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2_영웅 시대의 숨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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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12일 이랜드 경영설명회 설교
룻기 01:01~05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개역개정) 룻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새번역) 1[엘리멜렉과 그 가족의 모압 이주] a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a 또는 ‘사사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사사 또는 재판관 : 왕 제도가 있기 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지도자들) 2그 남자의 이름은 b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c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d말론과 e기룐이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서, 에브랏 가문 사람인데, 모압 지방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살았다.(b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 c ‘기쁨’ d ‘질병’ e ‘황폐’) 3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4두 아들은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f한 여자의 이름은 g룻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h오르바였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f 히,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말론과 룻, 기룐과 오르바의 부부 관계의 혼란을 막으려고 기록. 순서를 바꿈(4:10 룻은 말론의 아내임) g ‘아름다움’, ‘친구’ h ‘이마 갈기’, ‘후방’) 5그러다가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으니,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잃고, 홀로 남았다.

설교 듣기

도입

방선기 목사님과 다른 사목님들을 도와 ‘말씀따라살기’ 큐티집을 편집하고 있는데, ‘말씀따라살기’를 잘 애용해 주시기를 바라는 사심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설교를 듣고 도움이 되셨다면, ‘말씀따라살기’를 잘 활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권투 선수들의 펀치는 덩치가 아무리 큰 사람도 KO시킬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들의 펀치가 강력한 이유는 먼저 펀치를 내지르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 펀치에 온몸의 체중을 실어서 때리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큐티와 성경 통독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큐티를 하는 것이 펀치를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성경을 통독하는 것은 펀치에 체중을 싣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큐티와 함께 성경 통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따라살기는 통독과 큐티의 균형, 그리고 직장에서의 적용을 목적으로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저는 성경 통독의 관점에서 룻기를 해석해 보고, 통독과 큐티가 결합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풍성한 유익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큐티를 오랫동안 해 왔는데 만약에 성경 통독을 병행한다면 큐티로 다져진 말씀의 기교에 성경 전체의 무게가 실려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룻기를 성경 통독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룻기는 사사기 다음, 사무엘상하 앞에 있는 짧은 성서입니다. 전쟁 영웅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사사들의 이야기와 다윗이라는 걸출한 영웅 사이이 끼어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바르게 평가받지 못하는 성서이기도 합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마침 오늘 큐티 본문이 룻기 1장이기도 합니다.

성경 통독의 관점에서 룻기를 묵상하면 다음과 같은 풍성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룻기는 사사기의 결론 –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혼란을 끝낸다

첫째 룻기는 사사기의결론입니다. 룻기가 사사기의 결론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혼란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완성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쟁으로 혼란한 시대에는 전쟁 영웅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영웅들에게 사람들은 환호하고 열광합니다. 그런 영웅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혼란스러운 전쟁의 시대를 끝내주기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기대와 좀 다릅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기대는 전쟁의 시대를 끝내는 길은 매우 강력해서 다른 영웅들을 압도할 수 있는 최강의 영웅이 나타나면 마무리될 것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성경의진행은 어떻습니까? 사사기의 후반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사기의 후반부에는 삼손이 등장합니다. 삼손은 그 앞의 어떤 사사들보다 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영웅 중의 영웅입니다. 아이들 용어로는 ‘끝판왕’입니다. 하지만, 삼손이 전쟁의 시대를 종식시키지 못합니다.

끝판왕 삼손이 실패하면 다음에는 또 어떤 영웅이 등장할까 궁금해하는데,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영웅이 나옵니다. 바로 룻기의 영웅들입니다. 나오미와 룻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영웅들의 시대에 전혀 영웅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민에 실패해서 가족을 잃는 비극적인 여인 나오미와 외국인 며느리 룻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들이 전쟁의 시대를 끝내게 됩니다.

만약 “그런 일은 성경에만 나오는 얘기 아닙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예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1337~1453년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127년 동안 싸운 일명 백년 전쟁을 끝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 당시는 진짜로 중무장한 기사들이 앞서서 전쟁을 주도하던 시대였는데, 놀랍게도 ‘기사의 끝판왕’이 아닌 ‘평범한 여인’ 잔다르크가 기사들의 백년 전쟁을 끝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섭리는 성경 혹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인간의 역사 속에 명백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룻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각 개인의 각성했을 때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메세지를 우리에게 줍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기독교 선교를 확산해서 이 세상을 변화시킨 주역은 무명의 평신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룻기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다윗이 진정한 왕이 된 이유를 설명 – 하나님의 축복은 고난으로 포장되어 있다

둘째로 룻기는 다윗이 진정한 왕이 된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룻기는 사사기의 결론이면서 사무엘서의 서론입니다. 룻기 다음에는 사무엘서가 오는데, 사무엘서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 족보를 보면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호칭을 붙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예수님의 족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속해 있고 그 중에는 왕들도 많이 있지만 왕이라고 불린 인물은 다윗 뿐이라는 얘기입니다. 다윗만이 진정한 왕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책이 룻기입니다.

