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서 기뻐하자

본문

하박국 3:16~19 / 2018년 09월 23일 주일 설교

(합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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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한줄 요약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일을 겪을 때 힘듭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경륜을 알기 때문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개요

추석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풍성한 한가위이기에 더욱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감사할 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하박국 선지자가 그런 상황에서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0. 기뻐할 일 없는데 기뻐하기

추석이지만 어느 해 추석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내려가거나 가족 모임에 가지 않겠다고 한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런 사람도 있고, 취업이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려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혼 혹은 출산 등에 관해서 걱정을 가장한 참견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 현상을 보면서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낯설기도 하고 걱정스럽습니다. 뭔가 사회가 이상해 지는 것 같고 삭막해져 가는 것 같아서 낯설기도 합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가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회에서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답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하면서 기뻐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1. 새로운 일은 없다

먼저, 새로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당황, 공포 때문입니다.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당황하거나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당황, 공포를 느끼지 않으려면 새로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자는 과거를 돌이킬지어다. 인간사는 선대의 그것을 닮게 되나니. 이는 그 사건들이 그때 살던 사람이든 지금 사는 사람이든 동일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그로써 그것들은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근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새롭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2015년에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중에서 두번째로 많은 가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손녀가 한 집에 사는 대가족이 우리나라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이 부모와 자녀만 함께 사는 핵가족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혼자 사는 가정이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는 혼자 사는 가정이 일반적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지만 통계로는 그것이 가장 많은 가정입니다.

나 혼자 사는 가정이 많아진 것이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일이지만,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예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1990년대에 이미 1인 가구가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27.2%인데, 일본은 2010년에 31%를 넘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덴마크나 노르웨이 등은 이미 40%를 넘어선 곳도 있다고 합니다. [출처] 연합뉴스, 20130222.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이 우리에게는 새롭지만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보면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동성애 문제도 비슷합니다. 요즘 부쩍 동성애 관련 뉴스가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동성애 애기를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하고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동성애 문제도 우리사회에서는 낯선 일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된지 오래입니다. 새로운 사회 현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 로마서에도 로마 시대의 동성애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유 중에 하나가 동성애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사회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당황하거나 공포를 느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듯이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미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반복될 뿐입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 동성애 관련 문제가 발생하는 것 등 사회 문제는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1인 가구가 거의 없습니다. 대가족이 모여삽니다. 식구가 많아야 농사 짓고 일하기 편합니다. 주거생활비도 적게 듭니다. 서로 불편한 일이 있지만, 먹고 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해지고 돈 버는 방법도 농사에서 벗어나면서 각자 떨어져 살게 됩니다.

동성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성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왜 그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성애도 행하게 됩니다. 구약 시대 소돔과 고모라가 사치스런 도시였습니다. 로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가 문제가 되는 나라는 대부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나라들입니다. 더불어 동성애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 포함된 불신앙과 영적 타락 현상입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극한의 가난에서 벗어났습니다.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이 최고로 잘사는 시대가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황하고 놀랍니다. 그럴 때 다른 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어떤 길을 갔는지를요. 잘 살게 되면 어떤 사회 현상이 일어나고 그 결과가 어떤지를 말입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우리나라 대형 교회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돈과 권력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천주교가 잘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더 타락한 모습을 보여 줄 것입니다. 천주교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 이유는 수도원 운동 때문입니다. 진실한 신앙인들이 수도원에서 청빈하게 신앙을 지켰고 그게 천주교회에 흘러들어가서 천주교의 생명을 유지시켰습니다. 중세 이후로는 수도원도 타락해서 하나님은 종교 개혁을 통해서 개신교를 분리시키셨습니다.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 교회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 새로운 일은 없으니까 당황하지 말고, 미리 있었던 일을 잘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진실한 신앙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고 따라하자는 말입니다.

2. 가장 소중한 것을 갖자

둘째,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뻐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나게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가진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언제까지나 가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것을 잃어버려도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이라는 선지가가 우리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남유다가 멸망하려는 시기였습니다. 외적의 침입을 받아서 나라는 망해가고 경제적으로 피폐했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17절을 보면 그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정확하게는 기뻐했다고 나옵니다. 하박국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가진 것이 없는데로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18절입니다.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나님 때문에 기뻐한 이유에 관해서 설명이 필요합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박국이 고민했던 이유는 자기 민족이 외국의 침입을 방아서 멸망당하게 되었고, 고통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이런 위기 상황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앞 부분에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왜 우리 민족이 이렇게 고통당해야 합니까? 하고 말입니다. 남유다도 타락했지만, 바벨론도 타락했는데 왜 그 타락한 바벨론에게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남유다는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남유다를 심판하는 도구가 바벨론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심판의 도구였던 바벨론도 심판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를 지키보기만 하고 아무 일도 안하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섭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이 16절입니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나님은 더 악한 사람들을 덜 악한 사람들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경중을 가려서 심판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깨끗해지고 선해지도록 유도하십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하박국이 하나님 때문에 기뻐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런 성품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고 안다고 하고 체험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을 해야 알 수 있는데 인정을 안합니다.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사람, 기적을 체험했다는 사람을 만나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기적이나 기도 응답이 많이 필요한게 아니었습니다. 확실한 한 번이면 족합니다. 확실하게 한 번 체험하면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집니다. 그리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은사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 없습니다. 죄의 각성이 없으면 절대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을 알면 모든 의문과 걱정이 해결됩니다.

