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주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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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누가복음 02:01~14

날짜

2018년 12월 09일 주일설교

내용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은수저 물고 태어났다)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의미로 변형되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부유한 집 태생을 이르는 표현’이었지만, 과거 유럽 귀족층에서 은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대신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던 풍습을 빗댄 말이라고 합니다. 은수저보다 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로 금수저, 다이아몬드수저라는 말이 나오더니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실을 스스로 비웃는 의미에서 흙수저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훔친수저라는 용어마저 들립니다. 부모가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 재산을 모은 경우를 말합니다.

온라인상에 등장한 수저계급론에 따르면 금수저는 자산 20억 이상 또는 연 수입 2억 원 이상인 가구가 속하고 은수저는 자산 10억 원 이상 또는 연 수입 8000만 원 이상 가구, 동수저는 자산 5억 원 이상 또는 연 수입 5500만 원 가구이다.흙수저는 자산 1억 원이다. 흙수저에도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플라스틱 수저라는 새로운 하위 계급으로 분류된다.

수저에 관한 용어가 다양하게 생겨났다는 건 그만큼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도 성장이 멈추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개인의 노력으로 큰 재산을 모으기 어려워졌습니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티끌모아 티끌이다”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신분상승 기회였던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부모의 재산과 지위가 대물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한 사회에 관한 두려움이 수저론에 묻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셨습니까? 자녀에게 어떤 수저를 물려주고 싶으십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어떤 여러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떤 수저를 선택하셨겠습니까?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자신이 어떤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날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수저를 선택하셨습니까? 왜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요? 몇 주 있으면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탄생의 과정을 하나하나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 과정은 예수님께서 정성스럽게 우레에게 주는 메세지입니다. 께서 선택한 탄생의 과정을 보면서 수저론에 절망하는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서술한 본문은 예수님과는 정반대 위치에 있는 아구스도 황제의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황제니까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호적을 정리하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모가 베들레햄으로 내려가야 했고, 결과적으로 메시아가 베들레햄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로마 황제는 자기 마음대로 명령을 내렸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구스도 황제는 세계사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라고 불립니다. 로마 제국 최초의 황제라고 나중에 불리지만, 스스로는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양아버지인 카이사르가 로마를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로 변화하려고 하다가 암살당했기 때문입니다. 신임하던 부하 부루투스가 암살에 가담하자 “부루투스 너마저도”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그에 따라서 전쟁과 반란, 긴급 사태가 잦아지자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황제정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시민의 평등한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황제정치를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두 주장 모두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그런 걸 우리가 알아서 뭐합니까?”라고 질문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네, 맞습니다. 굳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사회 갈등에 대해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아야한다는 점입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마저 죽게 만들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단 몇 분 동안도 흥미를 끌지 못하는 주제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를 죽인 부루투스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무엇 때문에 카이사르를 죽였느냐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 입니다. 내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는 카이사르보다 로마 시민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습니다. 이것이 나의 대답입니다. 로마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카이사르가 살아서 로마인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원합니까. 카아사르가 죽음으로써 로마 시민들이 자유를 가지는 것을 원하십니까. 나는 카이사르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지혜롭고 용감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로마 시민 위에 군림해 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죽여야 했습니다.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것이 나의 대답입니다. (하략)” – 부루투스의 연설(카이사르 살해 변명)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념 갈등은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가 시대가 지나면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도 시간이 흐르면 색깔이 바래는 물감처럼 중요성을 잃어갑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해 가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낭만적으로만 그려져서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매우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열등감을 갖게 됩니다. 어렸을 때 겪은 일일수록 인생에 큰 영향을 줍니다.

방송인 이영자 씨의 연설을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자신은 냄새를 맡는 습관이 있답니다. 먹을 것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이유가 아닙니다. 어렸을 때 집이 생선가게를 했는데, 자기 몸에서 생선냄새가 날까봐 부끄러웠답니다. 다른 아이들이 냄새 맡는 표정을 짓거나 냄새 관련 말만해도 지레 창피함을 느꼈답니다.

