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 2

본문

사도행전 7:46~55 / 2018년 08월 26일 주일 설교

(행 7: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행 7: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행 7: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행 7: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행 7: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행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시 110: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설교 듣기

핵심 구절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한줄 요약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개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자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0. 무엇이 영원할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모든 것은 끊임 없이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은 영원한 것 아닌가?” 다시 말하면, “변화는 영원하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변화하게 하는 분은 영원하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변화의 뒤편에서 변화를 주도하고 섭리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변화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황금빛 별 저편에는 누가 사는가?” 이것은 시인 하이네의 물음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스데빈 집사를 통해서 무엇이 영원한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1. 성전
스데반 집사가 죽은 결정적인 이유는 성전을 모독했기 때문입니다.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자 듣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극도로 분노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분노했느냐면 성전을 절대적인 가치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거기에 기댑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지만, 돈 말고도 집에 집착하는 사람, 자동차에 집착하는 사람, 컴퓨터 게임, 수집 취미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실제로는 가치가 없을 때 생깁니다. 집, 자동차, 컴퓨터, 취미품이 영원한 가치는 없지 않습니까?

위에 것과 같이 놓고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이 그런 절대적인 가치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예배당을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종교적인 건물이니까 아무래도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외형적인 것은 도구이고 수단이지 결코 본질이 아닙니다. 물질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이 빠집니다. ‘노틀담 드 파리’은 노틀담 성당에서 일어난 추악한 스캔들을 보여줍니다. 노틀담 성당은 대주교좌 성당이고 중세 고딕 건축 양식의 정수라는 건축물입니다. 우아하고 웅장한 성당입니다. 보기만 해도 신앙심이 일어날 것 같고,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 같은 성당.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 없이 거룩할 것 같은데, 사실을 일반인보다 못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임 신부 프롤로도 근위대장 페뷔스도 욕정에 이끌려 범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겉보기에 추악한 곱추 콰지모도가 그나마 양심적입니다.

큰 건축물을 보고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웅장한 건축물을 지어서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신앙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율법주의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길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고정관념이 그런 경우입니다. 어렸을 때 갖게 된 고정관념이 자신도 모르게 머리 속에서 절대적인 가치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대에 관한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군대가면 고생하고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고정관념을 깨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겨울에 눈을 치우는 일을 민간인에게 위탁하고 병사들이 평일에 외출했다가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월급도 현재 병장 월급이 40만 6천원입니다.

“고정관념이 강한 분들은 이게 무슨 군대야”라고 반발하시더라구요. “내가 군대 있을 때는”으로 옛날 얘기를 합니다.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돈도 거의 못받는 수준이었습니다. 그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 군대는 출퇴근이 가능하거나 주말에 집에 가는 군대로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군대가 지나치게 엄격한 건데 그게 고정관념이 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통행금지가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전에 통행금지 없애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간첩 세상이 된다고 결사 반대하는 사람들이 엄첨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통행금지가 비정상인데 그게 고정관념이 된 거죠. 국기 하강식은 어떻습니까? 걸어가다가도 멈춰야 했습니다. 그거 안하게 되었을 때도 반대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생각이든 고정관념이 되어서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하나씩 하나씩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은 지키지 않고 자신들의 고정관념인 율법주의를 지켰습니다. 오늘날도 기독교를 믿지 않고 기독교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주의와 기독교주의가 문제인 이유는 진짜 지켜야 하는 것과 매우 혼동된다는 점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권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은 안지키고 율법주의만 지킵니다.

