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명연설

‘위 워 솔져스’에서 전략가 할 무어 중령(멜 깁슨)이 적진 투입을 앞서 부대원들에게
행한 연설입니다.

“우린 죽음의 계곡에 들어간다. 여러분은 전우를 지켜주고, 그 전우는 여러분을 지킨다. 전우가 어떤 피부색을 가졌든 어떤 종교를 가졌건 잊어라.
우린 잠시 집을 떠난다. 그건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다 같이 상황을 직시하자.
우리는 결연한 적에 맞서 적진에 들어간다. 귀관들을 무사히 데려오겠다는 약속은 해줄 수 없다. 그러나 귀관들과 전지전능한 주님께 이건 맹세한다.
우리가 전투에 투입되면 내가 맨 먼저 적진을 밟을 거고, 맨 마지막에 적진에서 나올 거며 단 한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우린 살아서든 죽어서든 고향에 돌아갈 것이다.
주님의 은총을 빈다.“

 

[출처] 송길원, 하이패밀리

 

문제는 다시 ‘구원’이다

근래 우리 나라 기독교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모아집니다. 그러니까 아닌 건 알겠는데, 긴 건 뭘까요?

데카르트의 치열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유명합니다. 갑자기 데카르트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설프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때문입니다.

아다시피 데카르트는 ‘회의주의 철학자’입니다. ‘회의주의자’는 뭐든지 의심하고 보는 사람들인데, 그러다 보니 혼란이 생겼습니다. 뭐 하나 믿을 만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책상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환상을 보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전 인류가 단체로 꿈을 꾸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매트릭스 같은 영화도 있으니 가능성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고민 가운데서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생각하는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입니다. 어쨌든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겠는가?

의심을 하려면 데카르트 만큼 의심해서 의심의 끝을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다.

기독교가 위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어쩌면 매우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정말 근본부터 샅샅이 점검해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 고치면 우리 나라 기독교는 앞으로 큰 부흥을 맞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기독교 위기의 원인은 중세 시대와 동일합니다. ‘면죄부’의 판매가 기독교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면죄부는 ‘인본주의적 구원관’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말씀에 따라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구원받는다.”
는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얼핏 보면 성경적이고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비성경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가진 주장입니다.

위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인본주의’입니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을 갖는 주체가 모두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을 구원의 객체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면 하나님은 구원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다름 아닙니다.

복음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다가 왜곡하게 된 예입니다. 필자도 선교단체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이 주장이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생각이 한계를 넘지 못하고 제자리를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청교도들을 통해서 그 쳇바퀴를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무의식적인 두려움, 예상되는 논란들, 내 자신부터 되돌아보아야 하는 부담감 등이 사고의 전진을 막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청교도들은 왜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구원과 회심의 문제에 집착했을까?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구원과 회심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했을까?”

이것이 예전의 청교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구원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니까 청교도들이 구원과 회심의 문제에 집착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원과 회심에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그 놀라운 신비가 그들의 정신 세계에 말할 수 없이 깊은 인상을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감동적인 영화를 본 사람이 그것을 추천하고 소감을 얘기는 것과 비슷한 행동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을 받았다, 안 받았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언제 구원을 받았냐는 질문은 더더구나 인본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망언입니다.

하지만, 로이드 존스의 주장처럼 교회사를 통해서 가장 복음의 영광이 드러났던 시대와 현 시대를 비교해 보는 일은 언제나 유익합니다.

교회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더 위대했던 신앙의 선조들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일찍 교만에 물든 것이 아닐까요? 그 교만이 복음의 영광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을 막은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교만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구원의 영광, 구원의 신비,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 50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은 것들

‘나이 50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은 것들’이란 글을 소개합니다. 50년의 인생이 알려준 지혜가 무엇일까요?

1. 초년 성공은 오히려 인생의 독이 된다는 것.

2. 인생 대박은 쪽박의 지름길이라는 것.

3.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면 생각했던 것보다 인생 역전한 친구들이 많다는 것

4. 영양가만 따져 만든 인맥이 정말 영양가가 별로 없다는 것

5. 명함을 돌리면 97%의 사람은 버린다는 것

6. 일이년이 아니라 적어도 20년은 해야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7. 40대에 하늘을 찌르던 자만심도 50대로 들어서면 급속도로 꺾인다는 것.

8.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의 기억이나 추억은 고무줄이 된다는 것.

9. 아무리 성과를 많이 냈어도 퇴직하는 순간 회사는 나를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

10. 인생에서 믿을 것은 자식이 아니라 배우자 밖에 없다는 것.

-송길원 목사, 하이패밀리

구원파의 교훈

구원파 유병언 회장의 도피 행각이 이슈입니다.

“좁은 땅에서 많은 상금이 걸린 사람이 얼마나 도망다닐 수 있을까?”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비웃듯이 경찰과 검찰의 포위망을 잘도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언론에 의하면, 유병언 회장은 세월호가 침몰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불법 개조와 과적’을 지시한 책임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원들이 여러 차례 위험을 호소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의 책임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적으로 도피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구원파’라는 종교단체의 수장이라서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그의 도피를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종교의 폐해를 봅니다. 잘못된 종교는 믿음을 맹목적인 충성과 동일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또 추종자들도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어거지를 부립니다.

