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속사의 기초

Contents

2-1. 성경의 분류

성경의 체계

성경 시대별 분류표

성경을 인체에 비유하면 역사서는 뼈대이고, 시사/서신/예언서가 살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할 때는 역사서를 충분히 통독하여 성경의 역사적 전개를 숙지하고 나서 각 역사서와 병행하는 시가/서신/예언서를 읽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 그림은 역사서와 그에 대응하는 시가/서신/예언서를 표시한 것입니다. 이 순서를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약 시대별 분류표

다음은 신약성경을 조금 더 세분화 한 분류표입니다.

4복음서는 각각 쓰여진 시기가 다르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가장 윗부분에 배치했고, 나머지 바울 서신과 일반서신은 사도행전을 기준으로 해서 비슷한 시기에 연결시켰습니다.

바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을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에 신약성경을 공부할 때에는 다음 분류표를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2. 구속사 연표

구속사를 공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대구분입니다. 시대구분은 말하자면, 표지판과 같습니다. 성경의 세계에 들어가면 너무나 많은 사건, 의식, 인물, 비유와 상징이 들어 있기 때문에 방향을 잃고 방황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성경 속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중간중간에 표지판 세워놓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는 성경을 구분해 놓은 표이고, 다음 페이지에는 구속사 시대구분을 요약해서 암기할 수 있도록 만든 연표가 있습니다. 아래 성경 분류표를 참고해서 구속사 연표를 암기해 놓으면 구속사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속사의 8시대

여기서는 앞 페이지 구속사 시대구분을 암기하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A4용지를 8등분으로 접은 다음에 각 칸에 다음 내용을 적어보세요.① 먼저, 일요일A부터 일요일B까지 요일을 적으세요.② 해당 본문을 적으세요.③ 대략적인 연도를 적으세요.④ 중심인물을 적으세요.⑤ 활동장소를 적으세요.

구속사의 8시대 연표

필자는 기억하기 쉽게 성경 연표에 요일을 붙여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일요일이 안식일은 아니지만, 안식에서 시작해서 안식으로 끝나는 성경의 구분을 연상하도록 일요일A로 시작해서 일요일B로 마치도록 했습니다.

성경의 시대 구분과 함께 숙지해야 할 사항은 해당 성경과 중심 인물, 장소와 개략적인 시대입니다. 아래 연표는 성경을 공부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사항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두 가지 연표를 모두 암기해서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속사 연표 연습

연습장에 다음 표를 그리면서 앞에서 배운 내용을 암기해 봅시다.

A4 용지를 8등분하고 일요일A부터 일요일B까지 적은 다음에 대략적 연도와 해당 성경, 중심 인물, 지명 등을 채워 넣으면 됩니다. 그 후에 아래 연표로 응용해 나가면 암기하기 쉽습니다.

2-3. 구속사 약도

구속사를 공부하다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정표뿐만 아니라 약도도 필요합니다. 성경 속에서 일어난 사건은 대부분 지중해 연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지중해 연안 지도를 기억해 두면 성경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구속사 약도 암기법

▶ 먼저, 지중해는 위로 배 한 척이 지나간다고 생각하세요. > [지중해]▶ 배에는 장화가 실려 있고, 앞에 조종실이 있습니다. > [로마와 헬라]▶ 배 아래로는 그물이 내려져 있습니다. > [애굽의 나일강]▶ 지나가는 아이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자 아이가 들고 있던 풍선이 벙어리 장갑을 매달고 날아갑니다. > [홍해와 가나안 지역]▶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는 고래가 두 개의 물줄기를 뿜어냅니다. > [페르시아 해]

구속사 약도 연습 : 주변 국가

구속사 약도 연습 : 주요 지명

2-4. 구속사 연결선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구속사적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관점이란, 쉽게 말해서 안경과 같은 것입니다. 검은 렌즈 안경을 쓰면 세상이 검게 보이고, 붉은 렌즈 안경을 쓰면 세상이 온통 붉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관점을 갖는가에 따라서 성경이 달라 보입니다. 우리는 현재 다양한 색의 자기 안경을 쓰고 있어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안경으로 바꿔 쓰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구속사인 것입니다.

