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대작’ 사건을 통해 본 세태

중견 가수 조영남 씨가 다른 사림이 그린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고 속여서 비싼 가격에 팔았다는 ‘대작’ 사건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습니다.

조영남 씨는 논란이 일자 이러한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발언했고, 미술계에서는 이 발언에 대해서 찬반으로 나뉘어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검찰에서 수사 중이기 때문에 결론을 어떻게 내릴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을 통해 보게 된 우리 시대의 현실이 씁쓸합니다. 어떤 점이 씁쓸하냐면요,

첫째, 실력보다 명성이 더 중요했다는 점입니다. 누가 보아도 가수 출신 조영남 씨보다는 미술 영재 출신 송기창 씨가 더 미술 실력이 뛰어나지만, 조영남 씨가 수 백만~수 천만원에 판 그림을, 송기창 씨는 고작 10만원에 그렸다니 말입니다.

둘째, 효율이 탐욕으로 변했다는 점입니다. 최소 투자로 최대 수익을 거두는 것이 효율이라지만, 그림 한 점 당 10만원은 물감 가격 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나친 원가절감은 효율이 아니라 탐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셋째, 돈에 대한 추구가 끝이 없다는 점입니다. 조영남 씨는 3년 전 방송에서 65억 짜리 187평 호화빌라에 사는 모습을 공개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인색하게 굴면서까지 돈을 더 벌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하버드보다 뛰어난 그 대학의 커리큘럼

“100권의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한 세인트 존스 대학의 졸업생들은 아이비리그 졸업생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고,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지성, < 리딩으로 리드하라> 중에서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는 기독교 고전학교 연합ACCS, Association of Classical & Christian Schools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초중고 12년 동안 < 성경>과 인문고전을 공부하는 게 주 교육과정인 기독교 고전학교 150곳과 기독교 고전교육 홈스쿨링 연합 25곳이 가입해 있다고 합니다.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정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좀 당황스러운 단체입니다. 목사나 인문학자를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도 아닌데, 초중고 12년 동안 < 성경>과 인문고전을 읽고 공부하는 게 주 교육과정이라니 말입니다.

제가 강의장이나 사석에서 이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반응합니다.

“대학은요, 대학입시는 어떻게 하고요?”

그럼 저는 이런 대답을 들려줍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 이 단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단체 출신 학생들의 대학입시 성적은 SAT 상위 10~15퍼센트 이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독교 고전학교 졸업생들의 SAT 성적은 상위 5퍼센트 이내라고 합니다.”

미국의 대학들 중에도 기독교 고전학교 연합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교가 말버러, 뉴, 리드, 세인트 존스입니다. 워싱턴D.C. 대학정보원 설립자이자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인 로런 포프는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에서 이 네 대학이야말로 미국 최고의 지성적인 대학으로서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세인트 존스가 으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겐 생소한 세인트 존스 대학이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보다 뛰어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인트 존스 대학의 신입생들 중에서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10퍼센트 이내에 든 사람이 전체 학생의 20~3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아이비리그는 전체 학생의 95퍼센트 이상이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10퍼센트 안에 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비리그와 비교하면, 세인트 존스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대학인 것입니다.

하지만 4년 뒤에는달라집니다

로런 포프의 보고에 따르면 대학 4년 동안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한 세인트 존스 출신들은 아이비리그 출신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고,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비율 또한 아이비리그 출신들보다 훨씬 높다고 합니다.

저는 세인트 존스의 비결을 인문고전 독서의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문고전 독서는 두뇌에 특별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물론 처음에는 고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어렵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이해하지 못해 진도가 일주일 또는 한 달씩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기면 고통은 기쁨으로 변한다.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천재들이 쓴 문장 뒤에 숨은 이치를 깨닫는 순간 두뇌는 지적 쾌감의 정점을 경험하고 그 맛에 중독된다.

그리고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뻔한 꿈밖에 꿀 줄 모르고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인문고전 저자들처럼 혁명적으로 꿈꾸고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두뇌로 바뀌기 시작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인트 존스 대학의 주 교육과정은 4년 동안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세인트 존스 학생들이 제가 <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제시한 대로 독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도 두뇌에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인문고전 독서가들이 흔히 빠지는 ‘읽기를 위한 읽기’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 로런 포프가 밝힌 분명한 사실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그들 중 상당수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하버드 출신보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시카고 대학의 사례는 인문고전 독서가 두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주장을 보다 확실하게 뒷받침해줍니다.