가족들을 챙기는 것보다 카메라 장비를 챙기는데 더 힘을 쏟아야 했다. 멋진 순간을 만나더라도 폰카나 콤팩트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보다 꼭 한 템포 느렸다. 거창한 장비를 꺼내고 노출을 조절하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전문가용 장비를 가진 내가 자동모드로 사진을 찍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주섬주섬 장비를 꺼내고 세팅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마음이 급한 가족들은 짜증을 내기까지 했다.
가족을 챙기기보다는 장비를 챙겼고, 추억을 남기기보다는 근육통만 얻었다. 그러나 여행 전에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읽었더라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중요한 것은 추억이지 많은 장비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소중한 물건은 그 개수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책이 있다. ‘집에 불이 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구해내겠습니까?’라는 단순한 질문을 시작으로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세상에 나왔다. 뉴욕에 살던 디자이너 포스터 허팅턴은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이 질문을 생각해냈다. 각자의 리스트를 내놓기 시작했고 급기야 ‘더 버닝하우스닷컴’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중략) 처음 이 질문을 생각했을 때 허팅턴 자신의 목록은 18개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 매달린 6개월 만에 그 목록은 2개만 남았다.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내린 결론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것을 갖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허핑턴 포스트 20150203

재미있는 사실은 나이 어린 세대들은 아이폰, 노트북, 외장하드 등을 골랐고, 나이든 세대들은 주로 필름, 일기, 편지, 수첩 등을 선택했다. 품목은 확연히 차이가 나지만 그 기능은 거의 동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추억’을 담는 기능 말이다. 중요한 것은 ‘추억’이지 가격이 아니었다.

생활하는데 있어서도 옷이든 신발이든 전자제품이든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마시고, 좋은 것 하나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결혼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 한 명하고 결혼해서 그 사람하고 영원히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고 방식입니다. 소중한 것이 알면, 소중한지 않은 것을 잃어버려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3. 높은 곳에서 보자

세번째, 아무 것도 없는데 기뻐하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서 보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생각의 높이가 높아져야 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에 관해서 시간표가 있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시야가 달라졌습니다. 고차원적인 시야을 갖게 되었습니다. 원명이나 불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나 살펴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삶을 살아도 보는 시야가 낮을 수가 있고 높을 수가 있습니다. 시야가 높으면 멀리보고 오래 인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고 하면, 먼저 씨를 땅에 심습니다. 씨가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씨를 잃어버려야 풍성한 추수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시야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안타까운 부분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맞추어서 시야를 높이지 않아서입니다. 자기 수준으로 성경을 낮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상황을 성경에 비추어서 해석하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예를 들면, 열왕기 시대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이것을 해석할 때 북왕국은 북한, 남왕국은 남한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합당한 해석은 북왕국은 이단 교회, 남왕국은 정통 교회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단 교회가 앞으로 정통 교회를 위합할 정도로 커질지 모릅니다. 정통 교회 안에도 건강하지 못한 교회가 다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단 교회에는 구원의 복음이 없고, 철저하게 멸망합니다. 정통 교회도 쇠퇴하지만 그 안에는 복음을 계승한 사람들이 세상 끝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복음을 아는 사람은 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이길 수 없는 복음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 말이 말 장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실체로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합니다.

생각이 높은 사람은 눈 앞의 비극에 앞도 당하지 않습니다.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는 “영혼을 파는 자는 세상을 다 얻어도 덧없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는 청교도와는 반대의 길을 간 천주교인이었지만, 나름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사형 집행관에게 “힘을 내게,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말하고, 단두대에 머리를 쑥 내밀면서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며 수염을 조심하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사람은 신앙인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만큼 생각과 마음이 높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00. 이 말씀을 하신 이유

추석에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감사하고,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당황하거나 공포를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높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2018w38_감처럼 인정이 익어가게 하소서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기도문 듣기

은혜의 하나님,
민족의 전통 명절인 추석이 가깝습니다. 보름에 다다가면 둥글게 채워지는 달처럼 고향을 그리는 저희들 마음도 점점 차오릅니다. 추석을 앞에 두고 영원한 고향을 그리워하며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추석에는, 감나무 위에 감이 익듯이 집집마다 인정도 익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카롭던 감정이 누그러지고 삭막했던 마음이 푸근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헤어졌던 가족이 만나게 하시고 서먹했던 사이가 좋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향 하늘의 정다운 달빛처럼 부모와 자녀가 화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멀어졌던 친척, 친구들이 다시 화기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투던 이웃들이 불신을 끝내고 화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창 밖으로 웃음소리 흘러나오는 명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늘 언제나 저희를 돌봐주셨듯이 가족과 자녀, 친척과 친구, 이웃과 이 민족을 돌봐주시옵소서. 저희는 거짓되어도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저희들의 기도로 인하여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주 날개 그늘 아래

사랑의 하나님,
홀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긴급한 업무로 일하는 직장인, 목표로 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 제 나름의 사정으로 외롭게 지내는 사람, 비상 상황을 대비하는 경찰과, 소방관, 방송인, 기자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시옵소서.

