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영국 해군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남아프리카로 가던 중 케이프타운 66km 전방에서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승객들은 630명이었으나 구명보트는 60명을 태울 수 있는 단 세 척뿐.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먼저 여자와 아이들을 3척의 구명보트에 태우게 했습니다.
여자와 어린이를 태운 3척의 구명보트는 침몰하고 있던 버큰헤이드호를 떠났고, 군인들은 세튼 대령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436명이 그대로 수장되었습니다.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그로부터 얼마 뒤 또 다른 해상 재난사고 때 빛을 발했습니다.
승객 1,515명을 태운 영국 수송선 엠파이어 윈드러쉬호가 알제리아 해안 77km 해역을 지나다 보일러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고, 화재로 인해 배가 가라앉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령관이던 로버트 스코트 대령은 승객 1,515명 가운데 여자 125명과 어린이 87명, 병약자 17명을 구명보트에 먼저 탑승시켰고 나머지는 젊은 순서대로 채웠 보냈습니다. 구명보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사령관은 병사와 선원들에게 바다에 뛰어들도록 지시했습니다. 구명정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명령도 덧붙였습니다.
그 결과 쳔 명이상의 사망자를 낼 수 있었던 사고에서 보일러 폭발로 사망한 네 명 외에는 모두 생명을 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