미국의 대부호였던 존 D. 록펠러가 설립한 시카고 대학은 한때 미국 최하의 삼류 대학이었습니다. 1929년 어느 날 이 대학에 로버트 허친스(Robert Hutchins)라는 사람이 총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힘을 광적으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시카고 플랜’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인문고전 100권을 두뇌에 인이 박히도록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플랜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시카고 플랜’의 혜택을 받은 학생들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노벨상 왕국’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시카고 대학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68명에 달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는 <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을 노벨상 왕국이라고 한다. (..)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데는 항존주의 교육철학의 시조인 로버트 허친스 총장의 공적이 컸다. 1890년에 창설된 후 별 볼일 없는 대학으로 1929년까지 유지되어오던 시카고 대학은 로버트 허친스 박사가 총장이 되면서 교양교육의 일환으로 고전 100권을 각 분야에서 읽도록 했다. (..) 그러한 교양교육의 성과로 시카고대 동문 교수 중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인문고전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한때 우리나라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때 많은 대학들이 인문고전 100권 읽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저는 그 운동을 보면서 ‘이제야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인문고전을 읽게 되었구나. 이제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멋진 미래가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에 참 많이 기뻤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독서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탓에 인문고전 독서를 마치 입시 공부하듯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황희철 차이에듀케이션 대표와 함께 수도권 대학 스무 곳의 학생들을 선발, 인문고전 독서 동아리와 인문학 교육 봉사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두 동아리가 ‘학점’과 ‘취업’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해산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즈음에 대학가의 인문고전 독서 운동도 시들해졌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에 대학가를 향해 이런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한때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었다. 교수가 수업시간에 인문고전을 원서로 강독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철학고전을 권하고, 대학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돌파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 그런데 알다시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인문고전을 원서로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던 교수도, 신입생에게 플라톤과 < 논어>를 권하던 선배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도 죽어라 인문고전을 읽던 학생도 다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베스트셀러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는 교수, 신입생에게 재테크 서적을 권하는 선배, 무협 판타지 소설을 애독하는 학생들이 들어섰다. 물론 베스트셀러, 재테크 서적, 무협 판타지 소설이 나쁘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세 가지는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다. 나는 인문고전 독서가 사라진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가의현실은 어떻습니까?

인문고전은커녕 베스트셀러, 재테크 서적, 무협 판타지 같은 책도 읽지 않고 있습니다. ‘학점’과 ‘취업’이라는 명분 아래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노예의 삶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나라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헬조선일 것입니다.

저는 대학생들에게 감히 제안하고 싶습니다.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의 꿈을 함께하자고 말입니다.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은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에 인문고전 독서 동아리와 인문학 교육 봉사 동아리를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 아동 센터와 고아원 등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빈민촌에 대학생 인문학 교육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렇게 젊은이의 힘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면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저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인트 존스 대학 고전 100권 목록 바로 가기

[출처] 다음 스토리펀딩, ‘리딩으로 리드하라’ 5화 하버드보다 뛰어난 그 대학의 커리큘럼 중에서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만 버릇이 없을까요? 이 말이 언제부터 나왔는지 아시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어디에 갔다 왔느냐?”
“아무 데도 안갔습니다”
“도대체 왜 학교를 안 가고 빈둥거리고 있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너의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항상 인사를 드려라. 왜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지 않고 밖을 배회하느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거라.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땔감을 잘라오게 하였느냐?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쟁기질을 하게 하고 나를 부양하라고 하였느냐?
도대체 왜 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냐?”

-BC. 1700년경, 수메르 점토판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

– BC. 425년경, 소크라테스

 

“요즘 대학생들 정말 한숨만 나온다. 요즘 대학생들은 선생들 위에 서고 싶어하고, 선생들의 가르침에 논리가 아닌 그릇된 생각들로 도전한다. 그들은 강의에는 출석하지만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 1311년, 알바루스 펠라기우스

 

[출처] 나무위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계속 가난한지 이해를 못하시겠다고요?

