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회심 4 자신의 요약 1-8항

  1. In this refined way of trusting to my own works, and my own righteousness, (so zealously inculcated by the mystic writers,) I dragged on heavily, finding no comfort or heal therein till the time of my leaving England. on shipboard, however, I was again active in outward works; where it pleased God, of his free mercy, to give me twenty-six of the Moravian brethren for companions, who endeavored to show me a more excellent way. But I understood it not at first. I was too learned and too wise: so that it seemed foolishness unto me. And I continued preaching and following after and trusting in that righteousness whereby no flesh can be justified.

 

(신비주의 작가들에 의해서 아주 열정적으로 가르쳐 지고 있는) 그런 정교한 방식으로 나의 행위를 의지하면서 그리고 나의 의를 의지하면서 나는 무거운 발을 질질 끌면서 아무런 위로나 치료책을 발견하지 못한 채 아메리카를 향해서 떠났다. 하지만, 그곳을 향해 가는 선상에서 다시금 나는 외적 선행들을 열심으로 행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자비하신 은총으로 기뻐하시길 나에게 26명의 모라비안형제들과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나에게 그들은 더욱 훌륭한 길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처음엔 그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는 너무 많이 알고 있었고 또한 너무 지혜로왔다: 그들의 조언은 나에게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어떤 육체도 의롭게 할 수 없는 그런 의를 설교하면서 그 의를 추구했고 또한 신뢰하였던 것이다.

  1. All the time I was at Savannah I was thus beating the air. Being ignorant of the righteousness of Christ, which by a living faith in him bringeth salvation “to every one that believeth,” I sought to establish my own righteousness, and so labored in the fire all my days. I was not properly under the law; I knew that the law of God was spiritual; I consented to it, that it was good. Yea, I delighted in it, after the inner man. Yet was I carnal, sold under sin. Every day was I constrained to cry out, “What I do, I allow not; for what I would, I do not; but what I hate, that I do. To will is indeed present with me; but how to perform that which is good, I find not. For the good which I would, I do not; but the evil which I would not, that I do. I find a law, that when I would do good, evil is present with me; even the law in my members, warring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still bringing me into captivity to the law of sin.”

 

사반나에 있는 동안 나는 그래서 계속 허공을 헛되이 치고 있었다. 살아있는 진짜 믿음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나는 나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썼고 종일토록 불구덩이 속에서 일하였다. 나는 적합하게 율법 아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율법이 영적인 것인 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선한 것인 줄을 동의하였다. 속사람을 따라서는 그것을 즐거워하였었다. 하지만, 나는 죄 아래 팔린 육적인 사람이었다. 매일 나는, “내가 행하는 그것을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행함이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원하는 것은 분명히 내 안에 있도다; 하지만,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하여야 하느냐 그것을 알 수 없구나. 내가 행해야 할 선은 행하지 아니하면서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악을 내가 행하고 있도다. 참으로 내가 한 법을 발견하였는데,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역시 내 안에 악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싸우는 나의 지체의 법이 죄의 법 아래로 나를 계속해서 사로잡아가고 있구나”라고 탄식하였던 것이다.

 

 

  1. In this vile, abject state of bondage to sin I was indeed fighting continually, but not conquering. Before, I had willingly served sin; now, it was unwillingly; but still I served it. I fell and rose, and fell again. Sometimes I was overcome, and in heaviness; sometimes I overcame, and was in joy. For as in the former state I had some foretastes of the terrors of the law, so had I in this, of the comforts of the gospel. During this whole struggle between nature and grace (which had now continued above ten years) I had many remarkable returns to prayer, especially when I was in trouble. I had many sensible comforts, which are indeed no other than short anticipations of the life of faith. But I was still under the law, not under grace: the state most who are called Christians are content to live and die in. For I was only striving with, not freed from sin; neither had I the witness of the Spirit with my spirit, and indeed could not, for I sought it not by faith, but (as it were) by the works of the law.

 

이런 사악하고 비참한 죄의 노예된 상태에서 나는 물론 계속 힘써 싸웠다. 그렇지만 승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전에는 죄를 즐거워하면서 섬겼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원치 않으면서도 섬겼다. 넘어졌다 일어섰는가 하면 또 넘어졌다. 때로는 무거움으로 압도당했다; 때로는 기쁨 가운데서 내가 이겼다. 이전 상태에서처럼 율법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를 얼마 맛보기도 했었는데, 이런 기쁨 속에서는 복음의 위로를 맛보기도 하였었다. 자연과 은혜 사이에서 진행되었던 이런 모든 투쟁의 기간 동안(거의 10여년간 진행되어 왔다) 나는 특별히 곤란을 당하는 경우에 여러 번 기도의 특별한 경험들을 하였다. 상당한 정도의 위로를 누리기도 했었고, 이런 것은 물론 신앙생활을 예기케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을 누렸다고 하더라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율법 아래 있었다. 은혜 아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어지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만족한 채로 살며 또한 죽고자 하는 그런 상태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힘써 추구하고 있었을 뿐이지, 죄에서 해방된 것도, 나의 영과 더불어 성령의 증거를 가진 것도, 또한 가질 수도 없었다. 내가 추구한 것은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 그러했던 것이다.

