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8월 27일 주일 설교
신명기 08:01~10
설교 듣기
[핵심 구절]
(신 8:5~6) 5 당신들은, 사람이 자기 자녀를 훈련시키듯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도 당신들을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겨 두십시오. 6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하십시오.
[도입]
우리가 사는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요?
[설교 요약]
오늘은 5절과 6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은 훈련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길을 가게 하신 이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갈 수 있는 훈련을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천국의 모형일까요? 아닙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천로역정을 보아도 해석자의 집을 지나야 십자가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배워야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이라는 것이 행위적인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방편이라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마련해 놓은 구원의 길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홀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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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나안은 직업과 소명입니다 –창 1:28, 12:1
하나님은 광야를 가더라고 방향 없이 가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목표를 정해주고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모든 신자에게 공통되면서도 다릅니다. 그것은 직업이라는 소명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직장이 아니라 직업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직장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면 여러분은 다른 일을 하게 될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직장은 있지만 직업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업, 내가 일생동안 발전시키고 계발해야 할 나만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에 매진해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에게 통치자라는 직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직업은 인간의 타락 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단지 난이도가 높아졌을 뿐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워낙 많아져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이 매우 작게 세분화되어 있지만 우리 모두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작게 세분화된 직업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영역을 발견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이 현재에는 직업으로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직업을 찾으십시오.
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직업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느 직장에 들어갈 것인가에 목 매달지 말고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고민하게 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그곳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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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광야는 바로 인생 자체입니다 – 계 7:14
광야는 곧 인생 자체입니다.
(계 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시록 7:14에서 큰 환란는 ‘테스 세오슬립스 테스 메갈레스’라고 하는데, 영어에서는 ‘the great tribulation’이라고 합니다. 원어나 영어를 알 필요까지는 없는데, 한 가지 한국어가 갖는 한계 때문에 주의할 필요는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큰 환란’이 아니라 ‘그 큰 환란’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종말 때에 있을 대환란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다르게 해석하는데, 여기서 흰옷입은 사람들은 종말때 대 환란을 거쳐서 들어가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환란이 있기 전 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겪은 그 큰 환난은 무엇일까? 저는 각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지난 주에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스캇 펙이 ‘인생은 고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게 불교식 용어이기 때문에 ‘인생은 환란이다’라고 고치고 싶습니다. 인생은 환란입니다. 스캇 펙의 말처럼 인생을 환란이라고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환란을 헤쳐나갈 힘을 비로소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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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만나와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요 6:51, 고전 10:4
그러나 환란을 헤쳐나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도를 만나는 일입니다. 광야는 힘든 곳이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만나기 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생수를 마신 일은 모두 그리스도를 체험한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번영주의적 사고를 버리면 됩니다.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부흥사들이 많아지고 방언이 일반화되고 영성이 들어오기 전에 오히려 기도 응답이 더 많았습니다. 힘들 현실 속에서도 분투하면서 겸손하게 신앙 생활 할 때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지금 더 많은 기도 응답을 체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동행하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번영주의에서 벗어나니까 예수님을 더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번영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기도, 방언, 영성 등으로 빨리 환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나를 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라고 이해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그리스도를 만날 것입니다.
[결론]
힘든 일상을 빨리 벗어나는데 중점을 두지 말고 그리스도와 동행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