가난한 사람들이 왜 계속 가난한지 이해를 못하시겠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소시오패스일지도 모릅니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과 내용의 <가디언> 칼럼입니다. 최근 자주 회자하는 화두 가운데 하나인 공감 능력을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저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소를 짓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금을 모으는 자선단체 모금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이들의 참여와 지지 속에 행사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목표로 했던 금액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금 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고 가정 폭력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전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는 아마 힘들 겁니다. 여전히 사뭇 진지한 얼굴로 제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죠.

“저, 근데 사실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사람들(가정 폭력 피해자)은 왜 그냥 집에서 도망치지 않는 거죠?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왜 그걸 참고 사는 거예요?”

여기서 정말 왜 그들이 가정 폭력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간단히 요점만 정리해보자면, 우선 여성들이 자기가 집을 나가 이 상황에서 도망치면 남겨진 자식들이 끔찍한 폭력을 홀로 이겨내야 할 상황을 그리며 참는 쪽을 택합니다. 이미 수개월, 수년간 폭력에 노출된 이들은 심리적으로 이런 끔찍한 상황을 버티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자존감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있을 것이고,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도, 경제적으로 새로운 삶을 도모해볼 여유도 아마도 없을 겁니다. 한 마디로 도망가도 무얼 할지 모르고, 갈 데도 없는 상황인 거죠.

자, 제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가정 폭력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저 위에 적어놓은 저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 수많은 분야에서 시도때도 없이 터져나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아껴쓰고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모을 생각을 해야지 왜 불평만 하느냐, 건강에 안 좋은 거 알면서도 왜 자꾸 패스트푸드만 먹고 술, 담배는 도대체 왜 못 끊는 것이냐는 등 비슷한 종류의 질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최소한의 공감 능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 이들이 저런 질문을 태연하게 던질 때는 정말 사태가 심각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공감 능력이 필요한 직업 가운데 정치인을 빼놓을 수 없겠죠. 좌우를 막론하고 공감의 수준은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좌파(영국 노동당)는 어쨌든 가난한 사람들한테 마음의 빚이라도 진 것처럼 이런저런 궁리를 하기야 하겠지만,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이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지는 모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파(영국 보수당) 가운데 일부는 어쩌면 정말로 무식하고 못 배워서 가난한 거라고 믿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런 질문을 태연하게 던지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정치인들을 향해 저는 정말로 몇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제 질문이 어쩌면 이해를 돕고 공감 능력을 키워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 ㅇㅇㅇ 의원님, 의원님에게도 정말로 뭘 해도 안 되는 날, 말 그대로 잊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었겠죠? 일이 전혀 안 풀리고, 그냥 다 잊고 어디 좋은 식당이나 바에 가서 비싼 양주나 한 모금 들이키며 그냥 흘려보내고 싶은 날이요. 일주일 내내 좋은 한정식집, 고기 한 번 못 먹고 일만 죽어라고 하는데도 상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만 가는 답답한 시기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이제 생각해보세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세요. 만약 당신의 삶 전체가 매일매일 그런 최악의 날이, 아니 실은 그보다도 더 엉망이지만, 어쨌든 그런 최악의 날의 연속인데 도저히 터널 끝의 불빛 같은 건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상 별로 없다면 어떡하시겠어요? 휴일? 휴일이 어딨어요. 한달에 28일 정도는 일해야죠. 주식 팔아서 처분하고 한적한 데 가서 살겠다고요? 아이고, 지금 제가 설명한 상황을 전혀 이해를 못하신 건가요?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삶이라고요, 월급 많이 주는 일자리를 얻으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없어요. 그런 기술이 뭔지도 평생 배워본 적이 없어요. 안 돼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돼요.

“아니, 그래도 먹는 장사, 뭐든 마련해서 대여해주는 일, 아주 허드렛일이라도 비전이 있는 일이 있을 거 아닌가요? 그런 걸 꼼꼼히 찾아보고 어떻게든 스스로 일어설 생각을 해야지, 그런 의지가 부족한 건 아닐까요?”

