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전능하고 신실하신 하나님

# 본문

창세기 1:1~2, 신명기 7:9

# 설교 듣기

# 핵심 구절

(창 1:1~2)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 한줄 요약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신실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은 감탄을 자아내고 신실한 성품은 감격을 불러일으킵니다.

# 개요

교리 설교를 시작합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바른 관점을 교리라고 합니다. 성경 공부의 시작은 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0. 갑질의 유혹 :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우리 나라에 갑질 문화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때 유행했던 조폭 영화도 비슷합니다. 조직 폭력배가 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갑질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비난을 받아서 결국 몰락하게 됩니다.그런데,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전지라는 것은 모든 것을 안다는 의미이고 전능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이 사실을 매우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입니다. 이 짧은 선언에 담긴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어찌어찌 대충 만든 세상이 아닙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기계같은 세상입니다. 그것은 어떤 기계를 만들었지만, 스스로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구성 요소와 작동 원리 그리고 그 결말까지 완전하게 알고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소에 성질을 부여하셨고, 모든 행성에게 원리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책이 출판될 때는 이미 결말이 지어진 상태에서 출판됩니다. 영화가 상영될 때는 이미 결말까지 완성하고 상영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이미 세상의 시작과 끝이 완성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일을 속속들이 정해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완성된 책이나 영화 속의 인물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결말이 지어진 책이나 영화라고 해서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긴장감을 자아내고 흥미를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말을 감추십니다. 신비 속에 그 결말을 감추십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2.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ᅟ한 분이십니다. 다른 말로는 변덕스럽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원리를 만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만든 원리를 함부로 어기지 않으십니다. 자기가 원리를 만들고 자기가 원리를 어기는 것은 사람이 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함부로 원리를 어기지 않으십니다.

성숙한 인격은 신실합니다. 자기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사람은 미성숙한 인격입니다. 어떤 일을 진행하다보면 처음 생각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고 다른 행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성숙한 인격입니다. 성숙한 인격은 행동을 하기 전에 충분히 다양한 상황을 예상하고 결정합니다. 그리고 일단 시작한 행동은 꾸준히 진행합니다.

우리가 기적와 달리 하나님께서 기적에 인색한 이유도 신실한 성품 때문입니다. 기적이 많이 일어나면 좋을 것 같지만, 기적이 많아지면 삶이 불안해집니다. 돈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경제 활동이 불안해지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적이 많아지면 기적을 바라면서 일탈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일상은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 삶의 기초이고, 신앙의 근원입니다.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성실하게 할 일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게 됩니다. 변덕스러운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은 우리를 감탄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존경을 자아냅니다.

‘힘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가 아니라 ‘힘이 있어도 신실해야 한다’로 바뀌어야 합니다. 힘이 있다고 원리 원칙을 무시하고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을 때 더욱 원리 원칙을 지키면 존경받습니다. 성숙한 인격은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한 번 세운 원칙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성숙한 인격은 신실합니다. 쉽게 변하지 않고 바꾸지 않습니다.

3. 유능하고 신실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고 신실한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하지 않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신실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으로 그 능력을 발휘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에만 집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직 기독교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그토록 강력한 이유는 하나님의 전지전능 뿐만 아니라 신실하심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우리에게 감탄을 일으킨다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감격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과 신실하심이 가장 잘 드러난 곳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생활에서 유능해지고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을 더 닮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탄과 감격

조폭 영화를 보면 조직 폭력배가 법으로 응징할 수 없는 혹은 법으로 응징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상황에서 나쁜 사람을 무찌르는 모습을 보여줄 때 통쾌함을 줍니다. 하지만, 조직 폭력배를 존경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통쾌해 하거나 감탄할거나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존경은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리석어 보여도 오랫 동안 원칙을 지킨 사람을 우리는 존경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우리를 굴복시키고 감탄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존경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감탄하고 신실하신 성품에 감격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유능하고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과경배. 100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3

2017년 08월 27일 주일 설교
신명기 08:01~10

 

설교 듣기

 

[핵심 구절]
(신 8:5~6) 5 당신들은, 사람이 자기 자녀를 훈련시키듯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도 당신들을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겨 두십시오. 6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하십시오.

[도입]
우리가 사는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요?

 

[설교 요약]
오늘은 5절과 6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은 훈련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길을 가게 하신 이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갈 수 있는 훈련을 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천국의 모형일까요? 아닙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천로역정을 보아도 해석자의 집을 지나야 십자가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배워야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이라는 것이 행위적인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방편이라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마련해 놓은 구원의 길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홀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 오늘날 가나안은 직업과 소명입니다 –창 1:28, 12:1

하나님은 광야를 가더라고 방향 없이 가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목표를 정해주고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모든 신자에게 공통되면서도 다릅니다. 그것은 직업이라는 소명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직장이 아니라 직업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직장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면 여러분은 다른 일을 하게 될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직장은 있지만 직업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업, 내가 일생동안 발전시키고 계발해야 할 나만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에 매진해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사람에게 통치자라는 직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직업은 인간의 타락 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단지 난이도가 높아졌을 뿐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워낙 많아져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이 매우 작게 세분화되어 있지만 우리 모두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작게 세분화된 직업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영역을 발견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이 현재에는 직업으로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직업을 찾으십시오.
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직업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느 직장에 들어갈 것인가에 목 매달지 말고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고민하게 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그곳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 오늘날 광야는 바로 인생 자체입니다 – 계 7:14

광야는 곧 인생 자체입니다.