예수님은 목동들의 축하를 받으셨습니다. 이 사실도 낭만적으로만 그려지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얕잡아 보일 수 있는 사건입니다. 당시 목동들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선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분은 매우 낮았고, 반은 도둑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말구유에 뉘였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말구유에서 난 아이’라고 놀렸다면, 장난으로 말하는 거지만, 당사자인 아이는 매우 큰 상처를 받지 않을까요?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정신에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목동들의 축하를 받으셨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근조 화환 리본에 보낸 사람의 직위와 이름이 써있는 것을 봅니다. 유명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 보낸 화환이 죽 늘어서 있으면 흥성한 집안으로 보입니다. 점포를 오픈했을 때도 비슷합니다. 높은 분들이 보낸 화분이 많으면 인맥이 넓은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누가 조문을 하고, 축하를 했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지위도 간접적으로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낮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셨습니다. 이건 오늘날로 생각하면, 장례식장에 조문 화환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점포를 오픈했는데 화분을 보낸 사람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 상황을 겪으셔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그런 상황을 스스로 선택해서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선택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

오늘날 굶어죽을만큼 돈이 없는 집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이 없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이 흙수저로 태어났다는 사회적인 낙인을 더 부끄러워하는지 모릅니다. 저만해도 극빈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이면 살만합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흙수저라는 사실, 즉 부자집에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심한 절망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누이셨다는 사실은 열등감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열등감 때문에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열등감을 느낄 수 있는 사실을 안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열등감에 고통하는 사람을 위로하셨습니다. 제가 매우 가난하게 자랐고, 고등학교 때 신문배달을 했다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큰 위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고생을 조금도 안 하고 산 사람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이 부러워하지만, 고생한 사람 얘기를 들으면 위로를 받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소망을 주는 예수님

예수님의 탄생은 사악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도전장입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최고의 윤리로 알고 살아가는 세상에 던진 하나님의 폭탄입니다. 그 폭탄은 조용하게 폭발했습니다. 하지만,

수저계급론에 좌절하는 건 우리만이 아닙니다. 수 천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전할 미래에도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런 종류의 좌절은 계속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소망도 여전히 인류 역사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더욱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그분이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잃어버린 바 되었을 것입니다.하나님께 나아갈 방법이 없고, 죄의 대속이 없으며, 용서가 없고, 구세주도 없을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셨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드린다면, 그분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 베드로를 만나주시다

2018년 11월 11일 주일 설교

누가복음 5:1~11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눅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눅 5: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눅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눅 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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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한줄 요약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개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참고하기 위해서입니다.

0. 만남

만남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무엇일까요? 저는 현재는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책이지만,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톤레사프’는 캄보디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호수입니다. 여인의 말은 이렇게 계속되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지금 아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몬순이 닥치면 엄청난 폭우가 몰아쳐서 집이며 세간을 모조리 휩쓸어버리죠. 그러면 사람들은 공동으로 뗏목을 만들어서 몇 집이 함께 살아요. 비가 내리면 여기저기서 뗏목이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죠. 바로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듣고, 저는 해마다 6개월 동안 이웃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모두 옆집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표정이군요. 하지만 이웃과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상대방에게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알게 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누구를 만난다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 앞서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면 아직도 새학기가 되면 기대에 가득차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하고 말입니다. 반 아이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기대합니다. 기성 세대는 워낙에 힘들게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만남이 기쁠 여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만남에 관해 기대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만남이 기피해야 할 일이 된 이유는 만남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성숙한 인격을 갖게 되면 만남도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기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그래서 그의 삶이 기쁨과 기대로 가득차게 되었을까요?

1. 다가오시는 예수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본문과 병행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 (마 4:18~20)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만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자 마자 모든 것을 모두 버려두고 따라간 것처럼 서술되어 있습니다. 본문과 연계해서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가기에 충분할 만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후에 따라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기적을 체험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셨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비약하는 것이 아닌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찾아갔던 일을 생각하면 비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법은 은밀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찾아온 줄로 오해할 정도로 말입니다. 신앙이 내가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지만, 좁은 생각일 수 있습니다.

만약 혹독한 고문을 당해서 신앙을 부인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을 지켜왔지만, 고문이 너무 심해서 신앙을 부인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매우 편안한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신앙 생활한 사람보다 실제로는 믿음이 훨씬 더 좋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 비합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시니까 사람이 할 일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해야 합니다. 순종하든 불순종하든 말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안토니 후쿠마는 좁은 의미의 구원 그러니까 구원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신앙의 전영역에 걸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의지가 신비롭게 상호작용한다고 말합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잘난체하지 못하게 막아줍니다. 반대로 한편으로는 깊은 안도감을 줍니다. 내가 실수하고 실패해도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도 기댈 곳이 있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지구는 멈춰있고 하늘이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지구는 멈춰있고, 해가 도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도는 것은 해가 아니라 지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가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입니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주변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에 열린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기대하며 신중하게 하루하루를 살게 됩니다.

