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시

2014년을 보내면서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읽어봅니다.

 

송년시

이해인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 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어요

목숨까지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주는 것은 빼앗는 것보다 힘들다

대강절 마지막 주간에 안도현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준다는 것

안도현

이 지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빈 손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동안은
나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대 손등 위에 처음으로
떨리는 내 손을 포개어 얹은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준다는 것
그것은 빼앗는 것보다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이 지상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
그것은
세상 전체를 소유하는 것보다
부끄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대여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누구에게 준 넉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눈물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눈물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님들을 보며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슬픔이 한 방울 눈물에 모아져 또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보이는 듯 합니다.

이 시를 쓴 김현승 시인 또한 어린 아들을 잃고 나서 애통해 하던 중 어느 날 문득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극도의 슬픔 가운데서도 부활의 소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신자의 죽음은 ‘옥토에 떨어지는 생명’처럼 언제나 더 많은 생명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