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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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메니안주의(Sandymanianism)

마틴 로이드 존스

18세기 말경에 스코틀랜드에 존 글라스(John Glas)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영국인 사위를 두었는데 그의 이름은 샌디멘(Sandyman)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같이, 매우 인기가 있고 많은 영향을 끼친 가르침을 창시하였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기독교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라는 로마서 10:9의 말씀을 인용해 이것만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말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그분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 역시 그렇게 말씀합니다. 감정은 쓸모 없고 그 메시지만 믿고 그 진술을 표현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라고 강조합니다.이것이 18세기에 매우 인기가 있었고 큰 해를 끼쳤던 샌디메니안주의입니다. 그 당시 교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굉장한 손해를 끼쳤습니다. 한 운동으로서는 사라졌지만 그 가르침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가르침은 인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회에서 진리가 전해진 후 설교자를 통해 “이 진리를 믿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당신이 그것을 믿는다고 간단히 말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조금도 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라고 당신이 말하면,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그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의 감정에 대하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그들의 회심에 대한 가르침의 중점은 지성적인 믿음에 있습니다. 그것에다 영적인 훈련과 성경에서 발견된 도덕적인 가르침을 더하면 당신은 선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으며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충만이 임하셨으므로, 그분을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 있는 체험이 없어도 당신이 믿는다고 말하면 구원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가르침은 모든 확신에 관한 교리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가서“이 문제에 대하여 자신들은 확고한 확신을 가졌다는 사람들에 관하여 읽어 보았습니까?” 라고 말하면, 그들은“물론입니다. 당신 역시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그것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면, 그들은“이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이리 오십시오” 하며 성경을 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여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이것을 믿습니까?”“예, 믿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그들은“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이 당신에게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라고 반문하면, 그들은“당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도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이것은 구원의 확신에 관하여 매우 흔한 가르침입니다. 단순히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감정을 고려하는 것조차도 단념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며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며 신약성경과 성경 전체에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여기에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두려움의 의식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서 발견된 이 위대한 느낌,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꼈던 이 의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현대 복음주의와 18세기 중반까지의 복음주의의 큰 차이입니다. 예를 들면, 신학적으로는 서로 다른 점들이 있었음에도 이 점이 바로 현시대와 종교 개혁, 청교도 그리고 초창기 감리교 때와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경건한 의식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습니까? 경이와 놀람,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에 대한 느낌은 어디로 갔습니까?

사람들이 모세나 다윗 또는 다른 사람들이 소유했던 이 놀라운 경험들을 찾지 않는 이유는 이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차갑고 이성적인 믿음주의(believism)을 가르치지 않고 전인격이 관련되는 경험을 가르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또한 가르칩니다. 성경은 이 경험을 어떤 한 시대나 일정한 종류의 사람들 또는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습니다.

구속(REDEEM, REDEMPTION)

W. E. Vine

요약

한국어 ‘구속’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에는 동사 ‘에크사고라조, 뤼트로오’와 명사 ‘뤼트로시스, 아폴뤼트로시스’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아폴뤼트로시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설명

  1. ‘뤼트로시스’는 ‘구속’이라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쓰였습니다.(1)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구출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눅 1:68의 R.V.와 한글개역은 “속량하다” 2:38(한글개역 “구속되다”).(2) 히 9:12에서 죄와 죄의 세력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구원을 가져오는 그의 구속적 사역에 대하여 사용됩니다(한글 개역: “속죄를 이루다”). 70인 역에서는 레 25:29,48,민 18:16, 시 49:8, 111:9, 130:7, 사 63:4에서 사용되었습니다.

  2. ‘아폴뤼트로시스’는 1번 단어의 강조형입니다.문자적으로는 ‘속전을 내고 풀어줌’을 뜻합니다.(1) 히 11:35에서는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구출됨’에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2) 눅 21:28에서는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심에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살후 2:8에서는 “그의 재림의 빛” 즉, 그리스도의 재림에 성취되는 구원에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3) 죄로부터의 구원, 속죄함으로 얻어지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함, 구속에 관련하여 사용됩니다. 롬 3:24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엡 1:7의 R.V.는 “죄 사함”으로 표현했습니다. 골1:14 역시 “죄 사함”으로 번역하여 죄와 죄의 운명으로부터의 해방뿐 아니라 자유의 삶(롬 6:4 새생명)에로 들어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히 9:15의 R.V.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의 구속을 위해”(한글개역: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에서 “죄의 구속”은 “죄로부터 구속”과 같은 의미입니다. 구속이 이루어지는 대상(죄)에 관하여 사용된 속격은 죄의 결과로부터가 아니라, 죄 그 자체로부터 구속이 이루어짐을 가리킵니다.(4) 롬 823, 고전 1:30, 엡 1:14, 4:30에서는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죄의 현존과 권능으로부터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썩어질 육체로부터 구원한다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성경을 관통하는 그리스도

