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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7월 14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13:1-2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위대해 보이는 것들이 무너질 때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뒤편으로 가면 배다리 호수가 있고, 그 호수 뒤편으로 눈에 띠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웅장한 건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배다리 호수가 산책로를 잘 꾸며놔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러 자주 나오고, 도서관도 있어서 학생들도 많이 다닙니다. 도서관 맞은 편, 산책로 바로 옆에 있으니까 매우 좋은 위치입니다. 그 건물이 무슨 건물이냐면, 하나님의 교회 건물입니다. 이단교회 건물이 아주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위치가 좋아서 그런지 제가 지나다니면서 보면 고급차가 즐비하게 서 있습니다. 그 교회를 지나가면 위축감이 느껴집니다. 이단교회라고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신천지 때문에 교회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교회 문화도 바뀌었습니다. 신천지 때문에 교회에 새로운 성도가 오는 것을 무조건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신천지가 침투할까봐 새로운 성도를 경계하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신천지가 관심이 없어서 문제가 안되는데, 노회 큰 교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택역에서 흰 티를 입고 복음성가 비슷한 걸 입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까 선천지였습니다. 밝게 웃으면서 당당하게 전도하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이단이 이단이라고 해서 무시했고, 스스로도 움츠러들어서 몰래 전도했는데, 이제는 뒤바뀌어서 대놓고 전도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큰 틀에서 보자면 정통 교회가 권위를 잃은데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가 권위를 잃으니까 이단이나 정통 기독교나 그게그거다 생각하게 되고 기독교인도 명분을 잃었습니다. 이단도 정통 기독교를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제가 생각하는 것은, 정통 기독교가 실수한 일이 무엇일까? 입니다. 번영주의, 힘으로 찍어누르려는 전도법이 있었습니다. 그런 전도법이 잘못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큰 교회, 건물을 보여주면서 웅장한 건물로 전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교회 건물이 전도 방법이다. 예배당을 잘 지어놓는 것이 가장 좋은 전도법이다 라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생겼냐면, 웬만한 정통교회 예배당보다 크고 멋있는 건물을 지은 이단교회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쁜 의도로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부메랑처럼 돌아온 것입니다. 정통 기독교에서 십 여년 전에 했던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뭐라고 할 수 없어요. 큰 예배당이 곧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큰 예배당을 지었고, 웅장한 건물은 하나님의 은혜고 복받은 증거라고 줄기차게 말했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건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우리는 외형적인 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츤 건물, 많은 사람들의 지지, 인기, 명성, 평판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가르치셨을까요?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도 지금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통교회에서 주장했던 것과는 다르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오실 때, 제장 중 하나가 예수님께 예수님 이 건물 멋있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본문 1절
이렇게 질문한 이유는 예수님이 맞장구 쳐주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치가 없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런데, 맞장구 쳐주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비뚤어진 분이 아니였습니다. 이게 본질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절
굉장히 섬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웅장한 건물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AD 1년입니다. 40여년 후인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수살렘을 침략해서 성전을 파괴하고 지역을 초토화시켰습니다. 모든 건물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땅을 갈아엎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람들이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때가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 초기입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나라를 세웠는데 그게 1948년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정부가 수립할 때 모였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민족으로 남았다는게 기적입니다.
어쨌든, 성전이 다 파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초고층빌딩 들어가시면 위축되시잖아요. 엘리베이터도 초고속입니다. 명품매장도 있고, 차들도 많이 다니고, 주차장도 넓고, 어떻게 이런 건물을 만들 수 있을까? 감탄하게 합니다.
일반 건물도 위축감을 주는데, 종교 건물은 얼나나 위축감을 주겠습니다.
분당의 요한 성당, 서울의 명동 성당만 봐도 얼마나 웅장합니다. 그런 건물만 봐도 종교심이 우러나는데, 유럽의 대성당들은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종교심이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건물 안에서 미사가 드려질 때, 수준 높는 성가대가 단정하게 예복을 입고, 성가를 부르면 없던 종교심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그런 종교심을 깨뜨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종교심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굉장히 강하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니네들 그런 것 의지하지 말아라. 그런 식으로 생겨난 종교심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시 것입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런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어요. 약간 방향은 다르지만, 무엇이냐면, 엘리트주의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공부를 잘해야 한다. 신앙인이 높은 지위에 가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걸 보고 교회에 다니게 된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트주의도 좋은 의도지만,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교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이걸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웅장한 건물도 있고, 평판있는 사람도 있고 그래야 전도도 되고 믿음도 생겨나지 않을까?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건 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진리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이단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사회에서 비난을 받으니까 교회를 사랑하시는 분들은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비난을 받고, 목회자가 공격을 당하니까 걱정을 하고 기독교의 위기라고 말씀하시는데,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위기 아니니까 겁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회자가 비난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목회자가 안 되려고 할 테니까. 목회자는 그렇게 화려한 직업이 아닙니다. 화려함보다는 화려하지 않은 경우가 99%입니다.
