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가난 때문에 자선병동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의사의 실수로 왼편 눈 아래가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더군다나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있었습니다. 12살 때는 그의 부모가 이혼했고 학교를 12번이나 옮기는 등 학창시절도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맥도 자본도 없는 그에게 돌아오는 역은 별로 없었습니다.
단역 배우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기에,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영화관 안내인, 수위,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보디가드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덧 배우로서는 부르는 곳이 없을 법한 서른 살 나이에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수중에는 불과 106달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안 되겠다, 이번에는 끝을 봐야겠다!”
그는 비장한 각오로 창문을 걸어 잠그고 전화 코드를 뽑아 버린 채 영화각본을 하나 써냈습니다. 영화는 28일 만에 만들어졌습니다. 개봉 후의 반응은 엄청났습니다. 그 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50배가 넘는 5,6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이런 아포리즘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느니 차라리 실패를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