‘자기 안경’을 벗고 ‘구속사 안경’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구속사 안경’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하나로 연결하는 ‘구속사 연결선’을 찾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속사 연결선’이란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서로 묶어 주는 소주제들을 연결한 선을 뜻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소주제들을 연결해 가면서 읽으면, 성경의 사건들이 서로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결선들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 그림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하는 선이 있고, 그 선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맨 위의 선은 ‘믿음의 후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속사 연결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장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속사 연결선 = 구속선

워렌 W. 위어스비는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워렌 W. 위어스비, 핵심 성경연구, 나침반. 16).

창세기 계시록
천지창조(1:1) 새 하늘과 새 땅(21:1)
사탄의 첫 인간공격(3:1 이하) 사탄의 최후 공격(20:7~10)
낮을 다스리는 태양(1:16) 태양이 필요 없음(21:23)
어두움과 밤(1:5) 그 곳에 밤이 없음(22:5)
바다가 창조됨(1:10) 더는 바다가 없음(21:1~2)
동산의 강(2:10~14) 천국의 생명강(22:1~2)
인간과 땅의 저주(3:14~17) 저주가 더는 없음(22:3)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3:24) 낙원으로 회복된 인간(22:1 이하)
생명나무 금지(3:24) 생명나무가 인간에게 개방됨(22:14)
니므롯이 반역하고 바벨론을 세움(10:8~10) 적그리스도와 바벨론이 심판 받다(17~19장)
아담의 결혼(2:18~23) 어린 양의 결혼(19:6~9)
뱀의 몰락이 약속되다(3:15) 뱀의 몰락이 성취되다(20:10)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소주제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선들을 구속사 연결선이라고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소주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의 맥은 이러한 여러 가닥의 구속사 연결선(앞으로 ‘구속선’이라 부름)들이 모인 것을 가리킵니다. 즉, 실을 여러 가닥 엮은 것을 동아줄이라 부르는 것처럼 여러 가닥의 구속선들이 모인 것을 구속사의 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여러 가닥의 구속선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구속선들로 이루어진 구속사의 맥 또한 성경을 읽는 독자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게 됩니다.

구속선을 찾기 위해서는, 창세기 1-3장과 요한계시록 20-22장 중에서 공통된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구속선이 하나님의 경륜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속선을 찾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성경을 문맥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의미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단어 중심 해석입니다. 성경 해석의 원칙은 단어가 아니라 문맥을 따라 해석하는 것입니다. 위의 그림이 단어는 다르지만, 문맥을 읽어보면 그 의미가 일맥상통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필자는 구속사의 맥을 이루는 주요한 구속선들을 5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주요한 구속선을 찾아 정리하면, 후손, 언약, 성전, 기업,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속사 연결선은 악보의 5선처럼 하나님의 구속사에 질서와 연속성을 부여하면서 다양한 인물, 사건, 비유, 상징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서 성경을 하나의 통일된 책으로 조직화하게 됩니다.

구속선 설명

주요한 구속사 연결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는 ‘중보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타락한 이후 창세기 3:15에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주로 간접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구약시대에는 아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할 만한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신교적 문화에 젖어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삼위일체를 다신교로 오해할 여지가 많았기에 하나님께서는 우선적으로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르치시는데 주력하셨던 것입니다(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크리스찬다이제스트. 106).

둘째, 그럼에도 나중에 삼위일체를 계시하였을 때, 구약에서 삼위일체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보자’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현대처럼 책을 통해서 교육을 할 수 없는 시대에 믿음 교육을 하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은 사람, 결혼, 성전, 땅, 법률 등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관습을 통해서 삶으로 교육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그것을 구속사의 5선이라는 이름으로 후손, 언약, 성전, 기업, 계명으로 정리했습니다.

