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성령님에 관한 오해 4. 방언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 행 0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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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방언 운동

성령님에 관한 오해 네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방언 운동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현대 방언 운동이 1900년 미국 아주사에서 시작되었으니 120년 이상 지났습니다. 우리나라도 방언 운동의 파도를 결산을 해도 될만큼 시간이 지났습니다. 성령님에 관해서 알아보면서 방언 운동의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본문은 사도행전 02:01-13입니다.

사도행전 02:01-1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1. 방언은 무엇인가?

방언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방언 받아야 구원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방언이 성령 세례의 증거이고, 구원을 받는 근거라고 했습니다. 강력하게 내세우지 않지만 아직도 그 주장을 철회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실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방언을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면 그건 기독교가 아니라 방언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분들과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들은 기독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해야 구원 받은 것이고 성령 세례 받은 것이라는 주장은 단순히 주장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해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베리칩을 몸에 이식하면 구원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당신은 베리칩 교를 믿고 있군요. 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도 화를 냅니다. 화를 내도 어쩔 수 없는게 배리칩이 구원을 좌우한다면 그건 베리칩 교가 확실합니다. 방언이 구원을 좌우한다고 주장하면 그건 방언교이고, 베리칩이 구원을 좌우한다고 주장하면 그건 베리칩교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좌우한다고 주장하면 그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베리칩을 몸에 이식해도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게 기독교입니다. 방언 안해도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주장해야 기독교입니다. 물론, 방언이나 베리칩을 주장하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예수님도 믿고 방언도 해야 한다거나 예수님도 믿고 베리쳅을 이식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온리가 기독교이고 예수 그리스도 플러스 알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이게 기독교입니다. 예수 플러스 알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건 플러스 알파에 해당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성경에 오직 예수라고 기록된 건 두 말할 필요가 없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도 누구나 오직 예수라고 말합니다. 더 설명할 필요도 없고 논쟁할 이유도 없습니다.

2. 성령이 임하면 방언을 하게 되는가?

방언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임하시면서 그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일어난 현상입니다. 왜 성령이 임하면 방언을 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 방언은 완벽한 외국어였습니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가 이스라엘로 오순절 절기를 지키러 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 언어를 알아들었으니까요. 방언의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일’이었습니다.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이 구절을 인용한 책 ‘하나님의 큰 일’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절정을 이룬다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건 성령님의 취임인사입니다. 대통령이 취임하면 현충원이나 국립묘지에 방문합니다. 그건 행동으로 보여주는 취임인사입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로 외국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취임인사를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세계에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오셨다는 의미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방언을 주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성령님은 성령님 자신을 내세우려고 오신 게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그 사실을 방언 즉, 외국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게 하는 것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항상 방언을 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모습이 기록된 것이 사도행전에 4번 나옵니다. 2장 예루살렘, 8장 사마리아, 10장 가이사랴, 19장 에베소에서 입니다. 예수의 유언엔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이룬 것입니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방언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방언만 한 게 아니라 예언도 했고, 병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 하셨던 기적을 성령님이 똑같이 행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방언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방언만 강조합니다. 다른 은사에 관해서는 입을 닫습니다. 지금도 병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하철 성형수술 광고에서 비포, 에프터를 보여주잖아요. 믿으라고 소리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비포, 에프터 사진을 보여주면 됩니다. 하지만,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 중에 그런 증거를 보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병 고치는 은사가 있으면 코로나 환자를 치료해서 비포, 에프터를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요즘 은사집회 광고가 싹 사라졌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그들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방언을 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증언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3. 방언 운동의 결과는 무엇인가?

방언 운동의 결과는 어땠는가? 역사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방언이 없을 때 기독교는 전세계에 강력하게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방언을 하지 않았을 때 기독교가 강력하게 전파되었습니다. 반대로 방언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이후에 전세계에서 기독교는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만 생각해 보아도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지 않습니까? 반발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방언 운동을 해서 기독교가 성장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방언 운동을 하면 일어나는 특징이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아지는데, 기독교는 쇠퇴한다는 점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방언 운동이 확산하면 교회 다닌다는 사람은 많아지는데, 교회가 교회가 아닌 곳이 되어버립니다. 목사의 말이 천박해지고 교인의 행동이 과격해집니다. 교회가 조금만 비판을 받아도 집단 폭력을 행사합니다. 각 교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자기 교회 아니면 다 적으로 간주하는 교회 이기주의가 강해집니다. 기독교가 강력하게 전파된 시대는 기독교가 힘이 강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힘이 약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자기 희생으로 세상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준 시대였습니다. 우리나라 예만 들겠습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도 존경하는 사람이 장기려 박사입니다. 부산 복음병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하고 자기 월급을 털어서 도와 준 일로 유명합니다. ‘이 환자에게는 닭 두 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을 내주시오.’ 장기려(1911∼1995) 박사가 영양실조 환자에게 직접 썼던 처방전입니다. 지나가는 걸인에게 적선으로 한 달 월급 수표를 주었다가 그 걸인이 수표 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끌려가는 바람에 경찰서로 소환되어 해명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습니다. 치료비가 없었던 환자에게 자신의 급여를 가불해 지불하기도 했고, 병원 측의 반대로 치료비 대납이 원활하지 않자 뒷문으로 도망가라고 했답니다. 복음병원 초창기에 모든 직원의 월급을 식구수대로 나누어 식구수 많은 직원이 제일 많은 월급을 받고 자신은 아들 하나뿐이므로 운전기사와 같은 월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1985년 남북관계의 일시적 해빙기에 정부가 배려하여 특별방북대상으로 선정하였으나 ‘나만 특혜를 받을 수 없다’고 하면서 끝까지 방북을 사양한 일, 북에 두고 온 아내와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 평생 재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1968년에 청십자 의료보험이라는 최초의 의료보험 제도를 시행해서 오늘날 건강보험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표어가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였습니다. 의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우리나라 최초로 간절제술을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방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순진한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의사였고, 추진력 있는 행정가였고, 미래를 준비하는 개혁가였습니다. 장기려 박사를 이끈 것은 방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오늘날 방언 운동은 어떻습니까? 삶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방언하면서 과격하고 무례하게 전도합니다. 억지로 교회 데려가고, 무조건 예배 많이 참석하게 합니다. 마음을 감동시키는 게 아니라 힘으로 굴복시킵니다. 방언 운동은 무엇을 남겼습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게 했지만, 동시에 교회가 교회가 아니게 했습니다. 방언 운동은 교회를 소외시켰고 복음을 소외시켰다. 방언은 남고 복음을 사라졌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방언 운동을 지지하시는 분이 있다면 근거 없이 지지하지 마시고, 냉철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면, 방언이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방언 연습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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