먼 길을 오가는 사람을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통 사고가 나지 않게 지켜주시고, 교통 체증으로 피곤하지 않도록 돌봐주시옵소서. 음식으로 인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며 모든 곳에서 화평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섭리해 주시옵소서.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여도 저희 내면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습니다. 영혼을 가진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바라옵기는 한가위 동안에도 영혼의 양식을 넘치도록 내려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소문이 퍼져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명절 매출이 크게 높아져서 수고한 이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485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룻기에 나타나는 구속의 역사_김영철 목사

룻기 / 2018년 9월 16일 주일 설교

선으로 보는 구속의 역사(김영철 저) 247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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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장소 변경 안내(2018년 9월 16일)

미리 알려드린 대로 2018년 9월 16일 주일예배 장소가 다음과 같이 변경되었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번주 예배 장소는 평택 뉴코아 아울렛이 아닙니다.

  • 장소 : 고덕 두란노교회
  • 시간 : 오전 11시
  • 주소 : 평택시 고덕면 고덕로 33 / (구주소) 평택시 고덕면 해창리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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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18 | 지도 크게 보기 ©  NAVER Corp.

꿈을 좇아가서 소망을 잡아라

창세기 9:14~15 / 2018년 09월 09일 주일 설교

본문

(창 9:14~15)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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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창 9:14~15)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찌라

한줄 요약

무지개는 붙잡을 수 없는 곳에 있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증언해 줍니다. 꿈을 쫓는 삶은 허탈해지지만, 소망을 품은 인생은 기쁨을 누립니다.

개요

무지개는 아름답지만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무지개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0. 무지개같은 꿈

교리 설교를 하는 도중이지만, 지루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중간에 다른 설교를 끼워넣어서 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인생관 혹은 사고방식에 관해서 주로 설교할 예정입니다. 편하게 들으시면 됩니다.무지개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어렸을 때는 무지개를 제법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지개하면 생각하는 사람이 나폴레옹입니다. 나폴레옹 전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이 어릴 때의 얘기입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저 무지개를 잡을 수 있을까?” 모든 친구들이 무지개는 잡을 수 없다고 했지만, 나폴레옹만은 무지개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지개를 잡으려고 무지개를 보고 뛰었습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뛰었습니다. 무지개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먼 길을 달려 기진맥진하여 길가에 쓰러졌습니다. 친구들이 비웃자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무지개를 잡을 수 없다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지만, 나는 무지개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먼 길을 달려갈 수 있었다.”

나폴레옹 뿐만 아니라 무지개를 본 사람은 누구나 무지개를 가까이 가거 보거나 만지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개는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간절하게 바라는 꿈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도 그랬던 것처럼 무지개를 잡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무지개는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지개같다’는 말은 아름답다는 말인 동시에 붙잡을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오늘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지개를 통해서 언약을 하셨습니다. ‘무지개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를 통해서 알려주시려고 한 교훈 세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하나님

첫째, 무지개 언약은 다른 사람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라는 교훈입니다.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께서 노아의 정신적인 충격을 치료하려고 하신 약속입니다. 의학과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몸에 난 상처 뿐만 아니라 정신에 난 상처도 상처로 인정합니다.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과거에 충격으로 인해서 정신적인 상처를 받는 사람이 많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죽는 것을 본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버지니아주 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퇴역군인의 40%가 우울증을, 25%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20%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하루 22명의 참전용사가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났구요. 사회 적응도 어려워서 2012년 퇴역군인 6만 2천 여 명이 노숙을 했는데. 이는 전체 미국 성인 노숙인의 13%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출처] KBS 뉴스, 2014.4.8