여전히 이렇게 묻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어요.

“아주 급박한 상황에 몰려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느니 뭐라도 얻기 위해 웃돈을 주는 걸 알면서도 이를 악물고 무언가를 해치우려 한 적 있으세요?

잠깐,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상황은 아마도 당신이 겪었을 난처하고 급박한 상황을 말하는 건 아니예요. 해외에 땅 사두셨는데, 갑자기 땅값이 폭락했을 때 겪었을 당혹감 같은 거 말고, 부모님 생신 때 드리려고 생각해둔 값비싼 선물 세일 때를 놓쳐서 나중에 입맛 다시며 비싼 돈 주고 사야 할 때 이런 것도 말고요. 진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당신을 그냥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식하고 무능한 사람 취급할 때 받는 무기력감에 대해 생각해보셨냐는 겁니다.”

저는 정책을 결정하고 입안하고 집행하는 이들이 이런 상황과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걸 갑자기 한꺼번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걸음 한 걸음 알아가고 이해하려다 보면 분명히 나아질 텐데, 전혀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되고요. 만약 우리 사회가 이런 소시오패스가 만든 정책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면, 서민들은 이런 동떨어진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할 겁니다. 만약 서민들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별 생각없이 정책을 그냥 고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면 그것 또한 자격 미달인 것이겠죠. 저는 (영국에서) 머지않아 열릴 것 같은 TV 토론에 나온 후보들에게 정말 묻고 싶습니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낸 적이 있는지, 진짜 대다수 서민들이 겪는 무기력감을 느껴봤는지, 그랬다면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를 말입니다. (Guardian)

[출처] 뉴스페퍼민트. http://goo.gl/AmZQWy

웃긴데 슬픈 ‘미생복음’

직장인들 사이에서 ‘미생복음’이 회자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볼 때 조금 불경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여 소개합니다. 모든 사람이 완생하는 사회를 기원하며…

 

내게 월급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미생복음 1장 1절

나는 야근에도 처할 줄도 알고 칼퇴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주말출근과 소득공제와 연말정산 폭탄에도 감사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미생복음 1장 2절

그런즉 성과급 보너스 월급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월급이라.-미생복음 1장 3절

사장님 홀로 퇴근하며 불켜진 사무실을 보니 그가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주말이 가고 아침이 되니 이는 월요일이니라-미생복음 1장 4절

칼퇴근을 하는 직원을 향해 이르사 ‘화 있을진저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연봉감봉을 피할 수 있으랴?-미생복음1장 6절

부장님의 눈빛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어떤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며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또 사원의 애사심을 판단하나니-미생복음 1장 9절

계약직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할 수 없으며 교만 할 수 없으며 무례히 행할 수 없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할 수 없으며 절대 성낼 수 없으며 칼퇴할 것을 생각할 수 없으며 출근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퇴근과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미생복음 1장 8절

 

[출처] 카타콤, 김지명 피디 facebook. https://goo.gl/x3V4dL

친구에 관한 13가지 명언

“친구는 모든 것을 나눈다”
– 플라톤 –

“누구에게나 친구는 어느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

“성공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
– 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 –

“친구를 고르는 데는 천천히 친구를 바꾸는 데는 더 천천히 ”
– 벤자민 프랭클린 –

“새벽 4시에 전화를 걸수 있는 친구라면 중요한 친구이다”
– 마를렌 디트리히 –

“불행은 누가 진정한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
– 아리스토텔레스 –

“풍요 속에서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고, 역경 속에서는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
– 존 철튼 콜린스 –

“집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은 자주 찾아오는 친구들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삼지 말라(無友不如己者 / 무우불여기자)”
– 공자 –

“만약 누군가를 당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먼저 당신이 그의 진정한 친구임을 확신시켜라”
– 에이브러햄 링컨 –

“우정이라는 기계에 잘 정제된 예의라는 기름을 바르는 것은 현명하다”
– 콜레트 –

“전화번호부를 뒤져 전화를 걸고 차로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라. 데려다 주는 사람이 당신의 진정한 친구다. 나머지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지인일 뿐이다” – 제이 레노 –

