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13:10~17

2018년 02월 25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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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한줄 요약]

복음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드러냅니다

[개요]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좇으면서 복음을 깊이 묵상하는 기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순절 두번째 주간에는 이사야서가 인용된 마태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0.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다 비싼 선물이다

오늘 본문은 복음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간절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사순절 묵상을 하고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이유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어떤 면에서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항상 문 앞까지만 가도 “어서 오십시오”하던 식당이 어느날 갑자기 “올테면 오고 말테면 말라”는 분위기로 바뀐 것 같은 느낌입니다.

“복음은 쉽다, 믿음은 단순하다, 구원은 공짜다”라는 말을 우리가 많이 듣는데, 반대의 말씀도 성경에는 많습니다. “복음은 어렵다, 믿음은 복잡하다, 구원은 비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실까요? 그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행위로 받을 수 없고,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런데, 정확하게 의미를 알고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행위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악하게 살다가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엄밀하게 얘기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아무하고나 결혼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면서요? 왜 사람 차별합니까?”라고 반발한다면 그 반발하는 사람이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닙니까? 평등하다는 말이 동등한 결혼 상대자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결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나 구원하시지는 않습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합당한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합당한 조건을 갖추도록 준비시키십니다.

“악하게 살다가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구원는 손쉽게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의 결혼하는 것은 원하기만 하면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속된 말로 ‘구원은 싸구려’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주보를 보십시오. 두란노에서 나온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다’라는 책에서 스캔한 그림입니다. 제가 주보에 싣고 있는 것도 이 책입니다.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싸구려 물건은 받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너무 값진 물건은 아무나 주지 않습니다. 신중하게 줄 사람을 선택하게 마련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주면 환경을 오염시키는 쓰레기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1. 10~12.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예수님이 비유로 진리를 가르치신 이유는 재미를 위한 목적도 있고, 보지 못하는 것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보는 것에 빗대어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미 설교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다시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복음의 소중함을 가르치려는 의도입니다. 비유는 잘 생각하면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싫어하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수동적이고 간절하지 않은 사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설명을 낯설어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려고 하시는 분이야. 그러니까 최대한 쉽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셨을 거야. 어렵게 생각 안해도 네네만 계속하면 구원받을 수 있게 말씀하시는 분이야”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전화로 보험 가입할 때, 형식적으로 설명을 듣고 ‘네, 네’만 해주면 큰 문제 없이 보험에 가입되는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복음을 전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다른 본문을 볼 것 없이 오늘 본문을 보면 됩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복음을 믿겠다고 하면 구원을 주시는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네, 네’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참된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참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 13~15. 보아도 보지 못하게(반어법)

우리가 두 번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싸구려’처럼 주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진정한 의미를 숨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복음에 대해서 잘 아는데요?”이렇게 반문하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드린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예수님은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죄에 대한 각성을 체험하셨습니까? 자신이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조금의 변명도 없이 인정하십니까?”

제가 한 질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유신론자에 불과합니다. 즉,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은 하나님이다” 정도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정도도 대단하지만 그 하나님과 확실하게 연결되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니라 살아 숨쉬고 개성과 인격을 가진 실체로서 영혼에 확실하게 조명됩니다. 그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나를 연결해 주는 것을 느낍니다. 단순히 유신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압니다.

3. 16~17. 너희는 복이 있다

반대로 복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똑똑하지 않고 재산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간절함과 열정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시면 그 의미를 알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예수님께 알려달라고 겸손하게 부탁합니다. 그들은 실수도 많이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감싸주셨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붙드셨고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왜 그들에게는 복이 있었을까요? 복음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지불한 댓가가 구원을 받기에 턱 없이 부족했지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정도가 되지 못했지만 구원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등가 교환이 아닙니다. 즉, 산 게 아닙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던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비싼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선한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해도 구원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를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 홀연히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변하지 않습니다.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을 닮고 예수님의 사역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의로운 삶입니다. 그래도 구원을 살 수는 없지만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주권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3:7~14]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결론]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비싼 선물입니다. 주면 받고 안주면 말겠다는 태도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애쓰는자, 즉,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비싼 선물을 주십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비싼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댓가를 치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마음과 시간과 에너지를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고난을 두려움 없이 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길 끝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너는 작을 지라도

미가 5:2

2018년 02월 18일 주일 설교

핵심 구절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한줄 요약

나는 미약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나와 관계를 맺은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나도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개요

사순절 첫번째 주일입니다. 영어로는 관사없이 ‘Lent’라고 합니다. 부활절 전 46일을 가리킵니다. 사순이면 40일인데 46일인 이유는 주일을 빼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빼는 이유는 주일에는 금식 혹은 고행을 중지하고 기쁘게 보내자는 취지입니다. 예전에는 사순절에 금식 혹은 고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주일만은 그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한편, 우리가 절기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절기를 지키는 것을 통해서 우리 신앙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신앙 습관을 형성하려는 의도입니다. 좋은 습관이 인생을 바꿔주듯이 좋은 신앙 습관도 인생을 바꿔줄 수 있습니다.