군인이 아니지만, 소녀시대의 써니가 3살 때 이라크 전쟁을 쿠웨이트에서 겪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급거 귀국한 것은 물론, 현재도 폭죽 소리가 들리면 심하게 놀란다고 합니다. 자신이 죽을 위험에 놓인다거나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일이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 일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비만 오면 정신적 충격이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비가 홍수 때처럼 오랫동안 내리지는 않더라도 두려움을 가졌을 법합니다.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주신 이유는 무지개가 비가 그친 후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비가 그치고 나타나는 무지개를 보면서 노아는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안심했을 것입니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과거의 사건이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없는데요.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잘 살펴보면 어렸을 때의 경험이 크건 작건 영향을 끼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면,한국인이 김치를 좋아하는 이유가 어렸을 때 알게 모르게 김치를 맛보았기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어렸을 때 외국에 입양된 사람들은 겉모습은 한국인이어도 입맛은 외국입니다. 무지개 언약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헤아리는 섬세한 분이십니다. 이런 점은 다른 종교에서 보여주는 신과는 다른 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한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달라집니다.요즘에는 사람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을 소모품 취급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에게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거나 걸어다니기 불편하니까 도로를 개선해 달라고 청원했다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그냥 참고 다니지 왜 그래. 이런 생각을 하셨다면 하나님과는 다른 성품을 가졌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일반적인 인간 사이의 간격이 클까요? 아니면 일반적인 인간과 장애인의 차이가 클까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가 더 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장애인의 호소를 무시하는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냉철하게 그것이 사실인지 점검해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병폐입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들어도 적용이 잘못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의 호소를 들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호소를 듣자고 설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맞아 맞아”하면서 각자가 다른 사람의 호소를 들으려고 노력할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붙들고 당신 왜 내 호소를 안들어 하는 일이 벌어질까요? 그리스도인은 내가 다른 사람의 호소를 들어야지 라고 그냥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호소를 들으라고 강요할 것입니다.

2. 꿈을 좇아가라 그러나

두번째로, 무지개 언약은 꿈의 실상을 알려줍니다. 무지개가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실체를 잡기 어렵습니다.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힐링을 주제로 하는 TV프로그램에서 한 철학자가 연기자 지망생에게 조언을 해주는걸 들었다. 그 철학자는 당신이 진정으로 배우를 원한다면 꿈을 버리지 말고 더 노력을 해야 하며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끈기가 부족해서 일수도 있으니 대학로든 어디든 당신이 연기자로 발돋움할 수 있게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짧은 TV강연에서 그 철학자의 조언의 의미를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난 그 조언을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자칫 오해를 하면 세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노력을 덜했거나 끈기가 없어서일 꺼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영 마음이 불편했다. …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난 영화계에 입문해서 마흔이 넘어서야 가족을 건사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난 꿈을 버리지 않고 영화계에서 끈기 있게 노력해서 지금의 위치가 되었다고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야 하는데 한번도 후배나 동료들에게 내 사례를 들어서 더 노력하고 끈기 있게 꿈을 이뤄나가라고 조언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나는 ‘꿈을 버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개그맨지망생이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웃기는걸 좋아했고 대학 다니면서도 개그맨의 꿈을 키워왔다. 그래서 대학 때는 개그오디션이나 개그맨공채시험에도 응시하려고 했으나 코미디 연기자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걸 알았다. [출처]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한국일보. 014.2.13

위의 글은 영화계에서 나름 성공한 축에 속한 분이 쓴 글입니다. 남들 보기에는 성공했으니까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본인의 꿈은 그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꿈을 이루지 못해서 슬퍼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드물게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도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쓴 글을 보았습니다. “가장 허무할 때가 내가 원한다고 생각해서 이룬 것이 진짜 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면할 때이다.”

정말 드물게 자기가 원했던 꿈을 이룬 경우가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버나드 쇼의 고백에 이르릅니다.

내게 두 가지 절망이 있다. 하나는 무슨 일들이 마음대로 안 되는 절망이고, 하나는 마음대로 된 이후에 오는 절망이다(버나드 쇼).

큰 꿈을 꾸라는 압력을 받고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그렇게 해서 꿈을 이루었지만, 진짜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그래서 꿈을 이루지 못한 좌절을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박명수가 “꿈은 없구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했답니다. 저는 공감하지 않지만, 그 말에 공감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박명수의 말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씁쓸합니다.

왜냐하면, 돌이켜보니까 큰 꿈을 갖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착실하게 그것을 준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꿈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것입니다. 의사, 판사, 회계사 등 사자 들어간 직업을 원합니다. 적성은 생각하지도 않고 공부 잘해서 그런 직업을 선택합니다. 남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스스로 어떤 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꿈을 좇지 말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을 일을 찾고 그것을 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삶에서 진정한 행복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지개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형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꿈도 비슷합니다. 진정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정말 이것이 최고의 삶일까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세상의 한편은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좌절과 낙심으로 가득차 있고,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의혹과 당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꿈은 아무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지개처럼 바라볼 때는 황홀하지만 다가갈수록 형체가 없습니다.