“여러분과 리무진을 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겠지만,정작 여러분이 원한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입니다”
– 오프라 윈프리 –

[출처] vingle.net https://goo.gl/lOYD23

우리의 잘못입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입니다. 특별 사면이 이루어 지고, 14일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는 등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그러나, 메스컴을 통해서 보게된 씁쓸한 기사가 마음 한 켠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라를 위해서 독립 운동을 한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들이 매우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올해 4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월166만8000원 이상을 지원받는 독립운동가와 후손은 전체 6066명 중 497명에 불과하고, 100만원 이상 지원받는 사람도 4111명뿐이다. 게다가 국가 지원은 자녀 중 1명에게만 지급되고, 3대 이후에는 중단된다. 자녀를 여러 명 둔 독립운동가라면 아들 한 명과 손자 한명에게만 지원하는 식이다.

[출처] newsis, 독립운동하고 3대가 ‘가난’한 나라

 

겨우 후손 1명에게 많지도 않은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니 그분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잘못이고 우리의 잘못입니다.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니 법 개정해서 그분들을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하고 실천합시다.

[좋은 글] 서투른 새, 노련한 새

떠날 때를 보면
떠나고 난 후에 보면
떠난 새가 제대로 보인다.
서투른 새는
나뭇가지를 요란하게 흔들고 떠난다.
떠난 후 가지가 한참 흔들린다.
노련한 새는
가지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모르게 흔적도 없이 조용히 떠난다.
떠나가도
늘 앉아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가지에게 포근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 방우달의《나는 아침마다 다림질된다》중에서

인간관계에서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헤어짐입니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아름답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뭇가지를 얼마나 흔들었는지, 나는 가지에게 어떤 느낌을 줬는지, 나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돌이켜 보며 용서를 하고 받고 상처도 치유하며 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노련한 새는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고도원의 아침편지 2015.08.08

요리하는 남자

아내가 된장찌개를 끓여달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았더니 ’백종원 된장찌개’가 맨 앞에 소개되더군요. 저는 한 번도 백종원 씨의 방송을 본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서 이름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포탈싸이트 레시피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히 열풍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종원 열풍을 보면서 기쁜 이유는 남자들의 요리에 대한 생각이 변할 것 같아서입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한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여성들도 남편이 요리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아들이 요리한다고 하면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요리하는 남자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실의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간 베드로를 부르러 가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생선과 떡을 구워주셨습니다. 즉석 구이 요리로 먹이신 후에 예수님은 유명한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요리를 해 줄 수 있는 남자였습니다. 2천년 전에 이런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결단코 없었습니다. 성경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소한 것에서 확인해 봅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태도

동성애에 대한 논란이 활발합니다. 특히 올해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막식을 진행하는 등 규모가 더 커졌기 때문에 반대 여론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태도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성품을 정면에서 반대하는 악한 행동이기 때문에 결코 교회가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명확하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자면, 동성애 지지자들은 자신들을 ’박해받는 소수’ 혹은 ’박해받는 평등주의자’로 포장하려고 하는데,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자극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동성애자들 뿐만 아니라 불교인, 무속인 등에 대해서도 기독교인들이 불필요한 모욕과 조롱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둠이 어둠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어둠이 물러가는 것은 빛이 들어와야만 합니다. 죄에 대해서 죄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모욕하지 말고 진리로 대응해야 합니다. 진리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자신을 박해받는 사람들로 포장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모습을 폭로하게 될 것입니다.

사유리씨의 트위터 명언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일본인 사유리씨의 트위터 명언입니다.

”현재 어려운 문제에 맞서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 내!’라고 말을 하기가 두렵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누구보다 힘을 내고 있으니까”

” 상대방이 나를 깔보거나 업신여길 때, 난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어떤 우월감을 갖고 있는 것은 동시에 어떤 열등감을 갖고 있는지 가르쳐 준다. 사람의 감추고 싶은 약점을 엿볼 수 있는 기회… 난 그 기회를 통해서 사람을 만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에 대해서 평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웃어 넘겨라.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다”

”시간이 지나면 헤어진 사람이 나에게 못해 준 것은 쉽게 잊어도 내가 그 사람 에게 못해 준 것은 마음에 남는다”

