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6 부활 후 예수님이 하신 일 | 관점을 바꾸라 | 눅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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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예수님은 부활 후 무슨 일을 하셨나?

안녕하세요? 교회 절기로는 부활절이 지나고, 성령강림절을 향해 가는 기간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아아보려고 합니다.

큰 일을 겪으면 마음과 생각에 변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암 수술을 마친 후에 건강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건강식품을 잔뜩 구입한다거나, 몸이 안 좋아지면 운동을 안하던 사람이 등산을 다니기 시작하는 일이 있습니다. 교통 사고를 당한 사람은 차를 살 때, 디자인보다 안전성을 더 따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큰 일을 겪은 후에 하는 행동을 보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하신 행동을 보면, 예수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뭘 중요하게 여기셨을까요?

복음서 마지막 장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 후에 하신 행동이 잘 나와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흩어진 제자들을 찾아모아서 성경을 재교육하셨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성경을 재교육하셨다는 점이 아니라 이때 성경 재교육은 성경을 보는 ‘관점’을 교육하셨다는 데 점이 중요합니다.

신천지, 구원파, 통일교 등 이단들도 정통교회와 같은 성경을 봅니다. 그런데, 왜 이단이 되었을까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관점은 색안경과 같습니다. 생각의 색안경입니다.

바람직한 건 색이 없고, 깨끗하고, 도수가 딱 맞는 안경이겠죠? 하나님이 주신 안경을 써야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안경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은 누가복음 24:13-35입니다.

누가복음 24:13-27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1. 흩어진 제자 찾기(13-24)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여행을 못하니까 안식일 다음날 가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부활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확인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소문을 안 믿은 겁니다. 또 32절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한 부분을 보면 열정이 사라진 이유도 있습니다.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열정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귀차니즘에 빠지고, 무기력해 집니다. 제자들이 그런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비슷했습니다. 좌절로 인해 충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이죠. 그러면서 맞춤형 처방을 내리십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제자마다 좀 다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에서 베드로에게 내린 처방과 지금 글라바와 다른 한 제자에게 내린 처방이 세부적인 면에서는 좀 다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면에서는 공통적인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공통적인 처방은 바로 ‘성경 재교육’이었습니다.

2. 성경 재교육: 관점 교육(25-27)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여기서 선지자들은 성경을 의미합니다. 밑에 모세와 선지자의 글이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이죠.

구약성경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내용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핵심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입니다. 글로바를 포함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좌절하고 절망했냐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그들에게 이해가 안되었고,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잘 믿으면 복받고 형통하고 구원받는다” 이 말이 좋으세요. 아니면, “예수님 잘 믿으면 고난을 받다가 영광에 들어간다” 이 말이 좋으세요. 앞에건 번영주의고, 뒤에 건 복음주의입니다. 비슷한 거 같지만 정반대의 관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잘 믿으면 복받고 형통하고 구원받는다”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번영주의를 믿은 거죠. 그런데, 예수님 잘 믿으면 무조건 복받고 형통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충격에 빠진 겁니다.

복음주의의 관점은 “예수님 잘 믿으면 고난을 받는다”입니다. 물론 구원 받지만 구원은은 죽은 후의 문제니까 고난 받는다는 부분에 주목하게 됩니다.

“예수님 믿기 겁나는데요” 하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종교라는게 잘 살고 형통하려고 믿는 거니까요. 점을 치고, 절에 가고, 교회 다니는 이유가 다 그렇죠. 그래서, 단순히 교회 다니는 거와 예수님을 믿는 건 종교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겁겁니다.

다행인 것은, 성경에서 가리키는 ‘고난’이 단순히 ‘고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난은 영광을 위한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것”이라고 하셨죠? 영광이라는 건 경험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시행착오가 쌓였을 때 도달하게 되는 결과입니다. 그런 경험 혹은 시행착오를 성경에서는 고난이라고 표현합니다. 어쨌든, 고난은 영광광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고난은 필수적인 것이니까 피하려고만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고난 없이 성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듯이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고난 중 형통’이 있습니다.

3.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자신 안에 있습니다.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성장을 통해서만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성숙은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예를 들고 싶습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시종으로 일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하게 하신 것이라면 노예에서 해방되는 게 진정한 형통일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노예에서 죄수로 형편이 더 안좋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고, 형통하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결과적으로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노예로서, 죄수로서 고난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요셉이 성장한 결과는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총리는 이인자입니다. 바로와 애굽 백성 중간에서 균형을 잡지 않으면 바로 쫓겨날 수 있는 위치입니다. 요셉이 성장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총리를 시켜줘도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의 예는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고난을 주신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성장해야 영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고생이라고 생각해서 빨리 벗어나려고 하거나 좌절하고 절망하면 안됩니다.

고난이 영광으로 가는 필수과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게 정상이라는 겁니다. 그걸 알 때, 신비한 일이 벌어집니다. 고난 중에 형통하게 됩니다. 고난이라는 과정을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놀라운 인도를 받게 됩니다. 복음의 신비를 체험합니다. 내명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4. 예수은 부활 후 성경보는 관점을 가르치셨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을 흩어졌던 제자들을 모아서 재교육하셨습니다.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고난을 무서워하고 피하려고만 하는 제자들, 고난 때문에 절망, 좌절한 제자들에게 그런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성경을 번영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한 결과입니다. 고난의 불가피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기도 많이하고, 금식하고, 능력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선동한 결과입니다. 기도 많이하고, 금식 오래하고, 능력 크게 받아도 고난을 통한 성장이 없으면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스스로 변화가 없고, 가정이 불화합니다. 겉보기에 무언가를 이룬 것 같아도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가 없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은 성장으로 가는 필수과정이다. 이렇게 알려주시면서 성경을 이런 관점으로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명심해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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