0. 자존심이 아니라 자경심

사회가 경쟁이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늘어나면서 심리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심리적인 처방을 내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 처방 중에 하나가 ‘자존심’ 혹은 ‘자존감’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자존감이 낮아서 우울증이 걸리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고 합니다.

김미경이라는 강사의 자존감 강연도 있었지만,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인생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됩니다. <자존감 수업>을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인용

‘자존감 수업’은 자존감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갑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나를 존중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명확하게 자존감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Self-esteem)’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존.감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어떻게 하면 끌어올릴 수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 남의 눈이 항상 두려운 사람, 감정싸움으로 쉽게 지치는 사람, 항상 공허함에 시달리는 사람 등

저자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자존감이 매우 낮은 사람이었다. 의과대학을 다닐 때 유급을 당한 적이 있다. 물론 낙방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학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한 적도 있고, 대학입시에도, 심지어 재수학원 입시에도 떨어졌다. 의과 대학 낙제는 그중에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인생의 경로 자체를 수정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밀려왔다. 그때 나는 매일 술을 마셨고, 담배와 게임에 빠져 지냈다. 후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 생각을 하니 암담했고, 스스로에게 창피해서 가족들도 피해 다녔다. 아침이 되면 친구들은 학교로 가고 나는 PC방으로 출근했다. 그곳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되면 몰래 귀가했다. 당구장에서 밤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포장 마차를 전전하다가 동이 틀 무렵 고양이처럼 들어오길 반복했다. - page 10 쪽

part7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다섯가지 실천

*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로 "결심하기"
* 자신을 사랑하기
*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기
* '지금, 여기' 에 집중하기
* 패배주의를 뚫고 전진하기

저자가 말하길,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어하는 이들은 여러 심리학책을 탐독하며 보편화(‘나만 이런게 아니었구나’), 죄책감 탈피(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수만은 요인을 알게된다), 지식화 (감정으로 느끼던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짐)의 과정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존감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존감’을 가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경심’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그 말 같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너는 작을지라도

자존감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경심은 자신을 존경하라는 말인데,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존경하라는 의미입니다.

내 아이가 소중한 이유는 가장 잘나서가 아닙니다. 내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은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자경심은 내가 아니라 나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장소를 예언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의 제사장, 서기관들이 오늘 본문을 인용해서 예수님이 베들레햄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내용이 있습니다.

베들레햄은 다윗 왕의 고향이었지만, 대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신약 시대까지 작은 도시로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은 이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기로 결정하셨고, 뿐만 아니라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랑하는 것들을 거부한다는 메시지말입니다.

사람들은 명문가 출신, 멋있는 외모, 좋은 학벌 등을 자랑합니다. 오늘날에는 자랑이 돌고돌아서 출신 가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금수저를 즉,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랑거리를 거부하셨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이루셨지만, 부가적인 자랑거리는 조금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태도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2. 갈릴리 사람이라 불릴 것이라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예수님 시대나 그 이전 시대에도 나사렛은 아주 보잘것없고 가치 없는 시골 중에 시골이었다. 요한복음 1장에 빌립과 나다나엘의 대화에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나사렛이 그만큼 가치 없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말이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만큼 경멸하고 낮추어 부른 것임을 알 수 있다.쉽게 말하면 ‘나사렛 예수’라는 말에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시골뜨기 예수’라는 뉘앙스가 숨어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한 번씩 ‘나사렛 예수’라고 표현한 것은 ‘너희들이 천히 여긴 시골뜨기 예수’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태복음 2장 23절 말씀 “…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에 따르면 구약 성경에 선지자가 나사렛 사람이라고 칭하리라고 기록된 곳이 있는 것인데, 그곳이 바로 이사야 11장 1절이다. 그런데 정작 이사야 11장 1절을 펴보면 ‘나사렛’이란 말이 전혀 나오지 않고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나온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사야 11장 1절 중에 ‘가지’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음으로 ‘네쩨르’라는 단어를 썼고, ‘나사렛’이라는 단어가 바로 ‘네쩨르’라고 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나사렛’이란 단어의 원단어가 ‘네쩨르’라는 ‘가지’에서 나왔기에 그 의미로 ‘나사렛 사람’이라고 칭한다고 번역했던 것이다. ‘네쩨르’는 번역하면 ‘뿌리에서 나온 아주 가늘고 볼품없는 연한 가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이 ‘네쩨르’의 모습으로 오셔서 ‘나사렛 예수’로 불리신 것은 예수님이 권력이나 부를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약속 그리고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셨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만약 예수님이 화려한 하늘 왕권을 가지고 강력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세상에 기댈 것 없고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가 얼마나 부담스러웠겠는가? 가까이 가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 모습으로 오셨다. 그렇기에 오히려 힘 있고 화려하고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가까이하거나 만나기 꺼려지는 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3. 영원으로 이어주는 예수님

