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4_제사, 왜 지낼까? 1

Contents

창세기 04:01~07
2017년 09월 24일 주일 설교

설교 듣기

창세기 4:1~7

(창 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창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창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그리워 하는 마음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설레고, 명절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무거워집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 그리스도인들은 명절이 반갑기 보다는 우울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명절 스트레스에 더하여 제사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부터는 제사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왜 우리가 제사를 지내면 안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이렇게 하는지 원래 이유를 모르면 불필요한 관습을 답습하게 됩니다. 영국 판사들이 쓰는 가발의 기원에 대해서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판사에 임용된 어느 젊은이는 이런 의문을 가졌다. “왜 판사들은 하얀 가발을 쓰고 재판을 하는 걸까?” 그도 그럴 것이 싱가포르는 무척 더운 나라여서 가발을 쓰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판사들은 두꺼운 법관복까지 입고서 하얀 가발을 쓰다니, 젊은 판사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거니와 꽤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모른다는 대답들뿐이었다.

그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왜 가발을 쓸까?” 알고 보니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결론을 얻고서 ‘아하, 그렇군.’이라고 반응하며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았겠지만, 그 젊은 판사는 달랐다. 그는 다시 “그렇다면, 왜 영국에서는 판사들이 가발을 쓰는 걸까?”란 질문을 던졌다. 판사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얀 가발을 썼다는 설이 있었지만 그가 알아낸 것은 의외의 사실이었다.

영국의 법관들은 대개 나이가 많았고 그 때문에 대머리들이 많았다. 게다가 영국의 법정은 천장이 높아서 매우 추웠다. 결국 하얀 가발은 권위의 상징물이 아니라, 그저 방한용이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사용하던 가발을 적도 바로 위에 위치한 싱가포르에서도 써야 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관성’은 지독히도 생명력이 질겨서 아직도 싱가포르 법정에서는 가발 쓴 판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책, ‘틀을 깨라’는 창조적 발상이 젊은 판사가 품은 ‘왜?’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왜 그것이 여기에 존재하는 걸까? 왜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해답을 탐구하는 자가 창조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머리가 비상하고 공부를 많이 하고 견문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디어 창조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실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출처: http://infuture.kr/1036 [인퓨처컨설팅 & 유정식]

우리 나라에서는 조상들에 대한 제사가 일반적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제사를 거부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어떤 민족이든지 원래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드렸습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삼한의 5월 ‘수릿날’과 10월 ‘계절제’를 고구려의 ‘동명’, 신라의 ‘팔관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 한국의 신화·전설·가요가 구체적으로 불린 자리에 제천 의식이 있었고, 서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생활 모습으로서 무속 신앙 (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C%86%8D_%EC%8B%A0%EC%95%99)(巫俗信仰), 곧 샤머니즘 (https://ko.wikipedia.org/wiki/%EC%83%A4%EB%A8%B8%EB%8B%88%EC%A6%98)을 가지고 있었다. 또 수렵 경제에서 농업 경제로 넘어오면서 집단적인 부족 회의와 공동적인 제전으로 제천 의식을 열고, 생명의 근원인 창조신과 더불어 곡신(穀神)을 제사지냈다.

출처:위키백과 ‘한국의 제천 행사’ 중에서

2. 공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를 조상 숭배로 왜곡했습니다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조상 숭배로 바꾼 사람이 공자입니다. 공자는 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했을까요?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조상이 돌아가신 날이나 명절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한국에서 제사 지내는 풍습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민속학자가 연구할 일이기에, 저는 공자가 제사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공자는 제자가 귀신과 사후 세계에 관해 물었을 때, ‘사람의 일도 아직 잘 모르는데 귀신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 또 살아생전의 일도 아직 잘 모르는데 죽어서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라고 답합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잘 모르는 일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은 사람이 해결해야 하고, 사람이 세상일을 해결하는 이데올로기로 ‘인(仁)’이라는 사상을 만들게 됩니다.

공자는 인(仁)을 실행하는 방법으로 ‘예(禮)’를 말하고, ‘예(禮)’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관혼상제(冠婚喪祭)를 강조합니다. ‘관혼상제’에서 상제(喪祭)는 조상이 죽었을 때 어떻게 제사를 지낼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공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말하면서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상이 귀신으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성껏 제삿밥을 만들었는데, 정작 제삿밥을 먹을 조상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묵자(묵가를 만든 제자백가 중 한 사람)는 귀신도 없는데 제사를 지내라는 공자가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한다고 비판합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공자가 ‘재여’라는 제자와 부모에게 제사 지내는 문제로 논쟁한 내용이 있습니다. 공자는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이유는 부모가 나를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준 근본을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3년을 품에 품고 지내기에 자식도 부모님에게 보답하기 위해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시묘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공자가 말하는 제사는 조상의 사후 귀신을 모시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낳고 키워준 조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행동입니다.

이런 공자의 답변에 ‘재여’가 다시 질문합니다. 부모가 죽은 후 3년 동안 시묘를 하면 생활에 피해가 생긴다며,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해 먹고 살아야 하는데, 3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않으면 뭘 먹고 사느냐고 항변합니다.