  • 창세기에서 예수님은 여인의 후손입니다.
  • 출애굽기에서 예수님은 희생의 어린 양입니다.
  • 레위기에서 예수님은 제물이자 제사장입니다.
  • 민수기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물이며 하늘로부터 온 만나입니다.
  • 신명기에서 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약속의 선지자입니다.
  • 여호수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 군대의 대장입니다.
  • 사사기에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의 구원자입니다.
  • 룻기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기업을 무르는 친족입니다.
  • 사무엘과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왕입니다.
  • 에스라에서 예수님은 포로 되었던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오시는 지도자이십니다.
  • 느헤미야서에서 예수님은 성벽 건축가입니다.
  • 에스더서에서 예수님은 보이지는 않지만 자기 백성들을 지켜주시는 보호자입니다.
  • 욥기에서 예수님은 인내하시는 분입니다.
  • 시편에서 예수님은 찬양을 받는 분입니다.
  • 잠언에서 예수님은 지혜로 훈계하시는 분입니다.
  • 전도서에서 예수님은 해 아래 있는 모든 것들에게 필요한 분입니다.
  • 아가서에서 예수님은 심령의 갈망을 만족시키는 분입니다.
  • 이사야서에서 말라기까지의 예언서에서 예수님은 장차 오실 왕, 하나님의 종, 인간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네 가지 성품을 가진 분입니다.
  •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약속된 왕입니다.
  •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인간의 아들입니다.
  •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땅에 있는 종들의 주인이자 증인들 이야기의 주체가 되십니다.
  • 로마서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의 의로움이십니다.
  • 고린도서에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 갈라디아서에서 예수님은 율법주의로부터 우리를 건지는 구원자입니다.
  • 에베소서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생명입니다.
  • 빌립보서에서 예수님은 성도들의 모범입니다.
  • 골로새서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입니다.
  • 데살로니가서에서 예수님은 모든 백성들의 복된 소망입니다.
  • 디모데전서는 통치가 예수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 디모데후서는 교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말합니다.
  • 디도서는 예수님을 위해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 빌레몬서에서 예수님은 죄의 전가(轉嫁) 교리(하나님께서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죄에 대한 책임을 그의 아들에게 돌렸다는 가르침)의 예증입니다.
  •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은 더 나은 길입니다.
  • 야고보서에서 예수님은 더 나은 생명과 사랑과 자유의 새로운 율법입니다.
  • 베드로서에서 예수님은 제사장 나라의 중심입니다.
  • 요한일이삼서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빛과 생명이요, 사귐의 대상입니다.
  • 유다서에서 예수님은 힘써 주장해야 할 믿음의 본체입니다.
  •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장차 올 충만한 영광입니다.
  • B. B. Sutcliffe, 망원경을 통해 본 성경(성경 파노라마, 규장. 206~207 재인용)