구속선에 담겨 있는 핵심적인 개념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보자의 대속’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중보자를 만나게 하는 것이 구속선입니다. 이 구속선을 잘 따라가면서 성경을 읽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신약의 신자들이 구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이유는 구속선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도록 인도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삶에서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다음은 중요한 구속선 5가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후손

첫 번째 선은 후손입니다. 성경은 곧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구속사에서는 이 ‘후손’이 가장 중요합니다. 구속사의 나머지 선들도 이 ‘믿음의 후손’을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후손’이란, 창세기 3장15절 ‘여자의 후손 언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직후,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언약을 하십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사탄을 멸망시키고 인류를 구원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인류 구원의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 ‘여자의 후손’이 ‘그리스도’(히브리어로는 메시아, 한국어로는 구원자)이고,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류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 즉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두 계보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언약’을 믿은 아벨의 계보와 믿지 않은 가인의 계보가 그것입니다. 성경은 아벨과 아벨의 뒤를 이은 셋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그 계보의 절정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합니다. 이렇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계보를 이어가는 믿음의 후손들의 이야기가 성경을 연결하는 첫 번째 연결선이 됩니다.

주의할 점은, 이 후손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아벨은 양으로 제사를 지낸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단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단을 거부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통해 ‘대속’이라는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이미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아담이 가인과 아벨에게 ‘그리스도의 대속’을 뜻하는 ‘피의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아담은 창세기 3장에서 가죽옷을 입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가죽옷은 다른 짐승의 죽음을 통해서만 수치가 온전히 가려진다는 의미로 대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양으로 대속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자기 임의대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아벨은 믿음의 후손이고, 가인은 불신의 후손입니다. 아벨과 가인이 모두 아담의 혈통이지만 믿음의 유무에 따라서 믿음의 계보와 불신의 계보로 나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아벨이 가인에게 살해되자 하나님께서는 셋을 통해서 믿음의 계보가 이어지게 하십니다.

셋 이후의 족보 또한 마찬가지로 혈통에 의해 자동적으로 계보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서 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계보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의 후손이십니다. 또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믿음의 후손이 됩니다. 결국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의 후손들에 의해서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가장 먼저 믿음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언약을 누가 믿음으로 받아들여 믿음의 후손이 되는가를 숨죽이고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믿음의 후손’에 관해서 빠뜨릴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사실은 ‘믿음의 후손’이 복수가 되면, 즉 ‘믿음의 후손들’이 되면 그것은 곧 ‘교회’와 동의어가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회’라는 용어는 신약시대에 가서 나타나지만, 성경에서는 ‘믿음의 후손’의 공동체인 ‘교회’를 처음부터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된 것이 ‘교회’의 시작인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후손’를 중심으로 성경을 본다는 것은 ‘통시적 관점에서 본 교회’를 중심으로 성경을 본다는 말과 같습니다.

언약

두 번째 선은 언약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실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언약은 인격적인 존재가 관계를 맺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친했던 사람이라도 갑자기 사라지거나 멀어질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아무 관계가 없는 남남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계약을 맺어 놓았다면 그 계약에 의해서 서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데, 결혼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신 것은 변하는 상황과 관계없이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S.G. De. 그라아프, 약속 그리고 구원Ⅰ, 크리스찬서적. 1993. 25-29, 39-42).

둘째는 언약의 성취를 통해서 믿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에는 하나님의 경륜이 나타나 있습니다. 경륜은, 다른 말로 장기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용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즉흥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이 아니라 장기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미리 알려주시고 그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보여주심으로써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인간들이 믿음을 갖도록 유도하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 언약의 핵심은 오직 한 가지 ‘여자의 후손(=그리스도) 언약’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서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래서, 언약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언약은 그리스도께 연결된 밧줄과 같아서 언약을 붙들고 나아가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초기 언약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너무 희미하게 알려준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혁주의 성경신학자 게할더스 보스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게할더스 보스는 구원 계시가 점진적으로 발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의 언약이 불완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씨앗과 같아서, 초기 언약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이미 완전한 생명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미 최초의 언약인 ‘여자의 후손’ 언약도 이미 완전한 구원에 필요한 모든 영적 실체(예수 그리스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를 알게 되고, 또 그 언약을 믿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계획에 동참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다윗에게 있기 때문에 북 왕국이 아무리 번영할지라도 하나님의 경륜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는 어느 나라에 동참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다윗 언약이 함께하는 남 왕국일 것입니다. 성경도 남 왕국의 이야기를 서술해 갑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어가는 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또 그 계획을 성취하시는 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전

