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회심 3 자신의 요약 1-7항

Mr. Wesley’s Conversion

 

 

웨슬리의 회심

 

http://www.gbod.org/worship/default.asp?act=reader&item_id=5951&loc_id=639,624

 

 

아래의 글은 웨슬리의 회심사건 백주년을 기념해서 The Methodist Magazine and Quarterly Review (Volume XX.New Series, Vol.IX,1838,New York: T.Mason and G.Lane, p.321-326)지에 실린 그의 일기장의 한 부분을 인용한 것인데, 실상은 자신의 회심사건을 회상하면서 좀 더 보충하고 확대설명하고 있습니다. 웨슬리 자신이 직접 자신의 회심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그의 회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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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Monday, Tuesday, and Wednesday I had continual sorrow and heaviness in my heart; something of which I had described, in the broken manner I was able, in the following letter to a friend: —’ 월요일, 화요일, 그리고 수요일 나는 계속 슬펐고 마음이 무거웠다; 할 수 있는 한 퉁명스럽게 무언가를 나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나의 마음을 드러내었다:-

 

“O why is it, that so great, so wise, so holy a God will use such an instrument as me? Lord,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But wilt thou send the dead to raise the dead? Yea, thou sendest whom thou wilt send, and showest mercy by whom thou wilt show mercy! Amen! Be it then according to thy will! If thou speak the word, Judas shall cast out devils.

 

오 왜 위대하시고 지혜로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도구로 삼으시는 것일까! 주님,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소서!” 하지만 주님, 주님께서는 죽은 자를 일으키시기 위하여 죽은 자를 보내실까? 주님께서는 보내실 자를 보내실거야. 그리고 자비를 나타내실 자들에게 자비를 보여주실거야. 아멘! 그러면 오직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만 될지어다. 만약 주님께서 원하시기만 하셨다면 유다도 귀신들을 쫓아낼 것이니깐.

 

“I feel what you say, (though not enough,) for I am under the same condemnation. I see that the whole law of God is holy, just, and good. I know every thought, every temper of my soul, ought to bear God’s image and superscription. But how am I fallen from the glory of God! I feel that I am sold under sin. I know that I, too, deserve nothing but wrath, being full of all abominations; and having no good thing in me, to atone for them, or to remove the wrath of God. All my works, my righteousness, my prayers, need an atonement for themselves. So that my mouth is stopped. I have nothing to plead. God is holy; I am unholy. God is a consuming fire; I am altogether a sinner, meet to be consumed.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는 네가 말한 것을 느끼고 있단다. 왜냐하면 나도 너와 같은 저주의 상태에 떨어져 있기 때문이야. 하나님의 모든 율법은 거룩한 것이고 의롭고 또한 선한 것임을 알고 있어. 내 영혼의 모든 생각과 기질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계명을 드러내어야 하는 줄을 알고 있거든. 하지만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져 있는가! “나는 죄아래 팔렸다”고 느껴. 나도 또한 저주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어. 저주받을 것들로 넘치는데 그것들을 처리할 만한 것,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어떤 선한 것이 내 안에는 전혀 없단 말이야. 나의 모든 행위, 나의 의, 나의 기도는 그것들 자체가 하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야. 내 입술로는 할 말이 없어. 무엇도 탄원할 만한 것이 없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데, 나는 불결해. 하나님께서는 소멸하시는 불길이신데, 나는 전적으로 죄인이야, 소멸당하기에 딱 맞는 그런 죄인이란 말이야.

 

“Yet I hear a voice (and is it not the voice of God?) saying, Believe, and thou shalt be saved. He that believeth is passed from death unto life.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하지만 나는 한 목소리를 듣고 있어(이게 하나님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 소리는 나에게 말하기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O let no one deceive us by vain words, as if we had already obtained this faith! By its fruits we shall know. Do we already feel peace with God, and joy in the Holy Ghost? Does his Spirit bear witnes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the children of God? Alas! With mine he does not. Nor, I fear, with yours. O thou Saviour of men, save us from trusting in any thing but thee! Draw us after thee! Let us be emptied of ourselves, and then fill us with all peace and joy in believing, and let nothing separate us from thy love, in time or in eternity!”