글쓰기 열풍

모바일 시대에 때아닌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얼마 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 길, 2015)이란 책을 낸 것을 신문에서 보고, 대학 시절에 유시민 씨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지금은 유시민 씨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저를 비롯한 대학생들이 그 책을 읽고 지적 충격을 받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글쓰기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넓혀주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글쓰는 사람 자신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집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자기 성찰을 위한 도구로 글쓰기를 강조했고, 글쓰기를 통해서 신앙과 지적 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국의 청교도 존 번연은 결혼 후 아내에게 글을 배울 정도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나중에 ’천로역정’이라는 위대한 신앙 서적을 썼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청교도들의 전통인 독서와 글쓰기를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으로라도 글쓰기를 시작해 봅시다.

부활절에 드리는 기도

이 성스러운 부활절에
저희들의 믿음이
부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당신의 뜻에 순종하는
그 마음이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권력과 부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정의와 사랑을 구현하는
그 힘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출처] 피천득·수필가, 1910-2007

아메리카노 같은 김남조 시인

사람 때문에 힘들면 기억나는 시인이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입니다. 사람을 사랑했다가 실망하고, 또 다시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 시인이야 말로 매우 좋은 조언자입니다.

저는 김남조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아메리카노 커피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메리카노의 구수한 향기, 밋밋 씁쓸 쌉사름한 맛은 오로지 원두와 바리스타의 감각으로 빚어집니다. 기교 없이 오묘한 김남조 시인의 ‘서시’를 보내드립니다.

 

서시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 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몸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출처] 김남조, ‘서시’ 전문

나만의 강점을 발견하는 10가지 방법

1. Notice what you enjoy
당신이 무엇을 즐기고 있는지 주목하라.
시간을 내서 살펴보고 적어보면 도움이 된다.

2. Ask trusted friends and family
믿을만한 친구와 가족에게 질문을 한다.
당신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생각치 못한 좋은 의견을 줄 수 있다.

3. What qualities do you like in yourself?
내 자신의 어떤 모습/특징을 너가 좋아하는가?
당신의 여러 모습 중 당신이 특히 좋아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다양한 일을 벌리기 좋아하는가? 아니면 책을 읽는 모습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음악듣는 자신을 좋아하는가?

4. What kind of work do you do and what makes you good at that work?
여태까지 해본 일 중에 어떤 구체적인 일을 특히 잘했던 것 같은가? (스스로에 대한 평가)

5. Take an online test
가능하면 시간을 내서 온라인 테스트를 받아 본다.

6. What leaves you feeling energized?
어떤 순간에 정말 열정적이 되는가?  뭔가 부족하고 잘 안된다는 기분에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하게 된 뭔가가 있었는가? 내가 인내심과 뚝심을 가지고 해낸 뭔가가 있는가?

7. What makes you proud?
어떤 순간에 정말 자랑스러운가?

8. Who are your role models? What strengths do you admire in them?
당신이 정말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는가? 그 사람의 어떤 강점을 진정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가?

9. What feedback do you notice from people in day-to-day life?
사람들이 주는 피드백 중에 어떤 피드백/의견이 정말 와닿는가?

10. Which strengths resonate with you?
다른 사람의 강점, 모습 중에 가장 와닿는 것이 무엇인가?

 

[출처]
인용 : 빙글_10가지 방법 / 원본 : 라이프핵_10가지 방법

믿음이 아닌 것 – 긍정적 사고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심해지는 것을 봅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과도한 투자를 한 교인과 교회들은 큰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할 수 있다” 혹은 “하면 된다”는 ‘긍정적 사고’가 믿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어려운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은 잘못을 바로 잡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가 잘못을 바로잡고 실수를 인정하면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큰 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실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긍정적 사고’가 곧 ‘믿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긍정적 사고’가 믿음이라면 경제 성장기 뿐만 아니라 지금같은 경제 침체기에도 여전히 유효해야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서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과감하게 모험을 한 개인이나 교회가 더 큰 어려움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긍정적 사고’로 성공한 사람은 그 생각을 주장한 사람 뿐이고, 그 생각을 따라한 사람들은 대부분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을 바르게 알아서 손해를 보는 일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뽑은 단어 50

우리는 익숙한 것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하지요.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낮설게 하기’ 연습이 필요합니다.