세 번째는 성전입니다. 성전의 원형은 에덴동산과 창세기 3장21의 ‘가죽옷’ 계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아담이 하나님과 교제하던 장소였고, 가죽옷은 이후 아벨의 제사로 연결되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전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자 방법, 통로를 의미하는데 궁극적으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한 하나님과의 화목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가장 잘 알려주는 최고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죄인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임을 매우 세밀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전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제물과 제사장,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진 배치 등을 통해서도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고, 안식을 누리게 되며, 성전에 대한 계시가 발전할 때 구속사도 전진합니다. 그래서, 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 중심입니다. 민수기에 잘 나타난 것처럼 군대로 비유하면, 성전은 전략이 수립되고 명령이 내려지는 작전본부(헤드쿼터)입니다. 한 부대가 본부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를 때 잘 훈련된 부대라 할 수 있고, 작전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전은 구약의 각 시대의 신앙 수준과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말라기서에서 성전 제사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형식적으로는 제사를 드리지만, 내용적으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들을 통해서 말라기 시대의 영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수 밖에 없는 시대 상황을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한 시대를 평가할 때, 성전을 어떻게 여겼는가를 통해서 그 시대의 영적 수준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업

네 번째는 기업, 즉 땅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가나안 땅이 중보적 의미를 갖는 ‘기업’으로 표현됩니다. 가나안 땅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벗어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가나안 땅의 중보적 의미를 알지 못하면,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이삭이 가나안 땅을 떠났을 때, 아내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는 이유와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신 교훈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기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눈에 보이도록 설명하는 도구입니다.

기업은 하나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 목적이 곧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일생 동안 이루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 백성들의 분투가 나옵니다. 그것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그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이 선택된 이유는 문명이 교차하는 지리적인 이유와 더불어 죄악이 가득 차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자 이전에 구원자입니다. 그래서, 진노의 땅에 구원의 씨앗을 심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의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죽게 하셔서 부활의 구원을 주신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얼마나 이루는가를 통해서 그 시대의 믿음과 믿음을 통한 성취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계명

다섯 번째는 계명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계명이 있는 나라입니다. 계명도 중보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 말은 계명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켜야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이 지켜지는 가의 여부를 통해서 하나님 백성의 믿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계명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계명은 ‘믿음의 계승’입니다. 믿음의 계승을 위해서는 믿음을 물려받을 후대가 있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결혼과 자손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큽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연합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비유가 되고, 후손은 믿음의 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계명은 ‘믿음의 계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계명이 갖는 독특한 역할이 있는데, 그것은 죄를 드러내는 역할입니다. 계명은 그것을 진지하게 지키려고 할 때, 오히려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죄의 노예 된 상태’를 폭로하여 죄의 각성을 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는 데까지 인도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율법과 동시에 성막이 주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서 죄를 깨달은 사람이 성막으로 인도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체험케 하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계명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또 각 시대에 계명이 지켜지는 지 여부를 통해서 그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속선 정리

다음은 구속선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암기하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구속선 요약

≫ 믿음의 후손은 누구인가?∞ 믿음의 후손이 무엇을 믿었는가?▣ 믿음의 후손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가?? 믿음의 후손의 사명은 무엇인가?◈ 믿음의 후손이 지켜야 할 계명은 무엇인가*4가지가 있어야 믿음의 후손이다!

구속선 암기하기

구속사의 5선은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개념들이기 때문에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손가락 암기법으로 암기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엄지는 가장 중요한 후손.

검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키는 언약.

중지는 하늘 가까이 솟은 높은 성전.

약지는 성전 아래 있는 땅인 기업.

소지는 하나님과의 약속인 계명.

구속선 적용

구속선을 활용해서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창세기 38장 해석 : 유다와 다말 사건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는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곤혹스러운 내용입니다.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서 자식을 낳았는데, 윤리적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다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된 최초의 여인이 됩니다.