2. 부르시는 예수님

다음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베드로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결단의 계기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말입니다. 결단할 수 있도록 이끄시고, 결단할만한 근거도 주십니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 말씀은 더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라는 권유입니다. 그냥 놔두면 우리는 신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쁠때는 속삭이시고, 기분이 안좋을 때는 양심에 조용히 말씀하시지만, 고통중에 있을 때는 고함을 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기적을 체험해야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모든 종교가 나름대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기도응답을 체험해야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이번에 헌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무죄 판결 난 것이 자신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기적을 체험했다. 기도 응답을 체험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닌다는 말이 근거가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확실한 근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확실한 체험일까요? 기독교에만 있는 고유한 체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의 각성 체험입니다. 성령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하시는 사역은 죄의 각성 사역,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도록 조명하시는 사역,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죄인은 보통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들음으로 양심이 악을 깨닫게 됩니다. 단순한 양심의 자연적 작용으로도 때로는 통렬한 후회와 자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참된 변화는 오직 성령의 구원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안이 열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을 때 (고후 3:18) 나타납니다.

깊은 곳은 외적인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내적인 체험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 내면을 비추고 그 빛을 통해서 내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보게 되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게 되는 것은 잘 살게 해 주어서,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죄악성을 깨달았을 때 감격하게 됩니다.

신문 기사에서 한 어머니의 절규를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당신들은 댓글 한 줄 썼지만, 내 딸은 목숨을 버렸다”라고 말했습니다. 댓글 때문에 삶을 마감한 딸을 둔 어머니였습니다. 댓글 한 줄도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작은 악도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인간 내면에 있는 악의 불씨를 보아야 하고 그 비극성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인간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지 똑똑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 악이 있는 이상, 이 세상에는 비극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악의 불씨가 제거되지 않으면 어디나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죄악의 문제를 발견하고 슬퍼하고 붙들고 씨름한 사람만 그리스도께 감격할 수 있습니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절망을 체험해야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이 조명됩니다.

3. 만나주시는 예수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세 번째이유는 베드로에게 영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의 반응이 의외입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말씀 잘 듣고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어떻습니까?

본문과 같이 그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건 기적을 체험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는데 머물지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자신을 보는 일이 일어납니다. 빛이 비치면 보이지 않던 먼지가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거룩하신 분을 만나면 무엇보다 자신의 죄악됨을 보게 됩니다. 구약 시대 이사야가 체험한 일과 같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을 때, 하늘나라 재판정에 불리워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부정함을 보게 됩니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더니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일입니다. 이사야가 그전에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정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우리도 동일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교회는 이익 단체나 사교 장소로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로마시대부터 그런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염려할 필요 없는 이유는 그것이 진정한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들어가는 곳이지 자신이 선택해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교회, 진정한 교회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발달심리학자인 로버트 키건(Robert Kegan)과 리사 라스코 라헤이(Lisa Laskow Lahey)는 정신의 발달(development)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마다 주변 현상과 세상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있다. 그런데 정신이 얼마나 성숙했는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의 수준이 다르다. 단순한 공식에 대입해서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상황과 근거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세상을 받아들일 때 고려하는 복합적인 요소를 정신복잡도(mind complexity)라 한다.
가장 높은 정신복잡도의 단계는 자기 변혁적 정신이다. 자신만의 관점은 있지만 필요에 따라 그 관점을 잠시 벗어두고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관점에 왜곡된 부분이나 잘못된 가정이 있지는 않은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 모순된 관점을 가진 사람과 만나도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통합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관점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사람이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등한 사고는 자기 객관화’라고 했다. 실제로 이런 경지에 이른 분들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출처] 장영학,어서 와! 리더는 처음이지?

자기를 보는 것은 가장 높은 정신적 단계입니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입니다.

00. 이 말씀을 하신 이유

베드로는 이런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경황 없는 중에 배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다시피 예수님께서 다시 그를 찾아 와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에 이끌려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통해서 믿음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점진적으로 베드로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우연처럼 찾아오셨고, 깊은 곳으로 가자고 권유하셨고,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만나러 오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오십니다.

구약과 공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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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2018년 10월 28일 주일 설교

고리로전서 3:6~11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고전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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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한줄 요약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다양한 사람들을 보내셔서 성장하게 도우십니다.

개요

10월 마지막 주간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10월을 보내면서 가지는 생각이 달라집니다. 저 같은 세대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생각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할로윈데이를 생각하는 것을 봅니다. 외국 풍습이라서 동참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또래 문화라는 것이 있어서 무조건 막기도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은 10월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면서 생각할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종교개혁입니다. 중세 교회가 끝없는 타락에 빠졌을 때 종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사람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마틴 루터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을 마무리 지은 사람은 존 칼빈입니다.