3. 소망을 붙잡자

세번째로, 무지개 언약은 소망이 기쁨을 준다고 알려줍니다. 노아는 비가 내리는 동안에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가 그친 후에 나타난 무지개를 보면서 큰 안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가 내릴 때 느꼈던 공포감 이상의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무지개는 일종의 자연현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자체의 가치보다는 외적으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재 가장 비싼 그림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예수님 초상화더라구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를 다시 썼다. 500여년 전 다빈치가 그린 예수 초상화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15일(현지시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천30만달러(약 4천978억9천만원)에 낙찰됐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긴급 보도했다. (중략) 지금은 최고의 몸값을 받는 자리에 있지만, 그간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럽 귀족들의 손을 거치며 심한 덧칠 등으로 손상됐고, 누구의 작품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수백 년을 떠돌았다. [출처] 연합뉴스, 2017.11.16

▣ 크리스티 뉴욕 2017년 11월 전후 & 현대 미술품

그림이 훼손이 심했고, 컴퓨터 시대에 사진을 찍어서 복사하기도 쉽습니다. 왜 이 그림이 이렇게 비쌀까요? 그림 자체의 가치가 아닙니다. 이 그림에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비싼 것입니다. 내 자녀가 특별합니까? 내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특별한 겁니다.무지개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지개를 걸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무지개는 자연현상으로 일종의 허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보면서 무지개를 쫓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무지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꿈이 깨어지고 목표를 얻지 못해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될 때가 올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꿈이라는 것은 무지개같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꿈은 멀리서 바라볼 때 기쁜 것이지 가까지 다가갈수록 좌절과 낙심, 그리고 괴로움만 더해 줍니다. 무지개는 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잡지 못했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지개는 잡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증표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의 호소를 들으셨고 지금도 우리의 호소를 듣고 계신다는 증표입니다. 그러한 성품을 가진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중보적인 역할을 합니다.

무지개를 잡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언제나 기쁨이 슬픔을 능가합니다. 슬픔이 더 크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슬픔보다 기쁨이 언제나 더 큽니다. 마치 튜브를 물에 넣으면 튜브가 물에 뜨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의 실패에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산 사람도 그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는 성공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바로 이것을 알려줍니다. 성공도 하고 하나님도 만나면 가장 좋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공평함이 있습니다. 그분의 지혜로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저울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공의를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00. 이 말씀을 하신 이유

무지개 언약은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물 외에 다른 것으로 심판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을인데 가을이 오면 농부는 추수를 합니다. 논과 밭 그리고 과수원의 과일을 추수합니다. 직장인들은 연말이 되면 연말 결산을 합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봅니다. 한 해 농사 혹은 한 해 일한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이 모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심판이 없을 수 없습니다. 무지개는 우리에게 일종의 테스트가 됩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가를 말입니다.

꿈은 이루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꾸라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도 이루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간직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인생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꿈이 깨어졌어도 성공하지 못했어도 좌절과 낙담으로 점철된 인생이라고 생각할지라도 소망을 가지십시오. 꿈이 아니라 소망이 우리를 기쁨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찬양과경배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2018w36_주님의 은혜가 구름처럼 가깝습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기도문 듣기

섭리의 하나님,
무더위가 힘을 잃고 지나가는 바람에는 시원한 공기가 담겨 있습니다. 9월은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처럼 저희를 여름에서 가을로 인도합니다. 이 아침 주님의 신비함을 묵상하며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태풍과 폭우가 지나간 뒤의 세상은 무척 깨끗합니다. 하늘은 주님의 거룩하심처럼 높고, 구름은 주님의 은혜처럼 가깝습니다. 이러한 자연을 보며 주님의 거룩하심과 풍성한 은혜를 기억하오니 태풍같은 시련 속에서 태연하게 하시고, 폭우같은 근심 속에서 안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논과 밭, 과수원에 있는 곡식과 과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들의 마음을 헤아리사 그것들이 중간에 떨어지지 않게 보호해 주시고, 속이 꽉찬 곡식과 과일로 자라도록 끝까지 햇볕을 비춰 주시옵소서.

곡식과 과일은 다음 세대에 씨앗을 남기기 위해서 목마름을 참고 땡볕을 견디었습니다. 저희도 인내함으로 믿음의 씨앗을 남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계절을 주관하고 인생을 섭리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변화하는 세상에 살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물질만능 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물질보다 소중한 그리스도를 신뢰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워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주의 길을 주여 내게 가르치소서

자녀를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희 자녀들이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지혜로우며, 능력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불어 그들이 사랑이 많은 자가 되게 하시되 사랑할 시기와 대상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함께 주시옵소서.

용감한 자들이 되게 하시되 거만하지 않게 하시고, 거절을 해야 할 상황에서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도록 생각에 유연함을 주시고 유머를 아는 자가 되어 두려운 순간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소문이 퍼져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람과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485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계절도 변하고 인생도 변한다

본문

창세기 08:22 / 2018년 09월 02일 주일 설교

(창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설교 듣기

한줄 요약

계절의 변화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려고 이러한 변화를 주셨습니다.

개요

9월입니다. 길었던 여름도 이제 끝을 보입니다. 릴케라는 시인은 이렇게 여름의 끝을 노래했습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출처]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날 중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계절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번 여름이 너무 덥고 길다보니까 여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겨울이 무척 추우면 겨울이 없었으면 좋겠다 혹은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계절이 변하게 하셨을까요? 여름과 겨울을 주셨을까요?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한 교훈이 무엇일까요?

