도 읽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일관성을 갖고 행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과거 “데모를 하지 말라”고 설교 하시던 목사님들이 정권이 바꾸자 앞장서서 데모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정권이 바뀌면 지금 찬성했던 분들이 태도를 바꿔서 반대로 돌아설 가능성이 큰 사안입니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시고 소신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근현대사 추천도서]
역사 기초 : E.H. 카아,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해방전후사 : 송건호 외,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 박지향 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