(행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지금도 옛날이 좋았다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분들이 과거로 돌아가면 그런 말을 할까요? 아파도 건강보험이 없는 시대라 병원 못가고, 방 한 칸에서 식구가 몰려자고, 목욕도 제대로 못했던 상황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나올까요? 왜 옛날이 좋았다고 하냐면 그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며 살지 않으면서 율법을 지키며 산다고 착각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살려고 하면 도저히 못 지키겠다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지키지 않으니까 못지키겠다는 말이 안나옵니다. 지킬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으로 설명하면 교회에서 주일 성수, 헌금, 봉사 등을 요구하면 힘들지만 할 만합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 좋은 신앙인이라고 칭찬받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의 요구는 이런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의를 위해 고난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삶은 살지 않아요. 본질적인 삶은 살지 않고 비슷한 삶을 살면서 신앙인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율법주의입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주의입니다.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순장도 하는 청년인데, 집에서는 막나가는 사람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사실은 순장 안하고 교회와 집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줄이는게 더 바람직합니다. ‘기독교주의자’가 되지 말고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교회를 오래 다닌 친구와 황우석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아무래도 황우석 교수에 대한 철썩 같은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황우석 교수는 그래도 세계적인 과학자인데 언론에서 그렇게 죽여서야 되겠냐고, 그러면 우리나라도 같이 자멸하는 게 아니냐고 항변하였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로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장은 아픔이 있더라도 투명한 진실에 기반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이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친구가 보수적인 기독교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대뜸 다음과 같이 다시 얘기를 꺼냈다. “원래 너의 신앙적 기준이라면 황우석 교수가 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오히려 반대해야 맞는 거 아니니?” 라고 말해주자, 그 친구는 나의 갑작스런 이 질문에 흠칫 놀라면서 잠시 생각해보더니 “그…. 그렇지”라고 얼버무리듯 얘기한 적이 있다. [출처]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475

현실을 살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 없는 것을 미화하고 절대화합니다. 과거가 좋았다고 하고 어디 가면 행복할 거라고 상상합니다. 과거에 머물고 상상 속에서 삽니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변화에 몸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의 영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잡히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사람의 마음만큼 변화무쌍하고 잡히지 않는 것도 없지만 그것만큼 영원한 것도 없습니다.

지난 주에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들 보면서 가슴에 와닿았던 말은 이것입니다. “살아 있어줘 고맙다.” 92세 이금섬씨(남측)과 북측에서 온 71세 아들 리상철씨를 만나자 마자 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금섬씨는 60년 만에 만난 아들을 향해 “고생했다” “살아있어줘 고맙다”며 애틋한 부정을 표현했습니다. 부자 간의 정, 사랑은 60년의 시간을 넘어서 이어졌습니다.

이와같이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아직 마음이 연결되지 않았다면 교회가 건설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를 감동하시기에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합니다. 교회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그 마음이 영원하기에 교회도 영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는 분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의 영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00. 그리스도인으로 살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줘 고맙다”고 하시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예수님의 그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고통이 녹아들 것입니다.

찬양과경배. 무엇이 변치 않아 내 소망이 되며

[교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 1

# 본문

사도행전 7:55~60
(행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시 110: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핵심 구절(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 설교 듣기

# 한줄 요약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 개요

교리에 관한 설교를 다시 시작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교리 다른 말로는 기독론에 관해서 설교하기 전에 십자가에 관해서 설교합니다. 십자가 교리는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의 교리를 바르게 알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해야 겠습니다.

0. 예수님은 길이고 문이다

교회 역사에는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잘못된 가르침의 영향을 받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소수의 사람을 보내서 오류를 바로 잡으셨습니다. 현대에 다수의 기독교인이 잘못알고 있는 가르침은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조금씩 강조점은 달랐지만 반복된 일입니다.

4세기에 아리우스라는 사람이 이단 사상을 만들어 교회를 부패시킬 때 아타나시우스란 사람이 나와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삼위일체를 믿는 것은 아다나시우스 때문입니다.

5세기 초에 펠라기우스가 거짓 교리를 유포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거스틴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세워주셨습니다.어거스틴의 책은 지금 박사학위를 몇 개 받은 사람이 읽어도 위대한 책입니다. 어떻게 500년 된 사람이 그런 책을 쓸 수 있는지 참으로 위대합니다.

16세기 로마 교회가 거짓 교리를 유포할 때에 하나님은 마틴 루터와 칼빈을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목숨 걸고 진리를 지킨 것입니다. 1521년 보름스 칙령은 루터를 누가 죽여도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목숨 걸고 우리가 믿는 은혜의 복음을 밝혀냈습니다.1