성경을 교훈적 혹은 윤리적으로 해석해 왔다면, 창세기 38장에서 논리적인 파탄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말의 이야기는 교훈적 혹은 윤리적으로 칭찬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본받고, 아브라함의 실수는 본받지 말자고 해석했다고 합시다. 이런 설명이 창세기 38장에서는 통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말의 행동을 칭찬하자니 비윤리적인 내용이고 비난하자니 다말에 대한 성경의 높은 평가를 반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다말같은 사람도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다는 교훈을 이끌어 냄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고자 하지만 일관적이고 체계적인 해석방법에서 이끌어낸 명쾌한 답변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38장에서 윤리적 혹은 교훈적 해석은 성경 전체를 일관되게 해석하는 해석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은 윤리와 교훈을 뛰어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영적 진리를 제시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구속사입니다.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구속사적으로 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 구속사 5선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째, 후손은 누구인가? 야곱 이후로 믿음의 후손은 야곱의 12아들이 모두 선택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자권은 유다가 계승하였습니다. 장자인 르우벤은 서모와의 간음 때문에,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는 잔인한 행동 때문에 장자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갈 이스라엘의 장자로서 막중한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둘째, 언약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있었고 그 증표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게다가, 유다는 아브라함 가문의 장자권을 계승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유다의 자손으로 오셔야 할 상황입니다.

셋째, 성전은 어떠한가? 족장시대에 성전은 개인적인 제단의 형태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개인적으로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미약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기업은 무엇인가? 이 시기에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업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 헤브론의 무덤만을 기업으로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다섯째, 계명은 무엇인가? 아직 율법이 수여되기 전으로 결혼을 통해서 믿음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믿음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계명이었던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후손

유다(야곱 가문의 장자권을 물려받았으나 계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언약

할례언약(여자의 후손 언약의 징표)

성전

제단(하나님 나라가 미약함)

기업

가나안 땅(헤브론에 무덤을 확보한 상태)

계명

결혼(믿음의 후손 정체성 보존이 필요한 상태)

이제 구속선을 따라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유다는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직 미약한 시기였고, 믿음의 계보 또한 가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유다는 장자권을 물려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적인 조상이 될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지만, 스스로는 그 사실을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아들 엘과 둘째 아들 오난이 죽은 이후에 셀라를 통해서 대를 이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셀라가 죽게 될 경우 구속사의 맥이 끊어지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과도한 염려가 아닙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예와 아달랴가 다윗의 대를 끊으려고 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사탄은 항상 구속사의 맥을 끊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다의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사는 중단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구속사의 비상 상황에서 다말은 자신의 평판과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자손을 잇는 행동을 했습니다. 시아버지 유다의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인간 윤리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임이 분명하지만, 성경이 다말을 예수님의 족보에 굳이 기록한 것을 볼 때, 다말의 행동 동기가 믿음에 의한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유다보다 다말이 아브라함 가문에 주신 하나님 언약의 중요성을 더 깊이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다말이 믿지 않았다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큰 모험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말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지만 용서받은 이유는, 그것이 죄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죄하는 능력이 무한히 크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후손 그리스도를 믿은 믿음의 중요성과 정결케 하는 능력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마태복음 1장에 다말의 이름을 굳이 기록한 이유는, 다말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아무도 알지 못했던 다말의 희생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수 천년 후에 그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동을 가슴 속에 기억하는 분이십니다.

(응용) 예수님 족보에 있는 또 다른 여인 밧세바를 구속선을 활용해서 해석해 봅시다.

사시기의 이해

이번에는 개별 인물이 아니라 사사기 전체를 구속선을 따라 해석하는 연습을 해 보겠습니다. 체크 방법은 위와 같습니다.

첫째, 사사기 시대의 후손은 누구인가? 이스라엘 공동체, 즉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사사들이 믿음을 계승한 상태입니다.

둘째, 사사기 시대의 언약은 무엇인가? 시내산 언약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셋째, 사사기 시대에 성전은 어떠했는가? 성전(성막)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심점을 잃어 위태로웠으며, 단합된 지휘체계를 갖지 못해 무기력했습니다.

