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2_자세히 설명하시니라

Contents

본문

누가복음 24:13~27 / 2018년 04월 22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한줄 요약

예수님은 좌절감에 휩싸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는 방법으로 새로운 소망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개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활동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위로와 격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사십 일은 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감동적인 변화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0. 실패는 없고, 시행착오만 있다

좌절감은 요즘 사람들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굶어죽는 사람보다 좌절해서 죽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일지 모릅니다. 20대 청년 실업자, 30대 직장인, 40~50대 명퇴 대상자들이 모두 좌절감이 싸여 있습니다.

좌절감은 뜻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서 마음이 꺾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류콤플렉스, 일등주의, 성공지상주의에 빠진 이유 중에 하나는 좌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좌절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시 도전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으려는 마음이 좌절감입니다. 다시 일어나면 쓰러진 일은 시행착오가 됩니다.

에디슨이 전구들 만들 때 실패한 일은 유명합니다. 에디슨은 필라멘트에 적합한 물질을 찾기 위해 다양한 재료들을 실험에 사용했습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휴지조각부터 머리카락, 옷감, 백금 등 수많은 재료들을 사용하여 무려 1,000여 번이 넘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에디슨은 실험을 머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실험실에 굴러다니던 싸구려 일본산 부채 하나가 에디슨의 눈에 들어왔다. 에디슨은 그 부채의 부챗살을 가늘게 잘라 필라멘트로 만들었고, 그 부챗살로 만든 필라멘트는 1,500시간을 넘게 버터주어 마침내 상용화할 수 있는 전구를 발명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에디슨이 몇 백 번쯤 실험을 하다가 포기하였다면 전구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나 다른 발명가의 손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며, 어쩌면 아직까지도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에디슨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디슨의 성공 비결인 ‘포기하지 않는 것’을 성공 확률이 100%인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좌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좌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대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실패가 계속되면 사람은 좌절하게 됩니다. 이런 좌절이 두 제자를 휩싸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자책감 때문에 고향으로 갔다면, 이들은 좌절감 때문에 고향으로 내렸갔습니다. 그들이 좌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은 17절과 23~24절 두 부분입니다.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여기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슬퍼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23~24절을 보면

(24:23~24)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증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도 고향으로 갔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있습니다. 마음이 꺾여서 좌절한 것입니다.

좌절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합니다. 불 꺼진 난로, 시동 꺼진 자동차 같습니다. 한숨만 쉬고 부정적인 생각만 늘어납니다. 에너지가 있는 사람의 기력도 빨아들여서 함께 무기력하게 만드는 늪같이 됩니다. 이처럼기대가 꺾이고 실패가 쌓여서 좌절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예수님은 어떻게 변화시키셨을까요?

2.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 오해

사람이 좌절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처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해입니다.
사람이 좌절하는 이유는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어떤 오해를 했습니까? 예수님을 능력있는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4: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4:23~24)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여기까지는 오해가 아닙니다. 오해는 바로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24:20~21)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속량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군사적인 승리입니다. 이스라엘의 독립, 로마 군대 철수, 강력한 국가로 성장 등이 이들이 바란 속량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방법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량은 이들의 마음에 없었습니다.

두 제자의 사고 방식은 이겁니다. 능력이 있으면, 그 힘으로 반대자를 물리치고 굴복시켜서 자기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각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고 방식은 정반대였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그 힘으로 약한 자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인류를 구원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를 대신해서 그들이 받을 벌을 대신 받을 능력이 있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인류를 굴복시키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섬기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넣어주려는 마음입니다.

3.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해결

예수님은 그들의 사고 방식을 하나씩 교정해 주셨습니다.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닐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해도 성경 지식만 늘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살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4:25~27)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잘못된 생각이 고쳐지지 않으면, 좌절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시대가 좌절에 휩싸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성공에 대한 거짓된 신화와 과장된 광고 때문입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데 성공해야 할 것처럼 경쟁으로 몰아갑니다. 반칙으로 승리한 것을 위대한 업적인 것처럼 과장합니다.

[교회에서마저 성공, 번영, 기적을 최고의 목적으로 가르칩니다. 교역자를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교체합니다. 다른 교회 교인에게 전도합니다. 방언을 연습하고 거룩하지 않은 사역자가 성령 충만을 주장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에는 물의를 일으키는 목회자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그 사람에게 화가 났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에게 화가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물의를 일으켜도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지지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추종자들이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성공의 길을 안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청해서 고난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살려고 하면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고난 중 형통’입니다. 고난 속에서 형통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복음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하나하나 고쳐주십니다. 복음이 아닌 것을 버리게 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복음의 길을 가야한다고 설득하십니다. 그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는 비로소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결론

좌절감은 요즘 사람들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입니다. 성공과 번영으로 몰아가려는 풍조가 좌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구조인데 경쟁을 과열시키고 모두가 번영할 수 없는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헛된 마음을 불어넣습니다.

좌절감을 극복하는 길은 ‘고난 중 형통’이라는 복음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세상 풍조에 휩쓸린 마음을 되돌려서 복음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성공의 길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섬김의 삶을 살면 그리스도의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