8세기 영국이 부패하고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는 존 웨슬리를 일으키시고 조지 휫필드라는 걸출한 인물을 세워 복음을 전하고 영국 사람들이 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침례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곤두박질칠 때에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스펄젼 목사님을 세워주셔서 진리를 전해주셨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지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종교입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을 만나러 가는 유일한 길(요 14:6)이고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요 10:7)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중요한 건 “하나님을 믿느냐”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자동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이 존재한다” 혹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으면서 그것이 기독교인이라는 확실한 증거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사람의 말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이란 죄와 심판의 각성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것으로 인해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현상적으로 기독교인은 죄의 각성을 통해서 양심이 살아납니다. 죄를 지어도 괴롭지 않던 사람이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죽은 뒤에 막연하게 좋은 곳에 갈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져 살던 사람이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난을 감수하고 살길을 찾아나서게 됩니다.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의지를 이끌어서 신비롭게 상호작용합니다. 인간의 측면에서는 죽을 힘을 다해서 살 길을 찾아가다가 예수님을 감격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사람을 만나보기도 했고 간증을 듣기도 했지만, 죄와 심판의 각성이 일어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죄의 각성이 일어나면 기본적으로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기객관화가 이루어지는데, 자기객관화는 커녕 유아적인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성경은 죽었던 사람이 살아돌아와서 간증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눅 16:30~31)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이 인간을 변화시키지도 못합니다. 믿음은 정보 습득, 교리 이해, 자기 확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전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던가 천국과 지옥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오늘 본문 조금 위에 보면, 스데반은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당신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유는 성경을 바르게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바르게 본 사람은 예외 없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경이 알려주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겠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나는 그의 사랑의 노예가 되었다. 내 의식과 예수 의식을 분간 못할 정도로, 바울의 말을 빌리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나를 통해 자기 삶을 살고 있다. 나는 광신자도 신비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사상이나 자기 암시에 붙잡힌 사람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다윗과 베드로와 바울을 붙잡고 인도하시던 사상 가장 강렬한 인격이신 예수에게 사랑을 받고 열애(熱愛)하고 있다. 열 번 죽어도 아쉬운 마음뿐이다. – 예수칼럼 김준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스데반이 본 환상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과 동등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옆에 계신 거니까 비서같은 역할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서 계신 곳은 보좌 옆입니다. 비서는 같은 보좌 옆에 있을 수 없고 아래에 있습니다. 동등한 신분만 보좌 옆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인 이유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등하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탄이 가장 알리기 싫어하는 진리가 바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다’라는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이걸 믿으면 악한 영이 파고들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과연 구원받은 자인가를 괴롭게 고민하던 존 번연은 어느 날 들판을 걷고 있었습니다. – 갑자기 어떤 생각이 제 양심을 치고 들어왔습니다.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이 제 영혼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네 의는 하늘에 있느니라.” 그리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오른편에 계신 모습이 영혼의 눈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두 다리를 꽁꽁 묶고 있던 사슬이 풀리는 것 같았다고 증언합니다.

2.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둘째,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예수님도 사랑입니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용서의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스데반도 최후에 비슷한 기도를 했습니다.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지만 무분별한 분노를 터뜨리거나 자기 중심적인 광기를 보여주는 교인이 있습니다. 조금도 손해보지 않는려고 이익 단체처럼 시위를 하고 정치 집단처럼 선동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두려움 때문에 갖는 존경심만큼 비열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갖게 된 존경심을 신앙으로 포장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구합니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존경심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았다고 보기 힘듭니다. 어쩌면 요즘 교회에서 가장 보기 힘든 사람이 기독교인일지도 모릅니다. 이익이 아니라 정의를 따르자고 주장하고 손해보더라도 사랑이 우선이라고 외치면, 스데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박해받은 것처럼 박해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야합니다.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회색 지대에 숨어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인간, 코로 숨 쉬고 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을 찾아 역사의 정문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수채 구멍(말구유)으로 불청객처럼 오셨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을 찾아 물 한 잔을 청하여 그렇게도 낮게 그렇게도 조심스럽게 만남을 위하여 닫혀진 문에 노크를 시도하신다. 예수는 전지 전능하신 분. 남을 구원할 수 있었으나 자신에게는 무능했고 천군 천사를 동원할 수 있었으나 나 위해 무능한 사형수가 되셨다. – 예수칼럼

3. 예수님은 길이다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인 상태입니다.