왜 하나님은 존 칼빈에게 종교 개혁을 마무리 짓게 하셨을까요?

0. 칼빈이 종교 개혁을 마무리한 이유

칼빈은 우상화의 위험이 적은 사람입니다. 루터파를 만든 루터나 감리교를 만든 웨슬리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칼빈은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비교적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주도하기 보다는 도와주었고, 리더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칼빈이 종교개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536년 제네바에서 목사로 활동한 이후입니다. 이 일도 망설이는 칼빈을 기욤 파렐이라는 사람이 칼빈을 강력하게 설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칼빈은 후에 당시 일을 이렇게 썼습니다.

“기욤 파렐은 조언과 간곡한 경고로서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저주로서 나를 제네바에 붙들어 두었다. 이는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나에게 얹어 잡으시려는 것 같았다.” -출처, 칼빈의 시편 주석 서문

카리스마 있고, 결단력 있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리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칼빈은 인물 자체로 유명하기보다는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통해서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기독교 강요는 성경을 체계화한 책으로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의 바탕이 됩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리를 잘 세운 사람입니다.

칼빈은 다른 말로 하면, 우상화의 위험성이 적은 사람입니다. 저는 칼빈의 이런 점이 종교개혁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 우상화의 위험

사람에게는 우상화의 경향이 있습니다. 우상화는 일종의 투사입니다. 영어로는 프로젝션입니다. 프로젝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여기 벽에 나오는 화면은 사실을 벽에 쓰여진 게 아니라 노트북에 있는 것입니다. 노트북에 있는 화면을 벽에 쏜 것입니다. 그래서 글자를 고치려면 벽에서 고쳐서는 안되고 노트북에서을 고쳐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 의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 의사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잘 모르는데,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자기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에 의사는 나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마음을 엉뚱한 사람에게 덮어씌운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존경하고 싶은 사람이 이미 마음 속에 들어있습니다. 아까 말씀대로 카리스마 있고, 결단력 있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을 존경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무턱대로 존경합니다. 우상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칼빈같은 사람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장로교인은 칼빈을 무슨 우상처럼 존경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가 성경을 해석한 방법을 존중하고 그 방법을 따라 할 뿐입니다.

2. 아볼로, 바울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형의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빠와 엄마를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카리스마 있고 결단력 있는 스승도 필요하지만, 신중하고 세심한 스승도 필요합니다. 바울은 카리스마 있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고, 아볼로는 신중하고 학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제자 중에서 디모데는 몸이 약하고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 속에서 우상화하고 싶은 사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 섬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바꾸기 원하십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빠는 슈퍼맨처럼 힘에 쎈 사람입니다.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라면서 아빠가 배나온 아저씨에 불과하고, 모르는 것이 많고,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어른에 됩니다. 좋은 아빠는 이 과정을 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착각 속에서 살게 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4살 때,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5살 때,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6살 때,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8살 때, 아빠가 모든 걸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다.
10살 때, 아빠가 어렸을 때는 지금과 확실히 많은 게 달랐다.
12살 때, 아빠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빠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늙으셨다.
14살 때,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21살 때, 우리 아빠 말이야?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쳐졌지.
25살 때, 아빠는 그것에 대해 의외로 좀 알고 계시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내놓으신다. 뭐 오랫동안 그 일에 경험을 쌓아 오셨으니까 그 정도쯤은 아시는 거겠지만.
30살 때,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것도 큰 도움이 될것 같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35살 때, 아버지께 여쭙기 전에는 난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40살 때,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버진 그만큼 현명하고 세상 경험이 많으시다.
50살 때, 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계셔서 이 모든 걸 말씀드릴 수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가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게 후회스럽다.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도 있었는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 출처, 앤 랜더스

 

정신적인 성장과정도 비슷합니다. 우상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이 우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오해하고 착각 속에 살게 됩니다.

어머닌 장에 가실 때마다 나를 교실에 맡기셨는데 학교가 세상 전부인 교사의 아들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버지는 전능한 신이었다. 이모가 결혼을 하자 고급공무원에다 부자인 이모부는 나의 전능하신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경쟁 관계가 되었다. 그해 여름 이모 가족과 우리는 시골 별장을 빌려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떠났다. 드디어 휴가의 클라이막스인 사냥, 최신식 엽총을 꺼내는 이모부 앞에서 아버지가 낡은 화승총을 꺼내면서부터 모든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인 아버지는 한마디도 못하고 이모부는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대고. 아버지와 이모부 몰래 따라간 사냥에서 나는 아버지의 처참한 패배를 몇 번씩이나 확인해야 했다. 나는 그해 여름 신처럼 전능하게만 여겨지던 아빠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고 아빠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출처, 영화 마르셀의 여름

약점이 많은 인간임을 알고, 그것마처 사랑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반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사람을 우상화하고 고집스럽게 단점과 연약한 점을 외면합니다. 우상화된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포장하고 거짓을 내세웁니다.