성도들의 영적 전쟁

제시 팬 루이스 & 이반 로버츠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속이는 영들의 특별한 공격이 있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로 분명히 알게 하신바 ‘후일에’ 미혹하게 하는 큰 공격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이다. 이 말씀은 예언된 이래로 1800여 년이 지났는데, 믿는 이들을 속이는 데 있어서 악한 영들의 특별한 나타남은 우리가 말세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한다.이 세대 말에 있는 교회의 위험은 특별히 영적인 계시의 가르침에 개방된 모든 이들을 속이기 위해 가르치는 영들의 군단을 보내며, 그럼으로써 그들을 부지중에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충성에서 멀어지게 한다.그러나 후일의 위험에 대한 이러한 명백한 예고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러한 악한 영들의 군단의 역사를 거의 모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대다수의 믿는 이들이 모든 초자연적인 것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여겨 선뜻 받아들이며 또한 초자연적인 체험들을 모두 거룩한 것으로 여겨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지식이 부족함으로 인해 가장 영적인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사악한 영들의 군대에 맞서서 충분하고도 지속적인 전쟁을 수행해 내지 못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전파되었다면 마귀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나 그를 직접 대항하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말하며, 이러한 주제를 다루거나 마귀와의 전쟁으로 그들을 부르실 때 움츠러든다.그러한 지식이 없다면 믿는 이가 ‘진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때 실상은 악한 영들을 위하여 싸우고 변호하고 방어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를 ‘변호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믿는 이는 어떤 것이 거룩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보호하고 지지하게 된다. 무지함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설 수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공격할 수 있으며, 또한 마귀를 변호하면서 하나님을 반대할 수 있다.-제시 팬 루이스 & 이반 로버츠, 성도들의 영적 전쟁, 벧엘. 19-21

회심의 체험

존 번연크리스찬 :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에게 역사하신 이후에도 죄를 지은 이유는 무엇입니까?소망 :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인지를 몰랐습니다. 저는 죄에 대해서 깨우침으로 하나님께서 죄인의 회심을 시작하시는 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 제 육신은 죄를 달콤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저는 죄악에서 떠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3. 저는 옛 친구들에게 이별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행동하는 것이 저에게 만족을 주었습니다.

  4. 질책의 시간은 저에게 고통스럽고 두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지은 죄악들을기억할 때 질책의 고통들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중략-소망 : 아닙니다. 죄의식이 더욱 빠르게 제 양심을 붙잡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죄로 돌아갈 생각이라도 한다면 저에게 고통은 배나 더했습니다.크리스찬 : 그러면 그 때 어떻게 했습니까?소망 : 제 삶을 고치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저주받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김홍만, 52주 스터디 천로역정, 생명의말씀사. 3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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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으로 기억하는 예수님의 생애

Angel (천사)?: 천사가 마리아에게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 (마 1:18-25, 눅 1:5-28)Birth(탄생)?: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심 (마 2:1-12, 눅 2:1-20)Carpenter(목수)?: 나사렛에서 목수로 생활하심 (마 2:19-23, 눅 2:29-52)Dove(비둘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옴 (마 3:11-1, 눅 3:15-23)Enemy(원수)?: 사탄에게 세 차례 시험 받으심 (마 4:1-11, 눅 4:1-13)Followers(제자들)?:?열 두 제자를 부르심 (요 1:19-51)Guest(손님)?: 혼인잔치에 손님으로 가심 (요 2:1-11)Housecleaning(성전정화)?: 성전을 정결케 하심 (요 2:13-22)유월절1Interview(면담)?: 니고데모와 대화를 나누심 (요 3:1-21)Jacob’s well(야곱의우물)?:?사마리아 여인을 만남 (요 4:5-42)Kin(친척)?: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함 (눅 4:16-31)Location(장소)?: 가버나움으로 사역지를 옮기셔서 공생애?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냄(마 4:13-22)Message(메세지)?: 산상수훈 (마 5-7)Nature(자연)?: 자연을 압도하는 신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내심 (눅 7:1-35)유월절2Opposition(반대)?:?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공식적으로 반대?(마 12:22-50)Parables(비유)?: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심 (마 13:1-53, 막 4:1-34)Question(질문)?: 베드로의 신앙고백 (마 16:13-28, 눅 9:22-36)Revelation(계시)?: 모세와?엘리야와 더불어?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줌 (마 17:1-13)유월절3Stoning(돌질)?: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을 돌로 치려함 (요 10:22-39)Tomb(무덤)?: 나사로의 무덤 (요 11:1-54)Upset(뒤엎음)?: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음 (마 21-23)Vision(미래에 나타날 일들)?:?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종말에 대해서 설명 (마 24-25)Washing(씻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 (요 13)Xecution(사형)?: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마 26:30-27:56)유월절4Yes(예)?: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이 입증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마 28, 눅 24:1-49)Zion(시온)?: 시온산에서 승천 하실때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심 (눅 24:50-53, 행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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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출처 – 테리 홀, 성경 파노라마, 규장.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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