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3_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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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36~48 / 2018년 05월 13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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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눅 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한줄 요약

성경을 깨닫는다는 것은 체험이 동반된 전인격적인 사건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성경을 보다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개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활동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위로와 격려를 베풀었습니다. 그 사십 일은 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그 감동적인 변화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0. 깨달음은 전인격적인 사건

성경을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이 작용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체험입니다.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경을 다시 가르치신 이유는 그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성경을 배울 준비가 갖추어졌기 때문입니다.

(눅 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을 통해서 인격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고, 그때에야 깨달을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전에도 예수님께 성경을 많이 배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보고 그 사건에 동참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깊은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진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백한가지 이야기’를 보면 처음에 나오는 간디의 신발 얘기가 나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인도해방운동 지도자 간디(Mohandas K. Gandhi, 1869-1948)가 어느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출발에 임박해서 급히 기차에 뛰어 올랐습니다. 너무 서둘러 기차를 탔기 때문에 그의 신발 한 짝이 플랫폼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신발은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에 평민이 가지기는 힘든 것이었습니다. 기차는 이미 출발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기차 밖으로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줍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바로 그 때 간디는 다른 쪽 발에 신고 있던 신발을 급히 벗어 기차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이 급작스러운 행동을 본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습니다. 신발 한 짝이 떨어진 것만 해도 아까운데 다른 한 짝을 고의로 벗어 기차 밖으로 던져 버리다니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을까요?

사람들은 간디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까운 신발을 어찌 그렇게 던져 버리십니까?” 그러자 간디는 웃음을 지으며 “어떤 가난한 사람이 떨어진 내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신발 한 짝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마저 갖게 될 것이니 기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간디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간디가 신발 한 짝이 벗겨졌을 때 다른 한 짝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격의 성장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건 간디가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된 계기가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간디는 자신의 비폭력 사상을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인 ‘산상수훈’에서 발전시켰습니다. 간디는 성경에 매우 정통했고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기독교인들보다 더 성경을 잘 따랐던 사람이 간디입니다. 그의 삶이 성경에서 힘을 얻었고 그가 독립운동을 할 때, 성경이 가르치는 전략을 따랐습니다. 그는 힌두교인이었지만, 힌두교를 따르지 않고 성경을 따른 덕분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도의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간디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놀라운 일을 행했습니다. 세계 최강의 제국 로마를 복음화했습니다. 그들이 로마를 복음화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성경은 세 가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1. 두려움과 의심에서 벗어나자

먼저, 불필요한 두려움과 의심을 해결해야 합니다.

(눅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두려움과 의심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입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면 속사람이 자랄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귀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귀신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귀신이 있다면 하나님도 존재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안심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의 성품을 알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놀래키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등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배려심이 깊고 섬세하십니다.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더 나아가 의심하는 마음도 꾸짖지 않고 풀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도마를 꾸짖으신 이유는 믿을만한 증거를 보여주어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비뚤어진 마음을 꾸짖으신 것이지 의심 자체를 꾸짖으신 것이 아닙니다.

2.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자

두 번째로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눅 24: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님께서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영이라면 음식을 먹지 못할 텐데 잡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이 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일은 바르게 이해하지만,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바르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방송과 뉴스를 보십시오. 매우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옳은 것인지 바르게 판단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는 현실을 바르게 보는 눈은 조금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몇 달 전에 프로야구가 개막한지 얼마되지 않알을 때 어떤 성도님과 식사하면서 어떤 팀을 응원하냐고 물어보다가 한화 이글스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한 팀을 응원하지 않고 매년 돌아가면서 응원하는데, 올해는 한화하고 롯데를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제가 한화가 앞으로 잘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한화가 연패를 당해서 분위기가 안 좋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신 있게 앞으로 잘 할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한화가 경기하는 것을 보니까 선수들 정신력과 실력이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내린 예상이었습니다. 지금은 한화가 3등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사람마다 어떤 부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어떤 면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속사람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바람, 편견, 감정, 어리석음에 휩쓸려서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봅니다.

속사람이 강해지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3. 고난 중 형통을 받아들이자

세 번째로 고난 중 형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항상 십자가와 부활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하면 부활은 자동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눅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고난을 달게 받아들이고 고난을 통한 성장을 기대하지 못하면 속사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야는 쉽게 돈벌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구원받고 쉽게 능력받고, 쉽게 형통한다는 말이 사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따르려면 치러야할 댓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십시오. 형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보십시오. 고난 당할 것입니다. 반대로 고난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고난 중 형통할 것입니다.
고난 중 형통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결론

스탠리 존스라는 인도 선교사가 간디를 만난 일화를 책에 소개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간디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꺼냈지요. “마하트마 간디, 저는 인도에서 기독교가 생활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더 이상 외국 사람 또는 외국 정부와 동일시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빨리 기독교가 인도인의 삶의 일부가 되고, 인도의 정신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인도를 구원하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간디는 제 말을 듣고 아주 엄숙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대답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군요. 우선 여러분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을 포함한 모든 서양인들이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영혼으로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는 여러분을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면서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종교의 가르침대로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지 말고 타협을 하지 말 것을 제안합니다.”

간디의 조언은 계속되지요. “세 번째로 저는 여러분이 사랑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일을 해 내는 강력한 원동력으로서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도덕적 세계에서 실제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간디는 그 기독교의 사랑이 개인들 사이와 집단들 사이, 인종과 나라들 사이에 적용되길 바라지요. 그 사랑이 세계를 통합시키고 구원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랑의 의미에 너무나 민감한 영혼을 지니고 있던 간디에게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 주었을 때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네 번째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비기독교 종교와 문화를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은 비기독교 종교와 문화 속에 있는 장점들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그들에게 접근할 때 보다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간디가 객관적인 시각에서 기독교가 부흥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성경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경의 깊은 세계로 인도받을 것입니다.

찬양과경배. 298 주 품에 품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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