넷째, 사사기 시대에 기업은 무엇인가? 가나안 땅을 온전히 정복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민족을 진멸하고 우상을 무너뜨려서 거룩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째, 사사기 시대의 계명은 무엇인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과 성막입니다. 특히 율법에서는 가나안 민족과의 결혼을 금지하고 문화적인 교류 또한 단절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후손

이스라엘 공동체, 그 중에서도 사사들이 중심이 됨

언약

시내산 언약(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됨)

성전

성막(성막에 대한 언급이 없이 방치된 상태, 하나님 나라의 구심점이 없음)

기업

가나안 땅(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상태)

계명

율법(가나안 민족과 결혼 및 교류 금지)과 성막

구속선을 중심으로 사사기 시대를 종합해 보겠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가나안 땅이라는 기업을 정복함으로써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주어진 시기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이 시대 믿음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기간 동안 믿음이 성장하지 못했기에 가나안 땅은 정복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사사들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땅을 부분적으로 차지했기에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 받았습니다(히11장). 그러나, 그들도 구속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언약은 성취되지 않았고, 성전은 방치되었으며, 기업은 차지하지 못했고, 계명을 지키지 않아 죄와 대적의 노예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따라서, 사사기 시대는 불신의 시기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가나안 땅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할 땅’이었고,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언약의 땅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중보자를 의미하는 역할을 하게 된 땅입니다. 또한 장차 이 땅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구체적으로 계시할 성전이 세워져야 할 땅이었습니다.

비록, 사사들을 통해서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고, 믿는 자에게 큰 능력을 주시어 적을 물리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계시되었지만, 언약에 무지하고 성전을 방치한 시대였기 때문에 구속사적으로 암울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응용) 말라기 시대를 구속선을 활용해서 평가해 봅시다.

2-5. 구속의 단계

구속사를 공부해 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단계적으로 가르쳐 가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믿음은 사람에게 전달받는 것이지만, 그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의 맥을 통해서 신자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는데, 그 인도하심의 과정에는 일정한 단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단계들은 구속사의 맥에 강세를 주는 음표와 같습니다. 도도한 구속사의 흐름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큰 소리로 천둥을 울리듯이 외치시는 음성이 있어서,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19:3)고 시편 기자가 노래한 것처럼 온 땅과 세상 끝까지 귀 있는 자들에게 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현대 신학에서는 이러한 단계를 ‘구원의 서정(순서)’라는 이름으로 가르칩니다. 이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성경적인 구원, 성경적인 믿음, 성경적인 영적 체험을 분별하는 기준이 바로 ‘구원의 서정(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체험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체험은 대략적으로 이 ‘구원의 서정(순서)’과 대응하여 주어집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경우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15장에서는 ‘의’로 인정받는 ‘믿음’을 얻게 되고, 창세기 22장에서는 이삭의 번제 사건을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깨닫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신앙은 중간중간에 성장점을 통과하면서 한 단계씩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아브라함의 인생을 통한 신앙 성장과정이 로마서에도 비슷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8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신자의 신앙 성장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놓았는데 그것이 아브라함의 신앙 성장 과정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아브라함의 신앙 성장이 시간 순서에 따라서 일대기적으로 설명되고, 로마서의 신앙 성장이 논리 순서에 따라 배열된 것만 다를 뿐 그 내용은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단계는 구속사의 전개에서는 시간 순서로 배열되어 있고, 신약 성경 로마서에서는 논리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로마서의 복음 설명 과정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마서 1~8장에서 우리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고 성령님께 순종해서 살아가는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의 서정’이라는 단어는 엄밀한 개념을 가진 신학 용어이므로 그 사용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체험하는 단계라는 의미에서 ‘구속의 5단계’라고 이름 붙이고자 합니다. 또한, 암기의 편의를 위해서 ‘구속의 5음’이라는 별명도 사용하고자 합니다.

구원의 과정이 5단계만 있는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구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실제로, 개혁파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구원의 서정’에 관해서 주장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고, 전체적인 흐름만 일치할 뿐입니다. 필자는 구원의 서정을 이야기할 때도, 칼빈과 청교도들처럼 다소 느슨한 구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참고로, ‘구속의 단계’는 필자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개념이 아니라 존 오웬, 존 번연을 위시한 많은 청교도들이 강조한 ‘죄와 심판의 각성’ 개념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단계적 은총’ 개념에서 빌려와 응용한 것입니다.