 

  1. 11. In my return to England, January, 1738, being in imminent danger of death, and very uneasy on that account, I was strongly convinced that the cause of that uneasiness was unbelief, and that the gaining a true, living faith was the one thing needful for me. But still I fixed not this faith on its right object: I meant only faith in God, not faith in or through Christ. Again, I knew not that I was wholly void of this faith; but only thought I had not enough of it. So that when Peter Bohler, whom God prepared for me as soon as I came to London, affirmed of true faith in Christ, (which is but one,) that it had those two fruits inseparably attending it, “dominion over sin, and constant peace from a sense of forgiveness,” I was quite amazed, and looked upon it as a new gospel. If this was so, it was clear I had not faith. But I was not willing to be convinced of this. Therefore I disputed with all my might, and labored to prove that faith might be where these were not; especially where the sense of forgiveness was not: for all the scriptures relating to this, I had been long since taught to construe away, and to call all Presbyterians who spoke otherwise. Besides, I well saw no one could (in the nature of things) have such a sense of forgiveness, and not feel it. But I felt it not. If then there was no faith without this, all my pretensions to faith dropped at once.

 

영국으로 돌아온 1738년 1월, 사경 속에서 그리고 그때 겪었던 일에 심기가 불편한 채로 바로 그런 불편함이란 불신앙이라는 것, 그리고 참되고 살아있는 신앙을 얻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참으로 필요로 하는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믿음의 올바른 대상에 고정시키지 못하였다. 단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졌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믿는 그런 신앙을 가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이런 신앙이 전적으로 결핍되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단지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내가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해 두셨던 피터 뵐러가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이란 두 가지 열매 곧 “죄의 지배와 죄용서함 받은 것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지속적인 평화”의 이 두가지가 분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상당히 놀랬고 그것을 새로운 복음이라고 간주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믿음이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에 대해서 확신하고 싶지가 않았었다. 그러므로, 모든 힘을 다해서 그것에 대해서 반대했고 이런 확신이 없어도 신앙이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애썼었다; 특별히 죄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했었다:지금까지 무시하도록 가르침 받았던 성경구절들을 이것과 관계시켜보려고 하면서 다르게 설명하는 모든 장로교인들의 의견들을 참고하였다[역주: 아, 그가 이 참된 회심을 알고 있었던 장로교인들을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었더라면….그 당시에는 영국국교이든, 장로교인이든, 침례교회이든 영국의 영적 상태가 무척이나 침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참된 회심에 대한 관심이 무척 저하되어 있어서, 여기서 웨슬레가 말하고 있는 참된 회심에 대한 무지가 장로교회교인들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어느 누구도 이런 용서함 받은 느낌을 가질 수 없고 또한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내가 느꼈던 것이다. 이런 용서함의 느낌이 없으면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할 때 내가 믿음이 있노라고 했던 그 모든 것은 당장 잘못된 것이 되는 것이다.

 

  1. When I met Peter Bohler again, he consented to put the dispute upon the issue which I desired, viz., Scripture and experience. I first consulted the Scripture. But when I set aside the glosses of men, and simply considered the words of God, comparing them together, endeavoring to illustrate the obscure by the plainer passages, I found they all made against me, and was forced to retreat to my last hold, “that experience would never agree with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those scriptures. Nor could I, therefore, allow it to be true till I found some living witnesses of it.” He replied, “He could show me such at any time; if I desired it, the next day.” And accordingly the next day he came with three others, all of whom testified of their own personal experience that a true living faith in Christ is inseparable from a sense of pardon for all past, and freedom from all present sins. They added with one mouth, that this faith was the gift, the free gift of God, and that he would surely bestow it upon every soul who earnestly and perseveringly sought it. I was not thoroughly convinced, and by the grace of God I resolved to seek it unto the end: — 1. By absolutely renouncing all dependence, in whole or in part, upon my own works or righteousness, on which I had really grounded my hope of salvation, though I knew it not, from my youth up. 2. By adding to the constant use of all the other means of grace continual prayer for this very thing — justifying, saving faith; a full reliance on the blood of Christ shed for me; a trust in him as my Christ, as my sole justification, sanctification, and redemption.