교회도 비난을 받는데, 비난 받아야 합니다. 교회도 이익단체처럼 되었습니다. 자기 이익을 보호하려고 어거지를 부립니다. 사회전체적인 면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고난받을 강해졌고, 비난받을 때 정결해졌습니다. 교회가 비난을 받는다고 걱정하거나 겁을 내는 것은 그 애정은 감사하지만, 불필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잘모르고 하는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성전에 대해서 칭찬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꺽으셨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것이 눈에 보이는 데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존경하십니까? 젊었을 때는 성공한 사람들 존경하잖아요.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정주영 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매우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게 존경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니까 존경심이 사라졌습니다.
불법과 사기를 서슴치 않고, 경쟁자를 꺾으면서 세운 왕국이더라구요.
경험이 쌓이다보니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존경스럽더라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속에 남는 사람은 생각을 깨우쳐준 사람이더라구요. 제가 영향을 받은 사람이 비신앙으로는 백낙청교수가 있고, 신앙인으로는 마틴 루터 킹, 앤드류 머레이, 로이드 존스 같은 분이 있습니다.
백낙청 교수는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라는 평론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사랑의 힘이라는 설교로 생각을 깨우쳐 주었고,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이라는 책으로 마음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다들 진리의 한 조각을 가기고 있다가 전달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본질
시간이 지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낡아지고 희미해집니다. 썩어집니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변치 않는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들의 사상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때로는 엑기스를 먹으면 맛을 못느낍니다. 희석된 것을 먹어야 맛을 알게 됩니다. 커피를 먹는데, 처음에는 믹스커피가 그렇게 맛있더라구요.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야 원두커피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 진리의 핵심은 뭐냐면 대속의 사랑입니다. 대속은 잘못이 없는 사람이 잘못한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것입니다. 아내와 살면서 왜 힘들었냐면 대속을 실천하기 싫어서 힘들었습니다. 아내가 잘못한게 명백하면 기가 삽니다. 니가 잘못했잖아.
아무리 고상한 척 하는 사람도 대속은 실천하지 못합니다. 니가 잘못했지 내가 잘못했냐. 니 잘못은 니가 해결해라.
대속은 어렵습니다. 인격이 돼야하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전은 어떤 곳이냐면, 대속의 제사가 드리지는 곳입니다. 동물이 대속 제물로 죽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이 대속의 제사가 드려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성전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건물을 보았잖아요. 인간적으로는 얼마든지 이해가 됩니다. 제자들은 성전에서 인간이 지은 건물의 웅장함과 위대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봄으로써 생겨난 종교심에 들떴습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인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종교심을 믿음으로 착각하면 믿음이 없으면서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이 성전에서 보아야 할 것은 웅장한 건물과 그 건물로 보고 생겨난 종교심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에서 대속을 보았다면 마음이 들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쁜게 아니라 슬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 쓴다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왜냐하면, 대속은 우울하고 고민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으려고 할 때 우리는 기쁜게 아니라 슬프로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이 길을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복받고 잘 살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제가 아쉬운 점은 이것입니다. 정통 기독교가 잘 나갈 때 이걸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잘 나갈 때 많은 웅장한 예배당이 세워질 때 건물에 건물이 복받은 증거라고 가르치지 말고, 대속의 사랑을 보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입니다.
모든 눈에 보이는 것들은 부침이 있습니다. 정통 기독교도 그렇고 이단도 그렇습니다. 잘 나갈 때가 있고 쇠퇴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사건과 건물들의 운명입니다. 잘나가는 이단들도 쇠퇴할 것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이것이 참된 진리라고 깨달은 사람은 외형적인 것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고 기독교를 믿은 사람은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외적인 사건, 건물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보게 됩니다. 내가 이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초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겉보기에 위대해 보이는 어떤 것들을 보고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실망할 때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대해 보이는 것들이 무너질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내가 진정으로 믿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성전을 보고 느꼈던 그 감탄, 예수님은 그것이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거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거 무너질 거야. 무너질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대한 것들을 보고 믿음을 가졌다면 여러분은 것들을 의지하는 사람을 반드시 실망하게 됩니다. 비난하고 욕할 때가 오게 됩니다.
대속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존엄성을 잃을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지능 높은 동물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인류는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대속의 사랑이야 말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들어온 하나님의 보석같은 선물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하늘의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