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소설 돈키호테가 올해로 완간 400년을 맞이했습니다. 돈키호테에 대한 찬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류의 바이블”(생트 뵈브),

“근대 소설의 효시”(알베르 티보데),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노벨 연구소),

“세르반테스와 데카르트는 근대의 공동 부모”(소설가 밀란 쿤데라)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르네 지라르),

“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도스토예프스키)…. 찬사는 끝도 없습니다.

2002년 노르웨이 북클럽에서 세계 54개국 저명한 작가와 비평가들을 상대로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문학 작품’을 두고 벌인 설문 조사에서도 1위가 돈키호테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평가와는 사뭇 다릅니다.

‘미친 시골 하류 귀족의 엉뚱한 모험담’

‘괴짜’

‘사회부적응자’…

분명한 것은 이 시대는 햄릿형 인간상이 아닌 돈키호테가 그 답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을 살려낸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처럼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돈키호테형 인재가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모범적인 인간상에도 이제는 변화가 와야 하지 않을까요?

창의력이 필수인 정보기술(IT)분야만이 아닌 사회 전 분야가 돈키호테를 찾고 있습니다.

 

[출처] 인용 송길원, 원본 조선비즈 피플

되고 법칙

‘안된다 안된다’하면 안되는 것 투성입니다. 하지만, ‘되고 되고’ 하다 보면 안되는게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면 되고.

잘못이 있으면, 잘못을 고치면 되고.

안 되는 것은 되게 하면 되고.

모르면 배우면 되고.

부족하면 메우면 되고.

힘이 부족하면 힘을 기르면 되고.

잘 모르면 물으면 되고.

잘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고.

길이 안보이면 길을 찾으면 되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되고.

기술이 없으면 연구하면 되고.

생각이 부족하면 생각을 하면 되고.

한 번 시도해 보실래요.

[출처] 하이패밀리

4가지 만남

사람에게는 4가지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1. Master(주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비서이지만 대부분의 사장보다 신분이 높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섬기느냐에 따라서 위치가 달라집니다. 가능하다면 존경할 주인을 만나서 섬겨야 합니다.
  2. Mate(배우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부부가 합심하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의 만남과 배우자와의 관계를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3. Mentor(스승)
    성장하기 원한다면 먼저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롤모델을 정하는 것도 좋고, 책으로 만나도 좋습니다.

  4. Mission(사명)
    ‘행복한 가정 만들기’라는 소박한 사명도 좋습니다. 어떤 사명이든 있어야 인생이 표류에서 항해로 변합니다.

-참고,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

기대면서 삽시다

독거 노인 130만명 시대입니다. 자연스럽게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보다 일찍 고독사 문제를 맞이했던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고독사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특히 우에노 지즈코라는 작가는 자신의 저서 <독신의 오후>에서 고독사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괴로운 것은 스스로가 예전의 자유를 잃고 기력을 잃는 거다. 그리고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현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자존심을 산산조각으로 무너뜨린다. 이런 아픔은 과거 권력이나 지위를 누렸던 사람일수록 더 커진다. 여성은 원래부터 대단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던 터라 노후에 연착륙할 수 있지만, 남자의 경우엔 힘 좀 있었던 남성일수록 나이 듦이 경착륙이 되기 쉽다. 그러곤 상처받을 것이다.”

사람 ‘인(인)’자를 한자로 쓰면 서로 기대 선 모습입니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우리 서로 기대면서 삽시다.

실패로 이루어진 성공

생전에 스티브 잡스는 ‘실패’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찾아 내는 것, 탐험하는 것,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 실험하는 것, 어떻게 더 노력할지 아는 것, 그게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음을 배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