얼핏보면, 사사기의 사사들과 다윗은 매우 비슷합니다. 다윗이 살았던 시대도 사사기의 연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왕이 되고 사사들은 사사로 머물고 말았을까요? 그 이유는 다윗이 룻의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많은 경우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여서 배달이 되는데, 그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감싸인 축복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 안목을 가졌던 여성이 룻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을 통해서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통독의 관점에서 그의 증조 할머니 룻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왜 하나님의 축복이 고난으로 포장되어야 하는지 그 필연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고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치료하고 인도할 사람은 자신이 직접 그 고통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왕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입은 치료자’에서 육신의 의사는 다른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임상 실습을 하지만, 영혼의 치료자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임상 실습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고 동시에 그 고통을 치료할 영혼의 의사가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자기 몸으로 상처받고 치료하는 임상실습을 해야만 합니다.

자기 몸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믿음의 백신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필연적으로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여서 배달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사사 시대에 그것을 시험을 처음으로 통과한 사람이 룻이었고, 그 룻의 유전자는 다윗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룻기의 마지막은 그래서 룻이 다윗의 증조할머니라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입니다. 룻기의 마지막이 룻이 다윗의 증조할머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족보를 알려주려는 의도가 아니라 룻이 다윗의 믿음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셋째, 숨은 영웅들 – 하늘 나라에서 유명한 사람

통독의 관점에서 본 룻기의 세번째 교훈은 룻기가 하늘 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준다는데 있습니다. 제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분들이 어리둥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룻이 무슨 대단한 일을 했는가?” “룻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다른 신앙 위인과 같은 반열에 오늘만큼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합당한가?” 같은 의문들일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에 룻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데서 우리는 룻에 대한 성경의 평가가 높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과 우리의 평가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한계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얼마나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는지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그의 출발점이 어딘지입니다. 요새 유행하는 수저론이 있지 않습니까? 금수저, 은수저, 스탠수저, 흙수저 말입니다.

룻은 말하자면 흙스저 중의 흙수저입니다. 룻은 이방이었고, 여인이었고, 과부였습니다. 루저 중에 루저입니다. 그녀가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도달한 지점이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평범한 것들입니다.

비유하자면,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룻은 출발점 100m 뒤에서 시작한 것과 같습니다. 그녀가 엄첨한 스피드로 달려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지만, 그녀가 도달한 지점이 다른 사람에게는 출발점에 불과했던 것과 같습니다.

물론 사람들도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 평가도 초점은 출발점이 아니라 성공에 맞춰져 있습니다.

불리한 출발점에서 시작해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릅니다. 우리는 룻을 보면서 불리한 조건과 어쩔 수 없는 환경, 뜻하지 않은 불운을 공정하게 평가해 주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쓴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을 읽다가, 군대에서 행군하던 도중 이름모를 산에서 보았던 들꽃처럼 제 마음을 뒤흔드는 문장을 발견했었는데, 그 문장은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들 중에 하늘 나라에서 무명한 사람이 많고, 이 세상에서 무명한 사람 중에 하늘 나라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룻은 이 땅에서 무명한 사람이었지만, 하늘 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불리한 출발점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고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을 인정받고 싶고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못할 때 좌절하기도 하고 반칙을 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버리고 비우라고 말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자주 들으면 오히려 변형되거 잠재될 뿐입니다.

저는 해결책으로 이렇게 권유하고 싶습니다. 그 욕망을 버리지 말고 업그레이드 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불과 몇 십년에 불과한 이 땅의 명성을 추구하지 말고 룻처럼 영원한 나라에서 명성을 추구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고 싶습니다. 사막에서 홀로 걷는다고 해도 분명한 방향과 목적지를 알고 있다면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른 사람들을 확신을 가지고 이끌 수 있는 산 지식이 될 것입니다.

룻을 묵상하면서 우리 각 개인이 각성해야 하고 또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한 것에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정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겪은 시련들을 통해서 어쩌면 이랜드 그룹과 이랜드 리테일에 룻과 같은 숨은 영웅들이 잉태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생생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가운데 내면에 믿음의 백신을 생성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숨은 영웅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만든 믿음의 백신을 통해서 이랜드 그룹과 이 나라 이 민족에게 다윗의 시대와 같은 찬란한 영광이 도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어느 직장인의 기도문

매일 아침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시작하게 하여 주옵소서.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나로 인하여
남들이 얼굴 찡그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상사와 선배를 존경하고 아울러 동료와 후배를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아부와 질시를 교만과 비굴함을 멀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루에 한번쯤은 하늘을 쳐다보고
넓은 바다를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시고
일주일에 몇 시간은 한 권의 책과 친구와 가족과
더불어 보낼 수 있는 오붓한 시간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한가지 이상의 취미를 갖게 하시어
한 달에 하루쯤은 지나온 나날들을 반성하고
미래와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시인인 동시에 철학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작은 일에도 감동할 수 있는 순수함과
큰일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범함을 지니게 하시고
적극적이고 치밀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할 수 있는 용기와
남의 허물을 따뜻이 감싸줄 수 있는 포용력과
고난을 끈기 있게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더욱 길러 주옵소서.
직장인 홍역의 날들을 무사히 넘기게 해주시고
남보다 한발 앞서감이 영원한 앞서감이 아님을 인식하게 하시고
또한, 한걸음 뒤처짐이 영원한 뒤처짐이 아님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자기반성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시고
늘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매사에 충실하여 무사안일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매일 보람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하루를 마감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직장을 그만 두는 날
또한, 생을 마감하는 날에
과거는 전부 아름다웠던 것처럼
내가 거기서 만나고 헤어지고 혹은 다투고
이야기 나눈 모든 사람들이 살며시 미소짓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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