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의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한 세인트 존스 대학의 졸업생들은 아이비리그 졸업생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고,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지성, < 리딩으로 리드하라> 중에서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는 기독교 고전학교 연합ACCS, Association of Classical & Christian Schools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초중고 12년 동안 < 성경>과 인문고전을 공부하는 게 주 교육과정인 기독교 고전학교 150곳과 기독교 고전교육 홈스쿨링 연합 25곳이 가입해 있다고 합니다.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정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좀 당황스러운 단체입니다. 목사나 인문학자를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도 아닌데, 초중고 12년 동안 < 성경>과 인문고전을 읽고 공부하는 게 주 교육과정이라니 말입니다.
제가 강의장이나 사석에서 이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반응합니다.
“대학은요, 대학입시는 어떻게 하고요?”
그럼 저는 이런 대답을 들려줍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 이 단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단체 출신 학생들의 대학입시 성적은 SAT 상위 10~15퍼센트 이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독교 고전학교 졸업생들의 SAT 성적은 상위 5퍼센트 이내라고 합니다.”
미국의 대학들 중에도 기독교 고전학교 연합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교가 말버러, 뉴, 리드, 세인트 존스입니다. 워싱턴D.C. 대학정보원 설립자이자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인 로런 포프는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에서 이 네 대학이야말로 미국 최고의 지성적인 대학으로서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세인트 존스가 으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겐 생소한 세인트 존스 대학이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보다 뛰어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인트 존스 대학의 신입생들 중에서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10퍼센트 이내에 든 사람이 전체 학생의 20~3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아이비리그는 전체 학생의 95퍼센트 이상이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10퍼센트 안에 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비리그와 비교하면, 세인트 존스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이 들어가는 대학인 것입니다.
하지만 4년 뒤에는달라집니다
로런 포프의 보고에 따르면 대학 4년 동안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한 세인트 존스 출신들은 아이비리그 출신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고,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비율 또한 아이비리그 출신들보다 훨씬 높다고 합니다.
저는 세인트 존스의 비결을 인문고전 독서의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문고전 독서는 두뇌에 특별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물론 처음에는 고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어렵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이해하지 못해 진도가 일주일 또는 한 달씩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기면 고통은 기쁨으로 변한다.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천재들이 쓴 문장 뒤에 숨은 이치를 깨닫는 순간 두뇌는 지적 쾌감의 정점을 경험하고 그 맛에 중독된다.
그리고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뻔한 꿈밖에 꿀 줄 모르고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인문고전 저자들처럼 혁명적으로 꿈꾸고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두뇌로 바뀌기 시작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인트 존스 대학의 주 교육과정은 4년 동안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세인트 존스 학생들이 제가 <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제시한 대로 독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도 두뇌에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인문고전 독서가들이 흔히 빠지는 ‘읽기를 위한 읽기’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최고의 대학교육 평가 전문가 로런 포프가 밝힌 분명한 사실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그들 중 상당수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하버드 출신보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시카고 대학의 사례는 인문고전 독서가 두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주장을 보다 확실하게 뒷받침해줍니다.
미국의 대부호였던 존 D. 록펠러가 설립한 시카고 대학은 한때 미국 최하의 삼류 대학이었습니다. 1929년 어느 날 이 대학에 로버트 허친스(Robert Hutchins)라는 사람이 총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힘을 광적으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시카고 플랜’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인문고전 100권을 두뇌에 인이 박히도록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플랜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시카고 플랜’의 혜택을 받은 학생들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노벨상 왕국’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시카고 대학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68명에 달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는 <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을 노벨상 왕국이라고 한다. (..)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데는 항존주의 교육철학의 시조인 로버트 허친스 총장의 공적이 컸다. 1890년에 창설된 후 별 볼일 없는 대학으로 1929년까지 유지되어오던 시카고 대학은 로버트 허친스 박사가 총장이 되면서 교양교육의 일환으로 고전 100권을 각 분야에서 읽도록 했다. (..) 그러한 교양교육의 성과로 시카고대 동문 교수 중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인문고전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한때 우리나라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때 많은 대학들이 인문고전 100권 읽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저는 그 운동을 보면서 ‘이제야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인문고전을 읽게 되었구나. 이제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멋진 미래가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에 참 많이 기뻤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독서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탓에 인문고전 독서를 마치 입시 공부하듯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황희철 차이에듀케이션 대표와 함께 수도권 대학 스무 곳의 학생들을 선발, 인문고전 독서 동아리와 인문학 교육 봉사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두 동아리가 ‘학점’과 ‘취업’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해산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즈음에 대학가의 인문고전 독서 운동도 시들해졌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에 대학가를 향해 이런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한때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었다. 교수가 수업시간에 인문고전을 원서로 강독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철학고전을 권하고, 대학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돌파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 그런데 알다시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인문고전을 원서로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던 교수도, 신입생에게 플라톤과 < 논어>를 권하던 선배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도 죽어라 인문고전을 읽던 학생도 다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베스트셀러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는 교수, 신입생에게 재테크 서적을 권하는 선배, 무협 판타지 소설을 애독하는 학생들이 들어섰다. 물론 베스트셀러, 재테크 서적, 무협 판타지 소설이 나쁘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세 가지는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다. 나는 인문고전 독서가 사라진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가의현실은 어떻습니까?
인문고전은커녕 베스트셀러, 재테크 서적, 무협 판타지 같은 책도 읽지 않고 있습니다. ‘학점’과 ‘취업’이라는 명분 아래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노예의 삶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나라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헬조선일 것입니다.
저는 대학생들에게 감히 제안하고 싶습니다.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의 꿈을 함께하자고 말입니다.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은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에 인문고전 독서 동아리와 인문학 교육 봉사 동아리를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 아동 센터와 고아원 등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빈민촌에 대학생 인문학 교육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렇게 젊은이의 힘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면 폴레폴레와 차이에듀케이션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저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다음 스토리펀딩, ‘리딩으로 리드하라’ 5화 하버드보다 뛰어난 그 대학의 커리큘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