예수님이 인간적인 자랑거리를 모조리 거부하신 이유는 인간의 참된 가치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잘났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지만, 진리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의 자존감은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은혜의 시작은 인간은 죄악 덩어리, 죄의 장아찌라는 것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은혜의 길에서는 자존감이라는 갈대 지팡이가 부러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서 있다가는 참된 은혜의 길에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가치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가치 있다는 생각은 모세의 지팡이와 같습니다. 결코 부러지지 않고 우리를 은혜의 길로 인도합니다. 자존감을 너머 영원한 나라로 말입니다.

결론

자존감은 근본적으로 자신에게서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을 존중하도록 권유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 처방이지 근원 치료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의 길을 갈때 방해가 되고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자경심은 우리 자신에게서 가지를 발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를 가치있게 합니다. 이것은 은혜의 길에 항상 동행하는 진리의 지팡이가 됩니다.

베들레햄아 너는 작을지라도. 그리스도로 인해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를 가치있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순례자여 그대 그리스도와 함께 누구이고 그리스도 없이 누구인가?

[사순절] 영원한 사랑의 언약

마태복음 26:17~26
[사순절] 영원한 사랑의 언약

2017년 04월 09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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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은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도입니다. 예수님의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1.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언약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슈퍼갑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2. 언약은 인격적인 관계의 시작이고, 아름다운 관계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3. 예수님의 언약은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영원한 언약에 들어갑시다.

2015년 3월 22일 주일설교

마태복음 21:10-11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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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마 21:4)

 

[한 줄 요약]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자 생각해보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개요]

  1. 예수님의 인격

나귀를 데려오는 사건에서 알수 있는 예수님의 성품
겸손과 능력

  1. 나귀를 타신 이유

말씀을 이루려 하심
초림 시에는 겸손, 재림 시에는 영광(계 19:11)

  1. 겸손의 능력
    최고의 겸손이 최고의 능력으로 이어짐(빌 2:8-9)

[결론] 십자가의 길이 참된 능력의 길이다

 

2015년 03월 15일 주일설교

마태복음 20:17-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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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7)

 

[한줄 요약]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자 생각해보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개요]

 

  1. 예수님과 제자들의 평행선
    예수님을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가르치심
    제자들은 성공과 번영을 생각함

 

  1. 예수님의 대답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

 

  1. 예수님을 아는 길
    섬김의 길을 가면서 예수님을 알게 됨

 

[결론] 섬김의 길이 성장하는 길이다.

재의 수요일

지난 설날 연휴가 시작되는 2월18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맞이하는 절기로 성탄절을 준비하는 ’대림절’과 함께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두 절기 중 하나입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은 항상 수요일이됩니다. 이 날을 ’재의 수요일’ 혹은 ’참회의 수요일’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재’가 성경에서는 참회와 회개, 유한성, 정화와 순수, 그리고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위한 밑거름 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의 수요일은 인간의 죄와 유한성, 인생의 무상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기억해 하나님의 용서와 도우심을 구하는 날입니다.

 

이렇게 ’재의 수요일’로 시작한 사순절은 예수님의 삶과 고난을 묵상하는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전통적으로 사순절 주제는 첫째 주에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유혹을 전통적으로 사순절 주제는 첫째 주에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유혹을 생각하고, 둘째 주는 죄를 물리치라는 명령을 생각합니다. 셋째 주는 회개로의 요청을 묵상하고, 넷째 주는 치유와 회심을 생각합니다. 넷째 주는 ‘장미 주일(Rose Sunday)’이라고도 불리는데, 주일의 강조점이 죄인의 회개에서 그리스도의 치유 능력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주일은 종려주일로 부활절을 미리 맛보는 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