참된 스승은 제자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인도해 줍니다. 보스는 부하가 자신보다 못한 사람으로 머물기를 바랍니다. 스승이 되어야지 보스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3.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좋은 스승을 보내고 그 스승을 통해서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 장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현재로써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1년 이상 변덕부리지 말고 꾸준하게 예배했으면 합니다.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심지가 견고하게 지냅시다.

정신적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남야 합니다.

미국의 쿠바 침공작전의 실패는 생각이 같은 사람의 오류를 알려줍니다.

집단사고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의 피그스 만 침공사건을 들 수 있다. 케네디 정권은 당시 쿠바에 위협을 느껴 카스트로 정권을 없앨 궁리를 했다. 핵심참모들이 논의한 끝에 미국으로 망명한 반(反) 카스트로 쿠바인들을 훈련시킨 후 피그스 만에 상륙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겠다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냈다. 또한 실패를 하더라도 쿠바의 내부 봉기를 일으킬 수 있을테니 케네디 행정부의 참모들은 이것은 꽃놀이패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일단 침공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3일 만에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1,000명이 생포되었다. 그러면 쿠바의 내부 봉기는? 봉기는커녕 카스트로 정권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고 쿠바는 미국에게 내정간섭이라고 몰아부치며 포로교환의 조건으로 배상을 청구했다. 그리고 미국은 어쩔 수 없이 1961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비용인 5,300만 달러를 배상했다. 무엇보다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졌던 미국은 멍청한 짓을 했다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글로벌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었다.
당시 케네디 정권의 참모진은 하버드대학교 교수, 포드자동차 사장, 록펠러재단 이사장 등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폐쇄된 공간에 모여 논의를 할 때,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사고는 큰 실패를 낳을 수 있는 잠재된 핵폭탄과 같다. 실제로 미국의 어설픈 행동으로 인해 당시 쿠바를 지원하던 소련과 핵전쟁이 일어날 뻔하기도 했다.
-출처, 고영성의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있으면 아무리 엘리트를 모았더라도 오류에 빠지고 실수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집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단이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설립하고 아볼로가 대를 이어서 목회를 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두 사람의 성향이 다른 것을 하나님도 아셨습니다. 그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00. 이 말씀을 하신 이유

리더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가르침을 잘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우상화하거나 숭배해서는 안됩니다. 그도 약점이 있는 평범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섭리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찬양과경배
425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2018w43_온통 가을로 둘러싸여 예배합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기도 듣기

은혜의 하나님,
가을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산을 넘고 가로수를 적시고 앞마당까지 물들였습니다. 저희는 온통 가을로 둘러싸여 주님의 섭리를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지만, 태풍이 큰 위력이 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특히, 태풍 ‘위투’로 인해서 사이판이 큰 피해를 입었고, 우리나라 관광객 1,800명도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태풍이 아직까지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유래 없는 이상 고온이 태풍에 힘을 보태주었기 때문입니다. 시계 부품처럼 정교한 세상이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저희가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겸손함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인간의 지혜보다 우월하고, 하나님 만드신 자연은 인간의 과학보다 아름답습니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기 원합니다.

경배와찬양 : 493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사랑의 하나님,
이제 세상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그로 인해 자기 유익을 위해 갈등하고,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분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돈보다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고 금보다 소중한 것을 소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최근 일어난 흉악 범죄로 인해서 국민들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저희가 두려워하지 않고 냉철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해답을 찾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인터넷을 통해서 가짜 뉴스, 거짓 소문, 허위 정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사실을 알기 전에 결론을 내리지 않는 절제를 주시옵소서. 감정에 휘둘려서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명철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이제 예배 장소를 평택 뉴코아에서 두란노 교회로 변경하려고 합니다. 저희 선택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두 교회가 겸손하게 연합할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시니 주님 뜻대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283 마음이 상한 자를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노아의 권위

본문 

창세기 09:20~27 / 2018년 10월 21일 주일설교

(창 9: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창 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 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창 9: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 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창 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창 9: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창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레 6:10)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삼상 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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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한줄 요약

노아는 구원 계시의 전달자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요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하나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0. 권위와 권위주의

노아가 술을 먹고 옷을 벗고 있었습니다. 아들 중에서 함은 노아의 실수를 떠벌렸고, 셈은 덮어주었습니다. 이 내용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단순히 목회자의 실수를 떠벌리면 안된다. 혹은 목사를 비판하면 안된다는 의미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바른 해석은 무엇일까요?