(엡 2:1~5)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영으로 기독교인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막연하게 기도하지 않고 확신 속에서 기도합니다. 하늘과 지상이 구분이 없어집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황금빛 별 저편에는 누가 사는가?” 이것은 시인 하이네의 물음이다. 이 물음 속에 종교와 철학과 도덕의 물음의 원점이 있는 것 같다. 누가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지으셨나이다. 그런고로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내게는 평안이 없었나이다.” 이것은 어거스틴의 고백이다. 예수를 모르고는 나도, 하나님도 모른다(파스칼). 예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다(요 14:9). – 예수칼럼 김준곤

00. 예수님의 제자, 스데반

스데반은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한 기도가 증거입니다.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인지 아닌지는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이 증명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 비로소 제자인 것입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처음에 언급했던 18세기 기독교의 위기를 구한 조지 휫필드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는 닳아 없어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닳아 없어지는 사람이 됩시다.

찬양과경배. 195 언제나 내 모습

통용하고 나눠주며

2016년 11월 13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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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44-45)

[한줄 요약]
예루살렘 신앙 공동체는 자주 모이고 실 생활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
통용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함
2    교회란 무엇인가?
공유하는 공동체
필요에 의한 분배
3    주의할 점
자연스러운 것이지 의도된 것이 아님
모두가 공동 생활을 한 것은 아님

[결론] 교회는 신자의 어머니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 그리스도의 중심성

2016년 10월 23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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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한줄 요약]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세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죽는 것이 그리스도의 세례입니다
십자가의 체험이 성령 세례입니다

3    주의해야 할 점
선택과 책임은 독립된 인격의 영원한 본성
수동적 소극적이 아니라 주도적 적극적

[결론]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자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_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2016년 10월 16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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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한줄 요약]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양심을 일깨워서 구원의 필요성을 알려주실 때 바르게 응답해야 합니다.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양심이 찔리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2 청교도와 양심
청교도는 양심을 마음의 법정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관이라고 가르쳤습니다

3 양심에 방응하자
양심의 호소에 반응하는 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양심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알려집니다

[결론] 양심을 통해서 부르시는 하나님께 순종하자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3

2016년 10년 09월 주일 설교
사도행전 02: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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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한줄 요약]
예수님은 기독교 신앙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성령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베드로가 성령 세례/충만을 받은 후 한 설교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기독교 신앙의 입구입니다
  2. 삼위일체 중 예수님의 역할
    초창기 교회의 핵심 이슈는 예수님의 위상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고, 참 인간이시다
  3.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
    예수님은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에게 ‘의’를 주신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죽으셨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2

2016년 10년 02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2: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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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한줄 요약]
사도행전은 복음서의 연속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행전이다

 

[개요]
요한계시록만큼이나 오해가 많은 성경이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을 복음서의 연속으로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복음서를 네 권이나 기록한 목적이 모호해 진다.

사도행전을 볼 때 주목해야 할 점 : 사도행전은 복음서의 연속이다. 따라서

1.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시다.

요한복음 14:16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2. 성령만 받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과정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하느냐? 자기 발견의 과정
갈라디아서 02:20, 고린도후서 05:17

3. 예수님의 인격과 지혜, 능력을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충만하자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1

2016년 07월 10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2: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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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4)

[한줄 요약]
베드로는 오순절에 자신들이 살던 지역의 언어(방언, 외국어)로 하나님의 큰 일 말하는 것을 듣고 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합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자신들이 살던 지역의 언어를 듣고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2. 구약 성경이 예언한 일
    선지가 요엘이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구원을 주는 영입니다
  3. 영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받자

하나님의 큰 일

2016년 07월 03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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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11)

[한줄 요약]
바벨탑 사건(창 11장) 이후 인류의 언어가 분열되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복음으로 통일됩니다. 그 언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 세례와 충만을 받은 때
    각 외국어(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습니다
  2. 경건한 유대 사람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방문한 사람들 율법을 실천하고 그 참된 의미를 알고자 노력한 사람들
  3. 하나님의 큰 일(타 메갈레이아 투데우)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해석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결론] 율법은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2016년 06월 26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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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행 2:5)