 

헛된 말로 속임을 당하지 말자구나. 이런 믿음을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 열매로 우리가 안다고 하지 않니. 이미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화평’과 ‘성령 안에서 기뻐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는가? “그의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 영과 더불어 증거하고 있”는가? 어쩌나! 나의 영과 더불어 그 분이 증거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데. 염려가 되는 것은, 너의 영과 더불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쟎나. 인류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이시여, 우리들을 오직 당신만 신뢰할 수 있도록 구원하소서! 우리들을 주께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비우게 하시고 믿음 중에 평화와 기쁨으로 채워주소서,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도 주의 사랑에서 우리를 나눠지지 않게 하소서. 이 생에건 영원 속에서이건!

 

What occurred on Wednesday, the 24th, I think best to relate at large, after premising what may make it the better understood. Let him that cannot receive it ask the Father of lights that he would give more light to him and me.

 

바로 그 24일 수요일 저녁에 있었던 그 일을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일들을 설명한 뒤에야 설명해야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은 빛들의 아버지 되시는 분에게 구하길 바란다. 자신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더욱 많은 빛을 달라고.

 

  1. I believe, till I was about ten years old, I had not sinned away that “washing of the Holy Ghost” which was given me in baptism, having been strictly educated, and carefully taught that I could only be saved “by universal obedience, by keeping all the commandments of God;” in the of which I was diligently instructed. And those instructions, so far as they respected outward duties and sins, I gladly received and often thought of. But all that was said to me of inward obedience or holiness I neither understood nor remembered. So that I was, indeed, as ignorant of the true meaning of the law as I was of the gospel of Christ.

 

나는 열살 정도 되기까지 유아세례시에 베풀어졌던 ‘성령의 씻으심’을 전혀 더럽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엄격하게 교육받았고 오직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을 준행하는 모든 면에서의 복종으로 말미암는다”고 진지하게 가르침을 받았다. 외적인 의무들과 죄들에 관해서라면 그러한 가르침들을 나는 즐겁게 받아들였고 종종 묵상하곤 하였다. 하지만 나에게 마음으로부터의 복종이나 거룩에 관한 것은 내가 이해하지도 못했고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처럼 율법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도 무지했었다.

 

  1. 2. The next six or seven years were spent at school; where, outward restraints being removed, I was much more negligent than before, even of outward duties, and almost continually guilty of outward sins, which I knew to be such, though they were not scandalous in the eye of the world. However, I still read the Scriptures, and said my prayers, morning and evening. And what I now hoped to be saved by was, 1. Not being so bad as other people. 2. Having still a kindness for religion. And, 3. Reading the Bible, going to church, and saying my prayers.

 

그 이후 5,6년 동안은 학교생활을 했다; 외적인 규제가 제거되어진 학교생활에서는 외적인 의무들을 행하는 것에서조차도 이전보다 많이 게을러졌다. 그래서 거의 매일같이 외적인 죄들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졌다. 비록 그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문제될 것도 없었지만 내가 보기로는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성경을 읽기는 하였고 기도도 하였다.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그때 구원받기 위하여 바랬던 것은, 1.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사악하지 않는 것, 2. 종교에 대해서 관대할 것, 그리고 3. 성경을 읽고 교회를 다니고, 그리고 기도를 하는 것 등이었다.

 

  1. Being removed to the university, for five years, I still said my prayers, both in public and private, and read, with the Scriptures, several other books of religion, especially comments on the New Testament. Yet I had not all this while so much as a notion of inward holiness; nay, went on habitually and, for the most part, very contentedly, in some or other known sin; indeed, with some intermission and short struggles, especially before and after the holy communion, which I was obliged to receive thrice a year. I cannot well tell what I hoped to be saved by now, when I was continually sinning against that little light I had, unless by those transient fits of what many divines taught me to call “repentance.”