이 내용에서 의문점은 세 가지 정도입니다. ‘노아의 실수는 무엇인가?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는가? 셈이 칭찬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노아가 자기 방에서 술을 먹고 옷을 벗었는데, 그것이 왜 큰 실수일까요? 함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셈의 하나님을 찬송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이 권위에 관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영향력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권위는 그리스도를 알리는데 필요한 영향력입니다. 하나님은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1. 노아의 실수는 무엇인가?

첫째, 노아의 실수는 무엇일까요?

성경의 다른 구절을 보고 추측해 보겠습니다. 레위기를 보면 제사장은 속옷을 입고 하체를 가려야 했습니다. 하체를 보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레 6:10)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노아도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제사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율법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의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왜 하체를 가렸을까요? 당시 가나안 이방 종교에서는 옷을 벗고 음란한 행위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적인 죄를 엄격하게 금하셨습니다. 할례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언약의 증표입니다. 또 제사장에게 하체를 가리라는 말씀도 특별히 더 음란한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노아가 하체를 가리지 않은 것이 실수입니다. 그는 음란한 죄를 범해서는 안되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하체가 놀림이나 경멸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되었습니다.

2. 가나안이 저주받은 이유는?

둘째, 함이 잘못했는데, 왜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노아가 하체를 벗었어도 함이 그것을 발설하지 않았으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은 그것을 발설했고 노아의 실수는 알려졌습니다.

함의 죄는 계시의 전달자인 노아의 권위를 훼손해서 그가 전하는 말씀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데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가 떨어지면 그리스도를 만나기 힘들어집니다.

하나님은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그리스도를 만나기 못하게 하는 행동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성령 모독이고 성령을 거스르는 행동입니다.

(마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함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다윗의 예를 보면 명백합니다.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사울은 정식으로 기름부음받은 왕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건,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의미입니다.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받은 사람은 세 사람입니다. 제사장, 왕, 선지자입니다. 따라서 그의 권위는 제사장과 동등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대할 때 보여준 존중은 함이 노아에게 보여주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함이 잘못했는데,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함의 계보로는 이후로 구원 계시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가나안이 믿음을 이어받지 못했다는 말은 함에게 믿음이 없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3. 셈의 하나님이라는 말의 의미는?

셈은 다윗이 사울에게 보여준 것과 동일한 존중을 노아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리스도를 존중했다는 의미입니다. 셈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은 셈이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믿음이 확증된 것입니다.

오늘날 권위가 실종되고 권위주의만 남았습니다. 권위주의란 권위가 없는데 권위가 있는 척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위를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막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고, 성령을 거스르는 행동입니다.

그러면, 권위와 권위주의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닮았는가, 닮지 않았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동일하게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이 깨끗하지 않으면, 구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00. 이 말씀을 하신 이유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분해야 합니다. 권위주의는 비판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하지만, 권위는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권위는 그리스도를 알도록 인도하고 도와주고 만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 권위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2018w42_단풍은 하나님의 편지같습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섭리의 하나님,
소리없이 단풍이 산과 들을 물들이고 도시로 내려와 거리의 가로수마저 물들이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뀐다고 알려주는 하나님의 편지같습니다. 가을 편지같은 단풍을 보며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올해는 이상 고온으로 인해 잠자리를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들판을 날아다니던 고추 잠자리, 된장 잠자리, 밀 잠자리, 장수 잠자리가 그립습니다. 잘못하면 나중엔 잠자리가 사라질지 모릅니다. 옛날에 있었던 곤충으로만 기억될 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자연을 저희에게 주셨지만, 저희는 자연을 보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세 먼지, 미세 플라스틱, 오존층 파괴, 이상 기온으로 땅, 공기, 바다를 오염시켰습니다. 하나님이 빌려주신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과학의 발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자연을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막아 주시옵소서. 풍요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양심을 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인간의 지혜보다 우월하고, 하나님 만드신 자연은 인간의 과학보다 아름답습니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기 원합니다.