‘재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예기”곡례편’에 나오는 ‘예는 서민에게 내리지 않는다’는 구절로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예(禮)’를 실천하는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일반 서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공자가 살았던 봉건시대의 사회 계급은 위로 ‘천자’가 있고 그 아래로 땅을 하사받은 ‘경대부’가 있고 ‘경대부’ 아래에 행정관료 역할을 담당하던 ‘사(士)’가 있었습니다. ‘사(士)’를 선비라고도 해석하는데 조선 시대 양반에 해당하는 계급입니다.

결론적으로 공자가 말한 제사는 ‘양반’이상의 계급에만 해당되는 거고, 일반 서민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출처 : 김기동의 ‘중국문화기행’ 7, 오마이뉴스 2017.3.28.

김경일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출판  | 2001년 11월 30일 출간)나 북경대학교 리링 교수가 쓴 <논어, 세 번 찢다>(글항아리 펴냄)에서 모두 공자가 기존 통치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용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원래 제사가 하늘에 드리는 것이었는데, 공자에 의해서 조상 숭배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효도’라는 윤리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것’을 ‘효도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위에서 인용한 글을 마저 보면 중국 사람들의 조상 숭배가 나옵니다. 그들의 제사는 우리 나라와 달리 단촐하고 실용적입니다.

작년 구정에 중국친구 초대로 시골에 있는 중국 친구 아버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설날에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상이 단출합니다. 튀긴 닭고기 한 접시와 튀긴 물고기 한 마리 그리고 과일이 있습니다. 물만두도 한 그릇 있네요. 당연히 술도 있고요. 다른 친척이 와서 절을 할 수 있게 제사상은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답니다.

[Image: file:///C:/-/blob/cRSAAAUV88y/Y29IDaQxL0v08mT0Zepaow]
저의 중국 친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제사상을 이렇게 차렸다고 생각할 수 있어, 중국 친구를 소개합니다. 중국 친구는 나이가 쉰셋이고 한국으로 치면 중소도시 국립인민병원 의사이고, 대학에서 강의도 합니다. 중국 친구 부인은 중국공상은행에 근무하는데 직위가 한국으로 치면 부장급입니다.

중국에서는 6대 조상까지 제사를 지내는데, 하나의 제사상으로 한꺼번에 제사를 지냅니다. 죽은 사람의 이름표인 ‘지방’은, 개인별 이름표를 가진 우리나라와 달리 단체 이름표를 사용합니다. 제사상 앞에 있는 ‘단체지방'(제가 만든 단어입니다) 족자에 6층 건물 그림을 그리고 맨 아래부터 1대, 2대 ~~ 순으로 조상의 이름을 적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절차도 간단한데, 단 한 번 절하고 제사를 끝냅니다. 공자의 말처럼 조상귀신이 없으니, 제사를 지내는 동안 문을 조금 열어 조상귀신을 모시는 절차도 없습니다. 중국사람은 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일 보다, 친척들이 모인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습니다.

출처 : 김기동의 ‘중국문화기행’ 7, 오마이뉴스 2017.3.28.

3. 부모님을 공경하되 제사는 지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명절 스트레스 문제가 나온지 매우 오래되었는데, 고쳐지지 않는 이유도 제사 문제와 비슷합니다. 즉, ‘효도’라는 문제와 맞물려서 생각에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김경일 교수는 유교를 죽은 사람 섬기다가 산 사람 죽이는 종교라고 표현했는데 바로 그렇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운 김용기 장로님의 아버지 김춘교 선생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큰 교훈을 줍니다. 안동 김씨의 후손으로 경기도 경기도 남양주 와부면 능내리에 살던 무렵 아들 김용기가 세 살 때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자 그의 어머니는 크게 근심했다. 아무리 용한 무당을 데려다가 밤을 새면서 굿을 하였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또 점쟁이에게 물어보면 좋은 약 처방을 받을까 하여 그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점쟁이 앞에 정성을 다해 아이를 부탁하였다. 하지만 그 점쟁이의 말이 걸작이었다.
“이 아이는 그 누구도 고칠 수 없습니다. 혹시 예수를 믿으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어린 용기를 업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용기 어머니는 이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였다.
“이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가려고 하는 데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주머니는 전도지를 주면서 이 길로 10리 정도 나가면 용진교회가 있으니 계속 걸어가라고 했다. 그 말만 믿고 어머니는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아이가 크게 숨을 쉬더니 엄마를 부르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기에 가까운 주막집에서 잠깐 쉬면서 어린아이에게 먹을 것을 얻어 주고 그 아주머니가 준 전도쪽지를 읽어 보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용기 엄마는 두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해’라며, 그 발걸음을 재촉하여 용진교회를 찾았고 이후 계속 출석하게 됐다. 그렇게 용기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출처: 한국장로신문, 농민운동가 김용기 장로, [제1200호] 2009년 10월 3일]

김춘교 선생은 제사를 지내지는 않았지만, 제사상을 차리고 동네 어른들을 잘 섬겨서 인심을 얻고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했던 삼촌이 갓을 쓰고 교회에 다녔다고 합니다.

4.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역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제사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 줍니다. 이것은 평생에 걸쳐 묵상해야 할 주제입니다.

오늘 설교는 여기까지 하려고 합니다. 제사는 하늘에 지내는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제사드리는 것이 바른 제사인지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