[한줄 요약]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은 율법을 준수하며 그 참된 의미를 알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 세례와 충만을 받은 때
    각 외국어(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습니다
  2. 경건한 유대 사람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방문한 사람들 율법을 실천하고 그 참된 의미를 알고자 노력한 사람들
  3. 하나님의 큰 일(타 메갈레이아 투데우)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해석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결론] 율법은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2016년 06월 19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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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한줄 요약]
성령 세례는 복음서에서 제자들과 동행하셨던 예수님이 이제 영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제자들이 예수님 승천 후 기도한 지 10일 째되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셔서 충만하게 하셨다
  2.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
    성령 세례는 성령께서 신자와 전인격적으로 연합되는 것(내면적)
    성령 충만은 성령께서 능력으로 임하시는 것(외면적)
  3. 성령 세례와 방언
    오순절날 제자들이 한 방언은 외국어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결론] 예수님을 증언하며 교회를 섬기자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

2016년 06월 12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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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22)

[한줄 요약]
그리스도인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기도를 했습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사도를 뽑았습니다
  2. 사도의 직분
    사도는 예수님과 동행하여 예수님의 삶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3. 사도의 역할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결론] 예수님을 증언하며 교회를 섬기자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2016년 06월 05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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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한줄 요약]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합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20명이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10일 동안의 특별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2. 하나님의 기도학교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 학교로 인도하십니다
    기도 학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니다
  3. 기도의 한계
    기도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기도는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알아가자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2016년 05월 29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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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

[한줄 요약]
그리스도인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에 성실해야 합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예수님께서 성령 세례를 약속하고 승천하심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여주심
  2. 기적의 목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것
    예수님이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
  3. 기적을 대하는 자세
    기적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기적을 기대하되 일상에 충실해야 합니다

[결론] 기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2

2016년 05월 22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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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한줄 요약]
성령 세례도 예수님의 제자훈련과 연속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연합되는 것입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 세례를 약속하심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영과 연합되는 것
  2.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령 세례
    세례는 죽음을 의미, 죽음과 부활을 통한 연합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영과 연합되는 것
  3. 성령 세례의 주의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닮아가도록 돕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세례를 받자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1

2016년 05월 15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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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한줄 요약]

성령 세례도 예수님의 제자훈련과 연속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연합되는 것입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 세례를 약속하심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영과 연합되는 것
  2.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령 세례
    세례는 죽음을 의미, 죽음과 부활을 통한 연합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영과 연합되는 것
  3. 성령 세례의 주의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닮아가도록 돕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세례를 받자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2

2016년 05월 08일 주일 설교
사도행전 0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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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절)

 

[한줄 요약]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근거로 펼쳐집니다. 성경을 잘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
    부활 후 40일 간 재교육을 마치고 하신 약속의 말씀
  2. 약속하신 것
    성경은 즉흥적 임의적인 진행이 아니라 계획된 진행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영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3. 기다리라
    행동하기 전에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잘못된 열심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결론] 예수님의 약속을 먼저 알아야 한다

 

복음서와 사도행전1.png

2015년 11월 22일 주일설교

출애굽기 14:14-19
[추수감사절] 감사하는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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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출 23:17)

[한줄 요약]
추수감사절은 미국 청교도가 시작했지만, 성경에 기원이 있습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도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의 추억이 있어야 합니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해서 광야에 머물 때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
  2. 하나님의 의도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주심
  3. 현대적 적용
    하나님의 선하심을 먼저 맛보아야 함
    감사를 통해서 언약을 기억해야 함

[결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고 감사받기 원하신다.

2015년 11월 08일 주일설교

사도행전 15:01-11
“주 예수의 은혜로 받는 구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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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 15:11)

[한줄 요약]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이후에 이방인 신자들의 숫자가 늘자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할례 문제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개요]
1.  구원론에 대한 논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유대인들의 주장
예루살렘 교회에 질문한 바울
2.  예루살렘 공의회
베드로의 발언 : 이방인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
유대인도 지키지 못한 율법
3.  구원론 주의점
행위와 행함의 문제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결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2015년 11월 01일 주일설교

사도행전 15:01-11
“주 예수의 은혜로 받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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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 15:11)

[한줄 요약]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이후에 이방인 신자들의 숫자가 늘자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할례 문제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개요]
1.  구원론에 대한 논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유대인들의 주장
예루살렘 교회에 질문한 바울
2.  예루살렘 공의회
베드로의 발언 : 이방인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
유대인도 지키지 못한 율법
3.  구원론 주의점
행위와 행함의 문제
인간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결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