경배와찬양 : 462 하늘을 나는 새도

사랑의 하나님,
이제 세상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그로 인해 자기 유익을 위해 갈등하고,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분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돈보다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고 금보다 소중한 것을 소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주에는 맘 카페를 통해서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고 그로 인해 상처받아 삶을 마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말이 칼보다 날카롭고, 마음의 상처가 몸의 상처보다 아픈 시대입니다. 말을 조심하고 마음에 상처를 주기 않기 위해 조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터넷을 통해서 가짜 뉴스, 거짓 소문, 허위 정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사실을 알기 전에 결론을 내리지 않는 절제를 주시옵소서. 감정에 휘둘려서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온유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이제 예배 장소를 평택 뉴코아에서 두란노 교회로 변경하려고 합니다. 저희 선택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두 교회가 겸손하게 연합할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시니 주님 뜻대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185 하늘 위에 주님 밖에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교리] 예수님의 죽으심

본문

사 53:4~6 / 2018년 10월 14일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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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한줄 요약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죄를 범한 인류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은 대속이었습니다.

개요

프로야구 정기 시즌이 끝났습니다. 플레이오프라고 해서 정규시즌이 끝난 뒤에 1등을 가리는 시합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스포치를 좋아하는 분들, ‘팬’이라고 하는 분들은 스포츠에 매우 몰입을 합니다. 대학 동창 중에 한 명은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습니다. 그 친구는 타자들의 타율과 투수들의 방어율 같은 기록을 암기하고 다녔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그런 팬의 모습이 놀랍게 보이겠지만 더 심하게 몰입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야구팬 중에는 선수나 감독보다 데이터를 잘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수 중에는 자기 기록은 몰라도 다른 사람의 기록은 잘 모르는 선수도 있습니다. 데이터에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 아무리 잘 알고, 각종 기록을 암기하고 있어도 팬은 팬이고 선수는 선수입니다. 결국 기록을 만들고 감동적인 순간을 가져도 주는 사람은 팬이 아니라 선수입니다. 여러분은 선수가 되고 싶으십니까, 팬이 되고 싶으십니까? 교회에도 선수가 있고, 팬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선수가 될 수도 있고, 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 용어로는 선수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합니다. 팬은 무리라고 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아는데서 그치지 말고, 성경의 가르침을 살아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 다녀면 예수님이 나를 대신 죽으셨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대속이라고 합니다. 이 진리를 이론적으로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경험해야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0. 복음의 신비

복음의 신비는 사랑과 공의를 둘 다 만족시켰다는 점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벌주지 않고 용서하면 불공정한 일이 되고, 죄를 지었다고 벌만 주면 사랑이 없는 것이 됩니다. 이 두 가지 모순, 사랑과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점이 신비입니다.

동그라미와 네모를 합칠 수 있을까요? 그냥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원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위에서 보면 원이고, 옆에서 보면 네모입니다. 생각이 넓어져야 신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것도 이처럼 생각이 넓어져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우리의 질고를 지고

질고는 병 혹은 아픔을 의미합니다.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죽어간다는 증거가 질고입니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정신적 , 육체적으로 질고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과 사회를 바라볼 때 이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질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질고는 형벌을 동반합니다. 질고의 원인은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난데 있습니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경건하지 않음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는 그 결과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합니다. 인간이 의롭지 못한 이유는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 생명을 이어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정신에도 질고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마음과 정신에 질고가 있습니다. 마음과 정신이 부패했습니다. 다른 말로 비정상적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복음이 시작됩니다.

인간의 몸과 정신에 질고가 있기 때문에 슬픔이 옵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이 모두 질고에 원인이 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영혼이 아파서입니다. 부모, 남편, 아내, 자녀, 형제자매, 직장 동료, 주변 사람들이 아픔을 줍니다. 마음에 상처를 주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입니다.

2. 그가 찔림은

우리 삶의 질고와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그 모든 질고를 담당하셨습니다. 불경건의 대가를 치러야 불경건을 해결할 실마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대속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은 대속의 삶이셨습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우리의 질고와 슬픔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죄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각성이 일어나기는 힘듭니다.

죄의 각성이 일어나야 예수님의 제자로서 삶이 시작됩니다. 죄의 각성이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 알려면, 자기 객관화가 가능한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용, 장영학 – 어서 와 리더는 처음이지]

하버드 대학교의 발달심리학자인 로버트 키건(Robert Kegan)과 리사 라스코 라헤이(Lisa Laskow Lahey)는 정신의 발달(development)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마다 주변 현상과 세상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있다. 그런데 정신이 얼마나 성숙했는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의 수준이 다르다. 단순한 공식에 대입해서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상황과 근거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세상을 받아들일 때 고려하는 복합적인 요소를 정신복잡도(mind complexity)라 한다.