천로역정에 잘 나타나 있는 청교도의 회심 개념은 한 마디로 ‘죄와 심판의 각성에서 시작해서 십자가 죽음에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면 죄의 각성이 일어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내면에서부터 일어나고 심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마련해 놓으신 은혜의 방편들 즉, 말씀과 기도와 성례전에 순종하면서 참된 믿음을 간구하게 됩니다. 시련 가운데서 믿음을 갖기 위해서 분투하다 보면 하나님의 때에 홀연히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십자가 연합을 체험하게 된다고 합니다(김홍만, 52주 스터디 천로역정, 생명의말씀사). 청교도들이 생각했던 신앙생활은 소원 성취를 위해서든 만사 형통을 위해서든 교회에 나가면 신앙 생활을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신앙 개념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들은 죄와 심판의 각성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이 있어야 시작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에 힘써 순종하며 나아가야 참된 믿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구속의 5단계 설명

그리스도를 체험하도록 인도하는 신앙 체험의 단계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구속의 5단계 구분은 임의적인 구분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므로 전체적인 흐름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죄의 각성 : 사망

오늘날 교회 현실은 ‘잘못된 복음주의’(‘복음주의’와 다름)의 영향을 받아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도가 우리 나라의 복음화에 큰 성과를 거두었고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한계와 부작용 또한 명확합니다. 예수님 영접을 통한 전도는 본의와 다르게 “구원이 인간의 결단에 달려있으며, 하나님은 무조건 구원을 주실 수 밖에 없다”는 오해를 주입시킵니다. 시작부터 신앙이 인본주의로 흐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면 인본주의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청교도를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이며, 그 첫 단계는 죄의 각성”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표적 청교도 중의 한 명인 존 번연이 이러한 사실을 잘 알려줍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은 신자의 신앙 여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역작으로 손꼽힙니다. 천로역정을 동화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천로역정은 교리적 가르침으로 가득 찬 청교도 교리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의 첫 장 제목은 ‘영적으로 깨어나는 죄인’(김홍만, 52주 스터디 천로역정, 생명의말씀사)입니다. 그리고, 부제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영혼이 죄인이라는 것과 죄의 결과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입니다.

문제 해결, 기도 응답이 신앙생활의 첫 단계가 아니라 ‘죄의 각성’이 신앙생활의 첫 단계이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각성’이란, 내면에서 시작된 변화를 의미합니다. 외적인 촉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각성은 절대적으로 내적인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죄에 대한 인식과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죄의 각성이 일어난 사람의 특징은 선한 양심과 영적 감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죄의 각성이 일어난 사람은 자신의 내적 부패상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생겼기 때문에 자신의 죄악 된 본성에 깊이 절망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상대적 ‘의로움’을 주장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몸부림 치게 됩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면에서부터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력하게 흘러나와서 죄악 된 삶을 혐오하고 벗어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또한, 선한 양심이 회복되어서 선악을 분별하게 해 줍니다. 선한 양심이 없어도 구원 받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는 주장은 궤변에 불과합니다.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믿음을 지킬 수 없고, 선한 양심 없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죄의 각성은 신앙 생활의 첫 단계고, 이 첫 단계에서부터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력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쉽게 전하고, 쉽게 구원을 선포하는 인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구원은 어떤 개인이 임의로 나누어 줄 수 있는 상품이 결코 아닙니다. 죄의 각성이 없는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고,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면죄부를 남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지 않는 구원은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이 확산될수록 참된 구원과 복음의 영광은 가리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본주의는 넓은 길이고, 복음을 왜곡하는 다른 복음입니다.

심판 승복 : 심판

위에서 인용한 천로역정(김홍만, 52주 스터디 천로역정, 생명의말씀사)의 첫 장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참된 죄의 각성은 곧바로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합니다. 죄의 각성과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죄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다고 인정하게 되며, 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반항적인 마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이 단계에서 자연인은 세상 지혜를 가지고 자신의 정당성을 변호하거나 스스로 구원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천로역정에서는 이러한 선택을 ‘세상-지혜자’라는 인물이 제시하는 쉬운 길을 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쉬운 길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바른 구원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참된 안식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부름 받은 신자는 정직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임을 인정합니다.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상대적인 의로움을 주장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죄의 각성을 통해서 자신의 본질적인 죄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에 승복할 수 없다면, 다시 죄의 각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초를 튼튼히 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부실 공사를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에 승복한 사람의 특징은 현재 삶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 그대로의 삶으로는 결코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삶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향해 가게 됩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을 향해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원한 형벌이라는 생생한 미래를 직시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찾는 여행을 떠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열망 : 시련

죄가 각성되고, 심판의 정당성에 승복한 사람은 그 다음 단계인 ‘구원에의 열망’으로 인도받습니다. 이 단계에서 신자는 시련을 통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소중함을 알려주시고, 참으로 구원을 열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시련을 허락합니다.

