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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자손의 족보가 나온다. 이 족보를 통해서 성경에 가끔 나오는 족보의 역할과 교훈을 알아보겠다.성경에는 족보가 가끔 나온다. 족보는 어떤 역할을 할까? 족보는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다. 구약시대는 역사를 글이 아니라 기억으로 담아두는 시대였다. 기억을 잘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떠올릴 실마리를 잘 마련해 두어야한다. 실마리를 생각할 수 있으면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기 쉽다. 실마리를 생각할 수 없으면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기 어렵다. 족보는 매우 좋은 실마리가 된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구약 성경을 아는 사람은 이름만 읽어도 구약 성경의 내용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강의를 들으면 여러분도 그렇게 될 것이다.
노아 족보는 아담 족보와 비슷하다. 창세기 5장에 아담 족보가 나오고, 창세기 10장에는 노아가 나온다. 노아는 제2의 아담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의 관심은 아담 때도 구원계시의 상속자가 누군가에 있다. 구원계시, 풀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은 자손이 누구인지, 어떻게 믿었는지에 관한 교훈을 기록한다.
성경의 족보는 구원계시에서 멀어진 족보를 먼저 기록한다. 구원계시의 상속자는 나중에 기록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10장에서 노아의 아들들, 즉 셈, 함, 야벳에 관한 기록이 나오고, 11장에서 셈 족보가 상세하게 기록된다. 요절을 통해서 창세기 10장을 알아보자.
요절 1. 창세기 10:1
1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노아의 자손 중에서 중요한 인물은 셈과 함이다. 먼저, 셈은 구원계시를 계승한다. 여기서는 셈의 자손에 관한 일반적인 소개가 나온다. 창세기 9장에서 함은 저주를 받았다. 하지만, 함 족보를 보면 자손들이 세속적으로는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성공과 저주가 세속적인 개념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믿음이 좋다고 성공하고 잘산다거나 믿음이 없다고 실패하고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로 아니다. 성경은 축복과 저주를 구원계시 중심으로 가르친다. 이 사실은 함의 자손 니므롯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니므롯은 함이 받은 저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대제국을 건설한 영웅이다. 하지만, 니므롯과 그의 자손은 구원계시에서 멀었다. 구원계시의 상속자가 되지 못했다. 협적적이지도 않아다. 적대적이거나 위협적인 역할을 했다. 악역을 맡았다.
성경의 축복은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다. 가난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구원계시 중심으로 살아야한다.
노아는 의롭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수했다. 의인이 잘못을 범하기도 하는가? 당연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내 안의 의가 아니라 내 밖의 의이다. 내 안의 의보다 내 밖의 의가 더 크다. 예를 들어보겠다. 야구공 가격이 1만원이 안된다. 원가는 그것보다 적을 것이다. 그런데, 이승엽 선수의 KBO리그 55호 홈런볼이 1억 2500만원에 낙찰되었다. 새 야구공보다 1억 2500만 배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야구공에 내재한 가치보다 야구공 외적인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
더 쉬운 예가 있다. 사람의 가치를 생각해 보자. 사람마다 지능, 재능, 건강이 다를 것이다. 잘난 사람이 있고 못난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해도 자기 부모나 자녀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능, 재능, 건강같은 건 사람에게 내재하는 가치이다. 그 사람의 본질적인 가치란 의미이다. 부모, 자녀, 형제자매라는 건 그 사람의 본질적인 가치가 아니다. 나와의 관계에 의해서 생긴 관계적인 가치이다. 어떤 게 더 중요한가? 본질적인 가치인가, 관계적인 가치인가?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보다 외연적이고 관계적인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의 개념도 비슷하다. 내가 율법을 잘 지켜서 얻게 되는 의는 나의 본질적인 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라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아주 조금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구원을 얻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는 외연적이고 관계적인 의이다. 내 바깥에 있는 의이다. 한 없이 큰 의이다.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다. 성경은 내 안의 의로 구원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내 바깥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받으라고 가르친다. 노아가 실수했지만, 의로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 나오겠지만, 구원계시의 상속자는 스스로 의롭게 되는데 실패한다. 자기 안의 의로 의롭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의롭게 살 필요가 없는가? 아니다. 의로운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의를 추구하는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의를 추구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증거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셈 족보는 창세기 11장에 다시 나온다. 거기서 셈부터 아브람까지의 족보가 소개된다.
정리
성경은 구원계시의 상속자에게 관심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누가 구원계시를 상속하는가? 어떻게 구원계시를 상속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는 이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성경을 볼 때 이 관점을 이해해야 맥을 잡을 수 있다.
셈 자손은 축복을 받았고, 함 자손은 저주를 받았다. 성경의 축복과 저주가 세속적 관점에서는 반대로 보인다. 축복받은 셈 자손보다 저주받은 함 자손이 성공했다. 함 자손은 제국을 건설했고 명성을 떨쳤다. 일부러 가난하고 실해한 삶을 살라는 말이 아니다. 세속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라는 의미이다.
적용
성경을 왜 공부하는가? 필자는 구원받기 위해서 한다. 목회자들의 성경해석이 못미더웠었다. 구원이 그렇게 간단할까? 립서비스가 믿음일까? 교회 다니면 이상해지는데 왜 그걸 모를까? 성경대로 살면 성공할 수 있을까?
성경은 구원받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성경은 성공방법을 가르치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구원계시의 상속자가 되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배우라. 그것을 체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