다음 단어의 재정의가 ‘낮설게 하기’를 도와줄 것입니다.

 

가족 : 자세히 보면 한 사람
사랑 : 신이 만들고 사용법을 알려 주지 않은
나 : 이별할 수 없는 사람
엄마 :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들고 있는 여자
꿈 : 만병통치약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약
행복 : ‘크게 나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순간
친구 : 전생엔 부부, 다음 생엔 나
사람 : 책을 쓰는 이유
믿음 : 믿다 보면 생기는 것
우리 : 외로움의 반대
열정 : 태양도 졌다고 말했다는
너 : 세상 모든 나의 존재 이유
도전 : 세상 모든 챔피언이 어제 한 일
지금 : 평생 저축만 하는 바보들이 놓치고 사는 것
희망 : 고생,고통,고민을 우습게 보는 것
돈 : 좋아할 수는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는  그대
건강 : 호들갑 떨어 봤자 다 거기서 거기
자유 : 욕심을 던져 버리면 손에 남는 것
이름 : 짓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사용하느냐
추억 : 기억의 재구성
감사 : 고래는 물론 새우도 춤추게 하는 것
밥 : 밥이라고 쓰고 힘이라고 읽는 한 글자
아버지 : 끝까지 아빠라 부르고 싶었던 사람
여유 : 지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는 유일한 방법
웃음 : 1초 만에 인생을 바꾸는 법
실패 : 아픔49%, 기회51%
재미 : 인생철학이 되기에 충분한 두 글자
생각 : 문제 하나를 푸는 칠백 가지 방법
시작 : 완벽한 준비를 외치는 사람은 평생 할  수 없는 것
책 : 나무로 돌아가라고 하지 마세요
마음 : 열기도 힘들지만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도 힘든 문
여행 : 인생에 드라마를 입히는 일
변화 : 글자 하나 닮지 않은 어제,오늘,내일
다름 : 틀림없이 틀림과는 다른 말
배움 : 버려진 돌멩이에게도 고개를 숙이는 자세
만남 : ‘당신 더하기 나’라는 아주 어려운 수학
일 : 내가 살아있다는 아주 확실한 증거
다시 :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인생의 도돌이표
오늘 : 쓰지 않아도 저절로 줄어드는 것
왜 : 생각의 시작,관찰의 시작,발견의 시작
보통 :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히 행복한 상태
휴식 : 휴식의 정의를 내리지 않고 쉬는 것
매력 : 누구에게나 있는 것, 찾으면 있는 것
길 : 처음엔 그 이름이 숲이었고 산이었던 곳
술 : 가슴속에 내리는 비
그러나 : 다들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굳은살 : 땀과 눈물이 수없이 지나간 자리
스무 살 : 간섭 끝, 인생 시작
자식 :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
그냥 : 이유 없음이라는 가장 큰 이유

 

[출처] http://www.vingle.net/posts/666834-★-사람들이-뽑은-단어-50-★

‘미생’의 명대사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를 골라보았습니다.

“언제나 그랬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기원에 가는 길에도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무리 빨리 이 새벽을 맞아도 어김없이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들이 아직 꿈 속을 헤맬거라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남자가 넥타이는 맬 줄 알아야지. 어른이 되는 건 ‘나 어른이요’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야. 꼭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꼭 할 수 있어야지!”

“넥타이, 검소하지만 항상 깨끗한 구두, 구멍 늘어나지 않은 벨트. 네 아버지 철칙이셨다.”

“네가 이루고 싶은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느린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위험한 곳을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강렬한 곳을 외면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

송년시

2014년을 보내면서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읽어봅니다.

 

송년시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 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목숨까지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주는 것은 빼앗는 것보다 힘들다

대강절 마지막 주간에 안도현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준다는 것

안도현

이 지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빈 손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동안은
나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대 손등 위에 처음으로
떨리는 내 손을 포개어 얹은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준다는 것
그것은 빼앗는 것보다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이 지상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
그것은
세상 전체를 소유하는 것보다
부끄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대여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누구에게 준 넉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