 

피터 뵐러를 만났을 때, 그는 내가 토론하고 싶어했던 주제, 곧 성경과 체험의 관계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나는 먼저 성경을 상고하였다. 하지만, 신학적인 용어들을 제껴두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서로를 비교하면서 애매모호한 부분들을 더 쉬운 구절들을 따라서 이해하려고 애를 쓰게 되었을 때, 그 모든 구절들이 바로 나 자신을 공박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나의 마지막 보루에 기대었었다. 그 보루란, “체험이란 이 성경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과는 결코 일치 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생생하게 체험하기 까지는 그런 구절들을 참된 것이라고 믿을 수 없노라는 것”이었다. 그는 답변하기를, “내가 그것을 어느 때라도 보여 줄 수도 있는데, 내일이라도 원하기만 하면, 그렇게 하겠노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음 날 그는 세명의 동료들을 데리고 와서는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믿음이 지난 모든 죄들을 용서해 주셨다는 느낌, 그리고 현재의 모든 죄들로부터 자유하다는 것과 불가분리하다는 것을 간증하였다. 그들 모두는 한결같이 첨가하기를, 이런 신앙은 선물, 곧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며 진정으로 그것을 구하고 끝까지 추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철저하게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 1. 부분적으로건 전적으로건 나 자신의 행위나 의에 의지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젊은 시절부터 내 구원을 이루려고 했던 모든 것을 전적으로 포기함으로. 2. 모든 다른 은혜의 수단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일, 의롭게 하는, 구원케 하는 믿음을 얻기 위해서 계속 기도함으로써 그것을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바로 나를 위해서 흘려주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 분을 나의 그리스도로, 나의 영혼의 의로우심, 거룩하심, 그리고 구속으로 신뢰하는 것이었다.

 

  1. I continued thus to seek it (though with strange indifference, dullness, and coldness, and unusually frequent relapses into sin) till Wednesday, May 24th. I think it was about five this morning that I opened my Testament on those words: [note: here follows a line of Greek] “There are given unto us exceeding great and precious promises, even that ye should b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2 Pet. i, 4. Just as I went out, I opened it again on those words: “Thou art not far from the kingdom of God.” In the afternoon I was asked to go to St. Paul’s. The anthem was, “Out of the deep have I called unto thee, O Lord: Lord, hear my voice. O let thine ears consider well the voice of my complaint. If thou, Lord, wilt be extreme to mark what is done amiss, O Lord, who may abide it? But there is mercy with thee; therefore thou shalt be feared. O Israel, trust in the Lord: for with the Lord there is mercy, and with him is plenteous redemption. And he shall redeem Israel from all his sins.”

 

그래서 나는 (이상하게도 무관심에 빠지고 지겹고, 냉냉하고, 또한 자주 죄로 떨어지기도 하였지만) 계속 5월 24일 수요일까지 그것을 구해 왔었다. 그날 아침 5시경으로 생각한다. 성경책을 열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었다:[주,여기에 헬라어로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려 하셨으니”. 집밖으로 나가자 마자, 성경을 다시 펴서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라는 말씀을 읽었다. 오후에 세인트 폴 성당에 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곳에서 불렀던 찬송가의 가사내용은 이렇다: “깊음 속에서 주를 내가 불렀나이다: 주여, 나의 기도에 응답하소서. 귀를 기울이사 나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만약 주께서 인생의 실수를 기억하신다면 누가 주 앞에서 견딜 수가 있겠나이까? 하오나 주께는 자비가 있사오니; 주께서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이스라엘아, 주만 신뢰하라: 주에게 자비하심이 있고, 그에게 구속이 넘치는도다. 또한 주께서 그 모든 죄악들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리로다”

 

  1. In the evening I went very unwillingly to a society in Aldersgate-street, where one was reading Luther’s preface to the Epistle to the Romans. About a quarter before nine, while he was describing the change which God works in the heart through faith in Christ, 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I felt I did trust in Christ, Christ alone, for salvation; and an assurance was given me that he had taken away my sins, even mine, and saved m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저녁에 나는 알더스게이트거리에 있는 한 모임에 억지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마음 속에 역사하시는 변화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부분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모두 처분해 주셨다는 확신이 주어졌다. 내 같은 사람의 죄조차도 말이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율법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확신이 주어졌다.

 

  1. 15. I began to pray with all my might for those who had in a more especial manner despitefully used me and persecuted me. I then testified openly to all there what I now first felt in my heart. But it was not long before the enemy suggested, “This cannot be faith; for where is thy joy?” Then was I taught that peace and victory over sin are essential to faith in the Captain of our salvation; but that, as to the transports of joy that usually attend the beginning of it, especially in those who have mourned deeply, God sometimes giveth, sometimes withholdeth them, according to the counsels of his own will.

