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1 노아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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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09:20~27 / 2018년 10월 21일 주일설교

(창 9: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창 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 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창 9: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 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창 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 9: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창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레 6:10)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삼상 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설교 듣기

핵심 구절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한줄 요약

노아는 구원 계시의 전달자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요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하나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0. 권위와 권위주의

노아가 술을 먹고 옷을 벗고 있었습니다. 아들 중에서 함은 노아의 실수를 떠벌렸고, 셈은 덮어주었습니다. 이 내용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단순히 목회자의 실수를 떠벌리면 안된다. 혹은 목사를 비판하면 안된다는 의미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바른 해석은 무엇일까요?

이 내용에서 의문점은 세 가지 정도입니다. ‘노아의 실수는 무엇인가?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는가? 셈이 칭찬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노아가 자기 방에서 술을 먹고 옷을 벗었는데, 그것이 왜 큰 실수일까요? 함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셈의 하나님을 찬송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이 권위에 관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영향력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권위는 그리스도를 알리는데 필요한 영향력입니다. 하나님은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1. 노아의 실수는 무엇인가?

첫째, 노아의 실수는 무엇일까요?

성경의 다른 구절을 보고 추측해 보겠습니다. 레위기를 보면 제사장은 속옷을 입고 하체를 가려야 했습니다. 하체를 보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레 6:10)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노아도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제사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율법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의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왜 하체를 가렸을까요? 당시 가나안 이방 종교에서는 옷을 벗고 음란한 행위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적인 죄를 엄격하게 금하셨습니다. 할례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언약의 증표입니다. 또 제사장에게 하체를 가리라는 말씀도 특별히 더 음란한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노아가 하체를 가리지 않은 것이 실수입니다. 그는 음란한 죄를 범해서는 안되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하체가 놀림이나 경멸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되었습니다.

2. 가나안이 저주받은 이유는?

둘째, 함이 잘못했는데, 왜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노아가 하체를 벗었어도 함이 그것을 발설하지 않았으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은 그것을 발설했고 노아의 실수는 알려졌습니다.

함의 죄는 계시의 전달자인 노아의 권위를 훼손해서 그가 전하는 말씀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데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가 떨어지면 그리스도를 만나기 힘들어집니다.

하나님은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그리스도를 만나기 못하게 하는 행동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성령 모독이고 성령을 거스르는 행동입니다.

(마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함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다윗의 예를 보면 명백합니다.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사울은 정식으로 기름부음받은 왕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건,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의미입니다.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받은 사람은 세 사람입니다. 제사장, 왕, 선지자입니다. 따라서 그의 권위는 제사장과 동등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대할 때 보여준 존중은 함이 노아에게 보여주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함이 잘못했는데,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함의 계보로는 이후로 구원 계시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가나안이 믿음을 이어받지 못했다는 말은 함에게 믿음이 없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3. 셈의 하나님이라는 말의 의미는?

셈은 다윗이 사울에게 보여준 것과 동일한 존중을 노아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리스도를 존중했다는 의미입니다. 셈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은 셈이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믿음이 확증된 것입니다.

오늘날 권위가 실종되고 권위주의만 남았습니다. 권위주의란 권위가 없는데 권위가 있는 척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위를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막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고, 성령을 거스르는 행동입니다.

그러면, 권위와 권위주의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닮았는가, 닮지 않았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동일하게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이 깨끗하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00. 이 말씀을 하신 이유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분해야 합니다. 권위주의는 비판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하지만, 권위는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권위는 그리스도를 알도록 인도하고 도와주고 만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 권위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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