정신복잡도에는 세 단계가 있다. 사회적 정신(Socialized Mind)은 규율을 따라 다른 사람들과 팀으로 일할 수 있는 단계이다. 자기 통제적 정신(Self-authoring Mind)이 되면 자신만의 사고체계를 가지고 일할 수 있다. 가장 높은 단계인 자기 변혁적 정신(Self-transforming Mind)은 여러 가지 사고체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단계이다. 어릴 때는 주로 부모님으로부터 세상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학교에 입학하면 행동 기준이 친구들로 바뀌게 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내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고 없음의 기준이 된다. 타인이 세워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출 수 있는 사회적 정신의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여러 경험이 축적되고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양한 관점을 접하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이 생긴다. 이것이 자기 통제적 정신이다. 이 단계가 되면 비로소 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 할 수 있다. 사회적 정신은 모두가 ‘예’ 하면 절대 ‘아니오’ 하지 못한다. 자기 통제적 정신에 이르러야 자신만의 관점을 남들에게 주장할 수 있으며, 가보지 않은 곳으로 남들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 다만 이 단계는 자신의 관점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그것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불완전한 관점 중 하나라는 것을 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 특히 자기보다 아랫사람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게 된다. 자신만이 옳은 사람이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임원들 중에 자신만의 성공 방정식에 빠져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런 분들은 자기 통제적 정신을 가지고 성공했지만 그 성공 경험 때문에 이 단계를 뛰어넘지 못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정신복잡도의 단계는 자기 변혁적 정신이다. 자신만의 관점은 있지만 필요에 따라 그 관점을 잠시 벗어두고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관점에 왜곡된 부분이나 잘못된 가정이 있지는 않은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 모순된 관점을 가진 사람과 만나도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통합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관점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사람이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등한 사고는 자기 객관화’라고 했다. 실제로 이런 경지에 이른 분들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인용 끝]

자기 객관화에 이른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게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되면 가장 처음 도달하는 경지입니다. 죄의 각성이 일어나면 당연히 오는 단계입니다.

성경을 기가막히게 푼다는 사람 중에 죄의 각성이 있어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무리일 뿐입니다. 아직 선수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3. 그에게 담당시켜셨다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법은 예수님이 대신 대가를 치르고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연합이 필요하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과 연합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대가를 치르고, 의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00. 이 말씀을 하신 이유

야구 룰과 선수들의 데이터를 많이 안다고 해서 선수가 아닙니다.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뛰어야 선수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관한 지식을 많이 안다고 해서 제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삶을 직접 살아야 선수입니다.

그 시작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고 죄의 각성이 일어나는 데서부터입니다. 하나님께 예수님의 죽음의 신비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죄의 각성이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과경배

우리의 어두운 눈이

2018w41_파란 하늘을 보며 예배합니다

읽으면 기도가 되오니, 되도록 마음을 실어 소리 내 읽어주세요.

기도 듣기

섭리의 하나님,
물감을 풀은 것처럼 하늘이 파랗습니다. 행복을 꿈꾸던 고향의 하늘입니다. 하늘은 예전과 다르지 않지만, 저희는 점점 자라서 나이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변함없이 순수하게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요즘은 사회와 기업이 모두 일과 쉼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쉬지 않고 일만 해서는 발전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수 천년 전에 주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셔서 가르치신 진리를 이제야 깨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일과 쉼의 균형 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리려는 의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쉼의 중요함을 깨달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중요성도 깨닫게 하여 주시옵서.

은혜의 하나님,
저희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반 만년의 세월을 이어왔다고 내세우지만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던 이 민족, 독립을 유지했다고 자랑하지만 외국의 침공에 수 없이 시달린 이 민족. 기독교를 받아들여 이제야 번영을 누리게 되었지만 급격하게 타락하고 있는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구약 시대에 남유다를 향해 한 사람의 의인을 찾는다고 말씀하셨던 주님, 이 시대에도 동일한 말씀을 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가 이 나라 이 민족에서 한 명의 의인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경배와찬양 : 462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사랑의 하나님,
이제 사회는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합의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자기 이익을 위해 갈등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안정, 빈부 격차 해소, 청년 실업 완화, 노인 빈곤 해결 등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인터넷 댓글을 통해서 악성 비난이 발생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비난과 소문이 근절되도록 인터넷 문화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또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상처가 있다면 치료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갖되,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편견을 버리고 사실을 보고 판단하는 냉철함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평택 뉴코아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평택 뉴코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게 하시고, 좋은 소문이 퍼져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고한 이들에게 기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과 잃은 자를 향한 긍휼로 가득 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찬양 : 185 하늘 위에 주님 밖에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