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5_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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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10~17

2018년 02월 25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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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한줄 요약]

복음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드러냅니다

[개요]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좇으면서 복음을 깊이 묵상하는 기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순절 두번째 주간에는 이사야서가 인용된 마태복음을 살펴보겠습니다.

0.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다 비싼 선물이다

오늘 본문은 복음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간절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사순절 묵상을 하고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이유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어떤 면에서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항상 문 앞까지만 가도 “어서 오십시오”하던 식당이 어느날 갑자기 “올테면 오고 말테면 말라”는 분위기로 바뀐 것 같은 느낌입니다.

“복음은 쉽다, 믿음은 단순하다, 구원은 공짜다”라는 말을 우리가 많이 듣는데, 반대의 말씀도 성경에는 많습니다. “복음은 어렵다, 믿음은 복잡하다, 구원은 비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실까요? 그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행위로 받을 수 없고,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런데, 정확하게 의미를 알고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행위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악하게 살다가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엄밀하게 얘기하면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아무하고나 결혼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면서요? 왜 사람 차별합니까?”라고 반발한다면 그 반발하는 사람이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닙니까? 평등하다는 말이 동등한 결혼 상대자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결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나 구원하시지는 않습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합당한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합당한 조건을 갖추도록 준비시키십니다.

“악하게 살다가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구원는 손쉽게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의 결혼하는 것은 원하기만 하면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속된 말로 ‘구원은 싸구려’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주보를 보십시오. 두란노에서 나온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다’라는 책에서 스캔한 그림입니다. 제가 주보에 싣고 있는 것도 이 책입니다.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싸구려 물건은 받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너무 값진 물건은 아무나 주지 않습니다. 신중하게 줄 사람을 선택하게 마련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주면 환경을 오염시키는 쓰레기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1. 10~12.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예수님이 비유로 진리를 가르치신 이유는 재미를 위한 목적도 있고, 보지 못하는 것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보는 것에 빗대어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미 설교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다시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복음의 소중함을 가르치려는 의도입니다. 비유는 잘 생각하면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싫어하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수동적이고 간절하지 않은 사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설명을 낯설어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려고 하시는 분이야. 그러니까 최대한 쉽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셨을 거야. 어렵게 생각 안해도 네네만 계속하면 구원받을 수 있게 말씀하시는 분이야”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전화로 보험 가입할 때, 형식적으로 설명을 듣고 ‘네, 네’만 해주면 큰 문제 없이 보험에 가입되는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복음을 전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다른 본문을 볼 것 없이 오늘 본문을 보면 됩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복음을 믿겠다고 하면 구원을 주시는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네, 네’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참된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참된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 13~15. 보아도 보지 못하게(반어법)

우리가 두 번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싸구려’처럼 주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진정한 의미를 숨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복음에 대해서 잘 아는데요?”이렇게 반문하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드린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예수님은 인격적으로 만나셨습니까? 죄에 대한 각성을 체험하셨습니까? 자신이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조금의 변명도 없이 인정하십니까?”

제가 한 질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유신론자에 불과합니다. 즉,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은 하나님이다” 정도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 정도도 대단하지만 그 하나님과 확실하게 연결되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니라 살아 숨쉬고 개성과 인격을 가진 실체로서 영혼에 확실하게 조명됩니다. 그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나를 연결해 주는 것을 느낍니다. 단순히 유신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압니다.

3. 16~17. 너희는 복이 있다

반대로 복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똑똑하지 않고 재산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간절함과 열정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시면 그 의미를 알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예수님께 알려달라고 겸손하게 부탁합니다. 그들은 실수도 많이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감싸주셨습니다. 끝까지 그들을 붙드셨고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왜 그들에게는 복이 있었을까요? 복음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지불한 댓가가 구원을 받기에 턱 없이 부족했지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정도가 되지 못했지만 구원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등가 교환이 아닙니다. 즉, 산 게 아닙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던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비싼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선한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해도 구원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를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 홀연히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변하지 않습니다.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을 닮고 예수님의 사역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의로운 삶입니다. 그래도 구원을 살 수는 없지만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주권자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3:7~14]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결론]

복음은 싸구려가 아니라 비싼 선물입니다. 주면 받고 안주면 말겠다는 태도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애쓰는자, 즉,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비싼 선물을 주십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비싼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댓가를 치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마음과 시간과 에너지를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고난을 두려움 없이 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길 끝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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