 

대학에 진학해서 5년 동안 여전히 나는 공적모임이나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곤 했다. 그리고 성경과 더불어서 다른 경건서적들을, 특별히 신약성경주석들을 읽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적인 거룩함의 개념 같은 것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아니, 습관적으로 행하였을 뿐 대부분 얼마간의 감추어진 죄나 드러난 죄조차도 제법 만족하면서 저지르기도 했다; 물론 때때로 특별히 성찬식을 갖기 이전이나 직후에 간단히나마 괴로워 하고 회개하기도 하였다. 일년에 세번씩 성찬식에 참여해야 했었다. 그 무럽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당시 나는 내 안에 있었던 아주 조그만 빛에 대항해서 계속 죄를 범하고 있었다. 수많은 경건한 분들이 나에게 “회개”라고 부르는 것을 가르쳐 준 그 순간적인 발작행동을 때때로 일으키면서.

 

  1. When I was about twenty-two, my father pressed me to enter into holy orders. At the same time the providence of God directing me to Kempis’s “Christian Pattern,” I began to see that true religion was seated in the heart, and that God’s law extended to all our thoughts, as well as words and actions. I was, however, very angry at Kempis for being too strict, though I read him only in Dean Stanhope’s translation. Yet I had frequently much sensible comfort in reading him, such as I was an utter stranger to before; and meeting likewise with a religious friend, which I never had until now, I began to alter the whole form of my conversation, and to set in earnest upon a new life. I set apart an hour or two a day for religious retirement. I communicated every week. I watched against all sin, whether in word or deed. I began to aim at, and pray for, inward holiness. So that now, “doing so much, and living so good a life,” I doubted not but I was a good Christian.

 

22살 무렵 부친께서 나를 수도원에 들어가도록 종용하셨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 섭리 중에 아 켐피스의 “Christian Pattern”이란 책을 읽게 하셔서, 참된 신앙이란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들의 말이나 행동만 아니라 우리들의 모든 생각에도 미치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 켐피스의 글을 나는 Dean Stanhope의 번역판으로 읽었을 뿐이면서도 나는 아 켐피스가 너무 엄격하다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그의 책을 읽으면서 자주 편안함을 맛보았다. 이전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신앙적인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이전에 없었던 일인데, 나는 이때부터 나의 생활들을 전면적으로 변경시켜 보려고 애쓰면서 새로운 삶을 진지하게 시작해 보려고 하였다. 하루에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을 신앙적인 훈련을 위해서 홀로 지내려고 하였다. 매 주일 성찬에 참여하였다. 말이나 행동의 어떤 죄도 짓지 않으려고 하였다. 내적인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 애쓰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행을 행하고 또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으로” 나는 좋은 그리스도인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1. Removing soon after to another college, I executed a resolution which I was before convinced was of the utmost importance, shaking off at once all my trifling acquaintance. I began to see more and more the value of time. I applied myself closer to study. I watched more carefully against actual sins. I advised others to be religious, according to that scheme of religion by which I modeled my own life. But meeting now with Mr. Law’s “Christian Perfection,” and “Serious Call,” (although I was much offended at many parts of both, yet) they convinced me more than ever of the exceeding height, and breadth, and depth of the law of God. The light flowed in so mightily upon my soul that every thing appeared in a new view. I cried to God for help, and resolved not to prolong the time of obeying him as I never had done before. And by my continued “endeavor to keep his whole law,” inward and outward, “to the utmost of my power,” I was persuaded that I should be accepted of him, and that I was even then in a state of salvation.

 