 

나는 전심으로 특별하게 나를 기만적으로 이용해 먹었던 사람들, 나를 그렇게 핍박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 마음 속에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간증하였다. 하지만, 곧 이어서 나의 적이 암시를 주었다. “이것은 믿음일 수 없어; 어디에 기쁨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평화와 죄에 대한 승리는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 되시는 분을 믿는 믿음에 본질적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 구원의 시작에 보통 동반되는 황홀한 기쁨은 깊이 탄식하는 자들 속에서 일어나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뜻하신 바를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 주시기도 하고 또한 거두시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 16. After my return home, I was much buffeted with temptations; but cried out, and they fled away. They returned again and again. I as often lifted up my eyes, and he sent me help from his holy place. And herein I found the difference between this and my former state chiefly consisted. I was striving, yea, fighting with all my might under the law, as well as under grace; but then I was sometimes, if not often, conquered: now I was always conqueror.

 

집으로 돌아와서는 여러가지 유혹들에 지쳐버렸다; 하지만, 크게 외쳤을 때 그것들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유혹은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눈을 들어서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그 거룩하신 곳으로부터 도우심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이런 것과 이전의 상태 사이에 있었던 차잇점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예, 나의 모든 힘을 다해서 씨름하였는데 은혜 아래에서건 율법 아래에서건 그렇게 싸웠던 것이다; 그 때때로(sometimes), 자주(often)는 아니라 하더라도, 정복당하였었다: 이제는 언제나(always) 정복자였다[역주, 이 부분은 웨슬레의 회심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분분한 의견들이 있는 곳인데, 과연 그가 이 ‘알더스게이트 체험’ 이후에 ‘언제나 정복자였다’는 말이 어떤 의미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깊은 분석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그의 모든 ‘마음’ 속에서 아무런 ‘죄의 유혹조차’ 없었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죄의 유혹은 있었는데, 그 유혹에 ‘마음’으로라도 한 번도 넘어간 적이 없었다는 의미인가? ‘마음’으로는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는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지금까지 웨슬레가 추구해 온 것인 ‘내적 거룩함’이었기 때문에, ‘마음으로라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해석이 지지를 받는데, 과연 그러한가, 또는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에 남게 된다. 웨슬리 자신이 비록 ‘완전론’을 주장하였지만, 자기 자신이 완전히 무흠한 상태, 죄없는 상태로 있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는 것을 참고해서 이 구절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1. Thursday, May 25th. — The moment I awaked, “Jesus, Master,” was in my heart and in my mouth; and I found all my strength lay in keeping my eye fixed upon him, and my soul waiting on him continually. Being again at St. Paul’s in the afternoon, I could taste the good word of God in the anthem, which began, “My song shall be always of the loving kindness of the Lord: with my mouth will I ever be showing forth thy truth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Yet the enemy injected a fear, “If thou dost believe, why is there not a more sensible change?” I answered, (yet not I,) “That I know not. But this I know, I have now peace with God. And I sin not to-day, and Jesus my Master has forbid me to take thought for the morrow.”

 

5월 25일, 목요일, 눈을 뜬 순간, 주인되시는 예수님께서 나의 마음 속에 그리고 나의 입술에 계셨다; 그리고 모든 힘을 다해서 나의 눈을 그 분에게 고정시키고 있고, 나의 영혼은 계속해서 그 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후에 다시 세인트 폴 성당에 가서 부르게 된 찬송에서 하나님 말씀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언제나 주의 사랑에 풍성하신 친절을 노래하겠네:입술을 열어서 주의 진리를 영원히 전하겠노라.” 하지만 원수가 다시 두려움을 집어넣었다. “진짜로 네가 그렇게 믿는다면,왜 더욱 느낄 만한 변화가 없단 말인가?” 내가 대답했다,( 아니 답변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난 이제 하나님과 더불어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나는 죄를 짓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주인되시는 예수께서 내일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금하시고 있어.”

 

  1. “But is not any sort of fear,” continued the tempter, “a proof that thou dost not believe?” I desired my Master to answer for me, and opened his book upon those words of St. Paul: “Without were fightings, within were fears.” Then, inferred I, well may fears be within me; but I must go on, and tread them under my feet.

 

“하지만,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유혹자가 계속해서 소곤거렸다, “…네가 참으로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게 아니니?” 나의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답변해 주시길 원했다. 그 분의 책을 열어서 사도바울의 이런 말씀을 발견하였다. “밖으로는 싸움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고후7:5). 이 말을 읽고는 생각하였다. 흠, 내 안에 비록 두려움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계속 나아가야지, 그 두려움을 내 발 밑에 밟아 문대버려야지.

[출처] http://blog.daum.net/londonhorace/9269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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