구원을 열망하는 사람의 특징은 시련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야 말겠다는 확실한 고백이 없이는 통과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이 시기에 신자는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기 쉽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구원을 열망한다는 중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시는데, 거짓 교사들은 이런 단계를 거치지 못했기에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추구하도록 방향을 전환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단계에 있는 신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열망할 때까지 인위적인 위로를 해서는 안됩니다. 이 단계는 시련이라는 풀무 속에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거되고, 믿음이 정금같이 정련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기는 영적 조울증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깨달아져서 그분을 열망하다가도 세상의 쾌락과 죄의 유혹에 넘어져 참담한 감정 속에서 고뇌하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중에 각인하면서 이 단계를 통과하게 됩니다.

마치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듯이 영적 씨름을 하면서 신자는 전진하는데, 이 때 야곱처럼 중생(마틴 로이드 존스, 구약을 사용한 복음 설교, 생명의말씀사 참고)을 체험하게 됩니다.

십자가 연합 : 십자가

신앙의 절정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서 연합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완전히 항복하고, 그분의 겸손, 그분의 지혜, 그분의 능력 앞에 완전히 무릎 꿇는 것이 십자가 연합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힘이 없어서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라, 더 겸손하고 더 지혜롭고 더 능력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앞에 중심으로부터 굴복하고 그 분을 주인과 구원자로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개선하거나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킵니다. 그것은 옛사람의 죽음을 통한 새로운 탄생입니다.

*앤드류 머레이의 ‘겸손’, 김응국 ‘십자가’, F.J 휘걸의 ‘십자가와 나’, 제시 팬 루이스의 ‘십자가의 도’, 이용규의 ‘내려놓음’ 등 많은 책들이 십자가 체험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우리의 개성을 말살시키는 것은 아니고, 단지 자연인의 마음 중심에 있는 거역과 반항의 기질, 부패를 유발하는 죄의 근원을 뿌리 뽑는 일입니다. 십자가를 온전히 체험하기까지 우리는 믿음의 순례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 순종 : 성령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받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님께 순종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에 신자가 그리스도를 닮도록 안에서부터 변화를 주도하시고, 신자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즉, 성령님은 신자가 처음에는 예수님의 인격을 갖추게 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의 일을 행하게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안에서부터 밖으로, 내면에서부터 외면으로 신자를 다듬어 가십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신자가 그리스도의 인격을 갖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는 것을 도우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기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연 법칙을 초월하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다양한 기사와 이적을 거부하거나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기대하고 간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탄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속이기 위해서 활동하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일을 무조건 성령님의 사역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영을 분별하는 자세를 가지고 지혜롭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겠습니다.

구속의 5단계 정리

다음은 구속의 5단계를 요약하고, 암기하는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구속의 5단계 요약

사망 : 죄의 각성, 선한 양심이 회복되는 단계심판 : 심판의 정당성 인정하고 죄에서 떠나는 단계시련 : 시련을 감수하고 구원을 추구하는 단계십자가 : 그리스도께 항복하는 단계성령 : 겸손, 지혜, 능력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단계

구속의 5단계 암기하기

구속사의 5단계는 구속사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개념이고, 특히 예언서들을 공부하기 위해서 반드시 암기해야 할 개념이기 때문에 암기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 방법을 활용해서 암기하도록 합시다.

사망은 가장 미약한 시작 단계라서 소지

심판은 두 번째 단계라서 약지

시련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계라서 중지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단계라서 검지

성령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라서 엄지

구속사의 5선은 왼손을 사용했고, 엄지부터 소지 순서로 내려갔기 때문에 구속사의 5음은 반대로 오른손을 사용하고, 소지부터 엄지 순으로 올라가도록 했습니다. 용어는 암기의 편의를 위해서 ‘ㅅ’이 들어간 단어로 배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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