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본문

요한일서 1:8~10 / 2018년 05월 06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핵심 구절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한줄 요약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개요

박진영이 구원파라는 방송이 나오면서 구원파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왜 구원파가 이단인지 알고 싶어하더군요. 이단에 대해서 잘 알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단을 연구한다고 해서 신앙이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위조 지폐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위조 지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위조 지폐가 나오기 때문에 다 연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효과적인 방법은 진짜 지폐를 확실하게 아는 것입니다. 진짜 지폐가 아닌 것을 위조 지폐로 판정하면 됩니다.그렇다고, 위조 지폐에 조금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위조 지폐를 알고 있으면 판별이 쉬워집니다. 마찬가지로, 이단에 대해서도 많이 알 필요는 없지만, 대표적인 이단에 대해서 조금 알면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구원파가 왜 이단인지 조금 설명드리고, 참된 기독교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겠습니다.

 1.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구원파가 이단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구원파 사람들이 정통 기독교인들을 만나면 사용하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구원받으셨습니까?” “예,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이어지는 질문이 “언제 어디서 구원받으셨습니까?”이다. 이에 대해 정확히 확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면 “죄송하지만 선생님은 구원받지 못하셨습니다.” 라고 말해준다. 자신이 육신적으로 태어난 날은 정확히 기억하여 매년 지키면서 어떻게 우리의 영생을 좌우할 영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사실일까? 구원받은 날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구원받은 날짜를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성경에는 그런 걸 주장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성경에 보면 바울이나 빌립보 감옥의 간수같이 극적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 그래서 구원받은 날짜와 장소를 정확히 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면에 디모데나 루디아같이 그런 극적인 경험이 없이 조용히 예수님 믿고 회심하고 구원받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원받았느냐를 아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와 있느냐 아니냐인 것입니다.

둘째, 구원받은 사람은 회개할 필요없다고 한다

한 번 회개하고 죄사함 받은 사람은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은 회개(metanoeo)와 자백(homologeo)을 구분한다. 회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을 때 단 한 번만 하는 것이고, 그 이후로는 일상적인 죄들에 대해 자백만 하면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할까요? 요한일서 9절을 근거로 듭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면 성경에 정말 회개는 한 번만 하면 되고 자백은 반복해서 하라고 되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위의 요한일서 9절을 검토해보면, 거기에서 말하는 “자백”은 사실 구원파가 주장하는 “회개”와 동일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이 모든 불의(adikia, 여성형 단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고 했는데, 이 “불의”는 의롭지 못한 개별행위들(복수)이 아니라 그런 행위들의 뿌리인 “불의”(단수)인 것이다. 이렇게 “자백”이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이건 구원파에서 말하는 “회개”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셋째,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한다

구원파가 주장하는 구원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실 때 인류의 모든 죄가 일시에 용서되었다. 이 용서는 우리가 회개를 하든 하지 않든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다 용서해주신 것이다. 그러면 구원파에서는 결과적으로 누가 구원을 받는가?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거듭나고 구원받는다.

구원파에서는 회개의 고된 투쟁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깨달음만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후 느끼는 비참함, 자신이 지옥에 가 마땅한 존재라는 전적인 승복,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관한 뜨거운 감사를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사람들이 구원파에 빠지는 이유는 쉽고 단순하고 죄책감을 제거한 구원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에 빠진 사람들은 죄책감이 없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얼핏 들으면 정통 교회와 비슷한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칭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justification)를 철저히 오해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가 필요하고 이 “의”는 우리의 선한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이 칭의의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구원파는 이 칭의의 교리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이해합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의가 주어질 때 우리 속에 있는 “죄덩어리”가 단번에 완전히 없어져서 이제부터는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칭의가 그런 의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은총으로 죄가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서 죄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에게 죄가 남아있지만 더 이상 하나님이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범죄를 저지른 피고가 그 범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형벌을 면제받았다고 그 범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형벌을 면제해주시고 의인으로 선언해주셨다고 해서 우리의 죄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파에서는 한 가지 종류의 회개, 즉 칭의의 회개만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맞지도 않고 우리의 경험에 맞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구원받은 후에도 자신의 죄성과 싸우는 모습을 보였고 다윗도 여러 번 회개한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회개는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우리 안에 죄성이 남아 있고 죄와의 싸움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 죄와의 싸움은 매우 가치있는 경험입니다. 그 싸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소중함과 가치를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에 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3. 주의할 점

주의할 점은 정교도의 주장에 의하면, 구원은 립서비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통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도 죄책감을 제거하지는 않지만, 구원을 매우 쉽고 단순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나름대로 은혜 체험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는 것으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좀더 확실한 구원 체험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좀더 안전한 구원 체험은 한 마디로 죄의 각성과 십자가 체험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라는 처절한 인식을 하지 못했다면 그 체험을 위해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방언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은사를 행하는 모든 것이 죄의 각성 없이는 무의미합니다.

저는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면, 모르는 것이라는 신조로 신앙 생활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에게 냉철한 기준을 세우고 자신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구원파는 구원 받은 날짜를 알아야 구원이라고 가르치고, 구원 받은 사람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또,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구원이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인본주의를 믿고, 죄를 지어도 죄책감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전인격적인 만남 없이 구원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백퍼센트 지옥에 갑니다.

참된 기독교는 죄의 각성을 통해서 자신이 철저하게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선고를 인정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전인격적으로 체험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죄의 각성입니다.

죄의 각성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신자입니다

구원파 유병언 회장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한 달 이상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에 비해서는 허무한 결말이라서 다들 당황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렇게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있겠느냐는 점입니다.

그러나, 유병언 회장의 행동을 보면 그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사건의 최고 원인 제공자면서도 무작정 도주부터 했다는 점에서 도덕성을 상실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도피 생활 중 적었다는 메모에 음모론과 울분만 가득할 뿐 반성과 회개가 없었다는 점은 종교인의 모습과도 거리가 멉니다.

도피 생활 중에도 명품옷을 입고 미네랄 생수를 먹으며 비서와 운전사의 수행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사치와 안락에 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셨지만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때로는 아침상을 차려주셨던 예수님의 인격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참 신자입니다.

구원파의 교훈

구원파 유병언 회장의 도피 행각이 이슈입니다.

“좁은 땅에서 많은 상금이 걸린 사람이 얼마나 도망다닐 수 있을까?”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비웃듯이 경찰과 검찰의 포위망을 잘도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언론에 의하면, 유병언 회장은 세월호가 침몰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불법 개조와 과적’을 지시한 책임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원들이 여러 차례 위험을 호소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의 책임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적으로 도피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구원파’라는 종교단체의 수장이라서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그의 도피를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종교의 폐해를 봅니다. 잘못된 종교는 믿음을 맹목적인 충성과 동일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또 추종자들도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어거지를 부립니다.

우리 정통 교회도 ‘구원파’를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목사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바르게 격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