0. 변화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에 계절의 변화를 주신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1. 첫째, 활기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이 활기가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도 많고 문화도 발달했습니다. 여름이 거의 대부분인 중동 지역에는 시에스타라는 낮잠 문화가 있습니다. 낮잠을 자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삶이 지루하고 늘어진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남쪽에 위치한 스페인도 낮잠 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을 개선하려는 논의가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통상 오전 9시에 업무(일과)를 시작해 정오께 짧은 커피타임을 갖고 오후 2시까지 일한 뒤 4~5시까지 이어지는 긴 점심식사를 즐긴다. 이어 업무에 복귀해 오후 8시 또는 더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근로 패턴이 이렇다보니 하루 11시간가량을 회사에 머물게 된다. 늦은 귀가로 저녁은 오후 9시께 먹게 되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은 줄며, 자정 넘어 잠자리에 드는 이들이 많다.

계절의 변화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삶이 늘어지고 지루해 질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노인과 청년을 구분하는 법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이를 떠나서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면 청년이고 하던 일만 계속하면 노인이라고 합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될 때, 요금이 비싸다고 바꾸지 않은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카카오톡을 주변 사람들이 다 쓰니까 뒤늦게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되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좀 과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어릴 적이 동네에 전화가 몇 대 없어서 공동으로 썼습니다. 그때는 집집마다 전화기를 놓는다는 걸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설치비도 비쌌고 전화요금도 아까워서 놓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시대가 지나서 집집마다 전화기를 하나씩 놓았습니다. 그런데, 휴대폰이 나왔습니다. 집에 전화 있는데 휴대폰이 왜 필요하냐고 주장하던 분들이 기억납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나왔고 여지없이 스마트폰이 왜 필요하냐는 분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스마트폰을 구입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유가 있다면 변화를 따라가가는 것이 좋습니다.

바다에 온갖 쓰레기가 흘러드는데 썩지 않는 이유는 달이 바다를 끌어당겨서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게 해서입니다. 바다는 계절은 없지만, 밀물 썰물이 있어서 활기를 유지합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됩니다. 변화가 계속 일어나는데 변화를 계속 따라갈 수 있고, 거부할 수 있습니다.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만 포기하면 나태해지고 활력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변화를 주십니다. 그 변화를 잘 따라가야 합니다. 제 인생에는 3년에서 5년 정도 주기로 계절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변화를 잘 발견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2. 둘째,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겠지만, 문제가 있는 사람은 뭔가 변화를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저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더 잘사는 경우를 봅니다. 저야 어차피 돈을 벌려고 목회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질투가 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야 살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한 번 잘나가는 사람, 못 나가는 사람 정해지면 변화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 전에 대통령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였습니다. 오바마의 인생을 보면 여름과 겨울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두 살때 어머니가 케냐인 아버지와 이혼했습니다. 다시 인도네시안인하고 결혼해서 인도네시아에서 10살까지 살다가 미국에 와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졸업 후 시카고에서 빈민을 위한 인권 변호사를 하다가 다시 하버드 대학원 로스쿨에 들어갔습니다. 정치에 입문해서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오바마를 보면서 저도 위로를 받고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갔기 때문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미국의 흑인, 빈민들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만약,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성공할 기회가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계속 차별받고 돈도 없이 살아야 한다면 그들이 범죄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소망이 없는 사람은 삶을 살아갈 힘을 잃고, 소망이 없는 사회는 범좌가 증가합니다.

소망은 현재 삶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야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변화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소망을 간직하라는 의미입니다. 네 인생을 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돈이 없는 것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죽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글이 있더라구요. 죽고 싶다라고 말하지 말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라. 여러분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면 이렇게 바꾸어서 이야기 하세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변화된 삶을 살고 싶다는 의미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으면 이렇게 바꾸십시오. 하나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은 변화에 응답하십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야기를 하자면, 오바마가 똑똑하지만 본인이 잘나서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이 기회를 주셨고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또 열렬한 지지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바마의 삶에 좋은 계절을 주지 않으셨으면 그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생에 계절이 있다는 말은 우리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것들을 초월한 섭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 노력이나 능력과 상관 없이 좋은 기회가 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3. 셋째,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그 사이 즉, 계절이 변할 때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열심히 일할 때는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마치 여름날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직장을 옮기느라 일을 쉬게 되거나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정신 없이 살아왔던 지난 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 고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않은 시간에 그런 쉬는 시간을 마련해 주십니다.

버포드 텔레비전사의 튼튼하고도 눈부신 성장으로 기대한 부를 축적한 44세의 밥 버포드에게 성공의 공포가 찾아왔다. 내 인생에 목적을 부여해주는 가치기준은 무엇인가? 내 삶을 이끌어 갈 중요한 비전은 무엇인가? 가장 유용한 사람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방황하며 고민하던 밥 버포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빛이요 인도자로 영접하였고 그분께 최고의 충성을 드리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할까? 그의 상속자요 계승자인 전도가 유망한 청년 외아들 로스가 리오그란데 강을 헤엄쳐서 건너던 중 익사하였고 넉달 후 강 하류 16㎞ 지점에서 로스의 시신을 찾게된다. 아들의 죽음은 밥 버포드의 인생 전반기를 마감케 하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그는 하나님께만 온전히 매달리며 아들 로스가 지금 살고 있는 영원한 세계를 사모한다. [출처] 기독교타임즈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할 일을 합시다. 생각합시다.