다른 대학으로 옮겼을 때 나는 시시껄렁한 친교들을 당장 끊어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확신이 되는 결심들을 실행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였다. 실제적인 죄들을 더욱 조심해서 경계하였다. 나 자신의 삶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그 신앙의 체계들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경건하게 살도록 조언하였다. 하지만 이제 윌리엄 로의 “Christian Perfection”과 “Serious Call”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하나님의 율법의 그 뛰어난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훨씬 더 확신하게 되었다. 내 영혼에 엄청나게 쏫아지는 빛 때문에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나는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하였고, 그 분에게 복종해야 할 것을 더 미루지 않으려고 결심하였다. 그 이전에 결코 그렇게 해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그 분의 모든 율법을 나의 모든 힘을 다해서 행하려고 힘쓰는 그것으로” 나는 그 분에게 분명히 받아들였음직하고 또한 그 당시에조차도 구원받은 상태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1. In 1730 I began visiting the prisons, assisting the poor and sick in town, and doing what other good I could, by my presence or my little fortune, to the bodies and souls of all men. To this end I abridged myself of all superfluities, and many that are called necessaries of life. I soon became a by-word for so doing, and I rejoiced that “my name was cast out as evil.” The next spring I began observing the Wednesday and Friday fasts, commonly observed in the ancient church, tasting no food till three in the afternoon. And now I knew not how to go any farther. I diligently strove against all sin. I omitted no sort of self-denial which I thought lawful; I carefully used, both in public and in private, all the means of grace at all opportunities. I omitted no occasion of doing good: I for that reason suffered evil. And all this I knew to be nothing, unless as it was directed toward inward holiness. Accordingly this, the image of God, was what I aimed at in all, by doing his will, not my own. Yet when, after continuing some years in this course, I apprehended myself to be near death, I could not find that all this gave me any comfort, or any assurance of acceptance with God. At this I was then not a little surprised, not imagining I had been all this time building on the sand, nor considering that “other foundation can no man lay than that which is laid by God, even Christ Jesus.”

 

1730년에 감옥방문을 시작했다. 읍내에 있는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돌보고, 모든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직접 찾아가거나 찾아갈 기회가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해서 좋은 일을 하였다. 이것을 위해서 나는 모든 사치품들을 제거하였고 필수품이라고 불려지는 많은 것들도 제거하였다. 나는 곧 그렇게 선행을 함으로써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름이 그렇게 놀림을 당하는 것”(my name was cast out as evil)을 기뻐하였다. 다음 해 봄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고대교회에서 행하여지던 거신데, 오후 세시까지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전진해야 할 지를 몰랐다. 모든 죄악들에 대해서 열심으로 싸웠다.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유형의 자기부정도 빠뜨리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활용될 수 있었던 은혜의 모든 방편들을 공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조심스럽게 활용하였다. 선한 일을 행할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았다: 그 이유 때문에 악한 일을 겪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이 내적인 거룩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선행들이 실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선행을 한 것은, 그 모든 일들 속에서 나의 뜻이 아니라 그 분의 뜻을 행함으로 인해서 내가 목적하였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몇 년을 지내는 동안 나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이 모든 것이 어떤 위안을 줄 수 있는 것도 혹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어떤 확신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닫지 못했다. 내가 모래 위에 성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였고 어떤 인간으로도 놓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놓으시는 기초 곧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지 못하였다는 것은 그렇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1. Soon after, a contemplative man convinced me, still more than I was convinced before, that outward works are nothing, being alone; and in several conversations instructed me how to pursue inward holiness, or a union of the soul with God. But even of his instructions, (though I then received them as the words of God,) I cannot but now observe, 1. That he spoke so incautiously against trusting in outward works, that he discouraged me from doing them at all. 2. That he recommended (as it were, to supply what was wanting in them) mental prayer and the like exercises, as the most effectual means of purifying the soul, and uniting it with God. Now these were, in truth, as much my own works as visiting the sick or clothing the naked; and the union with God thus pursued was as really my own righteousness as any I had before pursued under another name.

 

얼마 뒤에 어떤 생각이 깊으신 분이 내가 앞서 그 분을 만나기 전에 확신을 가졌던 것보다 더욱 확신을 갖게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외적인 행위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분은 나와 홀로 있을 때 그리고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서 내적인 거룩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혹은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은 (그 당시로서는 하나님의 말씀들로 받아들였지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1. 그는 외적인 행위들에 대해서 너무 부주의하게 말했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그것들 모두를 전혀 행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2. 그 분은 나에게 영혼을 정화시키며 하나님과 연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정신적인 기도와 같은 것들을 가르쳐 주셨는데(실은 그것들 안에 결핍되었던 것을 공급해 주기 위해서), 실상 이것들은 병자들을 방문하거나 벌거벗은 자들에게 옷을 입혀주었던 식의 내가 이전에 행하였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추구했던 하나님과의 연합이란 실제로는 내가 이전에 다른 방식으로 추구했었던 나의 의와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계속)

[출처] http://blog.daum.net/londonhorace/9269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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