(계 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시록 7:14에서 큰 환란는 ‘테스 세오슬립스 테스 메갈레스’라고 하는데, 영어에서는 ‘the great tribulation’이라고 합니다. 원어나 영어를 알 필요까지는 없는데, 한 가지 한국어가 갖는 한계 때문에 주의할 필요는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큰 환란’이 아니라 ‘그 큰 환란’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종말 때에 있을 대환란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다르게 해석하는데, 여기서 흰옷입은 사람들은 종말때 대 환란을 거쳐서 들어가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환란이 있기 전 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겪은 그 큰 환난은 무엇일까? 저는 각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지난 주에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스캇 펙이 ‘인생은 고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게 불교식 용어이기 때문에 ‘인생은 환란이다’라고 고치고 싶습니다. 인생은 환란입니다. 스캇 펙의 말처럼 인생을 환란이라고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환란을 헤쳐나갈 힘을 비로소 얻게 됩니다.

 

  • 오늘날 만나와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요 6:51, 고전 10:4

그러나 환란을 헤쳐나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도를 만나는 일입니다. 광야는 힘든 곳이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만나기 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생수를 마신 일은 모두 그리스도를 체험한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번영주의적 사고를 버리면 됩니다.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부흥사들이 많아지고 방언이 일반화되고 영성이 들어오기 전에 오히려 기도 응답이 더 많았습니다. 힘들 현실 속에서도 분투하면서 겸손하게 신앙 생활 할 때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지금 더 많은 기도 응답을 체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동행하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번영주의에서 벗어나니까 예수님을 더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번영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기도, 방언, 영성 등으로 빨리 환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나를 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라고 이해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그리스도를 만날 것입니다.

 

[결론]
힘든 일상을 빨리 벗어나는데 중점을 두지 말고 그리스도와 동행합시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2

2017년 08월 20일 주일 설교
신명기 08:01~10

 

설교 듣기

 

 

[이스라엘이 차지할 아름다운 땅]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한줄 요약]
우리가 사는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요? 인생은 광야와 같은 일상으로 이루어져있으면 그 일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개요]

  1. 광야는 외적 현실이 아니라 내적 상태를 변화시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분몬은 신명기이며, 모세가 광야의 의미에 대해서 나중에 회고한 내용입니다. 광야를 왜 지나야 했으며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이 광야와 같은데, 왜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안다면 고통을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를 지나게 된 목적이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라고 알려줍니다. 기독교계에서 아니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책으로써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인생은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신경증, 즉 정신적인 문제의 원인은 문제를 회피하려는데 있다고 칼 융의 말을 인용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보게됩니다. 물론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가끔 보게되는데 그 근본 원인은 문제를 회피하려고 해서 생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정하면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면서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이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다. 책임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매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다.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임을 알아야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각자는 영원히 희생자로 남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인도한 이유가 그들을 내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면, 오늘날 신자들에게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일상의 광야로 인도하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광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광야의 목적이 내적인 성장로 이끄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1. 광야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입니다.

3절에서 알수 있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광야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즉, 본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인 것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야의 진정한 목적은 가나안 입성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요 6:49~51)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즉, 광야에서 그들이 먹은 만나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전 10:1~4) 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게는 가나안이 불필요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는 이미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물질적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습다.

우리는 일상의 광야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축복이 불필요합니다.

 

(빌 4:11~14)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바울은 오히려 고난을 자처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이 더 영광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건너는 것도 좋지만 광야 중에서도 우리는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하나를 성취하면 그 다음 단계로서 하나의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종종 미래의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면 만족하고 행복해질 거라고 상상하고 자신을 타이른다. 대학을 들어가면, 돈을 볼면, 결혼을 하면.. 그러면 행복해질 것 같지만, 대부분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면 얼마 안 가 원래의 기본적인 행복 수준으로 돌아간다. 평소에 매사가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은 언젠가 원하는 꿈을 이룬다 해도 얼마 안가 부정적인 느낌들이 다시 찾아들 것이다.