00. 이 말씀을 하신 이유

이 말씀은 8장 20절에서 노아를 제사를 받으신 후에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사역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보류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희생 사역을 통해서 구원 받을 사람이 없어질 때 이 세상의 심판이 이루어지집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재앙이 일어나는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습니다. 쉬는 시간을 주는 이유는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재앙이 일어나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을 결정하라는 의미입니다.

2018w35_인생의 계절을 섭리해 주소서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태풍 ‘솔릭’이 지나쳐 안도하던 사이에 폭우가 이 땅을 덮었습니다. 자연의 거대한 위력을 실감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왔습니다. 
 
이번에 내린 폭우는 여름이 쉽게 물러가지 않으려고 고집부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계절도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고 머물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변화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계절과 날씨를 섭리해 주시옵소서.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결실하는 가을이 찾아오듯이 저희 인생도 무더위가 지나고 결실하는 가을이 찾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변화하는 세상에 살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물질만능 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물질보다 소중한 그리스도를 신뢰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새로운 일을 맞이할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피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변화를 주도하시는 주님을 늘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주의 길을 주여 내게 가르치소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화해와 이해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내세우되 다른 사람의 신념 또한 존중는 예의를 갖추게 하시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되 오기와 억지가 아니라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하는 수고를 감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제 안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돈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빈부 격차를 줄이고, 청년 실업, 조기 은퇴, 노인 빈곤 등의 문제도 지혜롭게 해결하는 사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소문이 퍼져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람과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2018w34_변화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8월이 하순에 접어들며 맹렬한 무더위도 기세가 꺾였습니다. 백년 만에 찾아온 뜨거운 여름의 끝을 봅니다. 멀어진 여름만큼 높아진 하늘을 보며 주님을 예배하러 왔습니다.

태풍 ‘솔릭’이 피해 없이 이땅을 지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졸였던 가슴을 펴며 안도하고 기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길었던 여름이 뒤돌아 보니 짧게 느껴집니다. 참기 힘들던 무더위가 견디고 나니 인내심을 길러준 스승이었습니다.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주님의 섭리를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하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 인생의 계절과 날씨를 섭리하십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결실하는 가을이 찾아옵니다. 저희 인생도 여름이 지나면 결실할 가을이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새로운 일을 맞이할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피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변화를 주도하시는 주님을 늘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주의 길을 주여 내게 가르치소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정체된 북한 문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남북한과 미국 , 중국이 연내에 종전 선언을 하고 평화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관계 당국 관련자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화해와 이해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내세우되 다른 사람의 신념 또한 존중는 예의를 갖추게 하시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되 오기와 억지가 아니라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하는 수고를 감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경제 안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돈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빈부 격차를 줄이고, 청년 실업, 조기 은퇴, 노인 빈곤 등의 문제도 지혜롭게 해결하는 사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소문이 퍼져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람과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295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교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 2

본문

사도행전 7:46~55 / 2018년 08월 26일 주일 설교

(행 7: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행 7: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행 7: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행 7: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행 7: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행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시 110: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설교 듣기

핵심 구절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한줄 요약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개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자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0. 무엇이 영원할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모든 것은 끊임 없이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은 영원한 것 아닌가?” 다시 말하면, “변화는 영원하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변화하게 하는 분은 영원하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변화의 뒤편에서 변화를 주도하고 섭리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변화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황금빛 별 저편에는 누가 사는가?” 이것은 시인 하이네의 물음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스데빈 집사를 통해서 무엇이 영원한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 1. 성전
스데반 집사가 죽은 결정적인 이유는 성전을 모독했기 때문입니다.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자 듣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극도로 분노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분노했느냐면 성전을 절대적인 가치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거기에 기댑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지만, 돈 말고도 집에 집착하는 사람, 자동차에 집착하는 사람, 컴퓨터 게임, 수집 취미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실제로는 가치가 없을 때 생깁니다. 집, 자동차, 컴퓨터, 취미품이 영원한 가치는 없지 않습니까?

위에 것과 같이 놓고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이 그런 절대적인 가치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예배당을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종교적인 건물이니까 아무래도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외형적인 것은 도구이고 수단이지 결코 본질이 아닙니다. 물질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이 빠집니다. ‘노틀담 드 파리’은 노틀담 성당에서 일어난 추악한 스캔들을 보여줍니다. 노틀담 성당은 대주교좌 성당이고 중세 고딕 건축 양식의 정수라는 건축물입니다. 우아하고 웅장한 성당입니다. 보기만 해도 신앙심이 일어날 것 같고,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 같은 성당.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 없이 거룩할 것 같은데, 사실을 일반인보다 못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임 신부 프롤로도 근위대장 페뷔스도 욕정에 이끌려 범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겉보기에 추악한 곱추 콰지모도가 그나마 양심적입니다.