우리 정통 교회도 ‘구원파’를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목사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바르게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녀교육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다른 엄마들도 할 수 있어요. 저는 학창시절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야간 상고를 다녔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한이 남아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남편은 너무 가난해 군대를 면제받을 정도였습니다.” – 박경이 사모

자녀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시중에 많은 책이 나와있지만 ‘땅에서 자라는 하늘 자녀'(지혜의샘)가 특별한 이유는 광주 딸부자 집 다섯째로 태어나 야간 상고, 방통대를 졸업한 저자의 경력이 만만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교육 성공사례를 찾아보면, 부모가 연예인이거나 외교관이거나 강남출신이거나 하다못해 명문대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한 명도 아닌 네 자녀를 모두 예일, 하버드, 듀크, 일리노이주립대 등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는 결과를 냈습니다. 물론 국내에서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가난한 목회자 부부가 어떻게 미국 명문가도 이루지 못한 결과를 신앙의 힘으로 이루는지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실재입니다.

진짜 부자의 가정 교육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발표한 2014년 세계 부자 순위 1위는 빌 게이츠였습니다. 그의 재산은 760억 달러, 한화로 무려 77조 9000억 원에 해당됩니다(1달러=1025원). 5억 원짜리 아파트 155,800채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그런 빌 게이츠 가(家)의 자녀교육 10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큰돈을 물려주면 결코 창의적인 아이가 되지 못한다.

  2.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인맥 네트워크를 넓혀준다.

  3. 단점을 보완해 주고 뜻이 통하는 친구를 사귄다.

  4. 어릴 때에는 공상과학소설을 많이 읽는다.

  5. 어머니의 선물이 때로는 아이의 인생을 바꾼다.

  6. 신문을 보며 세상보는 안목과 관심 분야를 넓힌다.

  7. 부잣집 아이라고 결코 곱게 키우지 말아라.

  8.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한다.

  9. 어린시절 다양한 경험은 자라서 든든한 사업 밑천이다.

  10. 부모가 자선에 앞장서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본을 받는다.

펜을 빌리지 않는 사람들

 

다음은 16년간 일본 항공사와 외국 항공사를 넘나들며 국제선 일등석을 담당했던, 전직 스튜어디스 미즈키 아키코가 쓴 책의 내용입니다.

 
(1) 일등석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고, 모두 자신만의 필기구를 지니고 다녔다.

(2) 일등석에서는 신문을 가져달라는 요청이 드물다. 지독한 활자 중독자들로 베스트셀러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투박하고 묵직한 책을 읽는다.

(3) 일등석의 승객은 일단 자세가 바르다. 그리고 시선의 각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자세가 좋은 사람은 범접치 못할 당당한 분위기를 풍긴다.

(4) 일등석의 승객은 정말 흥미진진하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요?”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승무원에게 고자세를 취하지 않고, ‘바쁜 중에 미안하지만’과 같이 항상 완충어구를 덧붙이며 말을 건넨다.

(5) 주변 환경을 내편으로 만든다. 동승한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고, 늘 아내를 존중하고 아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스스로 선택하며 살라!

부모의 가난 때문에 자선병동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의사의 실수로 왼편 눈 아래가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더군다나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있었습니다. 12살 때는 그의 부모가 이혼했고 학교를 12번이나 옮기는 등 학창시절도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맥도 자본도 없는 그에게 돌아오는 역은 별로 없었습니다.

단역 배우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기에,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영화관 안내인, 수위,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보디가드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느덧 배우로서는 부르는 곳이 없을 법한 서른 살 나이에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수중에는 불과 106달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안 되겠다, 이번에는 끝을 봐야겠다!”

그는 비장한 각오로 창문을 걸어 잠그고 전화 코드를 뽑아 버린 채 영화각본을 하나 써냈습니다. 영화는 28일 만에 만들어졌습니다. 개봉 후의 반응은 엄청났습니다. 그 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50배가 넘는 5,6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이런 아포리즘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느니 차라리 실패를 선택하라!”

눈물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눈물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님들을 보며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자녀를 잃은 부모의 슬픔이 한 방울 눈물에 모아져 또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보이는 듯 합니다.

이 시를 쓴 김현승 시인 또한 어린 아들을 잃고 나서 애통해 하던 중 어느 날 문득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극도의 슬픔 가운데서도 부활의 소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신자의 죽음은 ‘옥토에 떨어지는 생명’처럼 언제나 더 많은 생명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빛난 리더십

1852년 영국 해군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남아프리카로 가던 중 케이프타운 66km 전방에서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승객들은 630명이었으나 구명보트는 60명을 태울 수 있는 단 세 척뿐.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먼저 여자와 아이들을 3척의 구명보트에 태우게 했습니다.

여자와 어린이를 태운 3척의 구명보트는 침몰하고 있던 버큰헤이드호를 떠났고, 군인들은 세튼 대령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움직이지 않고 436명이 그대로 수장되었습니다.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은 그로부터 얼마 뒤 또 다른 해상 재난사고 때 빛을 발했습니다.

승객 1,515명을 태운 영국 수송선 엠파이어 윈드러쉬호가 알제리아 해안 77km 해역을 지나다 보일러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고, 화재로 인해 배가 가라앉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령관이던 로버트 스코트 대령은 승객 1,515명 가운데 여자 125명과 어린이 87명, 병약자 17명을 구명보트에 먼저 탑승시켰고 나머지는 젊은 순서대로 채웠 보냈습니다. 구명보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사령관은 병사와 선원들에게 바다에 뛰어들도록 지시했습니다. 구명정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명령도 덧붙였습니다.

그 결과 쳔 명이상의 사망자를 낼 수 있었던 사고에서 보일러 폭발로 사망한 네 명 외에는 모두 생명을 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