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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지난 시간에 노아가 홍수 심판에서 구원 받은 이유를 노아가 의로웠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창세기 7:1을 보면, 그 사실이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노아가 의로웠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방주를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게 먼저고 방주를 지은 게 나중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의’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의’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알아보겠습니다.
‘의’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구원’이란 것을 어떻게 받게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복잡한 이론을 알아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걸 정리해 주려는 것입니다.
인간이 왜 지옥에 가야할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인간답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다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인간답지 못합니다. 예들 들어보겠습니다. 강아지가 집안에 비싼 도자기를 깨뜨렸다고 해서 강아지답지 못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원숭이가 양복을 입고 사람 흉내를 낸다고 해서 원숭이답지 못한 게 아닙니다. 고양이가 소파를 할퀴어 놓았다고 해서 고양이답지 못다하고 말할 사람 없습니다. 강아지든 무슨 짓을 해도 강아지답고, 원숭이도, 고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람만 사람답지 못하다고 합니다.
제가 만나서 상담한 많은 사람이 왜 괴로워했느냐면, 인간 관계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상대방이 자기한테 잘못했다는 겁니다. 연애로 고민하는 사람은 나는 그 사람한테 잘해주었는데 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직장 인간 관계로 고민하는 사람은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 상사가 안 알아준다고 합니다, 혹은 상사가 나를 괴롭힌다고 합니다. 친구 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잘해주었는데 보답하지 않는다, 배신했다 이런 문제로 고민합니다. 여기서 생각할 점은 이겁니다. 사람들이 상대방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거죠. 상대방이 당연히 이렇게 해야하는데 안해서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있습니까?” 그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바로 ‘의’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은 모두 예외없이 상대방이 ‘의’가 없기 때문에 상처받았습니다. 그들은 ‘의’가 없는 사람을 분노하고 저주합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사람에게 잘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험담을 하고 잘해준 건 비웃었다고 해 보세요. 어떤 감정이 들겠습니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왜 인간에게만 인간답다는 기준이 있냐는 겁니다.
인간이 그냥 동물의 하나라면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건 인간다운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린대로 강아지가 원숭이가 고양이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건 그 동물다운 행동이라니까요. 인간도 어떤 행동을 하든 인간다운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만 인간답지 못하다는 말을 합니다. 인간만 인간답다는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할 때, 인간은 분노합니다. 그 인간답지 못한 인간을 벌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성경적으로 표현한 것이 로마서 1:18입니다.
로마서 1:18
1: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에 대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지옥에 가야 하냐면, 의롭지 않으니까. 다르게 말하면, 인간이 인간답지 못해서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걸 성경에만 있는 먼 이야기로 생각하지 마시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 현실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배신, 사기, 뒤통수 치는 것, 이유 없는 험담 이런 게 ‘불의’고 이렇게 불의한 사람은 혼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한 가지 더 나옵니다. 뭐냐면, 인간이 지옥에 가는 이유를 ‘불의’ 때문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에 대해서 나타난다는 건 불의한 자가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지옥에 하는 이유가 죄 때문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여기서 우리는 ‘죄’가 곧 ‘불의’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와 ‘불의’는 같은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죄라고 하면 도둑질, 사기, 살인 같은 범죄를 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흉악한 범죄도 죄지만, 죄는 더 크고 적극적인 개념입니다. 도둑질, 사기, 살인을 안해도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그게 죄입니다.
나쁜 짓을 안해도 아버지, 어머니가 아버지, 어머니 노릇을 못하면 죄입니다. 자식이 자식 노릇을 못하면 죄입니다. 친구가 애인이 사장이 직원이 다 마찬가지로 자기 해야 할 당연한 일을 안하면 불의이고 죄란 말입니다. 인간에게만 인간답다는 기준이 있는데, 그 인간답다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화가나고 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로마서를 이해하려면 이 불의가 곧 죄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 구원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의가 있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다 불의합니다.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는가? 먼저, 자기 스스로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다른 사람이 불의하다는 사실은 잘 아는데, 자기가 불의하다는 건 모른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눈이 멀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죄의 각성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자기가 죄인이라고 깨닫는 걸 자기가 범죄자라고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각성은 세상 용어로 표현하면, 자기객관화입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열리는 것이죠. 자기가 죄인이라는 깨달음은 자기가 흉악 범죄자라는 깨달음이 아닙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자기가 불의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이걸 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로마서 2:1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죄의 각성 즉, 자기객관화가 되면 자기가 불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불의에는 심판이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구원을 받으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의로워져야 하는데, 얼마나 의로워져야 하는가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 기준이 율법입니다.
율법은 의의 기준을 제시해줍니다. 그런데, 율법을 잘 이해한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자기객관화가 되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의로워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이 과정을 설명한 것이
로마서 3:20-22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또다른 주제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주제로 돌아와서 구원의 작동 과정은 첫째, 의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에게 의가 없다는 죄의 각성. 둘째, 자기 힘으로 의를 얻으려다가 안되는 절망.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를 얻을 수 있다는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체험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성경적인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이 과정을 거치고 자기 체험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이 설명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구원의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죄의 각성의 단계, 즉 자기객관화의 단계입니다. 죄의 각성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지만, 자기객관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은 산상수훈의 요약인 팔복의 구절을 보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6, 10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요절 1. 창 7:1
7: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