큰 건축물을 보고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웅장한 건축물을 지어서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신앙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율법주의

어떤 사람들은 생각을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길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고정관념이 그런 경우입니다. 어렸을 때 갖게 된 고정관념이 자신도 모르게 머리 속에서 절대적인 가치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군대에 관한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군대가면 고생하고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고정관념을 깨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겨울에 눈을 치우는 일을 민간인에게 위탁하고 병사들이 평일에 외출했다가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월급도 현재 병장 월급이 40만 6천원입니다.

“고정관념이 강한 분들은 이게 무슨 군대야”라고 반발하시더라구요. “내가 군대 있을 때는”으로 옛날 얘기를 합니다.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돈도 거의 못받는 수준이었습니다. 그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 군대는 출퇴근이 가능하거나 주말에 집에 가는 군대로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군대가 지나치게 엄격한 건데 그게 고정관념이 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통행금지가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전에 통행금지 없애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간첩 세상이 된다고 결사 반대하는 사람들이 엄첨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통행금지가 비정상인데 그게 고정관념이 된 거죠. 국기 하강식은 어떻습니까? 걸어가다가도 멈춰야 했습니다. 그거 안하게 되었을 때도 반대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생각이든 고정관념이 되어서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하나씩 하나씩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은 지키지 않고 자신들의 고정관념인 율법주의를 지켰습니다. 오늘날도 기독교를 믿지 않고 기독교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주의와 기독교주의가 문제인 이유는 진짜 지켜야 하는 것과 매우 혼동된다는 점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권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은 안지키고 율법주의만 지킵니다.

(행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지금도 옛날이 좋았다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분들이 과거로 돌아가면 그런 말을 할까요? 아파도 건강보험이 없는 시대라 병원 못가고, 방 한 칸에서 식구가 몰려자고, 목욕도 제대로 못했던 상황에서 행복하다는 말이 나올까요? 왜 옛날이 좋았다고 하냐면 그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며 살지 않으면서 율법을 지키며 산다고 착각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살려고 하면 도저히 못 지키겠다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지키지 않으니까 못지키겠다는 말이 안나옵니다. 지킬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으로 설명하면 교회에서 주일 성수, 헌금, 봉사 등을 요구하면 힘들지만 할 만합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 좋은 신앙인이라고 칭찬받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의 요구는 이런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의를 위해 고난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삶은 살지 않아요. 본질적인 삶은 살지 않고 비슷한 삶을 살면서 신앙인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율법주의입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주의입니다.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순장도 하는 청년인데, 집에서는 막나가는 사람을 여러 명 보았습니다. 사실은 순장 안하고 교회와 집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줄이는게 더 바람직합니다. ‘기독교주의자’가 되지 말고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교회를 오래 다닌 친구와 황우석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아무래도 황우석 교수에 대한 철썩 같은 믿음이 있는 것 같았다. 황우석 교수는 그래도 세계적인 과학자인데 언론에서 그렇게 죽여서야 되겠냐고, 그러면 우리나라도 같이 자멸하는 게 아니냐고 항변하였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로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장은 아픔이 있더라도 투명한 진실에 기반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이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친구가 보수적인 기독교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대뜸 다음과 같이 다시 얘기를 꺼냈다. “원래 너의 신앙적 기준이라면 황우석 교수가 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오히려 반대해야 맞는 거 아니니?” 라고 말해주자, 그 친구는 나의 갑작스런 이 질문에 흠칫 놀라면서 잠시 생각해보더니 “그…. 그렇지”라고 얼버무리듯 얘기한 적이 있다. [출처]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475

현실을 살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 없는 것을 미화하고 절대화합니다. 과거가 좋았다고 하고 어디 가면 행복할 거라고 상상합니다. 과거에 머물고 상상 속에서 삽니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변화에 몸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의 영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잡히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사람의 마음만큼 변화무쌍하고 잡히지 않는 것도 없지만 그것만큼 영원한 것도 없습니다.

지난 주에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들 보면서 가슴에 와닿았던 말은 이것입니다. “살아 있어줘 고맙다.” 92세 이금섬씨(남측)과 북측에서 온 71세 아들 리상철씨를 만나자 마자 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금섬씨는 60년 만에 만난 아들을 향해 “고생했다” “살아있어줘 고맙다”며 애틋한 부정을 표현했습니다. 부자 간의 정, 사랑은 60년의 시간을 넘어서 이어졌습니다.

이와같이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아직 마음이 연결되지 않았다면 교회가 건설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를 감동하시기에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합니다. 교회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그 마음이 영원하기에 교회도 영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는 분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의 영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00. 그리스도인으로 살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줘 고맙다”고 하시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예수님의 그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고통이 녹아들 것입니다.

찬양과경배. 무엇이 변치 않아 내 소망이 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