지금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내가 부족해서입니다. 내 능력과 지혜, 그리고 인격이 부족해서 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리고 행복을 누리겠다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장으로 가는 바른 방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지금의 우리는 반복적인 행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책저자의 주석-내가 하루 6시간씩 스쿼시 경기와 운동을 할 때 사람들은 종종 나의 ‘자제력’을 칭찬했다. 하지만 훈련을 하려고 경기장이나 체육관에 가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하버드대 행복학 강의

  1. 광야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가능합니다. 제가 많은 기독교 서적 혹은 기독교적 서적을 보면서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이점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알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성령님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기독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입니다. 광야는 예수님을 발견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앞에서 광야의 만나와 생수가 모두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알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어떻게 예수님을 바라봅니까?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자. 그러기 위해서

[머리] 성경을 공부하자. 가능하면 낭독하자.
[가슴] 기도하자. 기도문.
[배] 겸손하자. 자기 성찰.
[손] 글을 쓰자. 일기, 결심문, 자서전, 컬럼
[발] 봉사하자. 가족, 이웃, 교회를 위해.

[결론] 힘든 일상을 빨리 벗어나는데 중점을 두지 말고 그리스도와 동행합시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1

2017년 08월 13일 주일 설교
신명기 08:01~10

 

설교 듣기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한줄 요약]

우리가 사는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요? 인생은 광야와 같은 일상으로 이루어져있으면 그 일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개요]

광야는 외적 현실이 아니라 내적 상태를 변화시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분몬은 신명기이며, 모세가 광야의 의미에 대해서 나중에 회고한 내용입니다. 광야를 왜 지나야 했으며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이 광야와 같은데, 왜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안다면 고통을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2절에서 모세는 광야를 지나게 된 목적이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라고 알려줍니다. 기독교계에서 아니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책으로써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인생은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신경증, 즉 정신적인 문제의 원인은 문제를 회피하려는데 있다고 칼 융의 말을 인용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보게됩니다. 물론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가끔 보게되는데 그 근본 원인은 문제를 회피하려고 해서 생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정하면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면서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이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다. 책임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매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다.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임을 알아야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각자는 영원히 희생자로 남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인도한 이유가 그들을 내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면, 오늘날 신자들에게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일상의 광야로 인도하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광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광야의 목적이 내적인 성장로 이끄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광야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입니다

3절에서 알수 있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광야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즉, 본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인 것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야의 진정한 목적은 가나안 입성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요 6:49~51)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즉, 광야에서 그들이 먹은 만나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전 10:1~4) 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게는 가나안이 불필요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는 이미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물질적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습다.

우리는 일상의 광야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축복이 불필요합니다.

 

(빌 4:11~14)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바울은 오히려 고난을 자처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이 더 영광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건너는 것도 좋지만 광야 중에서도 우리는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 하나를 성취하면 그 다음 단계로서 하나의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종종 미래의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면 만족하고 행복해질 거라고 상상하고 자신을 타이른다. 대학을 들어가면, 돈을 볼면, 결혼을 하면.. 그러면 행복해질 것 같지만, 대부분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면 얼마 안 가 원래의 기본적인 행복 수준으로 돌아간다. 평소에 매사가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은 언젠가 원하는 꿈을 이룬다 해도 얼마 안가 부정적인 느낌들이 다시 찾아들 것이다.

지금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내가 부족해서입니다. 내 능력과 지혜, 그리고 인격이 부족해서 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리고 행복을 누리겠다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장으로 가는 바른 방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_지금의 우리는 반복적인 행동의 결과물이다_. 따라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책저자의 주석-내가 하루 6시간씩 스쿼시 경기와 운동을 할 때 사람들은 종종 나의 ‘자제력’을 칭찬했다. 하지만 훈련을 하려고 경기장이나 체육관에 가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그것은 매일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하버드대 행복학 강의

 

광야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가능합니다. 제가 많은 기독교 서적 혹은 기독교적 서적을 보면서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이점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알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성령님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기독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입니다. 광야는 예수님을 발견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앞에서 광야의 만나와 생수가 모두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알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어떻게 예수님을 바라봅니까?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자. 그러기 위해서

[머리] 성경을 공부하자. 가능하면 낭독하자.
[가슴] 기도하자. 기도문.
[배] 겸손하자. 자기 성찰.
[손] 글을 쓰자. 일기, 결심문, 자서전, 컬럼
[발] 봉사하자. 가족, 이웃, 교회를 위해.

[결론] 힘든 일상을 빨리 벗어나는데 중점을 두지 말고 그리스도와 동행합시다.

일상의 축복

2016년 09월 25일 주일 설교
신명기 0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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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신 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줄 요약]

명절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해야하는 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상을 주신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마치는 상황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광야생활의 의미를 알려주심
  2. 광야 생활의 의미
    하나님의 테스트
    우리를 성장하게 하려는 의도
  3. 일상의 축복
    광야 생활은 일상을 의미
    일상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 일상에 함께 하신다

일상의 축복 1

2016년 09월 18일 주일 설교
신명기 08:01-06

 

설교 듣기

 

[핵심 구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한줄 요약]

명절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해야하는 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상을 주신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개요]

  1.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마치는 상황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광야생활의 의미를 알려주심
  2. 광야 생활의 의미
    하나님의 테스트
    우리를 성장하게 하려는 의도
  3. 일상의 축복
    광야 생활은 일상을 의미
    일상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 일상에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