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같은 김남조 시인

사람 때문에 힘들면 기억나는 시인이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입니다. 사람을 사랑했다가 실망하고, 또 다시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 시인이야 말로 매우 좋은 조언자입니다.

저는 김남조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아메리카노 커피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메리카노의 구수한 향기, 밋밋 씁쓸 쌉사름한 맛은 오로지 원두와 바리스타의 감각으로 빚어집니다. 기교 없이 오묘한 김남조 시인의 ‘서시’를 보내드립니다.

 

서시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 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몸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출처] 김남조, ‘서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